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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Dec 28. 2016

흑백사진 좋아해요?

나는 좋아하는데

흑백사진을 제대로 찍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이미 찍어둔 사진에 흑백 필터를 얹어서 ‘느낌적인 느낌’을 꾸며본 게 전부다. 화웨이 P9 플러스로 흑백사진을 몇 장 담아봤다. 솔직히 스마트폰 카메라의 자그마한 센서로 담아내는 흑백사진 따위 별 기대 없었다. 라이카와 협업했다는 이야기도 귀 담아듣지 않았다. 조선후기에 횡행했다던 족보매매처럼 귀족적 브랜드의 명성을 돈 주고 사온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말이지. 진심으로 놀랐다. 아마 올해 사용해본 스마트 기기 중 가장 ‘기대를 벗어난’ 제품이 아닌가 싶다.


화웨이 P9은 라이카와 함께 만든 듀얼 렌즈 카메라를 품었다. 1200만 화소 RGB 센서의 컬러 렌즈 하나와 1200만 화소 모노크롬 렌즈다. 두 렌즈 중 하나는 풍경을 흑백으로 담는다는 얘기다. 사진에 대해 무지한 나는 이 과정이 선뜻 이해가지 않는다. 모노크롬 센서는 사진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역할이다. 음영으로 묘사된 치밀한 디테일이 사진에 깊이감을 주는 것이다.


막상 촬영해보면 내가 상상하던 흑백사진과는 조금 다르다. 흑과 백이 선명하게 나뉜 느낌이 아니라, 은은한 그레이를 겹겹이 쌓아올려 만든 것 같은 사진이다. 덕분에 어두운 부분의 디테일이 묻혀 사라지지 않는다. 암부의 디테일이 놀라울 정도다. 원본 파일을 포토샵에 넣고 레벨값을 조정해보면 보이지 않던 디테일까지 살아난다. 그만큼 많은 정보를 손실하지 않고 품고 있다는 얘기다.


흑과 백. 고작 두가지 컬러로 이렇게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게 진짜 흑백사진이구나.


중국에서 사진을 몇 장 촬영해 보았는데, 애석하게도 날이 흐렸다. 자꾸 비가 내리고 하늘은 우울한 잿빛이었다. 이럴 때 흑백사진은 빛을 발한다. 새파란 하늘이 아니어도 차분하고 담담하게. 어쩐지 대단한 사연이라도 품은 것처럼.


[Photo taken with the Leica M-Monochrom]
[Photo taken with the P9 in black and white]

흑백 카메라인 라이카M 모노크롬으로 찍은 사진과 P9 모노크롬 모드로 찍은 사진이다. 솔직히 라이카로 촬영한 사진이 훨씬 더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화웨이로 찍은 사진에서도 강한 라이카 냄새가 난다. 부작용이라면 라이카M도 써보고 싶다는 것 정도.


빛의 궤적을 담을 수 있는 라이트 페인팅 모드나 라이카 특유의 색감을 조금 더 과장되게 표현한 컬러 모드 등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붉은 색감이 강조되고 컬러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현실 속의 풍경이 한결 더 선명하고 드라마틱하게 담긴다. 찐-한 걸 좋아하는 내 취향이다.

  

내가 찍은 사진만 보면 시시할 것 같아, 화웨이 P9으로 찍었다는 다른 근사한 사진들도 들고 왔다. 국내에서의 평가나 판매량이 어떻든 간에, 나무랄데 없는 스마트폰 카메라다.


아, 그런데 나는 자꾸 라이카가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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