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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r 09. 2018

잘 관리된 저택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클래식함, 그랜드 하얏트 서울

안녕에디터H의 호캉스 2탄이다사실 호캉스라는 말은 참 촌스럽다. 몇번이나 다른 단어에 적응해보려고 했지만(스테이케이션같은),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호텔에서 쉬고 왔다는 말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설명해줄 신조어가 없더라. 그래. 타이틀이 무엇이면 어떠하랴. 호캉스는 너무나 신나는 일인 걸!



지난 설날 연휴엔 남산 중턱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하루 쉬고 왔다.하얏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 브랜드 중 하나다. 전 세계 46개국에 지점을 가지고 있고, 한국에만 다섯 개 지점이 있다. 서울엔 단 두 곳. 내가 다녀온 한남동의 그랜드 하얏트와 삼성동에 위치한 파크 하얏트 서울이다.



사실 삼성동 파크 하얏트에 가보고 싶은 욕심이 컸지만 서울에서도 손꼽히게 비싼 곳이라 다른 날을 위해 양보(?)하기로 했다. 참고로 설명하자면 파크 하얏트는 하얏트 브랜드 계열에서도 최고급 부티크 호텔이다. 게다가 아시아에서는 도쿄에 이어 두 번째로 오픈한 지점이기도 하다. 얼마 전 프리미엄 바이닐 바로 새롭게 단장한 ‘더 팀버 하우스’에 갔을때도 클래식한 요소와 요즘 유행하는 것들을 세련되게 버무린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통장을 침착하게 재정비한 뒤 꼭 방문해보도록 하겠다.



그렇다고 내가 다녀온 그랜드 하얏트 서울이 파크 하얏트에 비해 허접한 곳이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 호텔은 무려 1978년에 설립된 역사의 장소다. 아마 당시로선 서울에 몇 없는 특급 호텔이었을 것이다. 최근 지어진 건물처럼 깔끔한 맛은 없지만, 중후한 인테리어의 호텔 로비가 주는 특유의 느낌이 좋다. 뭐랄까, 어릴 적부터 생각하던 호텔의 ‘클래식’이라는 느낌? 낡았지만 잘 관리된 누군가의 저택에 초대받은 기분이다.



나는 하얏트 브랜드의 호텔들이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좋아한다.노랗고 따뜻한 색의 조명 아래 모든 것이 침착하고 평화롭다. 적당히 올드한 감각이 오히려 마음에 안정을 주는 그런 느낌.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한국적인 소품과 거울을 활용한 인테리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객실까지 통일된 디자인이 돋보였다.



객실 인테리어는 크게 감동을 받을 만한 요소는 없었다. 잘 관리되어 있긴 했지만, 신생 호텔에 비해 룸컨디션이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더라. 객실 크기도 넓은 편은 아니다. 그냥 불편함이 없을 정도였다. 소파 옆의 원형 테이블은 활용도도 떨어지고, 통행을 방해해서 아쉬웠다.



상단에 거울을 활용한 건 좋았다. 실제로 보면 방이 좀 더 밝고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오래된 호텔의 단점이 두드러지는 때가 바로 디지털 기기의 사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순간이다. 구식 멀티 콘센트는 위치도 썩 좋지 않다. 사진 속의 장소를 빼면 편안하게 충전기를 연결할 수 있는 장소가 전무했다. 요즘은 비즈니스호텔에서도 갖추고 있는 TV 모니터의 HDMI 케이블 연결도 지원하지 않더라.



미니바의 제품과 상비된 커피, 티도 실망스러웠다. 네스프레소는 고사하고 인스턴트 커피와 동서 녹차 티백이라니. 이렇게 촌스러울 수가.



물론 마음에 들었던 것도 있다. 남산을 바라보고 있는 뷰와 창가에 일자로 배치된 유리 테이블이 참 좋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다.


탁트인 창가에 앉아서 맥북을 여니 일할 맛이 나더라. 에디터M의 얼굴이 계속 나오는 영상을 잠시 편집하다가 다시 맥북을 덮었다.



이 날은 클럽 라운지 이용이 포함된 그랜드 룸을 예약했다. 25만 원대였으니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이다. 클럽 라운지의 꽃은 역시 해피아워에 제공되는 무제한 술이다. 쫄래쫄래 내려가서 자리를 잡고 여유 넘치는 시간을 즐겼다. 이름 그대로 ‘해피아워’다.


클럽 라운지는 최근 가본 곳 중 가장 좋았다.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와인 셀렉션도 좋고, 음식도 식사를 대신하기 충분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포인트는 어지간한 레스토랑을 일부러 찾아간 것 만큼이나 분위기가 고급스럽다는 것. 창가 쪽 자리는 전망이 좋아 경쟁이 치열하다. 늦게 내려간 나는 차지하지 못했다. 규모가 큰 편이라 사람이 많은 시간에도 복잡거리지 않고, 연령대가 높은 호텔이라 소란스럽지도 않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제일 어린 것 같았다. 날짜가 발렌타인 데이였는데도 커플들이 그리 많지 않은 쿨함(?)도 좋았다. 발렌타인 따위!



다음날 조식도 같은 장소에서 제공되는데, 햇볕이 쏟아지는 창가에서 아침을 먹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라운지에서 마신 술이 아쉬워 로비층에 있는 베이커리 겸 와인 샵에 찾아갔다. 케이크부터 샐러드까지 간단한 먹을거리는 물론 치즈와 와인을 구입할 수 있다. 와인 종류가 꽤 많아서 놀랐다. 게다가 가격대도 다양하다. 호텔샵이라 긴장하고 가격을 확인했는데, 1~3만 원대 와인도 많더라. 소비뇽 블랑을 한 병 사서 객실에서 홀짝홀짝 마시다 잠이 들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는데 새벽녘엔 좋지 못했다. 옆방에서 줄기차게 쏟아지는 소음을 견디기가 힘들었기 때문. 베오플레이 E8을 챙겨가면 좋았을 텐데, 에어팟을 챙겨갔더니 그 소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잠을 설치긴 했지만,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새파란 하늘 뷰도 참 좋다.



불평이 많긴 했지만 좋은 호텔이었다. 오래된 장소라는 건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었다. 직원들의 응대나 서비스는 거북하지 않을 만큼 친절하고 노련했으며, 세월이 켜켜이 쌓인 클래식함도 기분 좋았다. 다만, 2018년의 투숙객에게는 불편한 요소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상위층부터 리노베이션이 진행 중이라고 하니 훗날 다시 찾아가 보는 걸로.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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