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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balt Aug 08. 2024

가장 평범한 순간, 가장 특별한 예술

글의 소재도 좋고 은유도 좋고, 삶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퀄리티 좋은' 글을 매번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서 나올 수 있는 최고로 좋은 글만, 발행하고 싶다는 생각.


이런 생각이야말로 글쓰기 행위 자체를 막는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완벽한 상황이 세팅될 때, 그리고 좋은 글감이 마침 눈에 보일 때,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 나의 주변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는 그런 시간을 기다렸다가 글을 쓴다면 작가는커녕 그 흔한 블로거도 될 수 없을 것이다.


가끔은 탈출이 필요해!



많은 작가들이 완벽하게 세팅된 서재에서 보다, 카페에서, 몰에서 글을 쓴다고 고백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당한 소음, 많은 사람이 통행하는 곳에 섞여 있을 때가 혼자, 나만의 공간에서 각 잡고 쓸 때보다 마음이 가볍다.


내가 글 쓰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서가에 꽂힌 대단한 작가들의 책들에 둘러싸여 글을 쓸 때 보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쇼핑하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떠는 몰 안에 위치한 카페에서 글을 쓰는 편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왠지 나의 글도 그냥 일상적으로, 장보고 이야기하고 커피 마시는 것처럼 쓸 수 있을 것 같다.


멋들어진 작업실이 있을 것 같은 봉준호 감독도 카페에서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을 보면 나만의 공간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공간이 주는 정신적인 여유로움은 퀄리티를 따지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큰 요소다.


소셜미디어에서 화려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아닌, 대형 쇼핑몰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일상적인 잡음을 들으며, 동네의 카페에서 가장 평범한 커피를 마시며, 어쩌면 글감이란 것이 그렇게 특별하거나 모든 이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에 관한 작가들의 에세이를 읽어보니, 글을 완성시키는 것은 영감도, 쾌적한 작업실도 아니었다. '그냥 쓴다'는 가장 심플한 습관이 있었을 뿐이었다.


일상적인 사물을 찍어 예술 작품을 만드는 사진작가 구본창은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크고 화려한 것에 주목한다. 쉽게 눈에 띄지 않거나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것들은 무심히 스쳐 지나간다. 크게 드러나지 않고 한 발자국 물러난 곳에 고즈넉하게 숨어 있는 존재들. 얼핏 볼 때 그것들은 낡아 빠졌거나 쓸모를 다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그 속에 스민 이야기가 새어 나온다. 작고 조용한 존재들에 말을 걸고 귀를 기울이는 행위. 지금껏 내가 해온 사진 작업의 큰 축은 이러한 시선에 기조를 두고 있다."


그는 또 이렇게 창작자를 위로하기도 한다.

"... 최고의 작품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이야기하다 가는 것이 결국 인생이 아닌가 싶다." (구본창, 공명의 시간을 담다)




유명한 작가들이 유독 부러울 때는, 작가들이 여행기를 펴 냈을 때다. 출판사에서 경비를 부담하고 작가는 자유롭게 여행하며 글을 쓰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그런데 막상 여행기를 읽어보면 여행이라는 매우 특별한 상황에서 쓴 글들이 그 작가의 기존 글보다 못하다고 느낀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여행기가 재미없는 이유는 작가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과 이국적인 건축물들이 아직 그 작가에게 소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유적의 자태를 목격하고 역사적 배경을 독자들에게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 작가의 존재의 일부분이 되지 않은 '팩트'들은 갈 길을 잃고 글 안에서 맴돈다. 유적지의 표면을 훑은 여행기가 아닌, 3년간 남부 유럽을 떠돌며 정착해 직접 생활하면서 써 내려간 하루키의 "먼 북소리"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 누구도, 나와 관계없는 것들을 잘 쓸 수는 없다.


릭 루빈의 말처럼, "때때로 가장 평범한 순간에 가장 특별한 예술 작품이 탄생한다."(릭 루빈,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나의 평범한 순간들을 더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캐치하는 것. 더 깊이, 투명하게 보는 것. 온전히 나의 것이 된 것들을 내 놓는 것. 그렇게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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