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 설정해둔 평일 알람은 총 4개다. 6시 25분, 6시 30분, 7시, 7시 30분. 나는 도대체 언제 일어나고 싶은 걸까? 요즘은 6시 30분에 일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6시 25분 알람은 예보 역할을 한다. 곧 6시 30분이니까 그 알람이 울리기 전에 지금 일어날 것인지 아니면 알람을 기다렸다가 끄면서 일어날 것인지 판단하라는 신호다. 내 알람은 4개지만 옆 자리 A의 알람이 하나 더 있다. 우리의 아침을 알리려고 대기하고 있는 소리가 총 5개라는 이야기다. 맞춰둔 시간은 6시 20분이지만 A의 목표 기상시간은 나와 같은 6시 30분이다. 알람 소리에 깨어 알람은 껐지만 더 자고 싶은 욕구와 괜히 싸운다. 마지못해 침대 밖으로 몸을 일으키면 어느새 10분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다시 내 알람 설정 이야기를 하자면. 7시와 7시 30분 알람은 몇 주전까지만 해도 '진짜 웬만하면 지금은 일어나자!'라고 외치는 용도였는데 최근 그 쓰임이 바뀌었다. 아침 루틴을 만들고 있다. 7시 전에는 작업실에 들어와서 글을 쓰기 시작하겠다는 다짐. 물 한 잔을 마시고 취침 상태인 노트북을 깨워서 두서없이 몇 줄 쓰다 보면 7시 알람이 울린다. 그 알람을 끄면서 다시 한번 잠에서 깬다. 오늘 아침도 다짐을 잘 지킨 내가 기특하다. 오랜만에 다시 줄리아 카메론이 책 <아티스트 웨이>에서 강조하는 창조성을 위한 도구 '모닝 페이지'를 하는 중이다. 아침을 드로잉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당분간은 글쓰기로 시작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드로잉은 습관이 되었는데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잘 쓰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시작조차 못한다.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무조건 쓰라기에 일단 쓴다. 지금은 습관이 된 그림도 그랬다. '잘'이란 부사는 잊고 '그리다' 자체를 즐기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매일 쓴다. 그냥 쓴다. 글이라지만 비몽사몽 상태로 쓰는 마구잡이 끄적임이다. 모닝 페이지 방법이나 효용성이 궁금하다면 <아티스트 웨이>를 한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보통 30분 정도 쓰는데 시작한 시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게 7시 30분이 되기 전에 끝난다. 아직 7시 30분 알람은 울리지도 않았다. 하루의 첫 다짐을 무사히 지켰다. 의기양양하게 핸드폰을 들고 알람 목록에서 7시 30분 알람을 찾아 해제한다. 7시 30분 알람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 설정한 게 아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내가 앞서 해제하는 동작을 위한 사 전 준비다. 이 단순한 행동으로 나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아침에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정해진 일정보다 조금 여유롭게 시작했다는 암시를 받는다. 내 두뇌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어디서 읽은 이야기도 아니다. 과학적으로 뒷받침할 이론이 내게 있을 리 없다. 그냥 믿는 거지만 내겐 나름 효과가 있다. 매일 주어지는 하루, 그 시작이 좋으니 딱히 손해 보는 믿음은 아니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호텔보다는 유스호스텔 도미토리에서 숙박하며 여행하던 시절이 그랬다. 여행을 하며 고단해진 몸이지만 이상하게 알람 시간보다 5분 전이나 10분 전쯤 잠에서 깬다. 그러면 시간을 확인하고 알람이 울리기 전에 바로 알람을 해제한다. 같은 방을 쓰는 낯선 여행자의 단잠을 내가 깨우고 싶지는 않다. 나만을 위한 알람은 누군가에게는 소음이다. 간밤에 맞춰둔 알람 시계는 먼저 일어난 사람에게는 더 이상 소용이 없다. 이젠 나를 깨워줄 알람도 없으니 다시 잠들지 않고 바로 하루 일정을 시작한다. 일상에서 벗어난 낯선 곳에서의 시간은 일분일초가 유난히 소중하다. 충분한 잠을 자고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설렘으로 다시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한 여행자는 괜스레 기분이 좋다. 평소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도 여행에서의 아침은 조금 다르다. 빡빡한 일정이 앞둔 아침이라면 약간의 여유가 생기고, 느린 여행을 즐기는 중이라면 그 시간의 속도가 살짝 더 느려진다. 여행이 체질인가? 어쩐지 스스로 타고난 여행자 같다.
보통의 일상에서도 이따금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는 날이 있다. 2시간 이상 일찍 깨버리면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어서 오히려 괴롭고 피곤하다. 내 기준에 20~30분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바로 오늘이 그렇다. 눈을 뜨니 6시 11분. 머릿속이 맑고 몸도 가뿐하다. 슬그머니 두 팔을 이불 밖에서 빼서 위로 쭉 뻗는다. 그리고 발가락 끝 부분까지 힘을 실어 보낸다. 잘 잤구나. 더 이상 누워있을 필요 없으니 쉬 일어난다. 옆 자리 A가 깰까 봐 최대한 조심스럽게 침실을 빠져나왔다. 작업실에는 아침에 쌀쌀하면 덧입을 후드 점퍼와 양말도 미리 챙겨뒀다. 모닝 페이지를 시작하기 전에 6시 25분과 6시 30분 알람을 미리 해제했다. 특별한 계획 없는 평범한 수요일이 될 테지만 시작이 좋다. 하루가 기대된다.
더드로잉핸드 The Drawing Hand
그림 그리는 삶.
현재 스페인에서 새로운 일상을 만드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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