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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Feb 23. 2017

나는 단순하게 사기로 했다

사도사도 또 사고 싶은 기본템 

아직 날은 좀 춥지만, 알 수 있다. 봄이 오고 있다는걸. 다른 계절로의 전환을 가장 기민하게 포착하는 건 내 쇼핑 세포다. 온몸의 세포가 외친다. 옷을 살때야. 그래 사야한다, 목련처럼 청초한 봄옷을.



“촉감 좋고 탄탄한 기본 티가 필요해.”


나이가 들어서일까. 디테일이 폭발한 것 같은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매일매일 입어도 질리지 않는 기본템으로 취향이 기운다. 똑 떨어지는 라인의 셔츠. 입었을 때 살에 닿는 느낌이 훌륭하고 직물이 견고해서 많이 빨아도 쉽게 모양이 변형되지 않는 티셔츠 같은 건 아무리 많아도 자꾸만 사고 싶다.


[내 옷장인 줄. 아니 내꺼였으면.]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기본템을 찾았다.’ 아, 완벽하다. 너무 완벽해서 불가능한 유니콘 같아 보일 정도로. 가격이 싸면 질이 쓰레기고, 질이 좋다 싶으면 가격이 무섭다. 내가 그렇게 큰걸 원하는 건가? 내 이십 년 쇼핑경력으로 속단하자면 마음에 쏙 드는 기본템을 찾는 건 운명의 짝을 찾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더라. 그러니까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찾으면 그 옷에 구멍이 날 때까지 입고, 혹시 단종될까 깔별로 몇 개씩이나 쟁여둔다.


아마 나와 같은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 신카를 들고 여기저기 떠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거라 믿는다. 그래서 에버레인(everlane)을 소개한다. 이곳은 아무 때고 툭 걸쳐입기 좋은 기본템을 파는 곳이다. 번잡스러운 요소는 깔끔하게 배제하고, 실용적인 기본 라인에 집중했다.


여기 요즘 입으면 무심한 척 센스 있어 보일 수 있는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있다(난 이런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잘 어울리는 남자가 좋더라). 깔끔한 디자인의 이 쫀쫀하고 질 좋아 보이는 티셔츠의 가격은 45달러.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 에버레인은 옷과 신발 그리고 가방을 파는 곳이지만, 파는 방식은 꼭 농수산물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다.

 

이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베트남에서 만들어졌다. 상세 설명란에는 옷의 소재와 사이즈 뿐만 아니라 옷이 만들어지는 공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링크가 보인다. 궁금하다면 여기를. 연결된 링크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공장직원들의 일상도 확인할 수 있다. 옷이 만들어지는 공장의 위치는 물론 일하는 직원 수와 근속 기간, 근무 환경 등 복지 정보까지 모두 공개한다. 그러니까 가끔 농산물에 확인할 있는 생산자 표시처럼 말이다. ‘이 고추는 이혜민님이 생산했습니다.’ 이런 느낌이랄까.

  

좀 더 스크롤을 내려보자. 에버레인의 모든 제품엔 그 아이템의 원가(true cost)가 명시되어 있다. 투명한 가격 정책으로 거품을 없애고, 인터넷 판매를 통해 유통 마진을 최소화한다는 정책이다. 이 역시 농산물 직거래 방식과 비슷하다.

  

이 옷의 원가는 18달러, 소비자가격은 45달러다. 다른 곳에서는 90달러 정도에 판매될 거라는 도발적인 문구도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45달러를 아끼게 되는건가? 이런 계산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기분은 좋다.


물론 제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는 원가 외에도 훨씬 더 복잡한 계산이 들어간다. 원가가 1만 원인 제품을 50만 원에 판다고 그것을 사기라고 매도할 순 없다. 누군가는 입고 싶어서, 브랜드의 이미지를 기꺼이 소비하기 위해서 혹은 자기만족 등 우리가 돈을 쓰는 이유에도 제품의 가격을 책정하는 것만큼이나 복잡한 계산이 들어가니까. 그 돈을 지불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사고, 아니면 사지 않으면 그만이다. 선택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가방도 판다. 미친 미니멀리즘]

하지만 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옷이 만들어지는 뒷단의 이야기까지 모두 챙기는 그런 세심함을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사는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벌써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2010년에 시작한 에버레인은 벌써 기업가치가 2억 5,000만달러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우리나라에는 배송을 하지 않는다는 것. 원한다면 구매대행을 해야 한다.


한동안 SPA 브랜드의 옷만 산 적이 있다. 한철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도 좋지만, 지금은 조금 더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사고 싶다. 진짜 좋은 것의 가치는 약간의 숙성이 필요한 법이니까.



에버레인 The Cotton Crew
Point – 거두절미하고 추천하는 아이템, 일단 가볍게 티셔츠로 시작!
Price–  16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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