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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룬아 Aug 11. 2016

Nemonan, 노상호 작가 인터뷰

태어나면 모두 눈을 감아야 하는 마을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마녀의 저주에 걸려있었는데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눈을 한 번이라도 뜨면 돌이 돼버리는 저주였다. 

마을 사람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눈을 가리고 키웠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듣게 되면 마녀의 저주를 가르쳐주고 늘 눈을 감게 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보지 못했지만, 

소리와 온몸의 감각을 이용하며 서로를 도왔다.

[태어나면 모두 눈을 감아야 하는 마을이 있었다.] 中


매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었다. 물을 탄 것처럼 일렁이는 그림은 짤막한, 때로는 조금 긴 이야기와 함께 그려졌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야기 때문일까, 모든 그림은 더 길고 긴 이야기의 한 장면을 포착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림과 글을 보고 나면 무엇을 느껴야 할지,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서도 어쩐지 다 나의 이야기 같기도 해서, 그래서 조금 기분이 이상해졌다.

매일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시는데, 학생 때는 엠티 가서도 일단 그림부터 그려놓고 놀았다면서요. 모아서 데일리 픽션Daily Fiction이라는 책도 내셨던데.


매일 한 장씩 그림을 그리는 건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3-4년 정도 되었네요. 별다른 이유가 아니라 불안해서, 일단 연습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색깔을 고르는 등의 결정을 할 때에도 잘 불안해하는 편인데, 매일 하다 보니 두려움이 없어지더라고요. 망하면 내일 또 그리면 되거든요. 

보통 작가라면 자러 누웠다가도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서 밤새우고 작업할 거라고 기대하시겠지만 전 그런 타입이 아니에요. 그럴 수 없다면 성실하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나만의 경쟁력이 돼버린 것 같아요.


먹지 드로잉 기법을 사용하시던데 전공의 영향이 큰가요?


판화과에서 먹지를 많이 쓰긴 해요. 헨리 다거Henry Darger라는 미국 작가를 좋아하게 돼서 모방하다 보니 익숙해진 기법이기도 하고요. 판화 작업은 이미지가 얹히는 효과에 민감한데, 먹지로 작업하면 인쇄된 것처럼 표면이 고르게 나와서 좋아요. 보통 직접 드로잉을 하면 압력 때문에 울퉁불퉁해지거든요.


헨리 다거와 작가님의 작업은 비슷한 컬러감이나 재질의 느낌을 내는 것 같아요. 하지만 무엇보다 시사적인 이야기를 허구로 바꿔서 쓴 부분이 가장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예술가로써 시사성을 띠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나요?


데일리 픽션을 보면 달달한 연애 이야기도 많아요. 제가 시사적인 내용을 쓴다기보다,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저는 하루 단위로 정보를 모아서 작업해요. 사람들의 이야기, 책이나 영화, 그림, 사진 등 하루 종일 보고 들은 것들을 종합해서 배출하는 거예요. 따라서 어떤 주제로 다뤄야겠다고 계획하고 작업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태어나면 모두 눈을 감아야 하는 마을이 있었다.]라는 연작은 메르헨 마차 프로젝트를 하면서 태어난 이야기에요. 4개월 동안 마차를 끌고 다니면서 매일 사람들을 만났어요. 저도 쓸 때는 잘 몰랐는데, 전시를 해놓고 한걸음 뒤로 나와서 보니 그때가 세월호 참사가 터진 후였더라고요. 뭘 믿어야 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던 거예요. 이런 작업 방식은 사회를 반영할 수밖에 없어요. 연애 이야기마저 그렇죠.

이렇게 보면 헨리 다거와 저의 구분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는 혼자만의 세계에서 내면적으로 이야기를 직조하는 스타일이었고, 저는 반대로 저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업이 더욱 담백해질 수 있나 봐요.


특별한 애착이나 의무감을 갖지 않아서일 거예요. 나쁘게 말하자면 직접적 윤리가 없다고 할 수도 있는데, 매일 한 장씩 그려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림 역시 여러 가지 매체 중 한 종류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라면 원본성이나 물성에 집착하는 면이 있는데, 전 그림이 스캔돼서 데이터로 저장되면 그걸로 끝이에요.

