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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앤페블스 인터뷰

by 룬아

100원이 생기면 뽑기를 했다. 젤리 같은 장난감이나 조립형 자동차 같은 것 말고, 왕보석이 박혀 있는 플라스틱 반지가 나오는 뽑기를 했다. 교회에 가던 날 아침,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반지 끼고 가도 돼? 응 그럼,이라는 대답에 열 손가락에 모조리 반지를 끼웠다. 엄마는 반지는 그렇게 끼는 게 아니라며 한 개만 고르게 했다.

엄마는 주얼리를 즐겨 하는 편이 아니었다. 테니스나 골프 같은 운동을 좋아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장대의 서랍을 열어보면 비닐팩과 상자 안에 고이 싸여있는 액세서리가 가득했다. 그중에는 어린 동생이 어버이날에 선물한 가짜 진주 귀걸이, 아직 한 번도 껴보지 않은 크리스탈 반지부터 세팅하지 않은 원석도 몇 개 있었다. 서랍 안에서 반짝이지 못할 보석을 엄마는 애지중지 아꼈다. 엄마의 결혼반지는 본 적이 없었다. 끼지도 않았지만 이사하면서 없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내가 결혼을 했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다이아반지를 받았다. 심플하지만 클래식한 디자인이었고,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끼고 다녔다. 엄마는, 젊을 때 손이 예쁘니까 지금 많이 끼라고 했다. 친구들은, 결혼반지 끼고 다니는 사람은 잘 못 봤다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나는, 그냥 이 반지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고,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 신은 날 했을 때 더 예쁘다고 생각했다.


전선혜(언니) 대표, 디자인

전민아(동생) 프로젝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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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앤페블스Jem and Pebbles, 원석을 많이 사용하는 주얼리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에요.


젬은 보석, 페블스는 조약돌이라는 뜻이에요. 보석이라는 가공된 물질과 조약돌이라는 순수한 물질을 합친 이름이죠. 젬앤페블스의 기반은 실버예요. 은과 어떤 것이 결합했을 때 가장 아름다울까 연구를 해보니 너무 손대지 않은 요소들이 좋더라고요. 원석이나 나무 같은 천연소재를 활용하고, 특히 원석의 경우 과하게 가공하기보다 고유의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해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원석 주얼리가 보편적이지 않아요. 결혼할 때 주고받는 예물을 제외하고는.


요즘에는 많이 없어졌지만, 결혼할 때 다이아몬드 외에 사파이어나 루비 같은 유색 보석을 선물하는 게 일종의 형식처럼 이어져 왔죠. 그 때문인지 올드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저희는 같은 유색 보석을 쓰더라도 정형화되지 않은 디자인에 모던하게 적용하려고 해요. 그레이 라피스나 오렌지 수정같이 생소한 원석을 사용해서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고요. 할머니의 반지가 연상된다고 하시면서도 재해석된 클래식한 멋을 좋아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원석을 다루기 시작한 이유가 뭔가요?


저희는 1년에 한 번씩 다른 주제를 갖고 컬렉션을 내요. 컬렉션마다 분위기가 달라야 하고, 무드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원석의 활용도가 좋아요. 실버 주얼리도 다채롭고 컬러풀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

물론 은만 다루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워요. 원석은 모든 피스가 다르고, 소비자들은 완성된 제품이 상상했던 것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부분에 민감할 수 있거든요.


원석의 매력은 뚜렷한 것 같아요. 희소성.


맞아요. 같은 원석이라도 모두 컬러와 모양이 달라요. 같은 디자인도 같을 수가 없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주얼리이고, 나에게만 있는 보석인 거예요. 그 가치 때문에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컬렉션마다 디자인의 양이 상당해요.


믹스 앤 매치mix & match 때문에 더 많아 보이기도 해요. 같은 디자인인데도 어떤 것과 레이어드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이것저것 섞어보고 밸런스를 찾는 작업을 좋아해요. 새 컬렉션의 디자인이 예전 것과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리고, 그게 젬앤페블스의 또 다른 매력인 것 같아요. 젬앤페블스가 하나도 없는 분은 있지만 하나만 있는 분은 없을걸요.


