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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아파트먼트 인터뷰

by 룬아

브랜드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는 많은 생각이 끼어들었다.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할까? 발음하기 어렵지 않을까? 다른 브랜드와 겹치면 어떡하지? 기억에는 잘 남을까? 등.

작명에 욕심이 있는 나는 플랫아파트먼트라는 이름도 궁금했다. 플랫flat이란, 영국에서 아파트먼트apartment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어째서 신발 브랜드가 집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쓴 걸까, 뭔가 이중적이거나 중첩적인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질문을 할수록 질문의 무게는 먼지처럼 가벼워졌다. 아파트먼트라는 단어가 예뻤고, 그 철자로 만들어지는 로고가 마음에 들었고, 아파트먼트는 상표등록을 할 수 없는 이름이라 플랫을 붙였고.

이들에게 '의미'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지극히 얕았다. 왜,보다는 어떻게,가 더 강력한 동기가 되는 플랫아파트먼트. 복잡하게 생각할 틈 없이 '내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것'에 충실했다. 이유는 덜어낼수록 자유로웠다.


서경희, 이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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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커플이 함께 브랜드를 운영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만 7년이 넘었네요. 시작은 경희가 했어요. 플랫슈즈만 신고 다녔었는데, 기존의 디자인 말고 좀 다른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러다가 버선코가 떠올라서 만든 거예요. 남성복을 하고 있었는데 신발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겁 없이 덤볐죠. 막상 해보니 혼자서는 유지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두 번째 시즌부터 동업이 시작되었죠.

당시에 광섭은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어요. 영문과를 졸업하고 패션을 배우고 싶어서 간 거였는데, 커리큘럼이 잘 안 맞아서 한 학기 만에 자퇴를 결심했어요. 수업의 자유도가 많이 떨어져서 대학교인데도 고등학교 같았거든요. 머리가 굵어졌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동기들이 10년 정도 더 어렸으니까요. 그렇게 귀국한 다음날부터 플랫아파트먼트로 출근했죠.


동업 궁합은 어떤가요?


많이 싸우긴 하지만, 경희가 손오공이라면 광섭이 근두운이에요. 경희는 강단 있고 주장이 강한 편이고, 광섭은 많이 유연해요. 초반에는 둘의 영역이 확연하게 구분됐었는데, 오래 같이 일하다 보니 경계가 많이 없어졌어요. 계속 섞여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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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코를 시그니처로 잡았어요. 전통에 대한 특별한 생각 같은 것이 있었나요?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동양적일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특별히 동양 미학을 좋아하거나 취향을 가져서가 아니에요. 버선코를 시그니처로 잡긴 했지만 그게 플랫아파트먼트의 중심이라고 보진 않아요. 버선코가 예뻐서 현대 신발에 적용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다였어요. 오히려 패션적인 시점에서는 서양에 가깝죠.

우리나라 문화가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죠. 하지만 딱히 서양 문화가 더 세련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서양에 대한 환상은 쉽게 커지는 것 같아요. '파리병'이라고 들어보셨어요? 파리에 대해 환상을 너무 크게 품은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고는 실망을 못 이기고 우울증에 걸리는 병이래요.


그래도 전통요소를 재해석한 것에 일단 기분이 좋았어요. 그동안 한국의 멋은 접근성이 좀 떨어졌던 게 사실이죠.


전통요소를 활용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많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지금은 시각과 방식이 달라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최근의 한복 브랜드들을 보면, 전통을 계승해야겠다는 막중한 의무감보다는 현대의복을 만드는데 한복의 요소를 재미있고 대중적으로 접목시키는 것뿐이에요. 마르지엘라가 일본의 전통을 계승하려고 타비 슈즈를 만든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일단 그는 일본 사람도 아니고요. 그냥 형태가 매력적이고 재미있어서 응용한 게 아니었을까요?

특히 우리는 전통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디자인해요. 하지만 그래서 더 전통에 접근하기 쉬운 것 같아요. 애국에 집착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브랜드가 되었을 거예요. 패션 브랜드가 전통에 얽매이면 카테고리가 바뀌죠.


신발을 보면 디자이너와 많이 닮아있어요. 본인들의 취향이나 성향은 어떤지.


조금 비뚤어진 걸 좋아해요. 전형적인 걸 좋아하지 않는 거죠. 그렇다고 '어썸awesome'은 아니에요. 그런 걸 싫어해서가 아니라, 좋지만 우리까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 예쁘고 멋진 건 다른 브랜드들이 너무 많이, 잘 하고 있으니까요. 가능하다면 다른 걸 하고 싶어요.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것.


그런 경향이 일본이랑 잘 맞나요?


시장성으로 보면 그래요. 일본만큼 다양성을 잘 받아들이는 곳도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플랫아파트먼트라는 브랜드가 특별히 일본에 잘 수용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일본이라는 시장 자체가 많은 걸 포용하는 곳이라.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이하 CDG)과 협업하게 된 이야기를 해주세요.


콜라보라기보다는 독점으로 디자인을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돼요. 2011년에 일본에서 열리는 페어에 나갔는데 CDG vmd(visual merchandiser)가 와서 명함을 주고 갔어요. 페어에 올 일이 없었는데 우연히 와서 좋은 걸 봤다고 연락이 왔어요. 운이 좋았죠. 정말 신이 났었어요.

주로 CDG 익스클루시브를 새로 만드는데, 컨펌은 레이 카와쿠보가 직접 해요. CDG에서 인큐베이팅하는 쇼룸이 도쿄와 파리에 있고, CDG와 어우러지는 브랜드들의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고 있어요. 그곳에 플랫아파트먼트의 신발이 놓이는 거예요.


CDG와 플랫아파트먼트의 디자인에는 어떤 차이를 주나요?


