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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l 11. 2018

디지털 노마드의 쿨한 모습은 허상이다

유럽 한달 살이의 끝

디에디트의 글로벌 출근 프로젝트가 끝난 지 한 달이 됐다. 세 에디터가 포르투갈의 포르투라는 도시로 사무실을 옮겨 한 달 동안 근무하고 함께 생활했다.


서울을 떠나올 무렵의 우리는 지치고 겁에 질려 있었다. 스타트업 미디어라는 그럴싸한 명함을 내밀고 우아한 척 웃고 있었지만, 가끔은 숨고 싶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1년 후에도, 2년 후에도 사람들이 우리 글을 읽을까? 우리 영상을 볼까? 아마 이건 모든 스타트업이 느낄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인이라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별안간 위기를 맞는다. 대단찮은 이유가 쌓여 우리를 무너지게 하니까.



불안과 과로를 벗 삼아 2년을 버티고 항복을 외쳤다. 그래서 포르투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꿈꿔보자면서 비행기 티켓부터 끊었다. 디지털 노마드, 유럽 한 달 살기. 온갖 거창한 말로 우리의 프로젝트를 치장했다. 일종의 도피였다. 낯선 도시에서 한 달을 꼬박 살고 오면 우리의 삶이 달라질지 모른다고 믿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몇 차례 인터뷰를 했고, 많은 질문을 받았다. 포르투의 삶은 어땠는지, 어떤 게 바뀌었는지,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모든 질문을 곰곰이 씹으며 답을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의 디지털 노마드는 실패했다. 정확히 말하면 절반은 성공했고, 절반은 실패했다고 보는 게 옳겠다.



절반의 성공은 콘텐츠에 대한 평가다. 포르투에 다녀와서 22편의 글을 썼고, 12개의 영상을 만들었다. 그 어떤 때보다 공을 들여 만든 콘텐츠였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디에디트의 포르투 콘텐츠의 누적 조회수는 240만 건에 달한다. 숫자 자체보다 인상적인 건 이 중 150만 건의 조회가 텍스트 콘텐츠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글을 기다리고, 읽는 독자가 많음을 확인했다.


포르투에서 이층집 거실에 셋이 모여 댓글을 하나 하나 읽어 내렸다. 우리의 서툰 행보에서 힘을 얻었다고 말해주는 진심 어린 댓글을 보며, 우리야 말로 힘을 얻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놔주는 사람들이 많았구나. 이런 게 콘텐츠로 이루어지는 ‘소통’이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더더욱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차올랐다. 그리고 바로 이 욕심이 실패의 이유다.


이제 우리가 실패한 이유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노마드의 삶을 꿈꾸고 있을 모두를 위해서.



1. 디지털 노마드도 퇴근이 필요하다


디지털 노마드의 개념은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업무 공간의 자유로움에서 나온다.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이 없어지면, 시간에 대한 제약도 없어지기 쉽다. 생업을 등지고 휴가를 즐기러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정 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업무시간에 대한 규정을 세우지 못하면 여유있게 일하는 삶이 아니라 끝없이 일하는 삶이 될 것. 우리는 이 부분에서 가장 장렬하게 실패했다. 일단 한국 시간을 기준으로 콘텐츠 마감을 하다 보니, 유럽 시간으로 밤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특히 매일 웹사이트에 글을 업로드해야 하는 에디터H와 에디터M은 언제부턴가 새벽까지 노트북을 펼치고 거실에 앉아있는 게 일상이더라. 새벽 2시인가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고 어색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서울이랑 똑같잖아.” 디지털 노마드도 퇴근 시간이 필요하다. 어디서나 일할 수 있다고 해서 언제나 일해서는 안 된다.



2. 카메라를 드는 순간 모든 게 일이 된다


이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며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디자인 작업을 할 것이다. 그들에게도 고충은 있다. 한국에 있는(혹은 다른 나라에) 클라이언트의 스케줄에 맞추어 작업물을 만들어야 할테니까. 우리는 포르투에 머물며 일어나는 모든 순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다. 서울에서는 주로 리뷰 콘텐츠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촬영은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장을 보러가고 요리를 하고, 거리를 걷는 모든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거리는 아름답고, 식재료는 저렴하며, 요리는 맛있었다. 하지만 모든 에피소드를 촬영해야 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고행이었다. 해외에서의 생활을 콘텐츠로 담으려 하는 분들에게 이 과정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걸 일러두고 싶다. 가져간 메모리 용량이 부족해서 쩔쩔매고, 후발대로 촬영을 도와줄 인력을 불러야 했다.



3. 한 달은 짧다


우리가 포르투의 한 달 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한 달은 짧다”는 것이었다. 처음 한 주는 낯선 도시에 적응하느라 붕 뜬 마음으로 보냈다. 거리의 풍경과 간단한 인사말,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단골집이 생길 즈음엔 이미 떠나기 직전이었다. 마지막 한 주는 곧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으로 허비했다. 포르투는 작은 도시다. 하지만 우리는 한 달의 시간동안 그 도시를 충분히 겪어보지 못했다. 어떤 도시를 온전하게 경험하기 위해 한 달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일정을 연장하고 싶었지만 사정이 허락지 않았다. 만약, 디지털 노마드를 계획하고 있다면 적어도 3개월의 시간을 고려해보시길.