컬렉션의 주제 선정은 어떻게 하시나요?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고, 오랫동안 좋아하던 것에서 도출해내기도 해요. 이전 시리즈 Cité(도시라는 뜻의 불어)의 경우, 문에 관심이 많아서 건축을 주제로 잡았어요. 몰딩이나 손잡이 같은 디테일을 주얼리로 풀어보고 싶었거든요. 여행 가면 문 사진만 잔뜩 찍어올 정도로 좋아해요. 특히 유럽에는 한 아파트 안에서도 집집마다 디자인이 다르다는 게 재미있어요. 집 안에 들어서기 전부터 주인의 취향을 알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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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주얼리와 상업 주얼리 사이를 걷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위치를 원했어요. 보통 실버 주얼리라고 하면 심플하고 깔끔한 디자인을 다루는 브랜드가 많아요. 파인 주얼리라고 하면 백화점 명품관으로 가야 할 것만 같은 브랜드가 대부분이고요. 양극화된 시장을 바꿔보고 싶었어요. 연령대와 상관없이 누구나 클래식한 유색 보석을 착용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주얼리를 부담 없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것.


사실 중간 시장은 없다고 하죠. 하지만 주얼리라는 영역에서는 가능해 보이네요.


중간에 있어서 더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도 잘 녹아들 수 있거든요. 캐주얼하게도, 클래식하게도. 패션 아이템이라는 특수한 영역에서의 융통성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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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를 전공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주얼리를 하게 되었나요?


고등학교 때까지 쭉 서양화를 했어요. 그림을 정말 좋아했지만, 평생 그림을 그리는 제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어요. 순수미술이 제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면서 공예에 관심을 갖고 도예를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 맞지 않았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합이 있는 것처럼 사람과 물질 사이에도 그런 게 있다고 하는데, 전 흙이 잘 안 맞더라고요. 정말로 흙을 만지면 의욕이 떨어지고 몸이 차가워지고 그랬어요.

런던에 2년 정도 있었는데, 빈티지 마켓에 다니면서 주얼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그래서 부담 없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4년 동안 금속디자인을 배웠다면 진작에 그만뒀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디자인은 누가 가르쳐서 배우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학교란 나에게 맞는 걸 찾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낫겠죠.


그래도 도자와 금속의 공통점이 있을 것 같아요.


인내를 필요로 한다는 점. 공정이 많아요. 흙을 반죽하고, 굽을 깎고, 성형을 하고,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굽는 것처럼 금속을 두드리고, 녹이고, 주물을 뜨고, 각인을 하는 등 손이 많이 가는 작업들이에요. 원석을 사용하면 수고가 배가 되죠. 하지만 이런 긴 과정 때문에 만족도가 더 높은 것 같아요.


디자인 과정까지 더하면 정말 길죠. 그렇게 수고하는데 카피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최근까지도 마음고생이 많았어요. 어느 정도의 카피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지경까지 와버렸어요. 동대문에서는 컬렉션이 나오자마자 카피가 깔려요. 더 악질은, 자기 이름과 브랜드를 걸고 카피하는 디자이너들이에요. 경우에 따라서는 경고를 주는데, 그러면 대부분은 사과하고 제품을 회수해요. 하지만 이번 사건은 최악이었어요. 디테일을 약간만 바꾸고는 베낀 적 없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걸 알고 악용하는 거죠. 저희도 법적 대응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고, 동시에 이 직업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일이에요. 가진 능력은 없는데 쉽게 얻고 싶으니까 베끼고 보는 거죠. 창작자라면 동경하는 대상에서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하지만, 모방과 카피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큰 유통회사들도 위기감이 없어요. 카피하는 브랜드들이 걸러지지 않고 입점해서 남의 디자인으로 버젓이 돈을 벌죠. 이 모든 게 너무 쉽게 이루어져요. 카피한 브랜드끼리 싸우는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어요. 심지어 저희가 보낸 경고장마저도 베끼더라고요.


인식의 변화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겠죠. 당장의 피해도 너무 크고.


디자인법이 강화되고 법적으로 조치가 취해져야 해요. 우리나라에서 디자인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카피가 큰 문제로 다가와요. 예술이나 디자인에 대한 존중이 없어서 그래요. 이건 뒤늦게 공부해서 알기보다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하는 가치관이라, 특히 유럽 국가와 비교해보면 일상생활에서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차이가 나죠.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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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에서 시작했는데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 계시네요.


