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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종만 Dec 30. 2020

설경에 취하다, 겨울이 좋다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덕유산

높지만 넉넉하고 부드러운 산

  덕유산은 최고봉인 향적봉이 해발 1,614m로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에 이어 남한에서 4번째로 높다. 산이 크고 골이 깊으며, 정상부가 평평한 것이 덕이 많고 너그러운 어머니 품을 연상시킨다 하여 덕유산(德裕山)이라 불렸다 한다.

  실제로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에서 남덕유산(1,507m)에 이르는 17.5km의 주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한 없이 부드럽고 넉넉한 산세가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게 다가선다. 남쪽으로 지리산, 가야산과 이어지며 아스라한 조망을 펼치고 있는 삼봉, 적상산, 삿갓봉, 무룡산, 동엽령 등 숱한 봉우리 사이에,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깊은 계곡들이 내륙의 비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에서 네번째로 높은 덕유산 향적봉 원경 모습.


  이렇게 높으면서도 넉넉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청량하기 그지없는 계곡과 장쾌한 능선, 전형적인 육산의 아름다움, 그리고 넓은 산자락과 만만치 않은 높이를 자랑하는 덕유산은 1975년 오대산과 더불어 국내 1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전북 무주와 장수, 경남 거창과 함양군 등 2개 도(道), 4개 군(郡)에 걸쳐있으며 총 229.430㎢의 면적으로 산악형 국립공원 중에서는 6번째로 넓다. 참고로 산악형 국립공원의 지정 면적은 지리산이 483.022㎢로 가장 넓고 설악산, 오대산, 소백산, 월악산 순이다.

  넓이는 6위지만 산림청이 선정한 인기 명산에서는 높이와 같은 4위를 차지하고 있다. 향적봉에서 남덕유산까지의 장대한 산줄기와 금강과 낙동강의 수원(水源)인 동시에 덕유산 북쪽으로 흘러내리는 30여 km의 무주구천동계곡과 자연휴양림, 신라 흥덕왕 5년(830년) 무염국사가 창건한 백련사 등이 덕유산의 인기를 높인 까닭이다.

  덕유산국립공원을 품고 있는 무주는 전북의 고산 지방으로 진안, 장수와 더불어 무진장 고을이라 불리기도 한다. 무주군의 동쪽은 경북 김천시, 경남 거창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에 소백산맥이 자리 잡고 있는 형세다. 그래서 삼국시대에는 무주군 동쪽이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기도 했다.

신라 흥덕왕 5년(830년) 무염국사가 창건한 백련사 설경.


계절을 잊게 하는 사계절 명소

  덕유산국립공원은 사계절 아름다운 산으로 유명하다. 봄에는 철쭉과 진달래, 꿩의바람꽃 등이 군락을 이루어 장관을 이루며 여름에는 원추리와 범꼬리, 비비추 등이 가을에는 단풍, 그리고 겨울에는 멋진 상고대가 절경을 이루는 산이다.

  특히 봄철 철쭉이 유명한데, 주능선에 철쭉이 산재해 있어 봄철 덕유산은 철쭉 꽃밭에서 해가 떠 철쭉 꽃밭에서 해가 진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최고봉인 향적봉에서 남덕유산 육십령까지 이어지는 등산로에 철쭉군락이 펼쳐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곳은 덕유평전인데, 평평한 능선에 철쭉이 화원을 이루고 있다.

  덕유산은 무주구천동을 끼고 있어 여름철에 특히 더위를 피한 탐방객들이 즐겨 찾는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계류가 북쪽의 무주로 흘러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에 유입되는데, 설천까지 28㎞나 되는 계곡이 바로 무주구천동이다. 구천동계곡은 폭포, 담, 소, 기암절벽, 여울 등이 곳곳에 숨어 구천동 33경을 이루는데, 그 청정한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 무더위를 피해 찾아드는 사람들이 많다.