아예 새로운 디자인을 하기보다는 기존 디자인의 컬러웨이나 패턴 등을 바꾸는데 CDG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변형을 주는 거죠. 아마 조금 더 과감하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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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fw lookbook


이번 시즌(2016fw)에는 어떤 주제로 작업했나요?


밤의 어두움,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씩 빛나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빛이 분산되어 보이는 모습을 나타내고 싶어서 워싱된 벨벳이나 광이 나는 가죽 등 표면감이 느껴지는 소재들을 사용했어요. 기존의 형태를 많이 바꾸기보다 소재의 다양성에 집중했어요. 우리의 취향을 다른 방법으로 더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속눈썹을 붙인다던가, 신발 끈을 마구 묶기도 하고, 과감한 디자인이 많아요.


속눈썹과 신발 끈은 첫 시즌 때 경희가 혼자 했던 것들이에요. 인조 속눈썹이라는 재료를 한 번 써보고 싶었거든요.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들려는 의도 같은 건 없었어요. 신발을 전혀 모르던 그때는 겁 없이 덤빌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려워졌어요. 작품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판매가 돼야 하는 제품인데 생산에 문제가 많고 단가를 맞추는 게 불가능하죠.

작년 가을에는 이광호 작가님과 콜라보를 해봤어요. 작가님의 끈을 엮는 작업을 신발에 접목시켜봤죠. 결과는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결국 생산은 못 했어요. 단가가 너무 높았거든요. 팔아야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신발 디자인을 한다는 건 어떤가요?


취할 수 있는 장점이 많은 것 같아요. 기술자분들은 힘드시겠지만, 그림으로 그런 걸 직접 만져볼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빨리 만들 수 있고, 동시에 퀄리티도 어느 정도 받쳐주고요. 신발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가진 기술은 지극히 제한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디자인을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건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어서인 것 같아요. 그것도 서울시 한복판에서.


그래도 더 좋아졌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젊은 기술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생산하는 분들의 연령대가 많이 높아졌어요. 장인들을 양성하는 학교가 있긴 한데, 이태리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질보다 인식에서요. 우리나라는 메이커들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아니잖아요. 젊은 사람들은 디자인만 하고 싶어 해요. 우리도 그렇지만, 신발업종에 종사하는 젊은 사람들의 90%가 디자이너에요. 직업의 쏠림 현상이 심하죠. 결국 제조자들이 부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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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클 라인


사람들의 기호, 즉 유행이란 참 미묘한 것이죠. 불과 얼마 전 무시당하던 것이 하루아침에 환영받기도 하고. 특히 패션에서는 라이프 사이클이 짧은데,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대응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한 시즌 앞서서 작업하는데 뭐가 유행할지 알 수가 없죠. 우리가 느끼기로는 패션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거의 비슷한 거 같아요. 내년에 이런 걸 해야지, 하면 비슷한 제품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신기할 정도예요.

물론 전략적으로 시즌을 준비하는 브랜드들이 더 많겠죠. 트렌드를 연구하고 예측해서 컬렉션을 만들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우리에겐 전략이라는 게 없어요. 직관적이고 본능적으로,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해요.


플랫아파트먼트는 대중적인가요 마니아적인가요?


아직 대중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처음에 비하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죠. 우리가 조금씩 대중적으로 변화되는 면도 있고, 이곳저곳에 노출되다 보니 사람들 눈에 익숙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비하면 대중의 스타일이 과감하고 다양해진 것도 있고요.

메인 컬렉션은 취향을 타는 디자인들이기 때문에 서클Circle이라는 저가 라인을 만들었어요. 방향성이 전혀 달라요. 상대적으로 무난하고 저렴해서 접근성이 높죠.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고 매일 신을 수 있는 디자인으로 구성하고 있고요.


7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아요.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포기라기보다는, 플랫아파트먼트 외에 해보고 싶은 일이 생각날 때 그건 어떨까 상상해보곤 해요. 어쨌든 우리는 하고 싶은 걸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라서요. 물론 그래서 여전히 이 일을 하는 거겠죠.


꼭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경희 - 플랫아파트먼트와는 상관없이 만들어보고 싶은 의자가 있어요. 혹시라도 말이 새어나갈까봐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언젠간 꼭 만들 거예요.

광섭 - 부틀렉 풋웨어Bootleg Footwear라는 신발 레이블을 준비하고 있어요. 부틀렉은 해적판, 곧 짝퉁이라는 뜻이에요. 공연 보러 가서 몰래 녹음한 걸 부틀렉이라고 하죠. 카피를 하겠다는 게 아니고, 그야말로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플랫아파트먼트보다는 작게, 두 가지 디자인으로 시작할 거예요. 저렴하고 편한 걸로. 유니섹스이고요. 이젠 제가 만든 신발을 직접 신어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겠죠.

고심 끝에 지어낸 이름은 생각보다 완벽하지 않았다. 물론 이름 같은 건 결국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이름이 쥐고 있는 무엇이다. 플랫아파트먼트는 감각을 쥐고 있었다. 그러니 전략 없이도 여기까지 왔으리라. 아니, 아마 말로 정리하지 않은 그들만의 방법이 있겠지만 그것에 큰 의미를 담지 않을 뿐일 테다.

말은 해놓고 나면 그대로 믿게 된다. 없던 이유도 만들고 나면 어느새 사실이 되어 있다. 그렇게 브랜드들은 이야기를 짓고 이미지를 만들어서 그만의 세계관을 형성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와 의미도 보는 이들의 마음에 닿지 않으면 거짓말로 전락한다. 플랫아파트먼트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매 시즌 좋아하는 신발을 만들어 내놓을 뿐이다. 그렇게 7년 동안 세계가 생기고 팬들이 생겼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photography FLAT APARTMENT

www.flat-apartm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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