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뉴욕 나이키 2020 포럼이다
지난 2월 5일과 6일 미국 뉴욕에서 나이키 2020 포럼이 열렸다. 올 여름 출시될 새로운 제품 컬렉션을 선보이는 행사인 동시에 여름에 열리는 지상 최대 스포츠 대회를 위한 혁신을 소개하는 이벤트였다. 또한 다음 10년, 그 이후의 미래를 위해 나이키가 나아가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쇼와 프레젠테이션, 제품과 인터뷰를 통해 또렷하게 모아진 메시지는 이 브랜드가 지금 최우선하는 가치인 지속가능성이었다.
대대적인 패션쇼가 포럼의 스타트를 끊었다. 허드슨 야드의 랜드마크인 더 셰드 (the shed)에 마련된 흰 원형 무대를 캔버스로, 경쾌하고 역동적인 컬러 팔레트가 넘실댔다.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진 신제품들과 각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것은 모델들만이 아니었다. 패럴림픽 선수 10명을 포함해 실제 도쿄 스포츠 대회 출전 선수들, 레전드가 된 스포츠 아이콘들이 자기다운 모습으로 런웨이를 걷거나 휠체어로 이동해 나왔다. 세계 육상 연맹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선수 칼 루이스, 여성 최초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조앤 베노잇은 100% 리사이클 소재로 만들어진 미국 팀 메달스탠드 컬렉션을 입고 깜짝 등장해 60대라는 나이가 운동에도 캣워크에도 한계가 되지 않음을 입증했다. 드레이크, 트래비스 스캇, GD 등의 셀럽들과 버질 아블로, 후지와라 히로시, 윤, 자크 뮈스를 비롯한 디자이너들이 초대되어 쇼를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언더커버, 오프화이트, 앰부쉬, 사카이, 매튜 윌리엄스처럼 나이키와 지속적으로 협업을 선보여온 패션 브랜드들과의 새 콜라보 의류와 슈즈가 이 자리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인종, 성별, 나이, 장애와 비장애의 정체성이 다양하게 섞인 사람들이 스포츠를 매개로 조화롭게 움직이며 화합한 쇼의 피날레는 이미 축제 현장 같았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은 한국 고유의 모티프를 디자인 요소로 녹여냈다. 핑크에서 점점 레드로 강렬해지는 그라데이션의 홈 유니폼에는 태극기의 건곤감리 4괘와 한류를 상징하는 물결무늬를 사용했으며, 어웨이 유니폼의 패턴은 축구 국가대표 팀의 상징인 백호에서 얻은 영감을 표현했다. 정밀한 직조 기술이 적용된 소재는 컬러와 디자인을 독특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선수들이 쾌적하게 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이키 의류 혁신 부문 부사장인 재닛 니콜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역사상 가장 더운 스포츠 대회가 될 거라는 전망 속에서, 땀의 습기를 효율적으로 흡수하고 내보내는 드라이핏 기술을 고도로 정교화 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였다고 설명했다.
러닝용 스니커즈 컬렉션은 모션캡쳐, 아틀라스 맵핑, 4D 모델링 등 나이키 스포츠연구소의 최첨단 기술이 응집되는 슈퍼히어로 같은 존재다. 이번 포럼에서는 나이키 에어 줌 알파플라이 NEXT%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놀랍도록 가벼운 무게감은 어퍼에 사용된 초경량 아톰 니트 소재 덕분에 가능하다. 발 앞꿈치 아래로는 새로운 쿠셔닝 플랫폼인 줌 에어 포드가 양쪽으로 부착되어 편안한 착용감에 뛰어난 반발력을 더한다.