  가을 단풍도 만만치 않은 인기를 누린다. 매우 다양하고 아름다운 단풍 경승을 자아내는데 산속으로 안길수록 더욱 깊고 그윽한 맛을 풍긴다. 대표적인 코스는 구천동 33경을 보면서 향적봉으로 오르는 코스인데, 단풍 절정기에는 너무 많은 인파로 붐벼 발걸음 떼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조용하게 단풍을 즐기고 싶은 탐방객들은 이 코스를 피해 제2봉인 남덕유산을 찾기도 한다.

덕유산은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산이기도 하다.


  겨울의 덕유산은 마치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연상케 한다. 첩첩산중으로 장쾌하게 이어진 크고 작은 연봉들이 눈가루를 흩날리며 선경을 연출한다. 덕유산은 남부지방에 있으면서도 서해의 습한 대기가 산을 넘으면서 뿌리는 많은 눈 때문에 겨울산행 코스로 최고의 인기를 모으기도 한다.

겨울 산의 진수를 보여주는 향적봉 정상 부근.


편하게 다가서는 산

  덕유산은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 전망대에서 내리면 향적봉 정상까지 20여분이면 오를 수 있는 쉬운 산이기도 하다. 덕분에 간편한 복장으로 가볍게 정상인 향적봉을 찾는 탐방객들이 적지 않으며 등산화가 아닌 단화나 운동화를 신고 정상에 오르는 탐방객들도 낯설지 않다.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 쉽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향적봉은 은은한 향기가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계절마다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향적봉으로 오르는 탐방로 초입에 덕유산을 대표하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주목과 우리나라 특산 식물인 구상나무의 고목들이 탐방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좁은 탐방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탐방로 양 옆으로 조릿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며 신갈나무, 고로쇠나무, 함박꽃나무, 사스레나무, 고로쇠나무, 호랑버들 등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향적봉 앞에 인증 샷을 남기려는 산객들이 줄을 서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높은 덕유산 향적봉의 체면을 사정없이 깎아내리는 곤돌라를 운영하는 무주리조트는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리는 지리적 기후특성으로 인해 1990년 덕유산 자락에 건설되었다. 700만㎡에 이르는 규모를 자랑하는 무주리조트는 대표적인 산악형 휴양지이다.

  중부 이남 지역에서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는 리조트 중 최대 규모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시설은 6.1㎞ 길이 스키장으로 국내에서 가장 긴 실크로드 슬로프가 있으며, 레이더스 슬로프는 국내에서 가장 심한 경사(37°)로 유명하다.

무주리조트는 중부 이남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이밖에 테니스, 등산,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으며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 즐길 거리, 아웃렛 의류 매장 등이 들어서 있다. 1998년 아널드 파머가 설계한 18홀 규모 무주 덕유산 CC, 눈썰매장도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국립공원임에도 매년 170만 명 안팎의 탐방객들이 꾸준히 덕유산국립공원을 찾는 것은 대전통영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성이 제고된 것과 노약자나 장애인들도 편하게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에 올라갈 수 있는 곤돌라 덕분일 것이다.

곤돌라를 타기 위해 등산객들이 줄을 서 있다.


덕유산 속살을 걷는 종주산행

  백두대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덕유산은 지리산, 설악산과 함께 3대 종주산행 명소로도 이름난 곳이다. 두 개의 종주코스가 있는데 육십령에서 시작해 무주구천동으로 하산하는 육구종주와 영각사에서 출발해 역시 무주구천동으로 하산하는 영구종주가 그것이다.

  육구종주의 총거리는 32km쯤 되는데 대피소가 많은 지리산이나 설악산과는 달리 덕유산에는 삿갓재 대피소와 멀리 떨어져 있는 향적봉 대피소 밖에는 잠잘 수 있는 곳이 없어 난이도는 지리산 1박 2일 종주와 비슷한 수준이다.

  더구나 지리산 종주의 경우 해발 1000m인 성삼재에서 시작할 수 있는 반면에 덕유산 육구종주는 보다 낮은 육십령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난도가 높은 편이다. 물론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설천봉에서 종주를 시작하면 난이도가 내려가지만, 그것조차 만만한 것은 아니다.

  영구종주는 영각사에서 출발해서 구천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27km 길이이며 역시 숙박은 삿갓재에서 한다. 육구종주에 비해 다소 수월한 편이지만 역시 만만치 않다.