저 자신 또한 하나의 툴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포토샵 같은 거요. 하루 동안 정보를 모으고, 만들고, 다시 모으고, 다시 만들고. 반복하다 보니 저만의 편집 공식이 생성된 것뿐이에요.


규칙적이지만 본능적이네요. 무거워 보이지만 가볍고.


작가이지만 성향은 공무원과도 같아요. 규칙적이고 틀이 있는 걸 좋아해요. 보편적인 작가들과는 상반되는 성향이죠. 전 많은 작가들을 동경해요. 가끔은 그들처럼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절망감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래서 오히려 반대로 더 가볍고 얕은 걸 만들어요. 스스로 생존 방법을 터득한 셈이죠. 

제가 살아온 인생이 그래요. 어려서부터 인터넷을 많이 했고, 가상 세계와 가깝게 살다 보니 가볍고 빨리 소비되는 것에 익숙하죠. 그것에 나를 맞추며 컸잖아요.

작가님의 그림이나 글도 스낵 콘텐츠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미 많은 매체에서 그렇게 소비시키고 있어요. 캔버스에 그린 그림은 몇백만 원의 가치를 갖는데, 그걸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싸구려 이미지가 되어버리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어요. 저에겐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섭리예요.


작품을 보고 예상했던 무게감과는 다르네요.


전 선택적으로 작가가 되었어요.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도대체 판화과 졸업하면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금했거든요. 졸업자 명단을 구해서 200명 가까이 되는 선배들에게 전화를 돌렸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왜 판화의 진로에 대해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지 알겠더라고요.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의 일을 하고 계셨던 거예요. 

직업이라는 게 고정적이지 않더라고요. 평생 한가지 일만 하는 시대는 끝났어요. 어른들의 이야기가 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거예요. 회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더 불안정해서, 취직이란 조금 긴 도피일 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럴 바에야 온전한 제 일을 하는 게 낫죠. 똑같은 노동력을 투자해야 한다면 제 이름에 투자하는 게 현명한 거예요. 그래서 작가가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다른 작가들과는 정반대의 이유로 이런 직업을 갖게 됐죠.


불안할수록 안정적인 일을 택하는 게 보편적인데.


헬조선의 영향도 있어요. 실제로 안정적인 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평생 작가 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기획도 하고, 제약 없이 일해요. 모든 게 노상호라는 타이틀로 귀결될 수 있도록. 원래는 인간관계도 넓지 않고, 이름 알리는 걸 좋아하지도 않아요. 일의 한 부분일 뿐이죠.

혁오밴드의 앨범 표지를 그린 작가로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아요. 


저를 아는 분들의 7할 정도가 그래요. 혁이랑은 친구인데, 평생 같이 재미있게 작업이나 하자는 거였어요. 저희도 이렇게 잘 될 줄 몰랐죠. 앨범 표지는 혁이 나이로 작업을 하는데, 너의 스물두 살은 무슨 색이냐고 물었더니 파란색이라고 하길래 파란색 물을 그렸어요. 다음 작업도 해놨는데, 모든 표지가 이어져요. 이걸 60세까지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세상에 이런 앨범 표지 작업은 없을 테니까.


예술 또한 대중과 줄타기하는 작업이죠. 얻으려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을 텐데요.


소비를 유발하는 것도 제 작업의 일부이고, 제가 의도한 것과 다르게 소비해도 상관없어요. 노상호를 하나의 단면으로만 알고 계신 분들이 많겠죠. 저의 다양한 부분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지만 어떻게 다 알겠어요. 오해를 해도 그러려니 해요. 혁오밴드 앨범 표지를 혁이가 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뭐. 오혁이라는 우상을 만드는 거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재미있어요.

대중이라는 개념도 설정하기 나름이라 참 모호해요. 그래서 다양한 감도의 콘텐츠를 적절하게 활용해서 반응을 보곤 하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 하는 건 문제지만,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 건 중요하거든요. 그걸 알면서 저의 것을 하는 건 달라요.


최근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하신 개인전을 가보았어요. 방명록을 보았더니, 작품이 무섭다는 피드백이 다소 있더라고요. 그림만 봐서는 안 그런데 이야기를 함께 감상하다 보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더라고요. 글이 음침한 편에 비해 그림은 화사하고 형광빛도 많이 나요. 대비를 노리신 건가요?


