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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n 01. 2017

여자 둘이 다녀온 북해도 숲 속 여행

현지인들만 아는 숨은 여행지를 찾아서

여행은 기다리는 재미가 반이라지. 이른 여름 휴가 일정을 잡아두고, 힘든 5월을 간신히 버텼다. 유난스럽게 바쁜 한 달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답해야 하는 메일이 쌓여있고, 마무리하지 못한 원고들이 내 이름을 불러댔다. 촬영은 또 어찌나 많은지 엄마 얼굴보다 카메라 렌즈를 자주 마주했다.


“정신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저 멀리 반짝이는 희망을 보며 버텼다. 한 달만 지나면, 보름만 지나면, 일주일만 지나면 휴가를 떠날 수 있다. 여행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궁핍한 일상 속에서도 낯선 여행지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풍요로워지니까.



여행은 즐거웠다. 평생 이렇게 평화로웠던 적이 있을까 싶을 만큼 조용하고 행복했다. 아직 행복의 여운이 남은 상태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행기라고 부르기엔 멋쩍다. 언제나 그렇듯 리뷰라고 보는게 맞겠다. 이번 리뷰의 대상은 내가 묵었던 아름다운 숙소. 사실 이번 여행은 숙소에서 벗어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여행의 전부라고 봐도 되겠다.


우리 어디로 떠날까?

15년 지기와의 첫 해외 여행이었다. 이 기념비적인 스타트를 “어디로 끊을까”에 대한 고심이 시작됐다. 직장인인 친구와 내가 함께 시간을 맞출 수 있는 기간은 길지 않았다. 무리해서 간신히 짬을 내도 3박 정도가 최대였다. 마음 같아서는 유럽행 티켓을 끊고 싶었지만 현실에 발 묶여 가까운 나라로 타협하기로 했다.


내 조건은 간단했다. 너무 더운 나라는 싫다. 홍콩과 도쿄를 권유해 보았지만 친구에게 거절당했다. 도시는 지긋지긋하다면서 한적한 곳에서 쉬고 싶다고 하더라.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하던 중에 퍼뜩 떠오르는 장소가 있었다. 북해도. 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곳.


북해도? 거기가 좋아?

친구는 심드렁해 보였다.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다는 표정. 하지만 내겐 비장의 무기가 있다. 사진을 한 장 보여주니, “대박”을 외친다. 그래, 여기라면 완벽하다.



3년 전이었나, 취재차 북해도 일주를 했던 적이 있다. 일주일동안 북해도 한 바퀴를 다 돌아야 하는 빡센(!) 일정이었지만,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지인 깨닫기엔 충분했다.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곳이 있는데, 나카사쓰나이(中札内村)라는 작은 동네에 있는 코티지였다. 겨우 하룻밤 묵었던 게 너무 아쉬워서 언젠가 다시 찾아오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숙소 이름을 기억해 두었던 게 다행이었다. ‘페리엔도르프’. 한국인들이 거의 가지 않는 곳이라 검색해도 별다른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과도 같았다. 당장 숙소 예약에 들어갔다. 2층짜리 코티지를 통채로 빌려쓰는 구조인데, 방이 무려 세 개나 있다. 친구와 둘이 묵기엔 쓸쓸할 만큼 넓지만 다행히도 가격은 나쁘지 않았다. 자주 쓰는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알아보니 숙박비가 1박에 14만 원이 조금 넘더라. 3박에 43만 원. 이 정도면 합리적이다. 3일 동안 항공권 최저가 검색에 열을 올렸기 때문에 너무 지쳐서 그랬을까. 나는 더 알아보지도 않고 불쑥 숙소를 예약해버렸다.


