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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n 25. 2018

평소보다 배는 빠르게 이 도시를 둘러봤다

포르투 러닝 투어

날쌘돌이 막내 에디터 기은이다. 포르투에서 한 달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기 직전, 이렇게 떠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디터M을 꼬셔 러닝 투어를 신청했다. 무려 10km를 뛰면서 포르투의 명소를 둘러보는 독특하고도 혹독한 투어였는데 단돈 20유로였다. 한국 돈으로 따지면 2만 5,000원 정도. 가이드가 함께 뛰면서 설명도 해주는 친절한 서비스가 저정도 가격이면 알뜰살뜰한 내가 봐도 저렴한 투어였다. 



사실 이 도시를 달린 건 처음이 아니었다. 포르투에 도착한 직후부터 꾸준히 아침 러닝을 해 왔다. 첫날엔 운동이라면 젬병인 에디터H를 모시고 나가 아침 러닝을 했다. 그녀는 태어나 처음 뛰는 사람처럼 헐떡댔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엄청난 체력 차를 극복하고 꽤 행복했다. 도루강 위를 달릴 수 있는 멋진 루트를 찾았다. 강바람이 불고, 비현실적인 풍경이 내다보였다. 다음 날엔 에디터M을 꼬셔 셋이 나란히 달리기도 했다. 정신 차려보니 나 혼자 뛰고 있었지만, 어쨌든 포르투에서 나의 데일리 운동은 러닝이었다.


[관광하러 왔다가 막내에게 고문받는 에디터H]

돌이켜보니 한 번도 똑같은 루트를 달렸던 적이 없더라. 다른 길을 달릴 때마다 새로운 오늘이 되었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낯선 골목이 눈에 띄었고, 새로운 발견은 뿌듯함으로 이어졌다. 매일 나를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에디터H와 둘이 나섰던 첫 러닝.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참을 수 없는 허기짐을 느꼈다. 때마침 쌈짓돈 5유로가 있었다. 아무 빵집이나 들어갔는데 맛집이었다. 오보스 몰레스라는 전통 계란 과자와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둘이 즐긴 단출한 아침 식사의 값은 고작 3유로. 그 매력에 반해 다음날은 에디터M을 모시고 나갔더니 하필 휴무더라.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찾았다. 그럼에도 멋진 건 그곳 또한 맛집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셋은 운동 후 먹는 음식은 0kcal라며  풍성한 조찬을 즐겼다.


[바로 갈아주는 오렌지 주스 최고]


서울에선 절대 하지 않던 운동을 해서 뿌듯한 나머지 에디터 셋은 인증샷도 찍었다. 보이는가? 레인보우 밴드를 한 에디터H 혼자 0.14km를 덜 뛰었다. 왜냐고 물어보니 다리 위에서 막내와 에디터M이 전력 질주하는 걸 보고 겁에 질린 나머지 따라오지 못하고 기다렸다더라.


[운동 사진보다 빵 사진이 더 많은 건 기분 탓이다.]

이렇게 매일 매일 포르투를 달렸지만, 굳이 돈 내고 러닝 투어를 신청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혹시라도 아직 둘러보지 못한 풍경이 있을까봐. 언젠가 이곳이 그리워질 때를 대비해서 더 많은 골목을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마치 인터넷 강의 같았달까? 시험 전 인강을 2배속으로 돌려 되새김질하는 것처럼, 평소보다 배는 빠르게 이 도시를 둘러봤다. 사족이지만 나는 러닝의 이런 속성이 좋다. 빠르게 또는 천천히, 오롯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며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운동. 신속하면서도 여유로운 이 운동이 참 마음에 든다.



해 질 녘의 포르투를 달리며 구경하는 SUNSET TOUR, 스트릿 아트를 구경하며 달리는 STREET ART, 포르투의 다리만을 조지는(?) IRON BRIDGES TOUR 등 투어 종류가 다양했는데 내가 고른 건 SUNRISE TOUR였다. 동틀 무렵의 포르투는 어떤 얼굴일지 궁금했다. 포르투에서 수차례 아침을 맞았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길을 나서 본 적은 없었다. 우리 모두 야행성이었기에.


[ALL THE WORLD  WAS GREEN]

가이드 아저씨가 인도하는 길은 새로웠다. 한 달 동안 돌아다니면서도 못 봤던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셨다. 힘들다고 러닝 투어에 불참한 에디터H가 이점을 두고두고 부러워하던 것 같던데. 후훗. 포르투라는 동네는 작지만, 곳곳에 골목길이 많아 미로 같은 매력이 있다. 가이드 아저씨는 친절했다. 정말로. 얼마나 친절했냐면, 시도 때도 없이 멈춰 영상을 찍어대는 우리를 인자한 미소로 기다려주셨을 정도다. 뛰어야 하는 러닝 투어임을 고려하면 그의 인자함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 할 수 있겠다.



고프로로 촬영해주시며 아름다운 영상도 만들어주셨는데 그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면 우리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포르투는 곳곳에 스트릿 아트가 그려져 있다(스트릿 아트의 비밀이 궁금하면 클릭). STREET ART 투어를 신청한 게 아니었지만, 가이드 아저씨는 틈틈이 골목의 아티스트를 소개했다. 떠나기 직전의 야릇한 감성에 젖어 열심히 눈에 담았는데 그래도 아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새롭게 지워지고 씌워지는 스트릿 아트 특성상 그들의 수명은 짧고 나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을 머무는 여행자니까.


러닝 투어 덕분에 28일 동안 천천히 친해졌던 포르투를 2시간 만에 복습하며 외워버렸다. 영상을 만들며 구글맵을 참조했더니 머릿속에 완전히 각인됐을 정도다. 재밌는 건 구글맵의 포르투 모습이 2015에 촬영되어 지금과 모습이 다르단 점이다. 난 아주 작은 ‘포인트’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같은 골목의 15년도 스트릿 아트와 18년도 스트릿 아트를 비교하니 미묘하게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게 아주 힙한 발견이라는 생각에 만족감이 부풀어 올랐다.



러닝 투어로 인해 얻은 또 다른 수확은 포르투갈의 전통 타일 장식, 아줄레주다. 으슥한 골목으로 우릴 데려간 가이드를 따라가다 포착한 꽃 무늬 아줄레주. 너무나 익숙했던 걸까, 가이드 아저씨조차 그냥 지나치길래 혼자 멈춰 서서 찍어왔다. 여태껏 봤던 아줄레주 중 제일로 예쁘다. 사실 그전까지 아줄레주는 내 취향이 아니라 실망했는데 이로 인해 마음을 열고 왔다. 활짝.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다른 루트로 달렸으면 최애 아줄레주가 바뀌었을까 싶을 정도.



요시모토 바나나는 <꿈꾸는 하와이>에서 “순서와 장소를 조금만 바꿔도, 그 동네를 모르는 여행자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조금씩 다른 새로운 풍경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어쩌다 보니 그녀가 말한 모든 요소를 몸소 겪었다. 사실 러닝 투어는 본 걸 또 보는 복습 같은 게 아니었다. 그리움을 없애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대신 보험을 들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고 또 영상을 찍으며 거리를 외웠으니까. 눈감고 포르투 거리를 떠올리면 생생하다. 눈을 떠도 포르투 거리의 모습이 날 기다리고 있다. 유튜브에서 말이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러닝 포르투.


생생한 포르투를 보고 싶으시다면 이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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