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아케이드, 해방촌 신흥시장

'더 담다'. 공간의 현상 : 제3호. 신흥시장 / 저자: 류혁주

by 더 담다



'더 담다.'의 세 번째 걸음, 해방촌 신흥시장


서울 용산구 남산 자락, 숨이 약간 찰 정도의 언덕길을 오르면 신흥시장이라는 작은 세계가 나타난다. 이름만 보면 흔한 재래시장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은 조금 다르다.

KakaoTalk_20251207_194742492.jpg

1945년 해방 직후 해외에서 귀국한 동포들과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모여 판잣집을 짓고 살았던 해방촌. 그 역사의 중심에서 1953년 전후 생필품을 중심으로 태동한 이 시장은, 한때 해방촌 니트 산업의 흥망성쇠를 함께하며 지역 주민들의 유일한 생활 중심지로 기능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산업이 쇠퇴하고 주변 상권에 밀리면서 시장은 침체의 길을 걸었고, 2014년경에는 거의 폐쇄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절망 끝에 다다른 시장에 변화가 찾아왔다. 서울시가 2015년 12월 해방촌을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지정하면서부터다. 신흥시장은 그때부터 그야말로 또 다른 시간을 살기 시작했다. 과거와 미래가 묘하게 겹쳐지는 ‘시간의 아케이드’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낡은 콘크리트와 클라우드 지붕이 빚어낸 이중주


신흥시장을 처음 마주하면 누구나 눈길을 빼앗기는 장면이 있다. 시장 전체를 덮고 있는 거대한 ‘클라우드’ 지붕이다.

위진복·홍석규 건축가가 설계한 ETFE 막 구조는 기존의 위험한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낸 자리 위에 가벼운 구름처럼 떠 있다. 내구성과 투명성을 갖춘 이 소재는 채광과 환기를 해결하는 동시에, 좁은 골목에 기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삼각대 구조로 지지되어 개방감을 확보했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 특별한 빗소리를 들려준다는 점 역시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KakaoTalk_20251207_194742492_02.jpg


흥미로운 건, 이 매끈한 최신 구조가 아래의 낡고 투박한 시장 건물들과 이상하게도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1960년대 판잣집을 대신해 지어진 저층의 시멘트 건물, 붉은 벽돌, 뒤엉킨 전선들. 이런 것들이 원래라면 정비 대상으로 여겨질 법한데, 오히려 신흥시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시간이 쌓인 하나의 풍경처럼 읽힌다. 마치 오래된 빌라 골목에서만 느껴지는 묘한 친근함과 향수 같은 느낌이다.


KakaoTalk_20251207_194742492_01.jpg


그래서 이곳을 걷다 보면 공간이 진화해 가는 생명체처럼 마치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 세대는 나이 드신 시장 상인과 오래된 주민들, 또 다른 세대는 젊은 사장님들과 도시 탐방객들. 이 둘이 한 지붕 아래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묘한 온도를 만든다.

시장 내부의 빈 점포에는 예술공방, 개성 있는 카페, 맛집 등이 들어섰고, 이는 청년 유입과 함께 활발해지고 있는 해방촌의 예술공방 문화와 결합하여 지역 특성을 높이는 앵커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좁은 골목에 야외 테이블과 간판들이 나와 있는 모습은 이국적인 느낌과 함께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노력의 결실로 보인다.


KakaoTalk_20251207_194742492_03.jpg


‘고도’와 ‘경사’가 빚어낸 독특한 도시성


신흥시장의 정체성은 '지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곳의 입지 자체가 이미 미래를 달리 정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남산 자락이라는 조건은 최고고도지구(12m 높이 제한)를 적용받는데, 이 때문에 대규모 철거 재개발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어쩌면 바로 이 제한 덕분에 신흥시장은 다른 상업지처럼 과도하게 새로 지어지지 않았고, 기존 주거·상업이 공존하는 보존형 도시재생이라는 길을 걷게 된 셈이다.


가파른 언덕길과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약점이지만, 동시에 해방촌 특유의 생활감 있는 풍경을 만든다.

요즘 들어선 공방, 작은 카페, 맛집들이 이 좁은 골목을 다시 밝히고 있고, 남산공원·경리단길·이태원으로 이어지는 보행 흐름 덕분에 신흥시장은 작은 로컬 시장을 넘어 넓은 상권의 일부가 되었다.


KakaoTalk_20251207_194742492_04.jpg



진화의 그늘


하지만 이 시장의 진화를 장밋빛으로만 볼 수는 없다.

클라우드 지붕과 도시재생의 성공으로 유동 인구가 늘면서 지가와 임대료가 빠르게 상승했고, 결국 일부 기존 상인들은 자리를 떠나야 했다.

활성화라는 이름 아래 생긴 이 변화는 분명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처이기도 하다.

특히 용산2가동의 평균 연령이 46.7세로 높은 편임을 고려하면, 도시재생 과정에서 고령 주민들이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지적도 있다. 신흥시장의 진정한 미래는 결국 이 질문에 달려 있다.


“이곳의 변화가 새로운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원래 이 시장을 지켜온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가?”

KakaoTalk_20251207_194742492_05.jpg



신흥시장은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이자 숙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해방촌의 역사적 흔적을 보존하면서도 혁신적인 건축을 통해 낡은 시장에 청년 예술과 창업의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는 전면 철거 중심의 대규모 개발이 어려운 지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도시계획적 성공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젠트리피케이션과 기존 공동체의 균형이라는 어려운 문제가 남아있다. 도시는 단순히 건물을 새로 짓는다고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켜켜이 쌓인 역사적 흔적 위에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를 어떻게 정교하게 올릴 것인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생명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신흥시장은 증명하고 있다. 낡은 간판과 최신 클라우드가 공존하며 현재에도 여전히 진화 중인 이 작은 시장이 앞으로 클라우드 지붕 아래에 어떤 시간의 층을 더 쌓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나갈지, 우리는 그 흥미로운 과정을 계속 지켜보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예술의 끊임없는 변화, 리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