내 주변 사람들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나는 최저가 검색이나 가격비교에 집착하는 성격이다. 그래, 집요하다. 부정하지 않겠다. 예약 사이트 서너 곳을 오가며 일정 별로 가격을 비교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유난스러운 성미가 왜 이번에만 잠잠했을까? 숙소를 예약한 지 3일쯤 지났는데 자꾸만 마음이 찝찝해진다. 날짜는 제대로 입력했던가? 너무 빨리 결정했는데 뭔가 실수는 없었을까? 왜 자꾸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지? 그러다 문득 호텔 예약도 가격비교가 된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떠올랐다. 잠자고 일어났는데 그냥 갑자기 섬광처럼 ‘찌릿’하고. 호텔스컴바인~ 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불러대는 CM송이 생각난 것이다. 진짜로. 당장 앱을 다운로드하고 기존에 예약한 날짜로 검색을 돌렸다.


“아, 젠장!!”



육두문자가 튀어나온다. 내가 예약한 것과 같은 조건(무료 예약 취소)으로 최저가가 36만 원이다. 무려 7만 원 차이다. 가슴이 아프다. 가격 비교의 여왕인 내가 이런 헛점을 보이다니. 멘탈 붕괴가 오려는 찰나 기존에 예약한 상품이 무료취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장 취소 요청을 보냈다.


호텔스컴바인 앱에서 확인하니 내가 일일이 들어가서 확인한 예약 사이트들의 가격이 가격 순서대로 나열돼 있다. 모두 오답이었다. 최저가는 내가 평소에 쓰지 않는 예약 사이트에 있더라. 최저가 밑에 있는 파란색 ’바로 예약’ 버튼을 터치하니 이런 메시지가 뜬다.


“축하합니다! 70,120원이나 할인 받으셨네요!”


[아, 은혜로운 할인의 말씀…]

세상에 이렇게 기분 좋은 멘트가 다 있을까. 사실 유명하지 않은 숙소라서 가격비교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여러 사이트에서 검색 되어 놀랐다. 수지 맞은 기분이다. 돈 굳었다!


“야, 내가 7만 원 아꼈어.”


친구에게 생색을 내니 기왕 돈 아낀 김에 ‘조식’이 포함된 상품으로 결제하자는 답장이 돌아온다. 옳다. 좋은 선택이다. 처음에 결제했던 것과 비슷한 가격에 조식까지 포함된 호화로운(?) 일정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분명히 나처럼 호텔 가격비교에 대해 무지했던 독자분들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여행에서 비용절감에 큰 역할을 한 호텔스컴바인 앱에 대해 조금 더 소개하자면, 제휴된 호텔 예약 사이트가 굉장히 많은 편이다. 이곳 저곳에서 더블 체크할 필요 없이, 가장 많은 정보를 한 번에 비교할 수 있다. 다른 비교 사이트에 비해 리뷰가 많았다는 것도 장점. 한국 서비스는 아니지만, 한국 사용자 친화적인 요소가 돋보인다. 국내 호텔의 경우엔 네이버 지도를 사용해서 위치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할 수도 있다. 원하는 호텔이나 일정을 등록해두면 가격이 10% 이상 인하됐을 때 메일로 알림해주는 기능이 있더라. 등록해 놨다가, 알림이 울리면 다음 여행을 떠나야겠다. 꿀꿀꿀팁! 지금 휴가 계획 중인 분들은 당장 ‘여기’를 클릭해서 가격비교 먼저 해보시길. 여러분이 안심하고 있던 가격이 최저가가 아닐 수도 있다.


