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냉수 한 그릇 Feb 11. 2024

나만 몰랐던 세상

절세계좌, ETF, 채권 이야기

지금 처해있는 삶은 관심사를 바꾼다. 아니, 원래 있던 관심사가 현재 형편 때문에 수면 위로 머리를 들어 올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래도 난 후자인 듯하다.     


어릴 적 기억 속의 어머니는 늘 종이쪽지에 그날 산 물건의 값이나 앞으로 사야 할 물품 등을 기록하셨다. 한 달 수입과 지출이 얼마며, 앞으로 필요한 예산이 얼마인지 기록하셨다. 한 권의 공책이 아닌 그때마다 눈에 보이는 종이에다 기록한 걸 보면 그리 체계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책상 위에 놓인 수많은 종이쪽지와 함께 한숨을 내뱉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땐 몰랐는데 그 종이는 소위 '가계부'란 것이었나 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기숙사 및 자취 생활을 하다 보니, 어릴 적 보고 자랐던 어머니의 종이쪽지 가계부 작성이 내게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한 가지 다른 건, 컴퓨터공학과 출신답게 월 예산을 엑셀로 작성한다는 것이다. 한 달 수입과 지출이 얼마인지, 고정지출과 변동지출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작성했다. 헌금, 보험, 공과금 등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할 경비를 제외한 예산에서 1순위로 저축비용을 제하고 나머지 예산에서 생활비를 책정했다. 신용카드는 비상용으로 하나 있긴 하나 사용할 일은 거의 없었다. 계좌를 여러 개 분리하여 월급통장에서 각 계좌로 자동이체했고, 오로지 생활비 통장에서만 체크카드로 지출했다. 돈이 부족하면 예비비 계좌에서 일부를 생활비 계좌로 이체하여 사용했다. 예산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얼마를 지출했는지 알 수 없기에 무분별하게 소비하게 되고, 신용카드 사용은 결국 빚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철저한 예산 계획 덕분에, 사례로 68만 원을 받았던 교육전도사 시절에도 공과금과 헌금을 제하고도 저축이 가능했다. 자라면서 어머니께 보고 배운 것이 월간 예산을 짜고 저축하는 것이었으니, 돈 모으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던 셈이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은행 이자율은 무려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다. 지금으로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율이다. 당시엔 허리를 졸라매고 아낀 돈으로 저축만 해도 부자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어머니 세대에게서 재테크를 배운 베이비붐 세대는 여전히 저축만을 최고의 투자 수단으로 여긴다. 주식은 패가망신하는 지름길이고, 채권은 부자들의 전유물이며, 부동산은 강남 사모님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때 코로나19로 제로금리 시대가 막을 열었을 때도, 경기 부양을 위한 연준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막고자 금리를 인상할 때도, 지나친 금리 인상으로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고자 금리를 인하하려는 이때에도, 오로지 연이율 3~5%밖에 되지 않는 저축 예금만을 유일한 재테크 수단으로 여기고, 주식 등을 말하면 신앙이 없거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세상적인 크리스천으로 치부하는 작금의 현실이 심히 안타깝다. 분명한 사실은, 물질의 청지기로서 돈을 사랑하고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경제에 무관심한 것 역시 내가 볼 땐 자질이 부족한 청지기이다.      


작년까지 국내주식 매매에 집중했다. 재작년 주식 수익으로 에어컨과 김치냉장고를 구입하여 가계에 보탬이 되었다면, 작년 주식 수익으론 그동안 비싸서 감히 사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식당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되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경제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그들 노후를 교회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 자립하여 보낼 수 있도록, 나아가 더 어려운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수준으로 이끌어주고 싶었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남들보다 주식 수익률이 높긴 했으나,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수준의 실력까진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답을 찾지 못한 채 고민만 더해갔다.      


