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콘텐츠 기획사 <트래블코드> 디렉터
트레바리라는 독서모임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업의 특성상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난다. 그중 개인적으로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 몇 있다. 따로 만나 이야기를 더 듣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 그중에는 무한 긍정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도 있고, 추진력이 엄청난 사람도 있고, 범접할 수 없는 논리력을 가진 사람도 있고, 하루를 일주일처럼 사는 사람도 있고, 한때 개그맨 시험에 응했던 나보다 더 웃긴 사람도 있다.
인터뷰이를 처음 만난 곳도 바로 그 커뮤니티였다. 같은 학교에 겹치는 지인들도 이렇게나 많은데, 여기서 처음 봤다는 게 조금 신기하지만 돌아돌아 이렇게 만난 걸 보면 언젠가는 만날 인연이었나 보다 싶다. 아무튼 커뮤니티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겹치는 지인들도 그렇고 “주은이 참 멋있지”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하도 많이 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멋있다는 말을 들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깊게 대화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지만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 그렇게 노린지만 어언 9개월째에 접어들던 어느 날, 더 기다리다가는 지금 언니의 생각들을 듣지 못할 것 같아서 <사소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Q.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김주은이라고 하고요. 여행 콘텐츠 기획사 ‘트래블코드’의 창립 멤버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맡고 있습니다.
Q. 사소한 인터뷰의 공식 질문. 자기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저는 ‘대중적’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대중적인 것 같아요. 제가 하는 활동, 제 취향, 심지어 유머 코드까지. 그래서 접점이 좀 더 넓고 무난한 편인 것 같아요. 달리 말하자면 덕후 성향이 전혀 없어요. 한때 덕력 부족을 콤플렉스로 느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게 제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Q. 주변 사람들이 멋지다는 수식어를 많이 붙여주는 것 같아요. '멋진'이란 수식어가 왜 붙는 것 같아요?
음.. 전 ‘하는 쪽으로’ 결정을 하는 편인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은 ‘안 하는 쪽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커리어처럼 큰 결정이 아니라 소소한 결정들에 있어서도요. 전 취미든 개인적인 프로젝트든 일단 하기로 했으면 해요. 꾸준히요.
그리고 '나 뭐 한다'라고 공유도 잘해요. 시작부터 과정까지 다요. 그런 부분에 대해 사람들이 멋있다고 표현을 해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까 말한 대중성과도 연관되는 것 같아요. 여행, 농구, 연극 등 제가 하는 활동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들이에요. 그래서 좀 더 공감을 사는 것 같고요. 애초에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그걸 했다고 해서 멋져 보이지 않겠죠. 근데 사실 저도 정확히 모르겠어서, 앞으로 멋지다고 얘기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왜 그런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Q. 그럼 반대로 어떤 사람이 멋져 보여요?
잘 정돈된 사람요. 자신을 잘 알고, 선택의 기준이 명확해서 빠르게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 멋있어 보여요. 자기 원칙을 고집하는 것과는 또 다른데요. 이런 사람들은 워낙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유효한 비판을 잘 수용하고 자기 원칙들을 더 좋게 잘 수정하더라고요. 쓸데없는 비판은 알아서 잘 가려듣고요.
Q. 페이스북에 들어가 봤더니 대표 사진으로 지정해두신 사진들이 정말 다양하더라고요. 서핑, 농구, 연극, 여행 등. 이 사진들을 고르신 이유가 있을까요?
‘페이스’북이라고 하지만 사실 제 얼굴이 저를 표현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서요. 그래서 얼굴만 나온 셀카는 거의 올리지 않는 편이에요. 오히려 제가 하는 활동들이 저를 더 잘 표현하는 것 같아서, 제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사진들로 해놨어요.
