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에디트 Jan 20. 2017

나랑 세미금연 할래요?

내가 꽤 근사한 전자담배를 샀는데

어쩌면 이건 내 마지막 연초 기사가 될 수도.



단 한 번도 금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좋은 걸 왜? 내 새해 소망 리스트에는 오직 다이어트만이 변치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그렇다고 이걸 잘 했다는 건 아니지만).


담배와 나의 관계는 나쁜 남자와의 연애 같았다. 이 관계가 나를 망치고 있다는 걸 알지만 끊어낼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말리면 말릴수록 우리의 사랑은 특별하게 느껴졌고, 더 더 깊게 탐닉했다. 쓰읍 하!


하지만 환경이 바뀌면 사랑도 변하는 법. 우리의 사랑엔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술집, 카페 야외 테라스, 클럽까지. 지붕이 있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금지된 관계였다. 지붕이 없다고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 스모킹’이란 ‘빨간 글씨’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도시의 쥐처럼 습하고, 후미진 골목만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었다.


처음엔 견딜만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담배 한 대 피우자고 추운 칼바람을 맞으며 더러운 음식물 쓰레기 옆에 서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싫더라. 금지된 사랑따위 이제 지긋지긋하다.   지금 나에게 남은 건, 오른손 셋째 손가락 첫 마디에 낙인처럼 남아있는 누런 자국, 거칠어진 피부, 그리고 퀴퀴한 냄새뿐이다.


[사랑은 지르는 거야]

 결국 난 연초를 꺾었다. 그리고 전자담배를 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린 스모크를. 기사가 나가는 날을 기준으로 전자담배 세미금연 15일째. 이번 이별은 꽤 성공적인것 같다. 아직 술 마시고 그놈을 찾은 적은 없으니.



아, 서론이 너무 길었다. 나와 담배의 역사는 이 정도의 짧은 글로는 차마 다 풀수 없는 지긋지긋한 관계다. 자 보낼 건 보내야지. 이건 그린 스모크리뷰니까. 내 한풀이는 이쯤 하기로 하고 이제 진짜 본론으로 들어가자.


내가 그린 스모크를 산 이유는 단 하나. 말보로 레드를 연상시키는 클래식한 디자인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아날로그인 척 요망을 떠는 물건이 좋더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존재했던 물건이 디지털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런 눈속임이 매우 중요하다.


한때 ‘위대한 개츠비’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벌써 몇 년 째 그린 스모크 애연가로 유명하다. 그린 스모크를 입에 대고 빨면 초록색 불빛이 나오는데, 어느 영화제에서 레오가 그린 스모크를 빠는 걸 보는 순간 느겼다. 그래, 이건 나를 향한 그린라이트다. 지금이야, 금연 GO!

 

   

구성은 단출하다. 이게 딱 5만 9,000원. 솔직히 비싸다. 완전히 똑같은 구성은 아니지만, 미국 그린 스모크 웹사이트에서 카트리지와 배터리 USB 충전기를 포함한 기본키트를 9.99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고작 카트리지 하나 더 있을 뿐인데 가격인 5배가 넘게 차이가 난다니. 아무리 호구인 나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가격차다.


사실 이번에 블랙프라이데이에 직구를 시도했으나(그 과정이 궁금하다면 여기로), 나중에 알고 보니 그린 스모크가 미국 내에만 판매를 하는 것으로 법규가 바뀌었다고 하더라. ID를 보내래서 내 여권을 스캔해서 보냈더니 이건 안 된다며, 친절하게 환불 처리 해줬다. 결국 담뱃값은 각 나라별 세금 정책의 문제니까. 다시 한 번 이 나라가 원망스럽다.



길고 하얀 것이 배터리, 연초로 따지면 필터가 있는 누런 부분이 바로 카트리지다. 카트리지 안에는 액상 니코틴이 들어있어서 빨아들일 때 니코틴이 흡수되고, 기화된 수증기를 밖으로 내뿜는다. 버튼 하나 없는 매끈하다. 입에 가져다 대고 쭉 빨면 앞쪽에 그린라이트가 반짝인다.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다.


사용 방법은 너무 간단하다. 배터리와 카트리지에는 고무 패킹이 있는데 이걸 제거하고 두 개를 맞춰서 돌려주면 끝.


그린 스모크는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전자담배다. 만년필의 잉크 캡슐을 갈아 끼우듯 간단히 갈아치울 수 있다. 요즘 미국에서는 이렇게 담배처럼 생긴, 그리고 액상 리필의 번거로움이 없는 카트리지 교체형이 대세라더라.


아쉽게도 그린 스모크 오리지널 카트리지는 현재 한국 유통 본사에서 수입하지 않는다. 배터리만 팔고 카트리지는 안 판다니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뭐.


