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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룬아 Jul 03. 2016

Fundamental Berlin 인터뷰

알 수 없이 속이 답답해지면 창문을 열었다. 심호흡 한숨에 밤하늘 한소끔 올려다보면, 한 천년 전에 반짝 한 별빛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 참 진부하게도 내 고민은 우주먼지만도 못한 것이라 검은 광활함 아래서 잠시나마 평안을 되찾았다. 우리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래서일까 바다의 파도소리, 산과 강의 메아리, 계절의 변신 앞에서 너무 쉽게 마음을 놓는다. 흩날리는 꽃잎, 흩뿌리는 눈꽃에 감격하는 건 포장지를 뜯는 수준에 불과하다. 꽃봉오리는 둥글게 둥글게 피어나고, 눈송이는 육각형으로 번진다. 여기에 인간의 눈으로는 다 보이지 않는 삶과 생존의 이야기가 있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오래전부터 찬양되었고, 그 흔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령 A4 용지의 규격이라던지.

베를린의 Fundamental은 자연의 법칙에 매료되었다. 그것이 곧 우리의 근본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비밀을 뭉근하고 즐겁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 벽에 거는 포스터나, 탁자 위에 놓는 작은 그릇의 형태로. 

베를린에는 어떻게 정착하게 되었나요?


둘 다 공부하러 왔어요. Gunnar은 1999년에 오버라우지츠Oberlausitz에서 왔고, 더블린 출신 Stephen은 런던에서 공부하다 2003년에 왔죠.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 한다고요. 그렇게 본 세상은 어떤가요?


아이들은 다소 일차원적이고 주관적이지만, 사소한 것에서 신비로움을 발견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쉽게 집착하죠. 횡단보도의 하얀 선만 밟으려고 껑충껑충 뛰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죠? 아마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예요. 아이들은 강박적인 성향도 갖고 있지만, 그 안에서 재미를 찾아 매일같이 사소한 도전을 해요. 그게 바로 저희가 디자인을 하면서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예요.


Fundamental(근본적, 핵심적, 기본적)이라는 이름에서 브랜드 철학을 엿볼 수가 있는데.


저희는 자연 속에 숨어있는 수학적 법칙들을 찾고 추상화시키는 작업을 좋아해요. 표면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본질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어렵게 들리겠지만 쉽게 가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과정을 너무 간소화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탐구는 깊게 할수록 풍부해지기 마련이니까.


수학은 (특히 디자이너들에게) 어려운 분야예요.


저희도 딱히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이 아니었어요. 중학교 때 정말 열정적인 수학 선생님이 계셨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는 않아도 그 학문 안에 우아하고 풍부한 무엇이 담겨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죠. 영감을 많이 주시는 선생님이었어요.

자연은 친절한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우리는 모두 결국 죽게 되죠. 육체는 부패하고 썩어서 변형되고 전이될 거예요. 죽음이란 개념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섭게 느껴지지만 매년 돌아오는 봄과 작은 생명체 같은 것들로 인해 상쇄되곤 해요. 그래도 자연은 혹독하고 독단적인 과정으로 모두를 죽음에 이르게 하죠. 인간의 역할은 그 안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의 법칙에서 영감을 받는 창작자들이 많아요. 하지만 결코 적용하기 쉬운 요소는 아니죠. Fundamental은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작업의 시작점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집착하지는 않아요. 결론적으로는 우리의 직관이 결과물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죠. 자연의 법칙들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은 즐겁지만, 그런 후에는 그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룰을 창조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해요. 틀을 깨고 나오는 단계까지 이르러야 창의적인 성과를 낼 수 있어요.


반면, 산업재료를 주로 사용하시는데.


사실 초반에는 나무를 많이 사용했지만, 점점 자유도가 높은 소재를 활용하기 시작했어요. 제작 단계에서의 효율성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에 대조적인 자연의 이야기를 담는 일이 흥미로워요.

원래의 본업은 건축이시죠.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는 뭔가요? 건축과 제품 디자인의 차이가 있다면?


건축 프로젝트는 일정이 정말 길어요. 그 사이사이에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는 도피처가 필요했어요. 아이디어들을 간단하게 테스트해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스스로 지루해지지 않는 게 중요했거든요.