Q. 대표 사진들 중에선 농구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이 제일 타이트하게 찍힌 것 같아요. 프로필 사진처럼! 이 사진은 언제 찍은 거예요?
2013년에 아예 사진작가를 불러 찍었던 프로필 사진이었어요.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여자 사회인 농구팀이 대부분 선수 출신 위주로 되어 있거든요. 우리나라가 여자 사회체육의 불모지인데 특히 농구는 더 심한 것 같아요. 그래서 농구를 좋아하는 제 친구가 ‘여자 사회인을 위한 농구팀을 만들자’해서 창단하게 됐어요. 거기에 저는 초기 멤버로 들어가고, 다음 해에 회장도 했고요. 참고로 이름은 JDC예요. 지덕체…(웃음)
취지가 이러하니 공 한 번 안 만져본 생초보들이 대부분이에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래서 기존 농구팀들과 다르게 운영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일단 전 국가대표 출신인 조혜진 코치님을 모셔서 근본 있는 커리큘럼을 운영하고요. 농구 한지 오래되지 않고 잘 못하는 친구도 일부러 시합에 내보냈어요. 경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자극 받으라는 차원에서. 그래서 저도 뛸 수 있었고요!(웃음). 스냅 사진을 찍었던 것도, 농구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까지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널리 알리기 위함이었어요. 주변에 자랑할 때 활용하기 쉽도록요.
Q. 농구팀에 들어와서 농구를 처음 해봤다고 했는데, 해보니 어떤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여자들 만날 때 보통 예쁘게 차려입고 화장 다 하고 와서 브런치 먹고 하잖아요. 근데 민낯으로 만나서 땀 흘리고 몸 부딪히고 하는 게 정말 색다른 경험이에요. 농구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목소리도 커지고 더 잘 웃어요. 몸 쓰고 땀 내고 서로 치대면서 이미 마음이 다 풀려버리는 것 같아요. 관계를 쌓아올린 과정이 다르다 보니, 농구팀 친구들은 제가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과는 되게 느낌이 달라요. 정말 ‘건강하다’는 표현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팀 운동의 매력이 말도 못해요. 변수가 많으니 훨씬 다이내믹하고, 팀과 합이 맞을 때 느끼는 쾌감이 다른 걸로 대체가 안돼요. 운동 꾸준히 못하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함께 하면 오래 할 수 있습니다. 안 오면 왜 안 오냐 챙겨주고 하니까요. 사람들이 이걸 많이 경험해봤으면 좋겠어요.
Q. 듣다 보니 ‘커뮤니티’에 관심과 애정이 있는 편인 것 같아요. 혹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있어요?
제가 주도해서 만드는 편은 아닌데, 일단 제가 몸담은 커뮤니티는 더 좋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제 개인기로 노력하든 시스템을 만들든. 어쨌든 제가 몸담은 데는 쭉 가는 건데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좋으면 좋잖아요.
Q. 꾸준히 운동을 해와서 평소 체력관리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아요.
맞아요. 지금 두 달 쉬었는데, 운동을 이 정도로 오래 안 해본 게 오랜만이에요. 근데 진짜 몸이 버텨주고 있었구나 하는 걸 많이 느껴요. 일을 하다 보면 힘드니까, 감정적으로 다운되거나 예민해질 상황이 많이 있잖아요. 그걸 몸으로 버텨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운동을 할 땐 운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잖아요. 안 그러면 다치니까. 격렬히 움직이고 있지만 제게는 사실상 명상 시간이에요. 그렇게 머리를 비워내는 시간이 되게 소중했더라고요. 특히 요즘처럼 일모드 온 오프가 잘 안되는 상황에서는 계속 머리를 가동하고 있거든요.
Q. 지금까진 일 외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일이라는 건 또 다른 영역인 것 같아요. 혹시 일 욕심이 있는 편인가요?
일 욕심 많아요. 아까 제가 하는 활동이 저를 표현한다고 했잖아요. 시간적으로도, 제 마음속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일이에요. 그래서 저와 닮은 일을 하려고 하고, 더 멋진 일이고 더 잘했으면 좋겠어요.
Q. 일을 잘한다는 게 뭘까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거요.
Q. 재욱: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과정이 덜 중요하다기보다, 과정은 디폴트예요. 과정은 항상 최선을 다했어요. 과정을 허투루 한 적은 없었어요. 근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과정만으로 심적 보상은 못 받는 것 같아요. 이건 일이니까, 일은 되게 해야 해요.
