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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룬아 Jul 14. 2016

JNS, 허니배저레코즈 프로듀서 인터뷰

뜨거워진 발바닥으로 계단을 딛고 지하에서 올라오면, 선선한 새벽이 밝아있었다. 그와 동시에 코 끝으로 밀려들어오는 고기 내음은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클럽 앞 대로변 트럭에서 파는 케밥으로 밤새 소비한 칼로리를 보충했다. 우리는 취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춤을 즐겼다. 그리고 영원할 줄 알았던 열정은 체력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흥미가 떨어졌다는 변명으로 희미해진 체력을 감추려 했다. 노는 것도 공부만큼 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갈 즈음,

케익샵Cakeshop, 피스틸Pistil, 파우스트Faust 등의 상호가 자주 들려왔다. 이곳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이태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과, JNS라는 디제이가 음악을 틀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음악은 약간 이르거나 약간 늦은 시간에 흘러나왔다. 그런 시간에 우리는 보다 여유롭게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뜨거운 것은 발이 아니라 귀가 되었다. 정리했다고 생각한 댄스 플로어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JNS의 음악을 표현하자면 소프라노보다는 테너라고 하고 싶어요. 장르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테너, 괜찮은 표현인 것 같네요. 음악도 상대적이라 무엇에 비교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UK Bass라고 해요. 포텟Four Tet이나 뷰리얼Burial 등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았어요. 런던에서 공부한 게 가장 큰 이유겠죠. 당시에 많이 사용하던 리듬 중에 투 스텝Two Step이나 개러지Garage, 드럼앤베이스Drum and Bass 등이 있는데, 베이스가 중심이기 때문에 무거운 느낌이 나요. 그래서 테너라고 표현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영국 일렉트로닉도 계속 변화하고 있어서 제 음악이 가장 최신의 UK Bass라고 하기는 어려워요. 


일렉트로닉도 학교에서 배우나요?


정확히는 오디오 프로덕션을 배웠어요. 음악에 대한 지식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고 사운드 디자인이나 리코딩, 믹싱 등을 배우며 프로듀서가 되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죠. 전통적인 음악 작업에는 프로듀서, 작곡가, 연주자, 리코딩 엔지니어, 편곡자 등 세밀하게 영역이 나뉘어 있는데, 일렉트로닉은 이 모든 걸 혼자 하는 게 가능한 장르예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로듀싱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영화감독 중에도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시나리오를 받아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있는데, 저는 전자에 해당하는 케이스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디테일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좋아요.


굳이 영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없어요. 원래는 영상을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겸했는데, 점점 음악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학교에 합격한 것도 아니었는데 제대하자마자 무작정 영국으로 떠났어요. 무슨 자신감으로 그랬는지 지금도 신기한데, 확실히 제대라는 사건이 전환점으로 활용하기에 좋은 거 같아요. 판을 뒤집을 계기로 만들 수 있죠. 여하튼 모르는 만큼 용감하게 런던에 도착했고, 그만큼 좌절감도 컸어요. 그동안 안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거든요. 우리에게 보이는 건 상업적인 상품뿐이었던 거예요. 제가 만난 런던의 언더그라운드 씬underground scene은 정말 컸어요. 놀라웠던 만큼 좋았고요. 그전에 듣던 음악은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그러다 보니 제 음악도 보다 더 마이너 성향을 띠게 되었고, 그게 마음에 들어요.

한국의 일렉트로닉 씬은 어떤가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한국은 아무래도 미국 문화에 더 노출되어 있고, 미국이 문화를 잘 팔아서이기도 하지요. 자극적이고 쉽게 이슈가 되는 것들을 많이 만드니까요. EDM이라는 장르를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텐데, 페스티벌의 주를 이루는 음악이에요. 신나고, 클라이맥스가 많아서 흥을 돋우기 좋아요. 어쩌면 우리나라 정서에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국 관객들은 플레이리스트에 자신의 에너지를 의지한다고 해야 하나.


