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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룬아 Jul 28. 2016

베니수아 인터뷰

앞코가 뾰족하고, 8센티의 얇은 힐을 장착한 구두였다. 검은색이었는데, 밑창과 힐만 붉은색이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뒤에서는 더 많은 붉은색을 볼 수 있었다. 길바닥 벽돌 사이에 힐이 끼기도 하고, 부러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발목을 접지르기도 했지만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면 8센티 위에서 뛰었다. 툭하면 닳아 없어지는 굽을 셀 수 없이 갈고 앞과 뒤의 가죽이 벗겨질 때까지 신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높은 신발을 즐기지 않게 되었다. 간편해지는 건 신발뿐이 아니었지만, 제일 편해야 하는 건 바로 신발이었다. 그렇다고 힐을 아예 제할 순 없었던 것이, 결혼식과 장례식이 잦아졌고 격식을 차리는 건 예의를 표하는 하나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베니수아Benisoit를 알게 된 건 축복이 아니었을까. 원서동 쇼룸에서 큰 고민 없이 선택한 구두는 앞코가 둥글고 힐은 두툼한, 가장 클래식하고 편하게 생긴 검은색 펌프스였다. 오랜만에 구두다운 구두를 사서 들뜬 나는 벌거벗은 발로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김대현 / 심수지 (이하 대현, 수지)

베니수아의 5주년을 축하합니다. 아직 베니수아를 모르는 분들에게 간단하게 소개 부탁해요.


베니수아는 좋은 소재로 클래식한 디자인의 수제화를 만드는 브랜드예요. 대현이 디렉터이자 디자이너이고, 수지는 CMFcolor, material, trend forcasting와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어요.

베니수아는 불어로 '축복'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베니수아를 신고 모든 분들이 축복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어요. 프랑스에서도 일반적으로 쓰이는 단어는 아니고, 성가 안의 맥락에서 사용되는 용어예요. 둘 다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 많이 반영되었죠.

대현은 원래 음악을 하던 사람이었어요. 처음부터 신발 브랜드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고, 수지에게 구두를 선물해주고 싶어서 6개월 동안 직접 배우러 다녔어요. 당시 시중에 나와있는 구두들은 너무 화려했고 소재도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그러다 푹 빠져서 베니수아를 시작하게 됐고, 수지는 옆에서 잔소리를 보태다가 어느새 함께하게 됐네요.


꽉 찬 5년을 맞이했어요. 기분이 어떠세요?


무엇보다 감사하고, 정말 신기해요.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고, 그 시간 동안 버텨준 우리도 기특하고. 사실 작년에 메르스 사태도 있었고 사회 분위기가 침체되면서 매출이 떨어지고 위기가 왔었어요. 계속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꾸준히 베니수아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힘을 내기로 했죠. 


두 분이 함께 하시는 모습이 참 예뻐요.


5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결혼도 하고. 사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잖아요. 일 때문에 해어졌을 수도 있고, 결혼하면서 구조가 바뀌었을 수도 있는데 둘 다 자기 자리를 지켜준 게 고맙고 기특해요. 우리는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그만큼 성격도 다르지만 그 차이를 잘 알고 있어요. 어떤 점을 가장 힘들어하는지 알기 때문에 서로 받아주고 맞추려고 노력해요. 그런 점이 좋으면서 불편할 때도 있죠. 가끔은 모르고 넘어가고 싶은 일들도 있잖아요. 


5년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가장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베니수아가 처음부터 쇼룸이 있던 건 아니에요. 오피스텔에서 시작해서 1년 후 이태원에 쇼룸을 얻고 셀프 인테리어를 했죠. 대현은 벽 하나 칠하고 일주일을 앓아눕곤 했어요. 원서동으로 이사 왔을 때는 링거 맞느라 오프닝에 못 왔어요. 그래서 수지가 혼자 떡을 돌려야 했죠.


베니수아는 원서동이랑 더 잘 어울려요.


창덕궁 길이 너무 좋아요. 차가 많이 다니는 큰길에서 안으로 걸어 들어오면 새로운 공간이 열리는 느낌이 들어요. 어떤 작은 마을로 들어가는 것처럼.

국내에 수제화 브랜드가 많이 생겼어요. 왜일까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큰 이유 중 하나는 블로그나 SNS 등 판매 루트가 다양해져서인 것 같아요. 의류만 다루시던 분들도 신발을 만들어요. 진입장벽이 낮아진 거죠. 신발을 처음부터 다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공장에서 이미 만들고 있는 신발에 자기 컬러를 입히는 방법을 활용해요. 그것마저 아니라면 카피도 많이 하고요.


