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담다'. 공간의 현상 : 제5호. 부천아트벙커B39&cosmo40
부천시 삼정동 공장지대 한복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붉고 흰 굴뚝은 이곳이 한때 도시의 부산물들을 치열하게 태워내던 에너지의 거점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1995년 가동을 시작해 매일 수백 톤의 쓰레기를 삼키던 삼정동 소각장은 다이옥신 파동으로 인한 주민들의 반대와 환경 문제라는 부침을 겪다 2010년 결국 불꽃을 멈췄다.
8년의 침묵 끝에 2018년 'B39'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이 공간에서, 숫자 39는 소각장의 핵심이자 가장 깊은 곳인 벙커의 깊이 39m를 상징한다. 우리는 거대한 콘크리트 심연 속으로 침잠하며, 과거 연소되던 열기가 어떻게 예술적 영감으로 바뀌었는지 목격해보고자 한다.
내부로 들어서 마주하는 공간의 트레이드마크같은 벙커는 인간의 스케일을 무색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수직적 볼륨을 드러낸다. 39m 아래로 깊게 파인 이 거대한 콘크리트 수조 앞에 서면, 마치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이나 건담 속에 등장하는 거대 로봇의 격납고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당장이라도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무언가 솟아오를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스케일은 관람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천창의 좁은 틈을 타고 내려오는 빛은 거친 노출 콘크리트 벽면의 요철을 하나하나 훑으며 미학적인 내러티브를 만든다. 과거 이곳을 가득 채웠을 쓰레기의 무게감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서늘한 공기와 적막은 오히려 공간의 존재감을 더욱 무겁게 각인시킨다. 벙커의 높은 벽면을 타고 흐르는 시간의 얼룩과 부식된 흔적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추상화가 되어 방문객에게 숭고미를 선사하고 있다.
과거 소각장의 육중한 설비들이 걷혀 나간 자리에 조성된 에어갤러리는 이 건축물에서 가장 극적으로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다. 이곳은 중정을 모티브로 설계되었으며, 기존의 두터운 벽면을 과감히 철거하여 외부의 채광과 맑은 하늘을 실내 깊숙이 끌어들였다. 노출된 철제 골조 사이로 빛이 조각나 들어오는 이 장소는 공간의 시퀀스가 '폐쇄'에서 '개방'으로 전이되는 핵심적인 중간 지점 역할을 한다.
천장이 개방된 구조 덕분에 방문객은 다양한 각도와 높이에서 공간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다용도 야외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남겨진 거대한 기둥과 슬래브의 잔해는 마치 고대 신전의 기둥들처럼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기둥 너머로 펼쳐진 부천의 일상적인 하늘과 대비되는 거친 콘크리트의 물성은, 단절되었던 소각장이 다시금 도시의 맥락 속으로 편입되었음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며 방문객에게 사유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발길을 옮겨 마주한 유인송풍실은 이곳의 시간이 2010년 가동 중단 당시에 박제되어 있음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소각로의 열기를 밖으로 빼내던 거대한 송풍기와 복잡하게 얽힌 낡은 파이프라인들은 기계 미학의 차가운 단면을 드러낸다. 먼지 쌓인 밸브와 녹슬어버린 철제 난간은 이곳이 재탄생한 문화예술 공간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치열한 삶과 노동이 숨 쉬던 거친 현장이었음을 일깨워준다. 인위적인 마감재로 덮이지 않은 날것의 기계 장치들은 현대적인 조명과 만나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공간의 역사적 층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소각장의 두뇌였던 중앙제어실은 옛 기술과 사람의 흔적이 교차하는 곳이다. 아날로그 방식의 계측기들과 수많은 버튼이 배열된 제어판, 그리고 벽면에 투박하게 붙어 있는 '계단 조심', '안전화 착용' 같은 표지판들은 이곳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마침표와 같다. 한때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이었던 이 방이 이제는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가 되었다는 사실은 공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간의 깊숙한 곳까지 탐사를 마친 뒤, 필자는 건축학도로서 한 가지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과연 이 압도적인 공간이 가진 잠재력을 현재의 방식이 최선으로 담아내고 있는가?"
