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담다'. 공간의 현상 : 제 4호. 저자 : 김명재
‘공간의 현상’ 프로젝트는 오디움 박물관을 마지막으로 2025년 활동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2025 베르사유 건축상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 중 하나로 선정된, 세계 최초 오디오 전문 박물관의 소리를 사진과 글로 들려주고자 한다.
오디움은 서초구 양재동과 위례신도시를 잇는 현릉로 위, 구룡산과 청계산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높지 않은 건물들 사이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입면은 눈길을 사로잡는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약 2만 개의 알루미늄 루버로 감싼 박물관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오케스트라 합주를 듣는 것 같은 웅장함을 선사한다.
주출입구 로비까지 이어진 입면의 연속은 신비로운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내외부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물고 있다. 야외에서 느낀 감정을 유지한 채 어느새 박물관이 수집하는 소리를 감상하고,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전시실을 걸어 나와 다시 루버 아래 서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건축가 : Kuma Kengo
규모 지상 : 5층, 지하 5층
주요 마감 : 편백나무 우드 드레이프
오디움은 파사드를 제외한다면 화려하거나 독특하다고 말할 만한 외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아가 전시실 간 동선마저 엘리베이터나 짧은 복도로 구성되어 있어, 볼 수 있는 것은 벽에 진열된 음향기기들과 공중에 매달린 기이한 스피커뿐이다. 조명은 음향기기들의 반짝이는 금속재들을 더욱 강조해 주고 조명이 닿지 않는 천장과 바닥은 착시 효과를 느낄 정도로 짙은 어둠을 띠었다.
오디움을 설계한 쿠마겐코는 박물관이라는 숲에 들어온 사람들의 눈을 빼앗았다.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편백나무 우드 드레이프 방식으로 전시실 내벽을 마감하여 흡음력을 높였고, 바닥재에서도 역시 동일한 효과를 내고자 하였다. 우드 드레이프 목재 마감의 표면에 단차가 형성되고 형태 그대로 그림자가 생기며 재치 있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는 단순히 청음 환경의 질적인 부분만 향상한 것은 아니었다. 전시실로 들어가는 그 경계, 벽면의 모서리를 지나자마자 감각은 통제되고 순식간에 공간에 빠져든다.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것 같은, 방 안이 무한히 넓어 잔향이 돌아오지 않는 것 같은 전시실 내에서 도슨트의 목소리를 제외한 다른 소리는 듣기 힘들어진다. 그런 공간에서 오디움이 기록하고 수집한 음향기기의 역사를 보고 듣고 있으면 시간여행과 순간이동을 동시에 하는 경험을 느낄 수 있다. 가정용부터 극장용 스피커, 에디슨 축음기를 차례차례 감상하며 걷다가 보면 성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제1 전시실부터 제3 전시실은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역사적인 음향기기에 대한 설명과 외형, 연대기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가정용 하이파이 (1950 ~ 1960)
하이파이는 원본을 정직하게 재생하는 것에 충실한 사운드 시스템이다. 영화관에서 사용하던 대형 스피커를 가정용으로 발전시킨 모델로, 제1 전시실에서 JBL과 Macintosh, Marantz에서 제작한 스피커와 앰프를 볼 수 있다.
미국과 독일의 영화 음향 시스템 (1930 ~ 1940)
미국의 Western Electric과 독일의 Klangfilm은 미국과 유럽의 극장 음향 시스템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회사이다. 제2 전시실에서는 사람보다 큰 스피커가 벽면에 줄지어 서있다.
스튜디오와 극장의 오디오
제4 전시실부터 제7 전시실에서는 스튜디오 음향기기, 극장용 스피커, 야외 방송용 스피커, 유성영화용 스피커를 경험할 수 있다. 이전의 전시실과는 다르게 전시된 음향기기를 통해 오디움이 추천하는 음악을 듣는다.
제5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기면 오랜만에 바깥과 눈을 마주칠 수 있다. 알루미늄 루버를 지나 들어오는 빛은 관람의 텐션을 조절해 주는 듯하였다.
전시홀과 갤러리에는 다양한 종류의 카메라와 오르골이 전시되어 있다. 어두운 전시실을 나와 밝아진 공간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소장품들은 마치 이 관람의 여정이 마무리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주출입구 로비와 연결된 오디움 라운지에서 관람은 끝이 난다. 패브릭 소재로 마감된 기둥과 벽체, 가구들 표면 사이사이로 빛이 은은하게 떨어져 부드러운 색과 그림자를 그려내며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전시실의 새로운 모습을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90분이라는 산책이 끝나고 로비로 나오면 거대한 창으로 들어온 빛이 알루미늄 관을 때리며 깊은 명암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긴 시간 꿈을 꾸다 기분 좋게 깨어나듯, 오디움으로 들어올 때 받았던 점진적인 몰입감처럼, 감각의 여운을 온전히 가지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공간을 느낄 때 직관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각이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감각 중 시각만이 예민한 것은 아니다. 오디움은 도심 속 오디오 역사박물관이라는 목적에 맞게 인간의 기억과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후각과 청각에 집중하였다. 그저 SNS에 보여주기 위해 화려한 공간을 찾아다녔다면, 한 번쯤 마음을 울리는 ‘공간’에 가보는 것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