4. 예산이 허락하는 한 가장 아름다운 집을 구해라


만약 당신이 포르투나 치앙마이, 베를린 등 낯선 도시로 디지털 노마드를 떠났다고 생각해보자. 왜 떠났을까? 아름답고 새로운 풍경을 좇아 떠났을 것이다. 살던 곳에서의 삶에 지쳐서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 여유롭고 근사한 주변 환경을 선택할 수 일는 건 디지털 노마드의 특권이다. 우리도 일하다 지쳐 창밖을 바라보면 마음이 말랑해졌다. 아, 우리가 지금 이렇게 멋진 곳에 와있구나! 하고 마음이 정화되니까. 기왕 떠나온 거 서울에서는 꿈꾸지 못한 것들을 누려보자. 평생 살 집을 구하는 게 아니니, 예산이 허락하는 한 가장 아름다운 집을 구하자. 저녁엔 와인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작은 테라스와 바깥 풍경이 내다보이는 큰 창문이 있는 집은 어떨까? 이런 것들은 실제로 큰 도움이 된다. 매일 아침 일어나 그 풍경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정말이다.



5. 물가가 디지털 노마드 삶의 질을 정한다


디지털 노마드는 여행과는 다르다. 작정하고 돈을 쓰며 관광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곳은 당신의 일터이자 일상이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어야하고, 빨래도 해야하는 생활의 터전이다. 현지의 물가는 당신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밥 한 끼에 벌벌 떨어야 한다면 당신의 유목민 생활은 척박해지고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무조건 싼 나라로 가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예산을 책정하고, 현지의 물가를 조사해보자.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당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소비도 계산해 넣어야 한다. 포르투의 생활은 그런 면에선 성공적이었다. 질 좋은 와인을 매일 밤 마셔도 주머니 사정엔 전혀 지장이 없었다.



6. 관광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거처를 마련해라


전세계 어딜가도 관광지는 비슷하다. 잠시 한눈 팔면 소매치기 당하고, 물가는 현지에 비해 어처구니없이 비싸다. 당신이 디지털 노마드를 결심했다면 거처는 조금 한적한 곳에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동네 주민들과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고, 현지 물가로 생활하는 경험은 당신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아, 물론 관광지 혹은 도심과 너무 멀어서도 곤란하다. 조용한 동네가 지겨워질 때마다 놀러갈 곳은 필요하다. 가장 멋진 풍광과 좋은 레스토랑은 관광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모이는덴 다 이유가 있는 법. 실제로 디에디트 세 여자도 포르투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인 히베이라를 10번 정도 간 것 같다.



7. 업무 환경을 바꾸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다


서울에서도 안 되던 일이 포르투라고 마법처럼 잘 될 리가 없다. 우리가 사무실로 삼은 거실의 식탁은 세 명이서 일을 하기엔 턱없이 비좁았다. 심지어 인터넷도 느리다. 다들 아시겠지만, 내 고향 한국만큼 인터넷이 빠른 곳은 어디도 없다. 인터넷이 느리면 업무 집중력은 더 흐트러지기 마련. 고시생이 절간으로 들어가 사시에 붙었다는 건 차라리 전설에 가깝다. 일하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당신을 현혹하는 악마의 유혹이 외국엔 더 많다. 낭만은 없다. 마음 단디 먹지 않으면 큰 코 다친다. 추천하는 건 일하기 좋은 환경을 카페를 넉넉하게 물색해두라는 것. 집에서 일하기 질릴 때는 노트북을 들고 앉아있기 좋은 카페로 가자. 와이파이 체크는 필수다. 어쩌면 멀쩡한 집 놔두고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서울에서의 일상과 닮아있을지도.



8. 디지털 노마드의 쿨한 모습은 허상이다


팔자 좋아 보이는 인스타그램 포스팅 속 현실이 얼마나 초라할 수 있는지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여러분이 보는 콘텐츠 속 우리는 매일매일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일주일을 꾹 짜서 하루에 살고 있는 기분. 매 순간 숨이 넘어갈 듯 바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따듯한 물속에서 느리게 허우적대며 헤엄을 치고 있는 느낌. 양팔과 두 다리를 쉬지 않고 허우적대고 있는데 앞으로 가는 건지 뒷걸음질 인지 헷갈리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단적인 예로 디에디트 세 명이 개인 소셜 포스팅을 할 수 있는 여유는 야심한 밤 모든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을 때나 혹은 레스토랑에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순간뿐이었다.



9. 혼자는 외롭고, 여럿은 버겁다


디에디트 에디터들은 케미가 좋다. 셋 다 무던한 성격이고, 실제로 포르투에서도 흔한 갈등 한번 없이 한 달 생활을 마쳤다. 하지만 서로 다른 패턴으로 살아오던 사람들이 24시간 같은 공간에서 머무는 건 다툼이 없더라도 힘든 일이다. 저녁 메뉴를 정하거나 식사 시간을 정하는 사소한 것부터 모든 취향을 만족하기란 어렵다. 결국 다들 조금씩 양보하며 맞춰가야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심리적 피로도가 쌓인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살기 위해 겪어야 하는 당연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만약 타지에서 혼자 생활했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 외로웠을 것이다. 맛있는 식사를 하며 같이 감탄하고, 좋은 풍경 앞에서 함께 셀카를 찍을 이가 없다면 즐거움이 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10. 우리가 떠나온 도시와 거리를 두자


떠나온 사람은 현지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업무상 필요한 게 아니라면 지나치게 서울(혹은 어디라도)의 일에 연연하지 말자. 포르투에 도착하고 일주일 정도 디지털 디톡스의 시간을 가졌다. 소셜 미디어나 이메일 등을 등지고 포르투의 풍광에 집중했다.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모든 평가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간 겪어왔던 불안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나중엔 결국 서울에서 쏟아지는 연락에 굴복해야 했지만, 포르투에 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에 가장 필요한 건 심리적 자유다.


구구절절 실패의 이유를 나열해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결론은 이렇다. 시간을 다시 되돌려도 우리는 포르투로 떠날 것이다. 힘들고 찬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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