B39는 거대한 소각장의 물성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여 공간의 아우라를 유지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격납고를 연상시키는 압도적인 벙커와 거친 기계실의 흔적들은 그 자체로 독보적인 건축적 자산이다. 그러나 그 아우라를 즐기고 난 뒤 마주하게 되는 내부의 실상에서는 짙은 아쉬움이 묻어난다. 공간 곳곳에 마련된 미디어룸이나 일부 전시실들은 정적이고 차가운 공기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실제적인 활용이나 생동감을 잃은 채 유휴 공간으로 전락해 있었다. 거대한 벙커의 존재감에 압도되어 정작 그 내부를 채워야 할 사람의 행태와 콘텐츠는 길을 잃은 듯 보였다.
39m라는 경이로운 깊이감이 주는 경외심은 훌륭하지만, 그 광활한 볼륨 안에서 정작 사람의 온기가 닿지 않는 유휴 공간들은 건축의 밀도를 급격히 떨어뜨린다. 단순히 과거 시설을 세척하고 예술 작품을 배치하는 단계를 넘어, 건축물의 작은 혈관과 같은 방들까지 어떻게 능동적으로 박동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닫힌 벙커를 여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열린 공간을 죽은 공간으로 남겨두지 않고 지속 가능한 생명력으로 채우는 것. 그것이 부천아트벙커 B39가 진정한 문화적 재생으로 나아가기 위해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숙제일 것이다.
인천은 대한민국의 발전에 가장 앞장섰던 도시였다. 1883년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근대 문물과 문화는 인천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인천이라는 도시는 국가 산업화 정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였다. 수많은 공장이 들어섰고, 코스모40의 전신인 코스모화학의 공장이 이때 같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2016년 코스모화학이 울산으로 이전을 결정하면서 코스모화학의 45개 공장은 단숨에 철거 대상이 되었다. 그 중에 40번째 동은 마지막까지 남았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인근 주거지와 맞닿아 있던 이 건물이 철거 공사 중 가림막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문화적 가치가 높아 보존을 위해 남겨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 40번째 공장은 가좌동의 주민 참여와 지역 재생의 핵심 공간이 되었다.
코스모40은 크지 않다. 연면적 3,500제곱미터 남짓, 지상 4층 지하 1층의 건물이다. 수치만 보면 평범하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그 평범함은 사라진다.
"기능이 떠난 자리에 남은 공간"
이 공간의 원형은 사용한 황산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정제하는 리커버리 플랜트 작업을 하던 곳이었다. 원료가 꼭대기에서 투입되어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공정을 거치는 수직적 흐름을 위해, 건물의 내부를 크게 비워두어야 했다. 그 결과1~2층과 3~4층은 각각 하나의 대공간으로 열려 있었다. 3층 슬라브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개구부가 남아 있다. 공장 시절 원료를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보내던 수직 공정의 흔적일 것이다. 이 공간의 이름이 ‘호이스트 홀’이라는 사실이 그 추측을 뒷받침한다.
철거 직전의 공장은 뼈대만 남아 있었다. 기계와 케이블, 철제 설비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난 후, 그동안 가려져 있던 H빔들이 공간의 주인이 되었다. 이 장면이 코스모40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리모델링 디자인을 맡은 ‘삶것건축사사무소’의 양수인 대표는 기존 공장의 내부는 손대지 않고 남겨 높게 뻗은 H빔이 만드는 공간감을 유지했다. 뼈대만 남은 공간은 이미 그 자체로 어떤 프로그램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전시가 들어오고, 공연이 펼쳐지며 마켓이 열리는 공간으로 채워졌다. 공장이 기능을 위해 스스로를 비워낸 논리가, 지금은 문화를 품는 가소성으로 전환되었다.
코스모40의 공간구획은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나뉜다. 리모델링 당시 새롭게 증축한 신관과 구관으로 분리될 것이라 예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신관은 기존 건물 내부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분리되어 있는 공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두드러지는 공간 구획은 1~2층과 3~4층이다. 1층과 2층은 보이드 홀(Void Hall)로 천정고 8m의 대공간으로 전시, 공연, 마켓, 행사, 촬영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3~4층의 호이스트 홀(Hoist Hall)은 천정고 12m의 넓은 개방형 공간이며 행사 공간으로도 쓸 수 있다. 하지만 호이스트 홀은 3층 신관과 연결되어 베이커리 카페의 객석 공간의 역할이 크다.