가장 큰 차이점은 소비자와의 관계에요. 건축가는 주로 클라이언트와의 관계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대중과 직접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운이 좋은 거예요.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그치고 마는 거죠. 하지만 제품을 만들면서부터는 고정 소비자도 생기고 저희에게 다양한 의견을 주는 팬층도 생겼어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커요.


제품을 생산하고 나서 건축가로서의 자세가 바뀌었나요?


네, 많이 변했어요. 소비자들에게서 에너지를 받은 게 제일 클 거예요. 건축가로서의 자신감도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 자랑 좀 해주세요.


황동으로 만든 PUSH 볼이 인기가 많아요. 삼각형 패턴을 반복시켜서 입체적인 형태를 만드는 테스트 과정에서 나온 건데, 패턴 사이의 공간들이 불규칙하게 변형되면서 반구를 만들어요.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흥미를 갖는 제품이에요. 저희는 호기심으로 만들어 본 건데 뿌듯하죠.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제조 산업이 하향세를 띠고 있죠. 소비자의 취향은 매일같이 변하고요. 제조와 트렌드를 기반으로 하는 제품 디자이너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해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고 그들의 일상에 가치를 더할 수 있다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게 돼있어요. 경제가 어려울 때 립스틱이 잘 팔린다고 하죠. 가장 합리적으로 럭셔리를 누릴 수 있으니까요. 저희는 고가의 공예품도 만들지만 동시에 간단하고 단순한 제품도 만들어요. 누구나 자기 형편에 맞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도록.


무엇이 Fundamental의 성공을 가져왔을까요?


제품을 통해 저희를 알아보는 것 같아요. 모두가 저희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한 번 공감하면 푹 빠지더라고요. 그리고 간단하게 선물할 수 있는 아이템부터 평생 가져갈 원목가구까지 만들고 있으니, 적어도 가격적으로는 민주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거죠. 그게 큰 메리트인 것 같아요.


전 세계의 많은 창작자들이 베를린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어요. 예술가의 도시에 사는 건 어떤가요?


베를린은 최고예요. 다소 거칠고 못난 구석들도 있지만 멋진 사람들이 많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넘쳐요. 하지만 런던이나 뉴욕 같은 추진력은 없는 것 같아요. 등 떠미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의 의지가 정말 중요해요.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하고 열정적인 태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느슨해지기 쉽죠. 예전보다 물가가 많이 올랐지만, 그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어요.

베를린에서 전통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좋은 건 모두 새 거예요.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역사가 없고, 성장만 남은 아이 같죠. 그게 이상하게도 일종의 해방감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서울 진출을 축하해요. 당신의 눈에 서울은 어떻게 비치나요?


서울은 매혹적인 도시예요. 서양인들은 한국을 진부하게 도예 같은 산업과 연관 짓곤 하는데, 현대나 삼성 같은 기업들이 산업디자인에 큰 비중을 차지하며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죠.

무엇보다 서울은 정말 다이내믹하고, 빠르고, 급변하는 도시 같아요.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이나 음식문화가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고. 언제부터인가 새롭고 젊은 문화를 주도하는 게 일본이 아닌 한국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새삼 신기하네요.

약 4년 전 방문한 베를린은 흥과 자유와 유행의 덩어리 같았다. 시간과 묵은 건축물 사이에 고가의 동남아 레스토랑이 키치스럽게 들어섰고, 햇빛으로 보송한 잔디 위에서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맨발로 체조를 했다. 밤은 깊어질 줄을 몰랐으며, 아침이 되어도 밤은 놓아지지 않았다. 낯선 것들이 익숙하게 느껴졌던 이유에는 어쩌면 유럽 땅에서 서울과 가장 근사한 곳이어서였을까. 유럽인들은 베를린을 독일의 일부가 아닌, 문화와 전통이 전혀 다른 별개의 나라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그만큼 타독일 도시들과는 다른 리듬과 분위기를 풍기며 단독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Fundamental의 물건들을 이제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낯설고 또 익숙할 것이다.


https://fundamental.berlin/

+모어댄레스에 입점되었습니다.

+photography ⓒFundamental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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