베니수아도 카피에 대한 피해가 있을 것 같아요.


없진 않아요. 가끔 제보를 받거든요. 구두 디자인을 통째로 베끼는 경우도 있고, 시즌의 컬러웨이colorway를 따라 하는 경우도 봤어요. 저희는 일부러 찾아보진 않아요. 안다고 해서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거든요. 그만큼 베니수아의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증거로 생각하려고요.


아류는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게 돼있죠. 절대 베낄 수 없는 베니수아의 매력이 있다면?


베니수아 디자인은 장식이 거의 없어서 오히려 제작이 훨씬 까다로워요. 감출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약간의 실수도 티가 나거든요. 굉장히 까다롭게 공장을 관리하는 편이고,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퀄리티가 좋아지는 것 같아요. 품질은 쉽게 카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수제화를 하면서 느끼는 장단점이 있을 텐데요.


모든 종류의 창작은 똑같은 것 같아요. 성취감 때문에 하죠. 베니수아가 가진 어떤 이미지보다 신발 자체를 좋아해 주실 때 기분이 참 좋아요. 저희가 마음에 드는 걸 손님도 좋아하시면 정말 신나고. 특히 재방문하실 때는 모든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힘든 점이라면 아무래도 신발이라는 상품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까다로움 때문인데, 아무리 편하게 만들려고 노력해도 불편해하는 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사람은 모두 다른 발 모양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발에 맞춰서 라스트부터 새로 깎아 구두를 만들어주는 고급 브랜드도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저희도 최대한 편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베니수아만의 라스트를 제작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앞코가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 발등, 라인 등이 중요한데, 아주 작은 차이도 발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달라져요. 구두에서는 1mm의 차이가 커요. 그래서 컴플레인이 들어올 수밖에 없죠. 만족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불편을 느끼는 고객이 있으면 저희도 죄송하고 속상하죠.


그렇다면 제 발에 맞는 신발은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


다양한 브랜드의 신발을 신어보고, 편하게 느껴지는 브랜드가 있다면 거기에서 쓰는 라스트가 발에 맞는다는 뜻이에요. 직접 신어보면서 찾는 수밖에 없어요.


수제화 브랜드가 많이 생기면서 전문용어에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어요. 그중에도 유독 홍창이라는 파트를 강조하는 것 같더라고요. 옵션으로 가격차이를 두기도 하고.


홍창이란 가죽으로 된 구두 밑창을 얘기해요. 고무창보다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일단 무게가 가벼워요. 가죽이다 보니 유연해서 착화감도 좋죠. 걸음걸이에 알맞게 구부러지니까요. 물론 고무창보다 마모가 빨리 돼요. 비가 오면 미끄럽기도 하고요. 익숙한 고무창을 덧대어서 신으시는 분들도 많은데, 그러면 밑창 중간 부분만 홍창을 누릴 수 있게 되죠. 베니수아 상품은 홍창을 완성단계로 보기 때문에 고무창을 대 드리진 않아요.

홍창 구두는 신는 사람의 발에 더 알맞게 변형되기도 해요. 길들여진다고 할 수 있겠죠. 신발이 너무 새것 같기만 해도 매력이 없는 것 같아요. 신고 다니면서 함께 변화되는 즐거움도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것은 뭔가요?


품질이죠. 가장 중요한 건 소재예요. 베니수아는 내피도 합성피혁을 쓰지 않아요. 보통 시중에 나와 있는 수제화들은 합성피혁이나 돈피를 내피로 활용해요. 요즘엔 그런 소재들도 워낙 잘 나와서 고객들이 큰 차이를 못 느끼시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소재에 있어서만큼은 타협이 안 돼요. 디자인이 단순해서 소재에 더 집착하기도 해요. 처음에는 너무 욕심 부렸더니 슬리퍼가 20만 원대로 나왔어요. 배수도 별로 안 좋은데. 그때는 왜 안 팔리는지 몰랐어요. 진짜 잘 만들었거든요.


저가 라인은 생각 안 해보셨나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퀄리티 낮추는 게 쉽지 않아요.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은데 어떻게 팔겠어요. 무엇보다 베니수아를 지켜주고 싶었어요. 이것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구두의 라인업을 늘리는 것보다, 아예 다른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페얼스PAIRS라는 편집숍을 열게 됐죠. 베니수아는 페얼스에 숍인숍으로 들어와 있어요. 

