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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n 17. 2019

필터 씌운 것 같은 도시에 다녀왔다

모로코 마라케시

모로코에 다녀왔다. 

아, 이 얼마나 낯선 문장인가. 모로코라니.



지난 1월 오사카로 떠난 나홀로 여행에서 외로움을 떨쳐내고자 에어비앤비 트립을 신청했었다. 혼자라면 가지 못했을 이자카야를 하루저녁에 세 곳이나 다니고, 혼자라서 가지 않았을 신사 곳곳을 탐험하고 하나하나의 의미를 농밀하게 들여다봤다. 그 엄청난 먹방의 흔적이 궁금하다면 여기로. 친절하고 현지 문화에 정통한 호스트 덕분이었다. 그렇게 에어비앤비 트립과 나의 인연은 시작됐다.



에어비앤비가 새롭게 선보인 어드벤처를 운 좋게 미리 함께해 볼 수 있도록 초대받았다. 트립이 짧고 찌인하게 현지의 문화를 맛보는 것이라면, 어드벤처는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볼 만한 여행을 현지의 호스트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숙소와 식사 그리고 다양한 경험까지 모두 함께 말이다. 듣기만 해도 생소한 모로코에서는 5박 6일 동안의 모험! 이것이 이번 모토다.



암스테르담과 파리를 거쳐 모로코 마라케시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반기는 이국적인 풍경이란! 좁은 비행기에서 몸을 구겨가며 온 나쁜 기억을 싹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코로 숨을 깊게 들여마셨다가 천천히 내뱉는다. 공항에서는 희미한 인센스 향기가 났다. 아 정말 나는 멀리도 왔구나.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창밖으로 도시를 훔쳐본다. 도시는 오렌지 빛으로 그린 수묵화처럼 보인다. 한 가지 색으로 조금씩 농담을 달리한 그림처럼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오랜지색도 아니다. 벽돌색? 아니면 한 때 뷰티업계에서 유행했던 MLBB(My Lips But Better) 색이라고 해야할까? 도시는 한 단어로 말하기 어려운 색으로 칠해져 있다.



한 도시가 작정이라도 한 것 처럼 붉은 색을 한 것과 달리, 하늘은 지나칠 정도로 파랗다. 낮고 붉은 건물과 경쟁이라도 하듯 높고 푸른 하늘때문에 꼭 도시 전체가 동그란 유리 안에 갇힌 스노우볼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지구에 머리가 있고 그 정수리를 가까이서 보면 이런 느낌일까? 낯선 도시 앞에서 이런 저런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



일단 모로코란 나라가 대해 생소한 분들을 위해 어떤 곳인지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 지리적으로 스페인과 지브롤터 해협을 두고 거의 붙어 있어서 유럽의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 게다가 문화적으로는 국민의 99%가 이슬람교를 믿기 때문에 거의 온전한 이슬람 국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모로코는 유럽과 아프리카 이슬람 문화를 점처럼 찍은 점묘화처럼 보인다.




“아랍어로 쓰는 the edit”



긴 비행의 여독을 푼 다음 날 아침, 호스트인 샤이마의 집에 초대받았다. 어쨌든 현지인의 집에 초대되는 건 관광객은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다. 한 발짝 떨어진 관광객이 아니라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훌쩍 뛰어들어 갈 수 있는 경험은 ‘걸어서 세계 속으로’ 정도가 아니라면 흔한 일은 아니지.



호스트의 거실에 앉아 방금 우린 따듯하고 달콤한 쿠키와 민트티를 마신다. 모로코 마라케시 사람들은 물보다 이 민트티를 더 자주 마신다. 아침에도 마시고 점심과 저녁 사이에도 마시고, 친구를 만나도 손님이 와도 모두 민트티를 마시면서 시작한다.


[이 사진은 새발의 피. 하루에 이런 민트티를 4잔은 마셨다.]


무슨 맛이냐고? 음식점 계산대에 있는 박하사탕을 녹여낸 맛이라고 상상하면 되겠다. 물론 생 민트잎을 우려냈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훨씬 더 자연의 맛이 나지만.



먹는 이야기가 나온김에 오렌지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거리를 걷다보면 귀여운 오렌지가 열려있는 나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매번 식사마다 오렌지가 빠지는 법이 없다.



오렌지를 먹는 모로코 사람들만의 독특한 방법이 있는데, 바로 슬라이스한 오렌지에 설탕과 시나몬 가루를 뿌려먹는 거다. 나쁠 것도 없는 맛이지만 이게 뭐가 이렇게 특별한가 싶은데, 나중엔 식후마다 오렌지를 찾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자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우리가 샤이마에 집에 초대된 이유는 캘리그래피를 체험해보기 위해서다. 얇은 대나무 끝을 뽀쪽하게 깎은 펜에 잉크를 묻혀 선을 긋는다. 어떤 글자든 일단은 선과 점을 그리는 게 기본이다. 다들 사뭇 진지하다.


[이게 바로 아랍어로 쓴 the edit다]


가로로 읽는지 세로로 읽는지 알수 없는 미궁의 글자를 보며 처음엔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우리는 젓가락과 연필로 단련된 손재주의 한국인 아니던가. 다른사람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썼다. 솔직히 말하면 썼다기 보다는 그렸다는 것이 더 가깝겠지만. 꼬불꼬불하고 알아 볼 수 없는 글자지만 그래도 내가 써서 그런지 무척 마음에 든다.




