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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different way Feb 14. 2021

접착테이프 육아
duct tape parenting

똑똑한 엄마는 서두르지 않는다 서평


[NO라고 말할 줄 아는 자녀양육] 책에서 대부분의 부모(주로 주양육자인 엄마)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정서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첫 번째는 죄책감(해도 해도... 왠지 엄마로서 부족하고 더 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 두 번째는 고통을 겪는 것을 피하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차라리 내가 고통스러운 게 낫지. 내 애가 고통당하는 모습은 절대 보고 싶지 않은 마음). 이 두 가지 마음이, 양육자가 아이들에게 NO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었다. 내가 NO했을 때, 아이가 실망할 것을 직면하게 되면 죄책감이 스물스물 밀려오게 되고, 실망을 넘어서서 아이가 정서적으로 힘들어하거나 슬퍼하면 이런 고통을 주면서까지 NO를 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경계를 세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똑똑한 엄마는 서두르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NO라고 말할 줄 아는 자녀양육"에서 언급되었던 부모의 두 가지 마음이 불현듯 떠올랐다. 죄책감과 고통을 겪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 똑똑한 엄마가 서두르는 이유는, 부모로서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고(빨리 서둘러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세팅해주어야 죄책감이 덜어진다), 아이가 뻔히 실패하고 고통당할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느니, 실패의 싹을 잘라서 가능한 고통을 겪지 않는 탄탄대로를 만들어주는 것이 엄마의 정신건강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부모와 분리되어 성인으로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행복하고 건강하게 키우려면 우리 '부모의 그림자'를 자녀의 삶에서
거둬들여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실패의 고통뿐만 아니라 
온전한 자기만의 성취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만 한다.


저자도 말했지만, 부모인 우리도 모두 알고 있다. "우리가 아이들 앞길에서 치워버린 좌절, 실수, 착오, 실패야말로 그들이 재치와 끈기, 창조력, 회복력을 갖춘 어른으로서 자랄 수 있는 경험이라는 것을 말이다." "실망, 거부, 징계, 비판과 같이 사소한 실패는 불행으로 오인되는 귀중한 선물이자 기회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이들의 마음에 평화와 짧은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이러한 기회들을 피하거나 무시해버린다면 유능한 어른이 되는데 필요한 경험을 빼앗는 셈이다."


아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건... 조금이라도 고통스럽고 아픈 경험들을 거둬버리고 싶은 건... 부모가 가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거스를 수 있는 부모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부모 자식 간을 천륜(하늘이의 인연으로 정해진)이라고 말할까... 하늘이 정해준 이 관계에서 부모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최선을 다해서(이미 아이를 낳는 것 자체가 엄마의 생명을 담보로 걸었다 할 수 있다) 좋은 것을 주고, 나쁜 것은 없애버려야 한다. 따라서 미숙한 아이들에게 이 중요한 인생의 준비와 설계, 실행을 맡기느니, 부모가 직접 해줄 수만 있다면 대신 촤르르 세팅해주고 꽃길만 걷게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이다.


책의 저자인 제시카는 위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평온한 유년기를 경험하게 해 주려는 연구와 계획은 성공했지만,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들어서자 현실적인 세상에 적응하는 법은 미처 가르치지 못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모든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탐색하고, 창조하고 쌓아 올리려는 욕구가 있고 이것이 동기가 되어 행동한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은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제어하려는 충동 때문이다. 육아에도 요령이 있다면 그 내적 충동을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가들부터, 대학 진학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대학 진학 이후에도) 부모의 역할은, 인생 성공을 위한 완벽한 계획을 세워 자녀들을 그 계획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자녀들이 끊임없이 성장을 위한 "내적 충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녀들을 응원하고 지지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자칫 이 모습은 마치, 자녀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아서 무관심해 보일 수 있지만(그래서 방치나 방임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율성 중심의 육아는 (1)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대치를 설정하고, (2) 신체적 정신적으로 자녀들의 곁에 머물면서 (3) 방향을 바꾸어야 하거나 좌절하는 순간에 자녀들을 이끌어 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염려했던 부분에 대해서 작가가 명쾌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gift of failure이다. 실패의 선물. 정말 자녀가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실패에서 오는 값진 경험을 허락해주라는 의도인 듯하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 실패의 경험이 선물이 되려면 작가의 말로 바꾸어 좌절, 실수, 착오, 실패를 재치와 끈기, 창조와 회복력으로 바꾸려면 부모라는 단단한 울타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발 물러서서, 아이를 따뜻하게 지지해주는 부모가 없다면 오히려 실패의 경험은 아이에게 좌절과 고립, 막막함과 무기력함을 던져줄 수 있다. 내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는... 그렇다. 여기에서 단단한 울타리는 꼭 하루 24시간을 자녀와 물리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는 부모라는 의미는 아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다 유의미하다고 할 수도 없다 ㅠㅠ) 부모에게는 아이가 실패하는 순간 그 마음을 보듬고 함께 위로하고, 정서적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마음의 공간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물리적인 공간에 함께 있어도, 아이의 내적인 공허함과 외침에 반응해주지 않는(혹은 못하는) 부모가 있고, 일하느라 바빠서 함께 있지 못해도, 아이의 마음을 살뜰히 살피며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도록 마음에 힘을 주는 부모가 있다. 후자의 부모가 작가가 말하는 자율성 중심의 육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는 아이가 처음 만나는 교사이므로, 우리가 바르고 용감한 태도로 목적에 집중하고, 일상에서 책임과 난관을 마주하는 법을 가르쳐줄 최적의 위치에 있다.


