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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Drawing Hand May 13. 2021

012 주말은 수요일 밤 9시부터

Weekend! We can!

수요일은 한국어 수업이 2개다. 오후 5시부터 시작하는 2시간짜리 오프라인 수업 하나가 있고 30분 간격을 두고 1시간 반 온라인 수업 하나가 있다. 일주일 중에서 가장 바쁜 날이다. 강의 시간은 합쳐서 3시간 30분밖에 되지 않지만 수업 준비와 학원을 오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5시간은 쓰는 셈이다. 다행히 남편이 운전해서 학원까지 데려다주고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기다린다. 차로는 5분 거리인데 버스로는 23분, 도보로는 30분 걸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학원을 오갈 때 쓸 체력을 아낄 수 있다. 코까지 단단히 올려서 착용한 필터 마스크는 바이러스에서 우리를 보호해주겠지만, 그렇게 2시간 수업을 하다 보면 숨이 막힌다. 한국어 교재가 있지만 교재에 쓰여 있지 않은 것도 설명해야 한다. 책만 보고 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굳이 선생님은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난 스페인 학생들에게 멀고 먼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말하는지 문법적, 문화적 이유를 나름 쉽게 설명하려 애쓴다. 쉽게 말하려니 더 어렵다. 평생 고민 없이 써왔던 모국어. 어떤 표현을 왜 이렇게 쓰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다. 예습 복습을 가장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 선생님이다. 


첫 수업을 하고 있는데 왓츠앱 메신저 알림이 계속 들어온다. 수업 중에는 최대한 핸드폰을 보지 않으려고 하지만 힐끗 보니 이따가 7시 반에 온라인으로 만날 학생들의 메시지다. 대학생인 2명의 학생이 학기 마무리하는 시험과 과제로 바빠서 오늘 수업 참여가 힘들다며 갑자기 말해 미안하지만 오늘 수업을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되겠냐고 묻는다. 학생들이 연습문제를 푸는 동안 재빨리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한 학생만 동의한다면 나는 괜찮다고. 지금은 수업 중이니 보강 스케줄은 이따가 이야기하자고 했다. 몇 분 뒤 다른 한 명도 좋다며 메시지를 보냈다. 순식간에 휴강 결정이다. 나는 본 수업에 다시 집중했다. '-는/ㄴ 데다가' 문법을 배우는데 학생들이 의미를 헷갈려하는 눈치다. 재빨리 학생 R이 좋아하는 아이돌 방찬을 주어로 한 문장을 만들었다. <방찬 씨는 얼굴이 잘 생긴 데다가 노래도 잘해요.> R의 눈이 웃는다. 마스크에 가려진 입도 웃고 있을 것이다. 이 문법을 써서 각자 문장을 만들어 오는 숙제를 주고 수업을 마쳤다. 이후 수업은 휴강이니까 마음이 여유롭다. 학원 앞 횡단보도 근처에서 깜빡이를 켜고 나를 기다리던 남편의 차에 재빨리 올라타며 휴강 소식을 전했다. 


"정말? 이제 주말이네!" 

주말의 시작. 각자 고정된 스케줄이 끝나면 바로 주말 선언이다. 평소 나의 주말은 수요일 밤 9시부터, 남편은 금요일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는 오후 3시 30분부터 주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뒷 반 수업도 휴강이니 바로 지금, 수요일 저녁 7시부터 주말이 시작되었다. 득점한 축구 선수가 골 세리머니를 하듯이 우리에도 주말을 시작하는 순간에 하는 '주말 세리머니'가 있다. 세리머니를 볼 관중은 없는 둘 만의 세리머니. 양팔을 살짝 들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소심한 만세 동작을 하면서 남편과 함께 장난스레 Weekend 삼창을 한다.


"WEEKEND!"

"WEEKEND!"

"WEEKEND!"


주말은 단순한 휴식 이상을 의미한다. 평일에 고정된 일정에서 벗어나면 시간의 제약에서 자유롭다. 단지 부족한 잠을 채우는 시간으로만 쓰기는 조금 아쉽다. 평일엔 시간을 쪼개가며 살지만 주말에는 시간 눈치를 안 봐도 괜찮다. 평일에는 좀처럼 하기 힘든 일에 도전한다. 예를 들어 2시간이나 넘게 끓여야 하는 소고기 육수 내기 같은 것 말이다. 점심 먹고 느리게 즐기는 산책, 여전히 골치 아픈 스페인어 공부, 러닝 타임 2시간이 넘는 영화, 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다양한 재료를 책상 위에 잔뜩 펼쳐놓고 그리는 그림, 한국에 있는 그리운 사람들과 영상 대화. 그 무엇이든 원한다면 하루 종일 집중해서 할 수 있다. 마감이 있는 외주 작업을 해야 하는 주말이라도 괜찮다. 변함없이 주말은 내가 원하고 좋아해서 선택한 일로 가득 채운다. 당연히 세리머니가 빠질 수 없다. 소심한 만세 동작과 함께 외치자. 


"WEEKEND!"

"WEEKEND!"

"WE CAN!"


어쩐지 'Weekend'가  'We can!'처럼 들리지 않는가?

Spring ride by The Drawing Hand, 2013

더드로잉핸드 The Drawing Hand

그림 그리는 삶. 

현재 스페인에서 새로운 일상을 만드는 중. 

인스타그램 : http://instagram.com/thedrawinghand.viva

그라폴리오 : https://grafolio.naver.com/jieunkim

유튜브 : http://youtube.com/thedrawing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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