“이제 진짜 마라케시를 돌아볼까”



이제 본격적인 관광지 탐험에 돌입한다. 제마알프나 광장은 마라케시의 중심이다. 이곳에 도착하면 끝없이 펼쳐진 노점과 거리에 뿌려진 말똥 냄새 그리고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 알 수 없는 음악소리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자유시간 생겨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가보니 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코브라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폰을 가져다대는데, 옆에 있던 아저씨가 내 아이폰을 가로채갔다. 아뿔사, 또! 싶었지만 다행히 소매치기는 아니고, 기념 사진을 찍어주시더라고. 친절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아이폰 대신 돈을 뜯겼다. 헤헤.


[이게 바로 사만원짜리 사진, 주인공은 당연히 내가 아니라 코브라다]


무려 그 자리에서 350디르함. 우리나라 돈으로 약 4만 5,000원 정도를 갈취(?) 당했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알아 들을 수 없는 아랍어로 소리를 쳐서 안 줄 수가 없었다. 정말이다. 억울한 마음에 후기를 찾아보니 이런 곳에서는 동물로 여행자를 현혹해서 촬영을 유도하는 바가지를 각별한 주의를 해야한다고 하더라. 거기서도 100에서 200디르함 정도를 부른다고 하던데 무려 1.5배나 더 뜯기다니 난 역시 대단해!



쇼핑도 빠질 수 없지. 붕괴된 멘탈을 부여잡고 남은 돈을 탕진하러 가보자. 모로코의 전통시장인 수크엔 손으로 만들고 아름다운 물건들이 있다. 나는 민트티를 마실 귀여운 컵을 네개나 샀다.




“자, 이제 진짜 모험을 떠날 차례야”



오늘 우리는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현지인 마을로 간다. 노트북도 내팽개치고 간단한 옷가지와 휴대용 물병만 챙긴 조촐한 가방을 타고 지프차에 몸을 싣는다. 빌리지까지는 차로 3시간 정도 이동해야한다.



가는 길은 변화무쌍하다. 야자수와 선인장을 지나 시선이 닿는 저 멀리엔 머리에 새하얀 눈을 얹은 높은 산이 보인다. 조금만 삐끗하면 가파른 낭떠러지였기 때문에 괜히 마음을 졸였다. 쾌활한 운전사는 조수석에 탄 일행에게 오늘의 DJ를 맡겼다. 시대를 종횡무진하는 팝 리스트가 펼쳐졌다. 우리는 퀸의 노래를 큰소리로 따라 부르며 달렸다. 매일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음악만 듣다가 이렇게 사람이 직접 고르는 음악을 들으니 색다른 기분이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하는 두려움은 목청껏 따라부르는 소리에 흘려 보냈다. 흥겨운 시간이었다.



드디어 오늘 머물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집들이 띄엄띄엄 있는 한적한 곳이다. 인터넷은 커녕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탁 트인 풍경 때문인지, 아니면 터지지 않는 인터넷 때문에 내 손에서 떠난 아이폰 때문인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



오늘 점심은 내가 직접 해먹는다. 모로코의 전통 요리인 타진을 만들어 보기로 한다. 타진은 꼬깔콘 처럼 생긴 길쭉한 뚜껑이 있는 냄비에 오래동안 익힌 요리를 말한다. 양을 넣은면 양고기 타진, 닭을 넣으면 닭고기 타진이다. 들어가는 재료도 향신료도 다양하고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모두 맛이 다르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처럼 모로코의 어느 음식점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바로 오늘 우리에게 모로코의 전통 음악을 알려줄 호스트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시종일관 미소 지어주시는 덕분에 따듯하고 근사한 시간이었다.



3개 조로 나눠 만든 타진은 식탁에 둘러 앉아 맛있게 먹었다. 신기한 건 모두 같은 지령을 받고 같은 재료로 만들었는데 하나같이 맛이 달랐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데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입과 코로 느끼고 맛보는 음식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밥을 먹고 호스트와 함께 마을을 구경하며 하이킹을 하기로 한다. 속속 들여다보니 이 마을엔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골목마다 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귀여운 꼬마는 인사를 건넨다. 꽤 많은 카메라를 들이대는 데도, 수줍은 듯하지만 절대 피하지 않는다.



한 시간 반이 넘는 하이킹을 하는 내내 헥헥대며 오르는 나와 달리 오늘 안내를 맡은 호스트는 다람쥐처럼 날아다녔다. 이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이곳은 정말 비현실적으로 멋졌다.



출장도 여행도 아닌 이번 일정은 생에 다시 없을 경험인 것에는 분명하다.


엄밀히 말해 이번 여행은 일종의 패키지 여행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패키지 여행에도 분명한 장점이 있다. 일단 이동이 편리하다. 우리는 이동하는 중간중간에도 서로에 대해서 묻고 궁금한 점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서로의 문화에 대해 탐색했다.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순간에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천천히 탐색하고 대화할 수 있는 안내자가 있다는 건, 여행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줄 치트키 같은 거였다.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보니 나처럼 별다름 욕심이 없는 게으른 여행자는 대충 버티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온 뒤, 그거면 되었다고 위로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하지만 에어비앤비 어드벤처는 평생 살면서 하기 힘든 모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일상을 모험으로 만들어 주는 것. 이게 바로 어드벤처의 특별함이 아닐까. 만약 여러분들도 뭔가 특별한 경험을 찾고 있다면 에어비앤비를 둘러보시는 건 어떨까. 생각하지도 못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마지막으로 이번 일정 내내 우리를 케어해준 샤이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덕분에 난 모로코 친구가 생겼고, 우리의 모로코 마라케시 어드벤처는 더 흥미진진하고 풍성해졌으니까.


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시 여행은 영상으로 봐야 제맛아닌가. 열심히 찍어온 에디터M의 모로코 브이로그도 공개한다.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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