저희에게는 베니수아가 아닌 모습도 많이 있어요. 자유롭고 펑키한 걸 좋아하는데 베니수아에서는 많이 절제했죠. 그런 저희의 다른 취향도 보여주고 싶어서 페얼스를 시작했어요. 캘리포니아와 하와이를 좋아해요. 여름, 햇빛, 바다가 좋아요. 페얼스 로고에는 물결이 표현되어 있어요. 대현이 음악 공부하러 캘리포니아에 다녀온 것도 영향이 컸죠. 여름의 매력을 많이 느끼고 온 것 같아요. 물론 공부는 별로 안 했어요.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공연만 실컷 보러 다녔죠.

처음에는 대현의 바탕을 살려서 음반판매를 중심으로 운영했는데, 오픈한 지 얼마 안 돼서 가수 나얼 씨가 직접 음반을 사 가시고, 신기했어요. 그런데 점점 남자 손님이 많아지면서 베니수아 고객들과 어우러지지 않더라고요. 좁은 공간에서 어떤 분들은 신발만 신어보고, 어떤 분들은 음반만 고르고. 그래서 리빙 소품이나 패션 아이템으로 제품군을 늘려봤어요. 


한 부부의 집합체 같은 느낌이네요. 페얼스라는 이름에서부터.


네 맞아요. 그리고 신발도 한 쌍이죠. 아직은 사람들이 베니수아랑 페얼스를 헷갈려 하시는데, 빨리 자리 잡아서 분리시키는 게 목표예요. 둘의 아이덴티티가 워낙 달라서.


버티는 힘이 강해요.


일단 좋아하는 일이라서 가능한 것 같아요. 사실 이런 끈기는 베니수아에서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에요. 이제 다른 건 생각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리고 베니수아만 할 때는 지치는 순간들도 있었는데, 페얼스를 시작하면서 다시 신이 나요. 보여드릴 수 있는 게 한참 남아있으니까.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요즘 스포츠 샌들이 눈에 많이 띄더라고요. 왜 그런 거죠?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행이기 때문이에요. 일본 사람들이 많이 신어 왔거든요. 이러다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겠죠. 사실 저희는 뭐가 유행인지 잘 몰라요. 다른 브랜드들이 어떤 걸 만드는지 보려고 하지 않거든요.


어느 정도는 트렌드에 민감할 필요도 있지 않나요?


초반에는 많이 보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희와 색깔이 맞는 브랜드, 정말 좋은 브랜드들이 걸러지지 않더라고요. 그 뒤로는 자체적으로 엄선한 자료만 보려고 노력해요. 주로 클래식한 브랜드인데,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이라던지 이태리 장인의 어려운 이름을 딴, 그런 곳들이에요.


대중은 자극적인 것에 더 빨리 반응하죠.


한편으로 사실이긴 하지만 베니수아의 성격과는 달라요. 반짝 떴다가 없어지는 브랜드가 되고 싶진 않아요. 강단 있게 큰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조금 더 단기적인 계획이 있다면?


베니수아를 좋아해 주는 20대 친구들이 생겼어요. 그 친구들도 베니수아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가격이 조금 낮은 상품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저가라인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게, 퀄리티는 유지하고 마진을 덜 남기게 될 것 같아서예요. 

소재도 더 다양하게 활용해보고 싶어요. 이번 여름에 데님을 처음 써봤는데 괜찮더라고요. 패브릭인데 왜 가격이 같냐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데님 안쪽을 산양가죽으로 덧대어서 모양을 잡았거든요. 

조금 더 지나고 난 뒤에는 샌들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기도 해요. 버켄스탁Birkenstock을 대체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만큼 좋은 여름 샌들을 하와이에서 제작하고, 전 세계에 뿌릴 거예요. 하고 싶은 일들이 자꾸 떠올라요.

베니수아를 찾아간 거였는데, 정신 차려보니 페얼스에 앉아있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페얼스 간판을 단 베니수아 쇼룸에 있는 기분이었다. 숍은 인터뷰 다음 날부터 5주년 행사를 마치고 리뉴얼에 들어갔다. 카펫을 새로 깔았고, 테이블을 새로 거치했다. 추가 촬영을 하겠다고 하니 아직 미완성이라고 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동안의 베니수아는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고, 다음에 가면 또 달라져 있을 것이었다.

다시 찾은 페얼스는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변해있었다. 베니수아의 단정한 신발들과 페얼스의 활기찬 제품들이 위화감 없이 어우러졌다. 물건을 조금 옮겨놓았을 뿐인데. 아니구나. 가구의 색도, 바닥의 색도 모두 바뀌어 있었다. 알려주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 했을 테지만. 노력이란 이처럼 신기하다. 티가 하나도 안 나는데 다 티가 난다.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의 링거 투혼을 선물처럼 받아먹는다.


http://www.benisoi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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