메이저에 대한 욕구는 없나요?


성공에 대한 욕구는 당연한 거지만 언더에서 잘 되고 싶어요. 하지만 한국 시장은 너무 작아서 국내에서만 활동해서는 어려워요. 작아도 너무 작거든요.


그 시장도 언젠가는 커지지 않을까요?


안타깝지만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다양한 방향으로 형태를 변형시키며 판을 키울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모습 그대로 커지기를 기대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죠. 한편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게 수월한 건 사실이에요. 결국 제가 미치도록 좋은 음악을 만드는 방법 밖에 없어요.


작지만 이 안에서 JNS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것이 있다면?


UK 일렉트로닉. 영국 뮤지션이 공연할 때면 저도 라인업에 포함되곤 해요. 조금 웃긴 것은, 한국 씬이 너무 작아서 각자 아이덴티티를 갖게 돼요. 모두 무언가를 대표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그중 한국만의 것이라고 할 만한 건 없어 보이네요.


한국에 일렉트로닉의 뿌리가 없는데,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죠.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니까요. 바탕이 없는데 한국 일렉트로닉이라는 장르 자체가 불가능하죠. 외국 디제이나 프로듀서에게서는 열일곱 살 때 클럽에 다니면서 음악을 들었다든지, 삼촌이 음반가게를 운영해서 일을 도왔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에겐 그런 기회가 없었죠. 시간을 들여 체득하기보다 신문물로 흡수한 셈이에요. 우리끼리 만들 수 있는 건 없었어요. 서울의 일렉트로닉 씬에도 외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커요.


영국 음악에 굉장히 민감해야 할 것 같아요. 영감을 얻는 것은 좋지만, 과해지면 쫓아간다는 느낌이 들진 않나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어디까지나 영감을 받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니까요. 무작정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것은 아니고, 저의 아이덴티티를 가져가면서도 씬에 적응하려면 최신의 것들이 접목되어야 해요.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벌써 약간 올드한 느낌을 갖고 있어서 더욱 새 음반을 많이 들으려고 노력해요. 1-2년의 차이가 커요. 이게 일렉트로닉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스피드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어렵죠. 아무리 쫓아가려고 해도 한걸음 늦어요. 한국에 돌아온 후 영국에 세 번 정도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달라져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무조건 외국 속도에 맞출 수도 없는 것이, 그러면 한국에서는 시기상조이거든요. 한국에 맞춰 작업한 걸 외국에 들고 가면 이미 늦었고. 양쪽 모두 고려해서 작업하는 일이 쉽지 않아요.

허니배저레코즈Honey Badger Records라는 레이블을 만드셨어요. 이름이 특이해요.


허니배저라는 동물이 있어요. 한국말로 벌꿀오소리라고 하는데, 오래전 친구 덕에 우연히 알게 된 동물이에요. 잊고 지내다가 레이블 이름을 지으면서 다시 떠올랐어요. 과일이나 식물, 동물의 이름을 쓰고 싶었어요. 너무 멋있고 싶진 않았거든요. 멋진 것보단 재미있는 걸 좋아해요.

허니배저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어요. 친구가 보여준 동영상을 보니 독고다이 성향이 있는데, 벌한테 쏘이고 뱀한테 물려도 꿋꿋이 꿀을 먹더라고요. 재미있는 친구인 것 같아요.


레이블 없이 활동하는 프로듀서나 디제이도 많은데, 굳이 설립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제 앨범을 내려고 만든 거였고, 비슷한 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한국에 일렉트로닉 레이블이 없어요. 저희 말고는 인디 일렉트로닉 음악 하는 영기획이 있네요. 그 외에는 주로 크루로 활동하고 파티를 기반으로 움직여요. 정규앨범보다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내면서 굿즈도 함께 판매하고. 그렇게 해도 충분히 활동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전 레이블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앨범이 정기적으로 나와야 시장이 발전하거든요.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 일렉에 대해 설명할 때도, 레이블이 있으면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요. 멀리 봤을 때는 꼭 투자할 가치가 있는 일이죠. 허니배저레코즈는 아직 제가 개인적으로 버는 돈으로 앨범을 제작하고 있어요. 어렵지만 옳은 방향이라고 믿어요.