1층으로 들어서면 보이드 홀의 대공간이 맞이한다. 보이드 홀은 외부의 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 때문에 공간이 전체적으로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를 가진다. 그 어둠속에서 조명으로 강조되는 H빔들이 이 공간에서 가장 지배적인 요소가 되었다. 전시나 행사가 열릴 때와 열리지 않을 때의 보이드 홀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가질 것이다.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보이드 홀은 그 비어 있는 공간 자체로 하나의 경험이 된다.
계단을 올라 3층에 올라오면 공간의 분위기가 바뀐다. 호이스트 홀은 보이드 홀의 공간보다 더 높은 천정고 12m의 공간으로, 더 밝고 개방적이다.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베이커리 카페의 객석이 공간을 채운다. 보이드 홀의 어둡고 묵직한 무게감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하지만 천장을 올려다보면 공장 시절의 구조체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호이스트의 레일이 머리 위를 가로지른다. 카페의 온기와 공장의 뼈대가 같은 공간 안에 겹쳐있다.
두 공간의 대비는 이 건물이 가진 성격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코스모40은 전체적으로 도시를 향해 열려있지 않다. 외부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은 많지 않고, 건물의 입면은 창보다 벽에 가깝다. 외부의 길과 도시와의 소통은 의도적으로 최소화되어 있다. 그것이 공장이라는 건물 유형의 본래 속성이기도 하다. 공장은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생산을 위해 내부를 최적화하고, 외부와의 접촉은 필요한 만큼만 허용했다. 코스모40은 그 내향성을 지우지 않았다. 호이스트 홀에서 허용된 빛은, 이 건물이 도시와 소통하는 최소한의 개방이다.
코스모40을 채우는 것들 중 과거의 흔적을 안고 있는 것들이 있다. 코스모40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들이 그러하다. 골강판 외벽에 배어있는 녹의 질감, 윤기나는 벽돌 바닥에 남은 설비의 자국. 이것들은 인테리어적으로 선택되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낸 흔적이다.
호이스트 홀 천장에는 공장 시절 원료와 설비를 올리고 내리던 크레인이 있다. 지금 그 크레인은 샹들리에를 달고 있다. 샹들리에 아래의 소파와 넓게 뚫린 창을 보면 개방적이고 안락한 공간이다. 하지만 그 위에는 공장의 흔적이 남아있다. 코스모40에서 흔적은 이런 방식으로 존재한다. 지워지거나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용도를 입고, 그 자리에 남아있다.
재생 건축의 흔한 접근 중 하나는 낡음을 연출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벗겨내고, 일부러 녹슬게 두고, 폐허의 분위기를 하나의 콘셉트로 소비한다. 코스모40은 그런 방식과 다르다. 크레인은 원래부터 거기 있었고, 제어실도 원래부터 거기 있었다. 이 공간은 과거를 전시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와 함께 두고 있을 뿐이다. 샹들리에를 단 크레인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 공존의 가장 일상적인 장면이다.
코스모40 밖으로 나오면, 풍경은 다시 공장지대다. 코스모화학이 떠난 자리를 다른 공장들이 채웠고, 주변은 여전히 조용하다. 코스모40을 기점으로 디자인 거리가 기획되었지만 일시적인 이벤트에 그쳤고, 그 주변의 그래피티 거리와 문화의 길은 주차된 차량들 사이로 감상조차 어렵다. 지역 재생의 촉매가 되기를 기대받았지만, 이 건물은 아직 공장들 사이에 홀로 서 있다.
그러나 그 고립이 이 공간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코스모40은 도시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도시가 지우려 했던 시간을 붙들고 있다. 45개 동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남았던 이 한 동이 공장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공간으로 간직하고 있다. 철거 공사의 가림막으로 우연히 살아남은 건물이, 지금은 그 우연 덕분에 하나의 시대를 증언하는 장소가 되었다.
건축이 도시를 단번에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 공간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스모40은 조용히, 그리고 내향적으로 존재한다. 도시를 향해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 안으로 깊어지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그 시간의 층위를 내어준다. 공장지대 한가운데 홀로 선 이 건물이 건네는 것은 화려한 변화가 아니다. 잊히지 않은 것들이 살아있다는, 조용한 증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