알파플라이 NEXT%는 지난해 10월 비엔나에서 마라토너 엘리우드 킵쵸게가 착용하고서 1시간 59분 40초 대를 기록한 모델인 베이퍼플라이의 업그레이드 모델이기도 하다. 2시간의 벽을 깨는데 기여한 이 프로토타입은 단순히 킵쵸게를 위해 헌정된 것이 아니다. 6년 이상 케냐와 포틀랜드를 오가는 긴밀한 협력을 거치며 선수의 피드백을 빼곡히 반영해 완성되었다. 발가락을 더 단단하게 지지해 달라, 훈련하며 러닝화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게 싫으니 조직을 촘촘하게 해달라, 발목이 좀 더 부드러웠으면 좋겠다는 등의 디테일한 요구사항이었다. 쿠셔닝 혁신 부문 부사장 케이시 고메즈는 말한다. “운동선수를 위한 문제 해결이 나이키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선수들이 더 나은 퍼포먼스를 하게, 편안하게 오래 뛸 수 있도록 만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팀이죠. 선수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우리의 DNA에 존재합니다.” 이렇듯 나이키 혁신의 시작과 끝에는 늘 선수가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 역시 선수들이 직면한 새로운 문제가 바로 지구 기후 위기라는 나이키의 강력한 인식에 기초한다. “우리의 임무는 선수들을 더 낫게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선수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훈련을 돕는 제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환경이 훈련하기에 점점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죠.” 고메즈의 말처럼 지구온난화는 선수들이 훈련 과정과 경기 상황에서 적응해야 할 큰 변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 협약 탈퇴를 선언하는 데 아랑곳없이 나이키가 무브 투 제로 (Move to Zero)라는 더 높은 목표를 스스로에게 부과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탄소 배출 0, 폐기물 0의 미래를 향한 로드맵’을 선언하고, 결과물 뿐 아니라 각 과정에서도 다양한 층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재생 소재의 개발과 활용, 패턴의 효율성을 통해 생산 공정에서 폐기물 줄이기, 발생한 폐기물은 다시 활용하기, 제조 공정에서의 재생 에너지 사용 등이 모두 이 노력의 선순환에 포함된다.
무브 투 제로(Move to Zero) 캡슐 컬렉션 제품군에서는 리사이클 소재의 다채로운 활용이 두드러진다. 윈드러너 재킷은 100% 재생 폴리에스터 원단으로 제조되며, 나이키스포츠웨어의 후디, 티셔츠, 조거팬츠 등 아이템은 60% 이상의 유기농 면 (물과 화학비료를 적게 사용해 재배한다), 재활용 원단을 혼합해 부드러운 착용감을 낸다. 지속가능성에 대해 나이키가 보이고 있는 이런 성과는 이미 10년 이상 준비한 결실이다. 사용된 슈즈를 수거해 러닝 트랙, 농구 코트, 새로운 제품 등을 만드는 리유즈 슈(Reuse Shoe) 프로그램은 이미 25년 이상 진행되어 오고 있다. 축구 경기용 저지 의상, 러닝슈즈 용 플라이니트 등의 각종 제품으로 재활용하는 플라스틱 병의 양도 매년 10억여 개 이상이다. 무브 투 제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2025년까지 모든 운영시설을 100% 재생 에너지로 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험적인 풋웨어 컬렉션인 스페이스 히피(Space Hippie) 라인은 지속가능한 제품 디자인이 가진 가능성의 한계를 재정의 한다. “훗날을 위해 새로운 소재 개발에 투자하는 것도 필요하죠.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당장 갖고 있는 도구는 뭘까, 즉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에 주목했습니다.” 지속가능성 혁신 디자인 팀의 리더인 노아 머피 라인허츠는 나이키 디자이너들이 ‘스페이스 정크(space junk)’라 부르는 폐자재를 과감하게 채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4가지 디자인의 스페이스 히피 슈즈 어퍼에는 25% 티셔츠, 25% 직물 조각, 50%는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해 만든 섬유가 사용된다. 직조 과정에서도 화학적 염색을 하거나 열을 가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질감과 색상이 자연스럽게 혼합되어 있다. 나이키 지속가능성 혁신 부문 부사장인 세나 한나는 제품의 이런 개성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식과 노력이 엿보이면서도 충분히 멋져 보인다는 점을 강조한다. “재활용 소재를 사용한다고 해서 디자인까지 지루해야 하는 건 아니죠. 보다시피 스페이스 히피 컬렉션은 멋지고 미래적입니다. 이미 여기에 와 있는 미래죠.”
나이키가 지상 최대 스포츠 대회에서 하는 일은 선수 개인의 기량 향상을 지원하고 더 나은 기록을 얻도록 돕는 것이다. 넓게 보면 스포츠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탐색하고 확장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기후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스포츠의 미래도 인류의 미래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이 피니쉬 라인에 도달해 멈추는 일 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스포츠의 미래에도, 지구의 미래에도 결승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