어떤 일로 자본을 마련하시는지?


영상음악을 주로 만들어요. 영상을 공부했으니까 더 수월한 면이 있죠. 영상이나 사진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사운드가 필요할 때마다 저를 불러줘요. 전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제가 좋아하는 바운더리 안에서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허니베저레코즈랑 JNS만 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생계유지는 열정과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있이 아니에요. 회사 다니면서 음악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언젠가는 한쪽을 택해야 하는 순간이 와요. 정신 차려보면 사라져버린 뮤지션이 많아요.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그 이유로는 우리나라 음악시장에 돈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커요. 도는 돈이 없으니 돈이 벌리지 않는 거죠. 예전에 홍대에서 공연했는데 공연비가 너무 적어서 놀랐던 기억이 나요. 물론 그런 일에서 얻어지는 것들도 있어요. 사람을 만나고, 좋은 기회들이 생기죠.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사람들이 방법이 없잖아요. 일단은 세상에 나오는 것부터가 중요해요.


소속 아티스트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가을에 귀국하는 킴 케이트Kim Kate라는 친구가 있어요. 영국에서 학업 중인데, 하반기부터는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생기겠죠.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더네이처스 오케스트라Mother Nature's Orchestra도 있고요. 쿠메오 프로젝트Cumeo Project는 공연하면서 만났는데 음악이 좋아서 앨범을 내자고 제안했어요. 언더씬에서도 평이 좋고, 작년 대중음악 시상식 일렉트로닉 분야에 후보로도 올랐었어요. 가시적인 성과는 제일 좋은 팀이에요. 그리고 어둡고 센 성향의 퓨처카와이Future Kawaii의 앨범도 준비 중이고요. 93, 94년생 커플인데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있죠. 


JNS만의 작업 방식이 있나요?


딱히 특별한 게 있을까요? 어떤 창작자든지 백지를 마주하는 순간이 제일 괴로울 것 같아요. 저도 텅 빈 프로젝트 창을 열어놓고 앉아있을 때가 제일 막막한데, 일단 시작부터 해요. 통째로 뒤엎는 한이 있어도. 물론 작업이 더 잘 되는 날들이 있죠. 하지만 갑자기 무슨 계시를 받은 것처럼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라서 작업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그런 건 대부분 표절이 아닐까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트를 먼저 만들고 그 위에 멜로디를 얹어요. 필드 리코딩field recording도 하는데 주로 영상 사운드에 쓰기 위해서예요. 한동안 그런 작업 방식이 인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소스가 많아져서 라이브러리로 나와요. 그 정도면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는 뜻이고, 그만큼 희소성도 없죠. 음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보편화되고 있어요. 예전에는 장비들이 구비되어야 음악을 할 수 있었는데, 점점 노트북 하나만으로도 충분해지고 있죠. 지금은 십 대들도 간편하게 믹싱을 해요. 이미 10년 전에 미국에 스크릴렉스Skrillex라는 뮤지션이 나타났는데, 노트북만 갖고 앨범을 만들어서 대형 스타가 되었죠. 진입장벽이 낮아진 만큼 정말 실력으로 승부하는 시대예요.

디제잉할 때 보면 참 바빠요. LP 판을 계속 바꾸기도 하고.


