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지 않아도 배는 고프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 돈이 없어 글을 먼저 썼다. '글을 쓰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된다’라는 말을 믿었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글을 쓰려면 쌀이 필요하다. 글을 쓰려면 뭐든 처먹어야 한다. 나는 연비가 좋지 않은 큰 자동차와 같다. 조금만 움직여도 많이 처먹는다. 연필을 쥐고 손목만 까딱거려도 많은 음식이 필요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배는 고프다.
엄마는 '글을 쓰면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데 글을 꽤 오랫동안 썼다. 엄마의 말대로 돈도 나오지 않았고 쌀도 나오지 않았다. 방구석에서 물, 휴지, 샴푸, 밥 등을 축냈다. 엄마가 내 양육권을 포기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계속 썼다. 멍청한 일이지만 별 수 없었다. 그냥 하고 싶었다. 안 그러면 뒤질 것 같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글을 쓰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먹고사는 일에 시간을 쓰는 일’이 ‘먹지 않고 죽는 일’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돈벌이를 하다 보면 글 벌이는 하지 못하게 된다. 종이는 내 통장처럼 텅 비게 된다. 육체노동으로 하루를 다 쓰고 난 후 나오는 것은 한 문장이 아니라 깊은 한숨이다.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글을 쓸 수 있는 부류가 아니다. 이상하게도 놈팡이처럼 시간을 허비해야 초성 하나가 겨우 나온다.
나에게는 뭔가 먹고살 수 있는 실체가 필요했다. 먹고살려면 음식이 필요하다. 음식은 조리가 필요하다. 칡뿌리, 생 당근, 날달걀 같은 걸 먹으면서 연명할 수도 있겠지만, 내 주제에 맛있는 걸 처먹고 싶었다. 요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요리를 하려면 식재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빈털터리가 식재료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요리를 하기도 전에 식재료의 가격을 보면, 식욕과 의욕이 죽었고, 나도 그냥 뒤지고 싶었다.
돈 없이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를 좋아한다. 그의 민머리에 두세 번 뽀뽀를 해줄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영화는 늘 빈곤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작은 예산, 적은 스태프, 빠른 촬영, 자연광. 대신 전권은 감독에게 있었다. 크게 하지 않고, 작게. 만약 내가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그 방식으로 하고 싶다. 결핍을 숨기지 않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활용하는 태도. 나는 그걸 동경했다. 그의 방식이라면 나도 요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대갈통 속에 화살표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탈리아였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가 야구를 보다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그냥 어느 순간, 아무 맥락 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를 두더지처럼 파고들어야겠다.” 영화를 만들 수 없어 글을 먼저 썼던 것처럼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영화를 만들 수 없어 글을 썼지만 역설적으로 글쓰기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의 구체적인 이름이다. 음식도, 요리도, 지역도, 문화도, 사람도 잘 모른다. 특별한 이유 없이 이탈리아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를 하려면 최소한의 재료가 필요한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최소한의 단순한 재료로 맛을 내고, 아무리 가난해도 맛을 추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나와 딱 잘 맞아떨어졌다.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하다 보면 의미가 생길 때가 있다.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학자도 그 분야의 작은 부분밖에 다루지 못한다. 이탈리아의 스무 개의 주가 각기 다른 땅과 기후, 서로 다른 기억과 역사를 품고 있고, 같은 파스타조차 지역이 바뀌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 앞에서 대자연을 보는 것 같은 아득함을 느낀다. 방구석이라는 공간적 제약 속에서 이탈리아를 완전히 이해하겠다는 태도는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탐닉하는 것의 목적은 정복이 아니라 지속이다. 지속하기 위해서는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
때때로 인생을 다 산 것 같은 사람들을 마주한다.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알고 있다는 태도를 취한다. 음식을 먹어도 이미 다 먹어본 맛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 사람을 볼 때면 콧쿠멍에 이탈리안 페페론치노를 가득 넣어 새로움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거의 대부분의 음식은 내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 음식이 왜 그런 맛을 선택했는지 이해가 필요하다. 어디서든 내가 가장 멍청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가정하는 게 좋다.
겸손하게 낮은 자세로 거의 방바닥에 엎드려 방구석에서 이탈리아를 탐닉할 것이다. 마치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이탈리아 기행> 썼던 것처럼, 나는 ‘방구석 이탈리아 기행’을 시작할 것이다. 그 여정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책 한 권을 읽고, 파스타 한 접시를 만들어 보는 일에서 싹튼다. 무언가를 계속하다 보면 조금은 알게 될지도 모른다. 또 조금은 잘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게 별 의미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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