Q. 이제 본격적으로 일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첫 직장이 A.T. Kearney였다고 들었는데, 커리어를 컨설턴트로 시작한 이유가 있을까요?
많은 예비 학부 졸업생들이 그렇듯이 저도 제가 뭘 잘하고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 시점에 있는 사람에게 컨설팅은 되게 좋은 옵션인 것 같아요.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일 근육'을 단기간에 길러 주거든요. 문제해결력, 커뮤니케이션, 하다못해 깡다구까지 키울 수 있습니다.
여기에 주변 다른 컨설턴트로부터 자극받는 것도 큰 몫을 해요. 탁월해서든 혹은 성장하려는 욕구가 강해서든 뭐라도 배울 점 있는 사람들의 밀도가 높은 집단이에요.
Q. 인혜: 야근이 엄청 많지 않아요?
네 맞아요. ‘내가 얼마나 무리할 수 있는지’ 알게 돼요. 잠재력까지 다 끌어내야 꾸역꾸역 해나갈 수 있는 상황에 부딪치면, 내 능력의 한계치를 점검해볼 수 있어요. ‘이 정도까지 했었는데’하는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일과 본인에 대한 기준도 높아졌고요. 일례로 결코 좋은 현상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도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일이 있다고 하면 밤샘 정도는 가볍게 고려해요.
Q. 컨설팅 회사를 3년 정도 다니다가 이직했다고 들었어요. 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요?
제가 맞는 답을 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분명 논리적으로는 맞는 답인데, 놓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불안했어요. 실행에 대한 갈증도 있었고요. 기획 일 자체는 재밌으니 하나의 산업과 기업을 찍고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획 경험 토대로 현업부서까지 돌면 더 자신 있게 기획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Q. 그럼 다음 직장으로 홈플러스를 선택한 이유는 뭐였어요?
제가 소비자인 곳으로 가고 싶은 게 가장 컸어요. 컨설팅 할 때 주로 금융업 프로젝트를 했는데요. 금융에서는 사실 소비자 니즈가 엄청 중요하지는 않아요. 소비자에게 전면에 노출되는 상품 매력도를 높이는 일보다, 뒷단에 수익성 높은 금융구조를 짜는 게 핵심이에요. ‘불러만 줍쇼’하던 신입의 패기가 사라지면서 흥미가 떨어져 가던 때에, 제조업과 화장품업 제안서를 연이어 쓰게 됐는데요. 이해도 잘 되고 훨씬 재밌는 거예요. 그때부터 소비재로 다음 커리어를 이어가야겠다 생각했죠.
Q. 홈플러스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잘 다녔다고 들었는데, 한 번 더 이직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홈플러스에서는 전략기획팀에서 1년 반, 글로벌 소싱팀에서 반년 해서 총 2년 일했는데, 되게 좋았어요. 일도 재밌었고 팀원들도 배울 점 많고 워크&라이프도 균형 잡혀 있었어요. 트래블코드가 아니었다면 꽤 오래 다녔을 것 같아요. 이곳이 싫어서 떠났다기보다, 트래블코드 일이 더 재미있어 보였던 거였어요.
Q. 홈플러스를 다니던 중에 트래블 코드 측에서 이직 제안을 받으신 거예요?
정확히 말해 이직 제안이라기보다, 이동진 대표님 주도로 4명이 같이 창업했어요. 학교 선후배로 7년간 알고 지낸 사이인데, 그간 굵직한 프로젝트를 하며 호흡을 맞춰 왔어요.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라는 책도 같이 쓰고, 최근까지 경제경영 큐레이션 웹진 <SOPPLE>도 같이 만들었거든요. 그렇게 매주 만나서 작업하다 자연스럽게 트래블코드를 시작하게 됐어요. 2015년 말에 법인을 세웠고요. 반년 정도 회사를 운영해보고 퇴사 여부를 결정하자고 했죠.
Q. 인혜: 되게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비교적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며 두렵거나 불안하지는 않으셨나요?