한번 꽂히면 끝장을 보는 성격 탓에 (세어보진 않았지만) 주식 관련 책만 무려 백 권 이상은 읽은 듯하다.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전자책으로 읽은 책만 해도 상당하다. 서점에 들를 때마다 신간 코너에서 서서 읽은 책까지 합하면 수백 권은 될 것이다. 유튜브 시청으로 공부한 것까지 포함하면, 거짓말 조금 보태어 주식 관련 책과 유튜브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답을 찾지 못해 답답했던 내게,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올해 초, 우연히 도서관에서 읽은 한 권의 책이 내 뒤통수를 때리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연금저축계좌로 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매월 적립식으로 투자한다는 내용의 책이었다. 연금저축계좌라니, 생전 처음 들었다.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전혀 관심 없었던 ISA니 IRP니 하는 계좌도 언급되어 있었다. 나만 몰랐던 세상이 있었다. 나만 몰랐을 뿐, 나를 제외한 모든 이는 똑똑하게 절세하고 투자하면서 자산을 불려 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지혜로운 물질의 청지기였다면, 난 게으르고 무식한 청지기였던 셈이다. '무지(無知)'는 죄다.      




끝장내는 성격이 다시 한번 발동했다. 해외주식, ETF, 채권 관련한 책을 미친 듯이 읽었다. 1월 첫날부터 오늘(2. 10. 현재)까지 읽은 33권의 책 중, 경제 관련 책만 20권이 넘어간다. 올해 연준에서 금리를 인하할 것이 확실하기에 과감히 채권 ETF에 투자하기로 계획했다. 장기적으로 미증시는 우상향 할 것이기에 나스닥이나 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도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공부할수록 확신이 생기기에 둘 다 레버리지 ETF에 투자할 생각이다. 더불어 배당주 ETF인 SCHD(일명 ‘슈드’)에도 투자하려고 한다. 채권 ETF와는 별개로 은행 예금이자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고 안전한 개별채권, 이왕이면 장외가 아닌 장내채권을 매매하려고 한다. 장외채권은 금액으로도 주문 가능한 것과 달리 장내채권은 수량으로만 입력 가능한데(내가 쓰는 유안타증권 티레이더에선 그런데 다른 증권앱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입력 방식이 일반 주식과 달라서 어려웠으나 지금은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힌다. 아무래도 장외채권 중심으로 매매하게 하려는 증권사의 상술인 듯하다. 채권 ETF는 만기가 없기에(물론 만기매칭형 ETF가 있으나 대부분 단기채에 투자해서 수익률이 높지 않다) 원금을 보장받을 수 없으나, 개별채권은 만기가 있기에 원금보장은 물론 채권가격에 따른 매매차익까지 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참고로 채권은 은행예금처럼 안전자산이면서도 동시에 이율이 높고 3개월(혹은 1개월 등)마다 이자를 지급한다. 은행에 예금하면 이자를 받는다. 무슨 돈으로 은행은 고객에게 이자를 지급할까? 바로 채권(기타 주식 등의 투자수익)이다. 은행은 채권에 투자하여 받은 이자 중 일부를 고객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더 높은 이율은 가져간다. 은행이 자산의 70%를 채권으로 가지고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그렇다면 내가 은행이 아닌 채권에 직접 투자한다면 훨씬 이득이다. 이런 이유로 부자들은 은행이 아닌 채권에 투자한다. 대출은 나쁜 것이라고 들었는데, 착한 대출이 있단다. 대출받은 돈을 대출이자보다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하는 채권에 투자하는 것도 레버리지를 활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여전히 대출에 대한 편견 때문에 여기까진 시도할 자신이 없으나, 채권매매 경험이 쌓이면 과감히 시도해보려고 한다.      


나만 몰랐던 세상에 이제 들어가려고 한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를 지금도 한다. 하나뿐인 내 자식에게만큼은 경제 관련해선 후회하지 말라고, 지난 1월부터 아들 명의 연금저축계좌를 개설하여 나스닥 지수를 추종하는 국내 상장 ETF에 5만 원씩 투자하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늦었지만, 나 빼고 다하고 살았던 세계에 들어가는 나 자신을 스스로 응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똑똑하게 절세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