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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Nov 15. 2016

모두의 라이브

우린 모두 오늘의 라이브가 될 거야

11월 12일, 광화문 일대에 모인 인파가 100만 명을 넘었다. 에디터M과 나는 가지 못했다. 어렵게 조율한 촬영 스케줄과 겹쳐 손톱을 물어뜯다가 포기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비겁한 년이라고 말했다. 촬영 스크립트를 정리하기 위해 카페에 들어갔는데 자꾸만 마음이 휘청거렸다. 애꿎은 페이스북 화면만 들여다봤다. 화면 속엔 광화문이 있었다. 수많은 라이브 방송이 피드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언론에서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도 있었지만, 평범한 집회 참여자들의 방송도 많았다. 멀리서, 가까이서, 더 가까이서. 빌딩 꼭대기에서 바라본 행렬의 모습은 물론, 교복 입은 소녀가 쥔 촛불 하나까지 볼 수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쉽게 떠들어댔다. 지금은 라이브 방송의 시대라고. 입으론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론 찰나의 트렌드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라이브의 가치는 내 생각보다 대단했다. 노트북 화면 너머 믿을 수 없이 이어지는 촛불 행렬을 보며 마음먹었다. 지금 이 순간을 리뷰해야겠다고.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이 방송 장비를 대신하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가 유통을 도맡는다. 잘 차려진 밥상에 밥숟갈만 얹으면 되는 게 이 시대의 라이브다. 심지어 쉽다. 라이브 버튼 하나만 터치하면 끝이다. 콘텐츠의 내용도 제각각이다. 유명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생중계되기도 하고, 여의도 불꽃 축제의 화려한 순간을 나누기도 한다. 얼마 전엔 미국 대선 개표 방송이 페이스북을 통해 중계되기도 했다.


훨씬 더 사소한 일도 방송이 된다. 새로 나온 라면을 맛보는 모습이나, 소주잔 부딪히는 술자리가 라이브의 소재가 될 때도 있다. 며칠 전엔 지인 A씨가 회식에서 고기 굽는 모습을 라이브 방송으로 보여주더라. “상추에 싸서 먹어봐요”라고 장난스런 댓글을 달았다. 화면에서 즉각 응답이 온다. A씨가 영상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크게 싼 쌈을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우리는 각자 다른 장소에서 낄낄 웃었다.


디 에디트도 10월 마지막 주에 첫 페이스북 라이브를 경험했다. 이태원 할로윈 분위기를 나누기 위해 아이폰 카메라로 거리 곳곳을 비추며 쏘다니고 다녔다. 월리 코스튬의 처자 둘이 스마트폰을 들고 방방 뛰는 우스운 꼴이었다. 방송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실시간 댓글이 달릴 때마다 카메라를 향해 소리 높여 대답했다. ‘나’만 여기에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도 여기에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묘한 소통방식이었다.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전달하는 기사나 동영상과는 많이 달랐다.


뻔한 얘기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라이브 방송 플랫폼의 핵심은 ‘소통’이다. 여기엔 주인공이 없다. 사람들의 반응과 질문, 대답이 콘텐츠 내용으로 이어진다. 댓글로 전개되는 갑론을박 역시 콘텐츠의 일부가 된다. 완벽한 상호작용이다. 모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소란 얘기다. 오랫동안 TV를 통해 접하던 방송의 일방적 전달 방식과는 정반대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머리가 굳은 나는 ‘방송’이라는 단어에 갇혀있었다. 그럴싸한 화면과 장비, 진행자와 기획이 있어야만 방송이 이뤄질 것이라고 착각해왔다. 오로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몰랐다. 라이브 방송이 대화의 새로운 방식이라는 걸. 굳이 폼 잡고 만들 필요도 없고, 일생일대의 무대처럼 거창하게 여길 필요도 없었다. 그냥 말하고 싶은 걸 꺼내놓는 방법 중 하나였다. 쉽고 가치있는 툴이다. 진작에 라이브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이 대단하다.


중학교 2학년 때, 첫 휴대폰이 생겼다. 친구들과 처음으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당시 문자를 보낸다는 행위가 주는 중독성은 어마어마했다. 지금 생각하면 소름 끼치게 촌스러운 줄임말을 썼던 기억이 난다. 40자 제한 안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특수 문자를 곱게 이어붙여 하트 모양을 만들기도 했다. 휴대폰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런 식으로도 대화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지금 라이브를 접한 우리의 태도는 그때와 닮았다(같지는 않다). 영상으로도 이렇게 소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손톱만 한 스마트폰 카메라를 앞세워 행군하고 있다. 이제 ‘모두의 라이브’는 어떤 이야기를 써갈까.


끝끝내 광화문에 가지 못한 토요일 밤. 에디터M과 나는 수천 대의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지는 라이브 방송을 지켜봤다. 우리는 처음으로 완벽하게 보는 사람의 입장이 됐다. 집회 라이브 영상을 찾아 소셜 미디어 피드를 유영했다. 해외에서 중계 중인 영상도 있었고, 친구의 영상도 있었다. 스마트폰 마이크를 통해 전해지는 목소리는 알아듣기 어려웠다. 진짜 방송으로 치자면 빵점짜리였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니 알 것 같았다. 그날 서울 도심에서 퍼져나간 라이브 영상은 그 자체로 목소리였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다는 문자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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