사실 퇴사 결정 자체는 어렵지 않았어요. 사람으로나 실력으로나 신뢰할 수 있는 팀과, 좋아하는 아이템을 가지고, 초기 멤버로 시작할 수 있는 건 거의 오지 않는 기회예요. 잃을 것보다 얻을 게 훨씬 많은 선택이었어요. 안정감과 일부 금전적인 부분만 감수하면 돼요. 이미 이직을 한 번 한 상황에서 성장폭으로만 봤을 때 이 정도 퀀텀점프를 할 수 있는 옵션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창업을 하거나, 해외에 나가거나 둘 중 하나였을 거예요.
실제로 요즘 정말 배우는 게 많아요. 하루를 마칠 때 그날 느낀 점을 기록해 두려고 하는데, 요새 훨씬 양이 많아진 것 같아요. 삶의 변수가 늘어난 데 대한 반대급부랄까요.
- 세희: 결정한 후에는 꽤 빨리 나오셨던 걸로 기억해요.
오히려 더 일찍 실행에 옮기지 못 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있어요. 다른 팀원들은 약속한 반년이 채 지나기 전에 회사를 그만두었거든요. 아직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먼저 희생한 거죠. 대표님과 다른 디렉터님들이 진입로를 잘 닦아놓은 덕에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지만, 그 몇 달간 황무지에서 우리 팀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을 하고 고생을 했는지 잘 알아요. 두고두고 갚아야 할 것 같아요.
Q. 여행업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90년대 여행 자유화 이후 대형사를 중심으로 패키지여행이 여행업을 한 번 키우고, 그 이후에는 자유여행이 또 한 번 키우며 덩치가 커졌어요. 하지만 여행업은 여전히 고도화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패키지와 자유여행 사이에 아직 건드리지 않은 스펙트럼이 정말 많아요. 회사 일이 아닌 개인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비즈니스 트립이라든지,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패키지라든지 등요.
Q. 한희: 여행 쪽 일을 하셔서 여쭤보고 싶은 부분인데, 여행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효율적으로 수많은 자극을 받는 거요. 사실 되게 비싸잖아요. 근데 그만큼 안전빵으로 자극을 주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여행 가면 나 말고 다 바뀌잖아요. 여기서 뭔가를 안 느끼는 게 이상한 것 같아요.
Q. 인혜: 가장 자극을 많이 받았던 여행지 어디였어요?
파리요. 으레 미술관은 고루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왜 여행지에 갔는데 건물 안에 틀어박혀 있는지 이해를 못했었어요. 그런데 파리에서 미술관에 꽂혀 미술관 투어에 일주일을 통째로 쓰고도 모자라서 떠나기 싫더라고요. 취향이 없었던 게 아니라 국내에서 제 취향을 일깨워줄 양질의 공급이 부족했던 거죠.
Q. 재욱: 저는 개인적으로 여행 갔을 때 자극을 잘 못 받는 편인데요. 혹시 저 같은 사람들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나요?
물론 여행 갔을 때 색다른 풍경을 보는 것도 좋은데요. 저는 거기 있는 사람들을 무조건 만나요. 일정을 전혀 짜지 않고 첫날 숙소만 게스트하우스로 예약해서 거기 있는 사람들과 무조건 친구가 돼요. 그럼 그 사람들이 알려주는 것, 그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들이 풍경보다도 더 큰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돌아왔을 때 기억에 남는 게 사람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특히 현지인들을 만나면 더 자극이 큰 것 같아요.
Q. 물론 트래블코드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들어가면 트래블코드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담백하게 한 번 더 들어볼게요. 트래블코드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어요?
목적지보다는 목적이 다른 여행, 흩어지지 않고 축적되는 여행. 이런 것들을 만들고 싶다는 게 비전이에요. 사람들이 여행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보통은 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관광, 힐링 등 비슷한 목적들만 떠올리잖아요.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을텐데 여행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현재 트래블코드 상품으로 설명드리자면 여행보다 발리는 혼자 여행 가면 못하는 것들(이를테면 풀빌라를 통째로 빌리는 것)을 함께 하자는 것이고, 퇴사 준비생의 도쿄는 퇴사를 고민하거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도쿄에서 사업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여행이에요.
