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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 고슴도치 Oct 18. 2022

식구의 의미

<네가 맛있는 하루를 보내면 좋겠어>를 읽고


'식구'의 의미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랑이 느껴진다.


조금은 말이 많고 섬세하고 수다스러운 아빠의 삶을 담은 레시피북이다. 아마도 이 한 권을 아들에게 남겨주기 위해서 이 책을 출판한 것이 아닐까 싶은, 그 식탁의 온도와 분위기를 담은 사진첩이나 인스타그램 피드 같기도 한 그런 책. #냉정과열정사이blu 를 썼던 작가는 치열하게 그 사이 어드매의 현실을 살아내고 있었다. 어떤 일로 굉장히 유명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사라졌더라도, 그의 삶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참으로 치열하게, 그러나 요람만은 흔들리지 않도록 잔잔하게 그와 그의 아들의 생에서 먹고 살며 버틴 이야기들을 불멍하면서 담담하게 풀어놓듯이 조곤조곤 풀어놓았다. 생각해보면 아들과 45세 차이가 나고, 그 아들이 대학에 갈 만큼 나이를 먹은 작가인데도 섬세함은 요즘 젊은 아빠들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연륜에서 오는 이야기들은 추운 날 오랫동안 푹 끓여 깊은 맛이 나는 따뜻한 육수를 한 그릇 마신 것처럼 은은하게 마음에 퍼진다.


작가가 도피처라고 말했던 부엌은 '온기'가 가득한 곳이다. 불을 켜고 음식을 삶고 볶으면 삶의 냄새가 뭉근하게 피어오른다. 꽤나 힘들던 어느 시기를 지나면서 나는 '식욕'이라는 것이 얼마나 삶의 의지와 연결되어있는지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발전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폭식이라도 할 의지가 들었지만, 삶의 의지가 떨어져 갈 때는 뭔가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몸이 그러면 안 된다고 쥐어짜내어 보내는 신호였던 허기도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곤 했었다.


그래서 그 힘든 시간을 살아낸 작가에게 '먹이기 위해서' 요리를 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게 한 존재인 아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새삼 생각하게 되면서, 그들이 식탁에서 주고받는 소중한 이야기가 따뜻하고 흥미롭게 느껴져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행복을 나눠먹으면 두 배가 될 것 같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책이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으면 좋겠는 사람들, 맛있는 것을 앞에 두고 진정 '식구'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책을 읽다 떠오른 반 아이들 두 명에게 이 책을 작은 편지와 함께 선물했다.


책의 시작 부분에서 부옇고 차가운 물속에 손을 넣고 쌀을 박박 씻으면서 '지지 않을 거야.'하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세상을 향해 이를 악물던 작가는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이 얼어붙어 잘 먹지도 않고 마음을 다친 아들을 보고 자신의 아픔에 취해있기보다 아들의 마음을 온기로 녹이기 위해 부엌에서 요리를 하며 점점 '맛있게 할 거야'로 바뀌는 마음을 확인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먹이고 먹으며 주방에서 생활하며 더 맛있는 요리를 통해 아들과 자신의 행복을 찾아간다. 그래서 작가의 요리는 단순히 요리가 아니라 그의 생각이고, 삶이며, 그가 지켜온 가정이고 식구다. 아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대화를 열어가며 진정한 '식구'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 식탁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세계를 먹이고, 그것을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듯이 알려준다. 말하지 않으면 몰랐을 정성에 대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삶의 맛에 대해서, 표현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랑에 대해서.


가정식 레시피라서 레시피도 꽤 쉽고 보고 있자면 식욕이 돌아서 삶의 의지가 충전되는 것은 덤이다. '삶의 의지'가 필요하고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고 버텨내고 지나가는 '용기'가 필요하고 식탁 앞에 앉아 조곤조곤 말을 거는 말동무가 필요한가? 그런 당신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


책을 다 읽고 덮으면 아마 작가가 조곤조곤 말을 걸어올 것이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네가 맛있는 하루를 보내면 좋겠어. 자, 먹자!"




#네가맛있는하루를보내면좋겠어 #츠지히토나리 #에세이 #레시피북 #식구 #사랑 #아버지 #북스타그램 #책추천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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