남덕유산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 아래 마을이 운무에 가려져 있다.


  육구종주의 시점인 육십령은 옛날 도적이 많아 육십 명이 모여야 고개를 넘을 수 있어 그렇게 불렸다 한다. 본래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를 이어주는 큰 고갯길이었으나 육십령터널이 개통된 이후 한적한 길이 되었다. 2018년 9월에는 한적한 육십령 고개 위에 일제강점기인 1925년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끊긴 백두대간을 잇기 위해 육십령 친환경터널을 조성함에 따라 백두대간 육십령 생태축이 연결되기도 했다.

  육십령에서 시작된 종주코스는 곧바로 할미봉으로 이어지는데 해발 1,026m인 할미봉에 서면 남으로는 깃대봉을 지나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아스라이 조망되고 서편으로는 장계의 너른 들녘과 장수 경주마목장 그리고 산들의 첩첩하게 다가선다. 동으로는 월봉산, 금원산을 지나 기백산과 거창의 산하가 자리를 잡고 있고, 북으로는 장수 덕유산(서봉)과 남덕유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단풍철이면 남덕유산 정상이 등산객들로 북적거린다.


자칫 방심하면 위험한 겨울등산

  할미봉에는 할미꽃에 대한 슬픈 전설이 서려있다. 경상도 어느 산골짜기에 할머니가 두 손녀를 데리고 살았다. 맏손녀는 얼굴은 비록 못생겼지만 마음씨가 아주 고았고, 작은손녀는 얼굴은 예뻤지만 마음씨가 고약했다. 어느덧 손녀들이 자라 모두 혼처가 정해졌다. 얼굴이 예쁜 작은손녀는 이웃 마을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고, 마음씨 고운 큰손녀는 멀리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맏손녀는 할머니를 두고 멀리 시집가는 것이 마음 아파 밤새 울었다. 그렇다고 넉넉하지 않은 시댁 살림에 할머니를 모시고 갈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집가는 날 맏손녀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만 뒤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 손녀들이 떠난 외딴집은 쓸쓸했다. 이에 병든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재 넘어 작은손녀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작은손녀는 창피하게 시댁까지 찾아왔다고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래도 보고 싶었던 작은손녀 얼굴을 보았으니 다행이라 여겼다.

  할머니는 다시 맏손녀가 사는 마을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러나 맏손녀가 사는 마을은 너무 멀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아득한 동네였다. 할머니는 끝내 맏손녀 집까지 가지 못하고 고갯마루 이름 모를 무덤 곁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이듬해 봄, 할머니가 죽은 자리에서 할머니를 꼭 닮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사람들은 그 꽃을 ‘할미꽃’이라 불렀다.

중봉에서 무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정설을 뒤로하고 할미봉에서 평탄한 능선 길을 걷다가 영각사 갈림길에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서봉에 닿는데, 이곳에서의 조망도 경쾌하기 이를 데 없다. 이후 남덕유산, 삿갓봉, 무룡산, 백암봉, 중봉으로 이어지는 덕유산 주능선을 따라 걷다가 향적봉에 이르러 우측 무주구천동 계곡으로 하산하면 마침내 육구종주가 마무리된다. 능선에 솟구친 많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려야 하지만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고 길도 부드러워 걷는데 무리는 없다.

향적봉 가는 길과 무주구천동으로 하산하는 길이 갈라지는 백암봉에서.


  하지만 부드럽다고 아주 만만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특히 눈이 많은 산인만큼 겨울철 등반은 각별히 일기예보를 주시하고 진행해야 한다. 부드러운 산이라고 함부로 도전했다가는 큰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실제로 2015년 12월 16일, 부산의 어느 산악회원 27명이 덕유산 등산에 나섰다가 조난당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갑자기 눈발이 굵어져 허리까지 눈이 차오르자 방향과 길을 분별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했다가 탈진한 일행 중 1명이 끝내 병원에서 사망하는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겨울 산에서는 누구도 방심해선 안 된다. 특히 부드러우면서도 위험한 산이 겨울 덕유산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눈이 쌓인 겨울 산에서는 특히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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