육아에 올인하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모든 생활영역에 손을 뻗어 문어발식으로 관리를 해주고 있다. 학습 계획, 과제, 시험 준비, 친구 관계, 갈등관리 등등... 부모가 개입하지 않은 영역이 없다. 부모가 개입할 수 없다면, 이와 같은 관리를 대신해주는 쓰앵님을 고용할 수도 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저자는 분명 부모가 목적에 집중하고, 책임과 난관을 마주하는 법을 가르쳐주라 했는데...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책임은 부모가 대신 짊어지고, 난관이 생기면 아이를 대신해서 해결방안을 제시해주며 부모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러한 부모의 태도가 자녀에게 신뢰할 만한 가치가 없고 무능력하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가 자녀에게 주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부모는, 한발 물러서서 자녀가 서투르게 하는 모든 배움의 과정에서 간섭하지 않고 입을 다물기가 쉽지 않다. 저렇게 하면 안 될게 뻔한데... 차라리 내가 대신 가서 해주고 말지(혹은 내 입이 대신해주고 말지_아이는 잔소리라 생각하지만, 부모는 가장 효과적인 노하우라고 생각)라는 생각이 늘 앞선다. 작가는 이와 같은 부모에게 접착테이프 육아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배움의 순간에 개입하지 않고, 물러서서 
입을 다물고 있으려면
접착테이프처럼 강력한 것이 필요하다.
자율성 중심의 육아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지지하되 통제해서는 안된다.


duct tape parenting이라니... 내 입에 테이프를 단단히 붙여,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탐색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서툴지만, 이런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아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자원 주의를 관리할 수 있는 실행기능을 배워나간다. 부모가 관리해주는 학습역량, 부모가 관리해주는 친구 관계, 부모가 관리해주는 시험 준비, 부모가 관리해주는 갈등 해결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부딪혀서 값진 실행 기술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학부모님들이 있다. 내 아이와 갈등관계에 있는 아이를 찾아와, 교사와 친구들 앞에서 자기 아이의 친구를 야단친 부모... 체육대회 줄다리기 경기중에 난입하여, 장갑을 끼고 안 끼고 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항의하던 부모... 내 아이와 갈등을 일으킨 상대방 아이를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부모... 학생과 주고받은 농담도, 불쾌하다며 일일이 해명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부모...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는 아이를 위해, 정당하게 싸우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아이가 스스로 친구와의 갈등을 해결하고, 체육대회 경기 중에 일어난 일을 살펴보고, 선생님과의 유연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셈이다.


학교에서 만나는 부모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 역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어디까지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믿고 지지해주고, 어디서부터는 개입을 해야 하는지... 그 흐리멍덩한 경계의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가 많다. 아이를 대신해서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뽀대 날뿐만 아니라 시간 절약 측면에서 효율적이고, 아이와 실랑이를 하지 않아 참 우아해 보이지만 이건 내 아이들을 건강한 어른이 되게 해주는 길은 분명 아닐 것이다.


큰아이는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자가 되고 싶어 한다. 한국에서 피아노를 친다 하면... 정해진 코스가 있다. 빠르고 실패하지 않는 길이 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 길을 물어서 간다. (이런 길을 가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어렵고 힘들고, 고단한 길이기에... 진심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작년 이맘때 나도 큰 아이를 데리고 이렇게 가야 하는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여러 선생님들을 찾아 test를 받았다. 많은 경제적인 부담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내 아이가 가고자 하는 길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압박이 분명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성공 확률이 높은 그 길에서 벗어나 아이와 함께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다. 아이도 우리 가족이 함께 선택한 이 길이 피아노 연주자로서 탄탄대로 내지는, 명성 있는 대학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꼭 명성 있는 대학을 가야, 꼭 제2의 조성진이 되어야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클래식 연주자가 될 수만 있다면 꼭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성공할 확률은 낮고, 실패할 확률은 크지만 내 아이에게 맞는 길을 선택해서 가는 것이... 그게 모두에게 best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무리하면 레슨비를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고, 조금 무리해서 운전을 하면 레슨을 받으러 다닐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 음악을 하는 내 아이와 내 아이를 지켜보는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우리 가족 모두 아니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The failure of gift... 혹시라도 내 아이가 이 길을 걷다 실패해도, 이 모든 과정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고, 이 과정 중에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 생각한 클래식 연주자가 되지 않더라도, 그게 인생의 실패처럼 보일지라도, 그래도 진짜 아이의 인생이 실패한 건 아니니까... 그 안에서 또 새로운 꿈을 꿀 테니... 지금은 서두르지 않고, 우리가 옳다고 믿는 길을 가야겠다. 역설적으로... 내 아이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의 신념이 내 주변에서 만나는 많은 엄마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두르지 않고 돌아가는 이 길이... 부디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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