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할 정도로 문서 작업에 취약한 사람이다. 예전에 어깨가 아파서 꽤 오래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보다 견디기 힘든 건 진료 영수증을 일일이 스캔해 보험사에 보내야 하는 보험비 청구 과정이었다. 거대한 사무실 복합기의 스캔 기능은 이상할 정도로 느리고, 때로는 이상하게 스캔이 됐다. 회사에 비용 청구를 해야 할 때도 영수증을 하나하나 스캔해 보고하는 과정은 고통 그 자체였다. 나중엔 너무 귀찮아서 비용 청구 안 하고 말지…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피할 수 없게 됐다. 회사를 나와 웹사이트 운영을 시작하니 스캔해야 할 문서와 영수증이 쌓여만 갔다. 디 에디트의 두 에디터 중 그나마 꼼꼼한 에디터M이 회계를 맡았는데, 영수증이 밀려들수록 비명을 질렀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기록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어떤 건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고, 어떤 영수증은 너무 길어서 스마트폰으로 한 번에 촬영할 수 없었다. 스캐너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일단 리뷰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어떤 스캐너가 가장 빠르고 좋을까. 스캔 속도는 기본이고, 사이즈도 너무 커서는 안된다. 우리의 사무 공간은 아담하니까.
그래서 일단 고른 것이 엡손이 새로 출시한 워크포스 시리즈의 초고속 스캐너다. 밀린 영수증도 정리할 겸, DS-530과 DS-570W의 면밀히 사용해보았다. 함께 출시된 두 제품은 비슷하지만 각각 매력포인트가 조금씩 다른데, 그 내용은 차차 소개하고 일단 속도부터 살펴보자. 성질급한 우리 두 여자를 만족하게 해줄 강력한 스캔 속도를 확인해야 한다.
스펙상으로 이 두 제품의 스캔 속도는 35ppm/70ipm. 동급 대비 최고 수준의 출력 속도이며, 이전 모델들보다 약 30% 이상 빨라졌다는데 숫자로 보면 이게 약간 빠른 건지 미친 듯이 빠른 건지 잘 알 수 없다. 감이 오지 않는다. 일단 직접 스캔을 해봐야 실감이 날 것 같다. 해상도나 안정성 등을 모두 보기 위해 텍스트만 인쇄된 A4 용지와 화려한 광고 지면이 인쇄된 잡지책을 모두 테스트해보았다. 종이를 넣고 스캔 버튼을 누르니, 음? 미사일 발사하듯 종이가 ‘슝’ 통과하고 순식간에 스캔이 완료된다.
먼저 테스트 삼아 라인과 온갖 언어로 텍스트가 빼곡하게 인쇄된 엡손 사용 설명서 한 장을 스캔해보았다. 스캔한 파일을 확인해보자. 원본처럼 선명하게 스캔되었다. 요즘 스캐너는 다 이렇게 좋은가?
스캔이 잘못되면 글씨가 약간 삐뚤빼둘해보이고 크기가 일정치 않게 보이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 제품은 원본 그대로 일률적으로 스캔된다. 확대해서 봐도 글씨 크기가 일정하고 깨끗하게 보인다. 뿐만 아니라 텍스트 라인이 약간 기울어지는 현상도 없다. 반듯하다. 이 정도면 원본과 다른 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깨끗한 파일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아주 예전에 썼던 스캐너들과 차원이 다른 스캔 솜씨다.
속도가 엄청 빠른 것 같긴 한데, 비교 대상이 없으니 얼마나 빠른 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최신형 스캐너는 원래 다 이렇게 빠른 거 아냐? 그래서 비교 대상을 가져왔다. 지인의 사무실에서 잠시 빌려온 후지쯔 ix-500이다. 이 제품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고사양 스캐너 중 하나라고.
올림픽 나가는 것도 아닌데 떨리는 기분으로 속도 테스트에 들어갔다. 어쩌다 보니 일이 이렇게 커졌는지… 스캐너 3개를 두고 테스트를 벌이는 나와 에디터M의 모습이 재밌다. 먼저 후지쯔 제품에 50장의 잡지 지면을 넣고 스캔을 시작했다. 버튼을 누른 시간부터 스톱워치로 재기 시작해서 마지막 파일이 스캔되는 시간을 측정하니 딱 1분 45초. 빠르다. 이 제품도 상당히 좋은 스캐너인 것 같다. 비슷할 것 같은데?
그다음엔 우리의 리뷰 제품인 엡손 570에 같은 지면 50장을 그대로 넣고 스캔 버튼을 눌렀다. 아이폰 스톱워치의 시간이 짹깍짹깍 흐르기 시작한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긴장 넘치는지. 이번에도 동일하게 스캔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마지막 종이가 스캔될 때까지를 측정했다. 결과는? 두구두구… 1분 27초!
