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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r 15. 2017

소주와 책, 미르와 고래

잠못드는 어느 밤, 고래를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술은 잘 못하지만, 혼술은 종종 합니다. 많이 마시는 건 아니에요. 슬프다거나, 기쁘다거나 이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죠. 그냥 그날 내키는 걸 손에 잡히는 대로 마시곤 합니다. 남들보다 적은 양을 몇 시간 동안 사탕 녹여 먹듯 핥아마시긴 하지만, 뭐 어때요. 나 혼자 마시는데. 에디터M이 남몰래 혼자 시작한 혼술 리뷰. 그럼 시작합니다!


지난밤엔 미르40을 마셨다. 미르는 증류식 소주다. 지난번 대장부를 시작으로(대장부 리뷰는 여기로) 증류식 소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운좋게 지인에게 술샘에서만든 미르를 선물 받았다. “이거 진짜 맛있어요.”라는 말은 덤.


쉽게 잠들지 못했던 지난 밤. 결국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아껴뒀던 미르를 깠다. 좋은 술이니 별다른 안주는 필요 없지만, 그래도 술만 마시기는 심심하니까 안주를 준비한다. 오늘의 안주는 천명관의 고래.


고래는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입담 걸출한 고모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같다. 난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웠던 소설들이 잘못된 방식의 교육 때문에 평가절하 되어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천명관의 고래는 친구들이 까무룩 졸고 있는 문학시간, 혼자 문학책에서 뚫어져라 읽던 그때 그 소설같은 느낌이다. 구수한 문체와 사람 사는 이야기가 속절없이 술술 흘러간다.


미르40는 정말 우아한 술이다. 입에 질척거리는 단맛도 없고, 입천장을 시작으로 코로 뿜어져 나오는 톡 쏘는 알코올 향은 명징하다. 도수가 40도나 되니 목넘김이 아주 부드럽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마시고 나면 입안이 단정해진다.


소설 한 문장, 미르 한 모금. 새벽을 찢는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마시고 읽는다. 금복과 춘희 두 모녀의 기구한 운명이 굽이굽이 넘실댄다. 취한다. 밤은 깊어 가는데 자꾸만 페이지는 넘어가고, 난 잔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취한다. 그날밤 내가 뭐에 취했더라?


홀짝홀짝. 꽤 많이 마셨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2잔 정도 마셨다(나도 가끔 내 소박한 주량에 놀란다). 이 속도면 여름이 올때까지 이 한병을 다 비우지 못 할 게 뻔하다. 좋은 술은 나누면 그 맛이 배가되는 법. 나머지는 환갑을 맞으신 에디터H의 아버지께 드렸다. 에디터H 아버님의 후기에 따르면, 아버지는 여느 소주처럼 첫 잔을 입에 털어넣으셨다가 이내 후회하셨다고 한다. 맞다. 한입에 털어넣기는 아까운 술이다. 이건 아주 천천히 향과 맛을 잘근잘근 씹어 즐겨야하는 술이다.


만약 지금 미르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면, 여기 환영할 만한 소식이 있다. 우리나라 전통주는 다른 주류와 달리 온라인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술샘몰’에 들러보자. 총알만 있다면, 내 집에서 편안하게 술을 받아볼 수 있다.

물 건너온 싱글몰트 위스키도 좋지만, 우리나라 술도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전통주는 맛과 향이 훌륭하고 우리 음식과 참 잘 어울리는데, 홍보가 부족해 다들 낯설어 한다. 그래서 내가 짬날 때마다 홍보대사가 되어보려 한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이 전통주 회사는 내 술상에 십원 한푼 보태지 않았으니 오해마시길.


술샘 미르40
Price – 2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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