7만 원을 바가지(?) 쓸 뻔 했던 위기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가격에 예약을 마치고 여행이 시작됐다. 하지만 다음 난관이 남아있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멀었던 것. 대책없이 숙소만 보고 정하긴 했지만, 치토세 공항에서 페리엔도르프까지 무려 180km다. 우핸들 운전이 처음인 내 친구는 핸들을 잡은 손을 떨며 렌트카를 몰기 시작했다. 면허도 없는 나 때문에 180km 거리를 혼자 운전하게 한 사태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흔들리는 사진처럼 흔들리는 우리 마음]

비행기가 공항에 떨어진게 오후 5시니, 렌트카를 받고 서둘러 출발했지만 절반도 못가 이미 하늘이 깜깜해졌다. 시골길이라 그런지 가로등도 듬성듬성 심어져 있다. 설상가상으로 내비게이션에서 안내하는 길마다 진입금지 상태였다. 일본어라고는 “화장실이 어디에요”와 “한국인 입니다”밖에 모르는 나는 반쯤 울먹이기 시작했다. 진입금지 표지판 앞에 지키고 선 할아버지에게 “나카사쓰나이!”라고 지명을 외치니 “무리데쓰…”라며 절망적인 대답을 들려주신다. 그때부터 네이티브 할아버지의 폭풍같은 길 안내가 시작되지만 우리는 알아듣지 못한다. 우리가 북해도에 도착했던 날이 대대적인 ‘보수공사’의 날이었던 걸까. 우린 진입금지 표시를 네 번이나 만나고 끝없는 유턴을 경험했다. 2시간 반에 걸린다던 여정은 3시간 반으로 늘어났고 말이다.


호텔처럼 24시간 리셉션이 있는 숙소가 아니기 때문에 직원이 퇴근해 버릴까봐 초조함이 몰려왔다. 예약할 때 “9시쯤 도착할 것 같으니 늦은 체크인에 대해 양해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뒀지만, 우리가 실제로 도착한 시간은 훨씬 늦은 10시 반이었다. 리셉션에선 콧수염이 근사한 지배인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창한 영어로 우리를 맞이해 주시는데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휴가의 시작이었다.


[겨울엔 벽난로도 쓸 수 있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이 코티지는 여전히 근사했다. 페리엔도르프는 울창한 낙엽송 숲속에 있는 팬션 단지다. 정확한 넓이는 모르겠지만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걸어서 돌아다니긴 어려울 정도다. 울창한 숲속에 듬성 듬성 자리 잡은 집들은 무려 92채다. 겉에서 보면 독일풍의 목조주택이지만, 들어가보면 일본식 인테리어와 만나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오래된 가구와 양탄자가 조금은 촌스럽지만 아늑하고 따뜻해보인다. 1층은 거실인데, 벽난로와 어엿한 주방까지 갖추고 있다. 2층에 방이 세 개나 있어서 각자 널찍한 침대를 차지하고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현실인가요??]


아침에 일어나니 창문 밖 풍경이 너무 예쁘다. 눈곱도 떼지 않고 아이폰을 카메라부터 들이 밀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옆집의 모습이 액자 속 그림처럼 완벽하다. 창문을 여니 서늘하고 상쾌한 공기가 몰아닥친다. 아, 좋다.


[날달걀을 못 먹는다고 했더니 나중에 후라이로 바꿔주셨다, 친절해…]


우리가 절약한 돈으로 쟁취한(?) 조식을 즐길 시간이다. 8시 반이 되면 입구에 있는 식당 건물에 시간 맞춰 상이 차려진다. 서양식과 일본식 중 선택할 수 있는데 첫날은 일본식을 택했다. 정갈한 반찬이란 이런 걸 말하겠지. 진하고 고소한 두부와 연어 구이가 훌륭했다. 일본식 차림이라 수저가 없었는데, 젓가락으로 된장국을 휘휘 저으며 마셨다. 일본 드라마에서 본 일본 사람들의 식사를 흉내 내면서 말이다.


[카메라도 안 들고 갔다, 이것이 아이폰7 플러스의 인물 사진 모드!]

우리의 모토는 ‘아무것도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숙소 근처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풍요로웠다. 아쉽게도 일정 내내 날씨가 흐렸지만, 오히려 그게 더 어울렸다. 수풀 사이의 빨간 지붕들은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그림을 만들어 준다.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주기 때문에 길쭉하게 뻗은 숲길을 자전거로 다녀도 좋다. 페리엔도르프 안의 산책길을 걸으며 사진도 찍고, 음악도 듣고. 충분히 나태한 시간을 즐겼다.



