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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May 22. 2018

2년 만의 김밥

그대와 함께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

 금요일 저녁, 집으로 향하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렀다. 오이와 당근, 햄과 맛살, 우엉과 단무지, 그리고 맛을 배가 시켜줄 깻잎까지 골랐다. 음, 뭔가 빼먹은 거 같은데. 맞다, 가장 중요한 김을 빠뜨릴 뻔했다. 총 14,660원. 김밥에 필요한 재료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김밥 만드려고 하는데 오이는 어떻게 손질하면 돼? 맛살은 그냥 자르기만 하면 되나?" 엄마는 재료 하나하나를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꼼꼼하게 알려주셨다. 요새는 검색창에 '김밥'이라고만 쳐도 어떻게 만드는지 다 알려주지만 엄마의 비법, 엄마의 손맛을 닮고 싶어서 나는 요리를 하기 전 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묻곤 했다.

"참, 그리고 밥은 안칠 때 소금을 넣어. 소금 한 티스푼을 물에 잘 녹여서. 밥하고 소금 넣으면 잘 안 섞이니까."

엄마의 비법을 전수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재료들을 테이블에 꺼냈다. 그럼 본격적으로 재료를 손질해볼까.

 

오이는 깨끗이 씻어 十자로 자른 후 씨를 제거하고 한 번 씩 더 잘라 소금물에 담아준다. 당근은 껍질을 제거한 후 채를 썰어 준비하고, 깻잎은 흐르는 물에 여러 번 헹군 후 꼭지를 잘라준다. 맛살과 햄은 길게 잘라주고 계란 2개를 잘 풀어준다. 데운 팬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물을 부어 지단을 만들고 채를 썰어놓은 당근을 볶아준다. 마지막으로 햄을 구워준다. 식은 계란은 길게 잘라준다. 우엉과 단무지는 김밥 만들기 전에 물기를 제거해준다. 재료 손질이 끝날 때쯤 J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 난 지금 집에 가는 길인데 저녁 안 먹어서 배가 너무 고프다. 아, 졸리고 배고프고." 재료 준비하길 잘했다 싶었다. 서둘러 전화를 끊고 찬장에서 즉석밥 1개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하고 깨를 솔솔 뿌려주었다. 준비는 이제 끝났다.  김 한 장을 꺼내 밥을 깔아주었다. 깻잎, 계란, 당근, 오이, 햄, 맛살, 우엉, 단무지를 넣고 말려고 하는데 현관문을 열고 J가 들어왔다. 휘둥그레진 눈, 그리고 벌어진 입, 그리고 그 미소. 김밥이다, 하는 그 즐거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엉망진창 김밥도 맛있다며 먹는 J, 다음 번에는 너를 위해 대왕김밥을 싸줄게. 


김밥을 싸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200g의 즉석밥 1 공기가 김밥 한 줄에 다 들어갔는데도 잘 말리지 않았다. 이러니 김밥 한 줄 먹고도 배가 그리 불렀던 거구나. 하지만 J는 그것도 모르고 이게 다냐며 한 줄 더 먹고 싶은 티를 냈다. 서둘러 즉석밥 1개를 더 데웠다. 그제야 밥 한 공기가 김밥 한 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J도 더 먹을지 말지 고민하는 게 보였다. 괜찮아, 맛있으면 0㎉잖아. 


주방이 좁아서, 테이블이 작아서. 아니야, 내가 정리가 잘 못해. 김밥 다 싸고 깨끗하게 정리하는 걸로!


김밥은 J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연애 때 김밥을 만들어주고 한 번도 만들어주지 못했다. 올초 우리가 함께 작성한 버킷리스트에는 '김밥 만들어 먹기'가 적혀 있었다. 맞벌이를 하는 우리는 현재 주말부부이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날이 주말뿐이다. 피곤한 금요일 저녁이었지만 함께 만들어 먹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토요일도, 주일도, 우리는 남은 재료들을 이용해서 김밥을 만들어먹었다. 하물며 운동을 하러 공원에 갈 때도 김밥을 들고나갔다. 


열심히 달리고 공원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컵라면을 사서 김밥과 야무지게 냠냠. 운동은 건강해지려고 하는 거니까.


 J 덕분에 나도 어느덧 김밥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이제는 매달 김밥을 만들어먹기로 했다. 죽기 전까지,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함께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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