그래서 그린 스모크의 자회사인 빈토 베이프의 카트리지를 샀다. 실제로 빈토 베이프는 곧 배터리도 판매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유통업체에서 이걸 더 밀 모양이다. 아무리 충전용 배터리라고 해도 천년만년 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다음엔 빈토 베이프의 배터리를 사볼 예정이다. 이것도 꽤 예쁘거든.


2만 5,000원에 총 5가지 맛이 들어있어서 골라 피우는 재미가 있다. 클래식, 말보로 레드 맛이 나는 레드, 멘솔, 체리, 바닐라. 이 중에선 아직 체리만 맛을 봤는데 확실히 플레이버가 들어간 게 훨씬 더 부드럽다. 솔직히 담배에 멘솔이 아닌 다른 향을 더하면 쉽게 질리고, 좀 피우다 보면 역한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오히려 전자 담배는 이런 아기자기한 맛이 들어가야 더 좋더라. 연초를 태우는 일반 담배보다 타격감이 덜한 것도 있고, 담배만큼 향이 역하기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두 개를 모두 펴 본 결과 그린 스모크보다 빈토 베이프가 내 취향에 훨씬 더 맞았다. 그린 스모크의 클래식(니코틴 함량 2.4%)이 빈토(1.8%) 보다 니코틴 함량이 많아서 일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그냥 전자담배의 클래식한 맛을 모르는 것일수도 있다.

  

솔직히 그린 스모크는 타격감이 너무 셌다. 맨 처음 촬영을 마치고 호기롭게 그린 스모크를 크게 빨았을 때, 매운 짬뽕 먹다가 코에 고춧가루 들어간 사람처럼 기침을 해댔다. 에디터H가 나를 비웃었다. 아, 창피해. 내가 이래뵈도 흡연경력 몇 년인데. 근데 알고보니 전자담배 특히 그린 스모크의 흡연 방법은 따로 있더라.

    

 

[왜 눈썹은 꿈틀거리는걸까…]


평소 담배를 급하게 피는 편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담배를 안 피우다보니 자리를 오래 비우는 것도 눈치가 보여서 대충 빨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이건 담배처럼 짧게 빨아들이면 곤란하다. 연기도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기침만 나오고 입안이 알싸하게 매워진다. 입안으로 연기를 천천히 모은다고 생각하고 살살 달래면서 천천히 피워야 부드럽게 넘어가더라. 2번이나 3번 빨고 나서 잠깐 쉬어 주는 것도 좋다. 과도한 연타를 카트리지의 수명이 끝나기도 전에 텁텁한 맛을 낼 수 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가성비 좋은 제품은 아니다. 카트리지 1개의 흡입횟수는 300에서 350회 정도. 일반 연초 한 개비의 흡입횟수를 10번이라고 가정하면 카트리지 1개는 대략 1갑에서 2갑 정도 한다고 보면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카트리지의 가격이 5개에 2만 9,000원이니, 사실 일반 담배와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난 담배를 한 번도 보루로 구매해 본 적이 없는데, 이건 5개 세트밖에 판매하지 않으니 한 번에 거의 삼만원에 가까운 지출이 나가는 것도 문제. 하지만 담배처럼 골목마다 파는 건 아니니 미리 사두면 좋긴 하겠다.


보기엔 이래도 강하고 오래간다. 배터리 용량은 270mAH. 보통 배터리 한 번 충전으로 300회 정도 흡입 가능하다. 카트리지 한 개가 최대 350회 정도 흡입 가능하니 카트리지 한 번당 배터리를 한 번 충전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배터리가 방전되면 연기의 양도 많이 줄고 흡입하는 맛이 확연히 줄어든다. 그러니까 가능할 때마다 조금씩 충전하는 것이 좋다. 충전을 해야 할 시점은 피우다 보면 자연히 알 수 있다. 빨아도 연기가 나지 않고, 평소에 조신하게 밝히던 초록불이 방정맞게 깜박인다.


세미금연 15일째. 사실 평소에도 주말엔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고. 오직 일할 때(주로 기사 쓰기 싫을 때 리프레시용), 그리고 술 마실 때 몰아서 피우곤 해서인지 아직은 그리 힘들지 않다. 그렇다고 연초 대신 이 그린 스모크를 매일 입에 물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가끔 뿌옇게 번져가는 연기가 미친 듯이 그리운 날에 파우치에 있던 그린 스모크를 들고나갔다가 몇 대 빨고는 머쓱해져서 다시 들어오곤 하니까. 금연 심리 안전장치 같은, 그러니까 나쁜 남자와 헤어지고 리바운드 연애같이 만나버린 이놈을 완전히 떼어낼 수 있을지는 쉽게 장담할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는 세미금연, 성공적. 차차 지저분한 습관을 줄여가면서 2018년 연초(年初)엔 연초(煙草) 없는 내가 되어야지. 2017년 연초기사 끝!




기사 제보 및 광고 문의 / hello@the-edit.co.kr



작가의 이전글 똥은 네가 처음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