숙소에서 차로 40분 거리에는 제법 큰 도시인 ‘오비히로’가 있다. 전날의 하드 트레이닝을 통해 우핸들에 익숙해진 친구의 운전 실력에 감탄하며 시내 나들이를 갔다. 점심은 튀김덮밥. 여기에 아스파라거스 튀김을 곁들여 시켰는데, 무슨 튀김을 이렇게 섹시하게 튀기는지. 바삭하고 뜨끈하며, 향긋했다. 지금도 글을 쓰며 입에 침이 고인다.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순간을 꼽자면 2층 테라스에서 빗소리를 듣던 시간이다. 셋째 날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약한 빗줄기가 하루종일 그치지도 않고 꾸준히 내리더라. 방 안에 있던 책상과 의자를 들고 나가서 상을 차렸다. 마트에서 사 온 커피도 내리고, 과자도 한 봉지 뜯고, 맥주도 마시고. 나는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친구는 자기 나름대로 할 일을 했다.



애플 뮤직에서 추천해주는 ‘혼자만의 시간에 듣는 팝’ 재생목록을 듣기 시작했다. 빗소리에 음악소리가 나지막하게 섞여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가끔 “정말 좋네”라는 얘기만 주고 받았고 별 대화도 하지 않았다. 맥주와 커피를 내키는대로 섞어 마시고, 책 한 권을 절반쯤 읽었다. 언제 다시 이런 시간이 올까. 계속 그 생각을 했다. 너무 좋아서 조바심이 날 정도였다.


아, 궁금해하실까 봐 보여드리자면 둘째 날 조식도 훌륭했다. 같은 주방장의 손끝에서 이렇게 정반대의 요리가 차려지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계란과 소세지, 베이컨 등이 호텔 조식풍으로 차려지는데 짜지 않고 맛있었다. 가장 맛있었던 건 사진 구석에 있는 빵과 버터. 홋카이도산 버터를 뜨끈한 빵에 발라 먹는데 얼마나 행복하던지. “어머, 어머, 이거 너무 맛있어” 결국 버터 쿠다사이를 외치고 한 개 더 발라먹었다는 뚱뚱한 소식을 전한다.


솔직히 내 스타일의 여행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복잡한 도시에서 화려한 풍경을 벗 삼아 요란스럽게 먹고 마시는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다. 가방 가득 쇼핑하는 것도 좋아하고 말이다. 여기저기 유명한 쇼핑몰과 아울렛을 전전하며 전리품을 모으는 맛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럴 때는 늘 스케줄이 빡빡했다. 먹어야 할 것도 많고, 볼 것도 많고, 사야할 것도 너무 많아서 말이다. 물론 여전히 그런 타이트한 여행에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숨 가쁘게 달려오다 지쳤을 때는 이렇게 다 내려놓고 게을러질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여행 내내 비가 오더니, 얄궂게도 체크아웃 하고 나오는 길에 처음으로 해가 났다. 비 온 뒤의 새파란 하늘이 손을 흔든다. 어디서도 만나기 힘든 멋진 숙소였다. 이렇게 리뷰를 빙자한 여행기는 끝. 시골 마을에 숨어 있는 으슥한 곳이지만, 혹시 휴식이 필요한 분들이 있다면 한 번 찾아보시기를.


나의 여행은 끝났지만, 여러분의 즐거움은 끝나지 않았다. 에디터H와 에디터M의 여행에 대한 치열한 설전을 구경할 차례다. 모든 게 다른 우리는 여행 스타일도 너무너무 다르다.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에서. 휴가 다녀오기 전에 촬영한 영상이라 설렘이 묻어난다. H&M! 


https://www.youtube.com/watch?v=u-dpiyhtH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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