온라인을 시작한 지 7년, 쇼룸을 오픈한지는 5년 정도 됐어요. 계속 한자리에 있었죠. 사무공간이 좁아서 확장을 고민하기도 했는데, 주얼리 못지않게 이곳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섣불리 옮길 수가 없네요. 간판도 없고, 작은 공간이 내는 프라이빗한 느낌이 좋으신가 봐요. 유럽여행 중 길을 잃었다가 골목에서 발견한 작은 공방 같대요. 그대로 유럽으로 옮겨놔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한남동은 참 좋은 동네예요. 한적하고 고급스럽고, 젬앤페블스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아마 이전을 하더라도 지나치게 크거나 번잡한 곳으로는 가지 않을 거예요.


전반적으로 이국적인 느낌이 많이 들어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파리를 동경해요. 열 번 정도는 다녀온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하다 보니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어요. 남편도 프랑스 교포이고요.

파리에서는 모든 게 예술이에요. 공원의 벤치, 지하철 입구 등 생활의 모든 게 문화와 연결되어 있죠. 태어나면서부터 내내 예술과 함께하는 거예요. 그것의 가치를 몸소 터득하며 살아요. 길거리에 팽배한 인종차별이나 모순도 예술 무대에서만큼은 사라져요. 그만큼 역사가 깊고, 다양하고, 트렌드를 리드하고 있어요. 뉴욕과는 다르죠. 모든 게 자연스럽고 당연해요.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 파리지앵, 프렌치 시크 등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헤어스타일이나 패션을 바꾼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에요. 프랑스 친구들을 만나보면, 그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개성이 짙어지고 자기만의 멋이 배어 나와요. 그걸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죠.


우리나라와는 반대네요. 나이 들면서 개성을 잃고, 사회생활하면서 평준화되는 모습을 많이 봐왔어요.


안타깝지만 그래요. 젬앤페블스의 주얼리는 폭 넒은 연령대를 아우르고 있어요. 젊은 친구들이 해도 멋지지만,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하면 저희의 무드가 더 잘 배어 나온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겁을 많이 내세요. 어머니들은 희생하며 사는 데 너무 익숙해요. 젊어서는 많이 가꾸고 노력하면서도 결혼하고 주부가 되면서 사치라고 생각하게 되죠. 막상 주얼리를 사도 하고 갈 데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주얼리는 꼭 특별한 날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하면 되는 거거든요. 사회 분위기상 어색하기도 하고, 그동안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고, 자신에게 투자하는 게 사치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스스로 의식을 바꾸고 가꾸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엄마는 원래 주얼리를 좋아하시기도 하지만, 저희가 더 많이 권해드리고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곤 해요. 그걸 보고 딸이 엄마를 모셔와서 선물해드리는 걸 보면 정말 뿌듯해져요. 우리네 엄마들도 이런 주얼리를 평소에 얼마든지 착용할 수 있다는 것, 이제 엄마들도 자신을 가꾸고 예뻐도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드리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이제 젬앤페블스를 빼놓고는 정체성에 대해 논할 수 없어졌어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이건 단순한 직업이나 경제 수단이 아닌 나 자체가 되어버렸죠. 전 오래도록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치관을 잃지 않고 지금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나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확장에 대해 더욱 조심스러운 거예요. 욕심부리고 싶지 않거든요. 이 일을 선택했을 때의 행복, 즐거움, 희열 등이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해요. 그걸 지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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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눈독 들였던 뱅글을 껴보았다. 전선혜 대표는 그것에 맞추어 얇은 금 팔찌와 반지들을 매칭해주었다. 하나만 했을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 손 위에서 뿜어져 나왔다. 각각의 화려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너무나 쉽게 어우러지는 것이, 마치 나만의 그림을 만들어가는 듯한 재미가 쏠쏠할 듯했다. 예쁘게 뒤섞인 주얼리를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나씩 천천히 사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터였다. 이건 쇼핑보다는 수집에 가까운 욕구였다.

좋은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물질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의 가치를 소비하는 것과 같다. 이 진실되고 대체 불가능한 열매를 위해 많은 브랜드들은 인내한다. 그래서 비슷한 제품이라도 아무 데서나 선뜻 사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브랜드라면 몇 년이고 충성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젬앤페블스가 다녀온 파리, 한남동에서의 시간, 디자인할 때의 흥분, 원석의 희소성, 가공의 정성 모두 반지 하나에 담겨 있었다. 그것을 알아버렸기에 그 반지를 갖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는 것이다.


http://www.jemandpebbl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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