후지쯔 제품의 스캔 속도도 상당히 빠르지만, 50장 스캔 기준으로 엡손이 18초가량 빠르다. 꽤 큰 차이다. 흰 종이에 글씨만 인쇄된 문서를 스캔한 것도 아니고 오색빛이 현란한 잡지책을 스캔한 건데 어쩜 이렇게 빠를까. 내친김에 엡손 스캐너로 100장도 스캔해보았다. 50장 스캔할 때와 똑같이 딜레이나 리드 타임 없이 같은 속도로 작동한다. 참고로 100장 스캔에 걸린 시간은 2분 50초였다.
스캔한 파일의 해상도를 화면상에서 확대해 확인해보면, 해상도 역시 우수해 보인다. 해상도만 높은 게 아니라, 지저분한 요소 없이 깨끗하게 스캔이 되기 때문에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사용해도 무리가 없겠다. 스케치를 스캔 한 뒤에 바로 포토샵이나 기타 프로그램으로 불러내 채색 작업이 가능할 정도다.
사용 방법도 별로 복잡하지 않다. 물리 버튼이 있어서 직관적이다. PC프로그램에서 스캔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스캐너 자체의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다. 스캔 버튼 밑에는 이중감지 건너뛰기 버튼이 있는데, 문서 중에 감지되지 않는 파일이 섞여 있으면, 건너뛰고 바로 스캔할 수 있는 기능이다.
그 밑으론 저속스캔버튼이 있다. 아주 얇은 문서나, 오래된 문서, 긴 문서를 스캔할 때는 이 버튼을 사용하면 된다. 트레이싱지나 고문서를 일반 스캔하면 속도가 너무 빨라서 종이가 구겨지거나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심한 배려다.
얇은 용지부터 두꺼운 용지까지 다양한 문서를 지원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통장이나 인스탁스 카메라로 촬영한 필름 사진, 두꺼운 카드, 영수증, 팜플렛 등 다양한 문서를 스캔할 수 있었다. 특히 영수증 중에 길이가 굉장히 긴 게 하나 있었는데, 문제없이 순식간에 스캔하더라. 알고 보니 최대 6m 길이의 문서까지 스캔할 수 있다고.
신분증이나 영수증 같은 작은 문서를 한꺼번에 스캔하기 위해서는 투명 캐리어를 사용하면 된다. 비닐 안에 원하는 문서를 넣은 후 그대로 스캔하면 깔끔하게 한 파일 안에 여러 문서를 담을 수 있어 편리하다. 에디터M은 이 기능을 이용해 3달 치 영수증 정리를 깔끔하게 해치웠다. 만세!
DS-570W의 또 다른 특징은 와이파이 연결은 물론 NFC 태그까지 지원한다는 것이다. NFC 지원 스마트폰을 제품 전면에 갖다 대면, 자동으로 앱 다운로드 화면으로 연결된다. 스마트폰 앱에서는 스캔을 실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캔 문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하다.
네트워크 스캔 기능도 갖추고 있다.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할 때 엑세스 포인트를 통해 스마트폰, 스캐너, 컴퓨터를 연결하는 방법이다. 또 AP 모드 연결의 경우엔 와이파이를 사용하지 않는 곳에서는 스캐너가 액세스 포인트가 되어 초 4개의 스마트 기기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DS-570W와 함께 출시된 DS-530의 경우 와이파이 지원 여부 외에는 모든 스펙이 비슷하다. 하지만,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제품은 많이 사용하는 엡손의 평판스캐너 V39와 결합해 사용할 수 있다. 평판스캐너 연결장치로 두 제품을 연결해 통장, 여권, 두꺼운 책을 스캔할 땐 평판스캐너를 사용하고 다량의 문서를 고속스캔할 때는 본체를 사용하면 된다. 한 개의 드라이버로 두 개의 제품을 모두 컨트롤할 수 있어 상당히 편리하다.
어린 시절 보던 동화책을 20년이 넘도록 보관하고 있는데, 이제 어디서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이라 버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평판스캐너에 넣고 모두 스캔하기로 마음먹었다. 고속스캐너와 평판스캐너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으니 활용 범위가 훨씬 넓어진다.
리뷰를 핑계로 밀린 서류 정리와 포트폴리오 정리 작업을 끝냈다. 내가 쓴 기사가 실린 잡지 지면도 스캔하고, 좋아하는 책과, 오래된 사진, 업무 관련 서류를 모두 스캔했다. 빠른 속도도 마음에 들었지만 스마트폰으로 컨트롤 가능해 사용이 쉽고 간편하다는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순식간에 책 한 권을 스캔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속도라니.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다. 이제 의료비 청구도 귀찮아하지 말아야지. 귀차니즘을 극복할 제품을 찾았으니까. 깔끔한 화이트 컬러의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책상 한편에 놓으니 제법 그럴싸하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영상을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