맞아요. 원래 그로테스크한 것들을 좋아해요. 그리고 그게 예뻐 보이는 것에 담길 때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입체적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이 정도 갖고 뭐가 무섭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초창기에는 더 심한 것도 많이 썼어요. 많이 부드러워진 편이죠.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제 삶 자체가 그렇게 돼가는 것 같아요. 유하게.


팔이 세 개 달린 여자의 이야기를 썼어요. 그러면서 특별한 것은 외롭다고 했는데,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뇨, 전혀. 오히려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어요. 미대 나온 친구들이 많이 겪는 경험일 거예요. 모두 자기가 특별하거나, 혹은 특별해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전 미술을 늦게 시작했는데 학교에 와보니 천재들이 수두룩해서 많이 좌절했어요. 그래서 더욱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전 그냥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아티스트의 조건으로 성실과 끈기는 증명한 셈이네요. 그 외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뭐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아이덴티티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미대의 좋은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어요. 자신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게 되는 점이에요. 확실히 작업을 하다 보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 같아요. 작가로 살다 보니 나 자신을 추구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어요. 작품을 설명하려 해도 자신을 돌아봐야 하고, 인생의 구심점 같은 것을 계속 고민해야 하죠. 작가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덴티티, 중요하죠. 그걸 알아내기 위해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에 대한 지식이 자연스럽게 쌓이게 되는 거예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행위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그래요. 그래서 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려고 했어요. 누구나 살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인데 회피하려 하죠. 자신에 대해 고찰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갖고 쉬는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는 해결되지 않아요. 

우리는 꿈에 대해 잘못 교육받아 왔어요.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꿈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속해 있는 풍경을 그려보는 거예요. 물론 뿌옇고 막연하죠. 그걸 조금씩 또렷하게 만들어 가는 게 삶이에요. 제 꿈은 작가가 아니에요. 제 꿈은, 그리 좁지 않은 집에 넓은 부엌이 있고, 작업실에는 아이맥이 있고, 방에는 큰 티비가 있어서 하루 2시간씩 플레이 스테이션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와이프는 있으나 자녀는 없어요. 사람은 많이 만나지 않아요. 이렇게 그림을 그려가다 보면 직업이 나와요. 저의 경우 일단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이 몇 없죠. 그리고 미대를 나왔으니 범위가 좁아져요. 그래서 작가가 된 거예요. 우리는 이제 반대로 생각해야 해요. 꿈이 뭔지 알고, 그에 맞는 직업을 찾아요.


세계를 이루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시는데, 노상호의 세계관이란?


저의 세계는 얕고 넓어요. 끊임없이 증식하고 있죠. 사람들이 저의 작업을 받아 가서 각자 다르게 인식해요. 제가 만든 하나의 이야기가 사람들을 통해 변형되면서 점점 넓어져 가요.

[태어나면 모두 눈을 감아야 하는 마을이 있었다.] 시리즈를 다 모아서 쉬지 않고 읽으면 한 시간 반이 걸려요. 3명의 친구에게 읽어주고 일주일 뒤에 기억나는 대로 다시 얘기를 해달라고 했어요. 재미있었던 건, 주인공도 바뀌고 결론도 바뀌는데 각자의 기준에 맞춰서 변형돼요. 분명히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기억하는 부분이 다르고 강조점이 변해 있어요. 그게 훼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의 세계가 커져가고 있다고 생각하죠.


노상호 작가의 최근 전시에서는 작품들을 달력처럼 만들어 한 장씩 뜯어갈 수 있도록 설치해두었다. 그렇게 그의 세계는 한 장의 뜯긴 종이에 실려 널리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작가 자신도 상상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으로.

우리 집 한구석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모여 공처럼 굴러다닌다. 아무리 작은 것도 뭉치면 무시할 수 없어진다. 그는 한없이 가볍기를 지향하는 듯했지만, 그의 작고 가벼움들이 모여 노상호라는 이름의 무게와 힘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 오늘도 그는 그림 한 장을 그리고 글 하나를 썼을 것이다. 어제도 그랬을 것이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Illustrations ⓒNemonan

http://nemon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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