턴테이블로 해서 그래요. 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데, 런던에서 시작하다 보니 한국에서는 나름의 희소성이 생겨버렸어요.  수요가 별로 없으니 턴테이블이 없는 클럽이 대부분이라서 음반과 장비를 싸 들고 공연을 다녀요. 우리나라 대부분의 디제이들은 CDJ로 디제잉을 하거든요. CDJ는 턴테이블로 디제잉하던 것을 본떠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만든 장비예요. USB를 꽂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다량의 음악을 손쉽게 다룰 수 있는데, 턴테이블에서는 음악을 바꾸려면 LP 판을 바꿔야 해요. 혹시라도 옷에 바늘이 걸리면 음악이 튀기도 하고, 다른 디제이가 턴테이블을 건드릴까 봐 신경도 써야 하고. 그래서 바빠 보이는 거예요. 리스크도 크죠. 무대가 너무 시끄러워서 음악이 잘 안 들리는 경우도 있고, 분위기에 맞춰서 곡을 바꿀 수 있는 자유도도 낮아요. 챙길 수 있는 음반에 한계가 있으니까. 2시간 공연하면 녹초가 돼요. 그래도 현장에서 직접 믹싱하는 게 재미있어요. 

사실 전 디제이이기 전에 프로듀서에요. 물론 둘 다 하는 작업자들이 많고, 무엇의 비중이 더 높은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음반을 사 모으다가 어느 정도 양이 쌓이니 틀어볼까 해서 디제잉을 시작하게 됐죠.


음반은 주로 어디에서 구입하시나요?


거의 해외 주문이에요. 런던이나 베를린. 한국에서는 주로 팝이나 오래된 음반이 많아서 제가 필요한 것들을 찾기 어려워요. 한 달에 1-20장 정도 사는 편이에요.


최근 한남동에 대형 음반가게가 오픈했죠. 대기업들이 영세 시장을 뚫고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중고 음반을 대량으로 들여서 판매하고 있더라고요. 회원들에게는 할인도 해주고.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장치들이 많은데,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럴 인프라가 없는 개인사업자들은 속수무책인 거죠. 대중화로 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과연 기업들이 대중화를 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네요.

물론 일렉트로닉 음악을 제대로 다루는 레코드숍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계속 해왔어요. 여건이 되면 제가 직접 하고 싶기도 하고요. 언제나 꿈꾸던 것이 레이블, 레코드숍, 라디오 스테이션이었는데 그중 레이블은 하고 있고, 레코드숍은 조금 먼 이야기이고, 라디오 스테이션은 친구들이 운영하는 것이 있어서 자주 교류하고 있어요.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Seoul Community Radio라는 외국 친구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라디오인데, 해외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에요. 

문제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수요가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이에요. 그런 면에서는 대중화가 이루어지는 게 급선무이기도 하죠. 서울에서는 유행이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잖아요. 레코드숍을 할 때쯤엔 레코드숍이 유행을 하고 있겠죠. 유행을 타야만 한다는 사실이 조금 씁쓸해요. 


외국 친구들이 보기에 서울은 좋은 기반이 되나 봐요.


그 친구들이 보기에는 텅 비어 있으니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한편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 되니까 비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틈새시장이라는 건 양날의 검과도 같은데, 어느 쪽으로 떨어질지는 결국 버티기에 달려있다고 봐요. 그래도 앞서서 잘 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힘이 돼요.

먼지도 쌓이면 막을 이루었고, 무심한 틈을 타 공처럼 뭉쳐 굴러다녔다. 인생의 상승곡선은 어느 순간 가팔라지는 것이어서, 갑자기 기류를 타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준비란 그저 매일을 성실하게 버틴다는, 원칙적이고 단순하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JNS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준비라는 것에 완결은 없다. 무언가 이루는 사람은 이룸과 동시에 다음 목표를 세워버리는 게 버릇이라, 끝보다는 시작에 익숙하다. 그는 계속해서 빈 프로젝트 창을 켜고, 뮤지션들을 찾고, 남들은 내지 않는 앨범을 발매했다. 머지않아 인터넷 공간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대중들이 오가는 자리를 물색하고 다닐 것이었다. 모든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그가 먼지 같은 시간을 대하는 마음이 변하지만 않는다면.


https://www.facebook.com/honeybadgerrecords/?fref=n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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