Q. 트래블코드에 대해 찾아보니 여행 기획뿐만 아니라, 호텔 예약도 하고 커머스도 하더라고요. 지금 트래블코드에서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크게 여행상품, 콘텐츠, 커머스, 호텔 예약 이렇게 4개로 나눌 수 있어요. 사실 여행 상품은 한계비용이 높아요. 가이드가 사람을 무한정 데려갈 수도 없고, 가이드 비용이 빠지기 때문에 가져갈 수 있는 매출이나 마진폭도 적어요. 그래서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기 때문에 다녀온 여행을 2차, 3차로 재생산하는 거죠.
그렇게 재생산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콘텐츠예요. 콘텐츠는 한계비용이 거의 0이잖아요. 한 번 만들어 놓으면 그걸 계속 팔면 되고, 추가로 인건비는 안 들어가는 거니까요. 그래서 여행지에 다녀온 후 그 인풋들을 디지털 리포트, 책, 동영상 등으로 만들고 있어요.
커머스도 마찬가지예요. 여행 프로그램을 돌리든 콘텐츠 개발 차 가든 여행지에 가서 두 발로 돌아다니다 보면 온라인으로는 안 보이던 상품과 가게들이 보이거든요. 그 지역이기에 그 퀄리티에 그 가격으로 가능한 알짜 상품들이요. 그런 상품들을 해외 각 지역에서 가져와 판매하고 있어요. 이렇게 여행 간 김에 할 수 있는 것들을 같이 하고 있어요.
Q. 이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요즘 누구 자주 만나세요?
최근 1달간 만난 사람을 보면 대학 동기, 전 직장 동료, 발리 같이 간 멤버, 독서모임, 극회 등 다양해요. 저는 특별히 자주 만나는 사람, 소위 말해 베프가 없는 것 같아요. 두루두루 만나는 편이에요.“너 누구랑 제일 친하니”라고 물었을 때 누군가를 퍼뜩 떠올리기가 어려워요.
Q. 이런 인간관계에 대해 만족하세요?
전반적으로는 만족하는데요. 누군가를 딱 떠올릴 수 없다는 게, 내가 되게 힘들거나 기쁠 때 혹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편히 불러서 술 한 잔 하자고 할 친구가 없다는 거거든요. 여기에 약간 아쉬움이 있어요. 예전에는 그걸 연애로 풀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마음의 여유도 없고 해서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 보니 새삼 제게 그런 존재가 없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Q. 인혜: 외롭지는 않으세요? 누군가와 꼭 함께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수 있잖아요.
음,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누가 옆에 있어도 항상 느낄 수 있는 게 외로움이라서.. 그 부분까지 없애려고 무언가를 채워 넣기 시작하면 그것 때문에 생기는 머리 아픈 일이 많아질 것 같아요. 조금의 외로움은 조금만 있으면 없어지거든요. 전 오히려 많이 채워져있을 때가 더 힘들고 외로웠던 것 같아요.
Q. 한희: 너무 깊은 인간관계는 선호하지 않으시는 편인가요? 선호라고 표현하면 좀 그럴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 만났을 때 이 사람한테는 여기까지 말하고, 저 사람한테는 여기까지 말하고 이런 게 있잖아요. 저는 그게 좀 없는 편인 것 같아요. 정말 안되겠다 싶은 사람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에게 만나고 있는 시간만큼 최선을 다해요. 덜 보여주거나 그런 것도 없고요. 그래서 깊이 차이도 사실 크지 않은 것 같아요.
살면서 각 시기마다 필요한 친구들이 되게 다르잖아요. 어렸을 때 엄청 친했던 친구들도 지금 왔을 땐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들도 있고요. 지금 앞에 계신 네 분께도 인터뷰인 걸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 말하고 있거든요.
Q. 동료, 친구, 연인, 가족 등 많은 관계들 중 어떤 관계에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쓰세요?
동료들에게 좀 더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동료는 제가 선택할 수가 없잖아요. 물론 지금은 좀 더 선택한 것에 가깝기는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요. 내가 선택해서 만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인간관계와는 다른 것 같아요. 친구 관계에서는 좀 더 쿨할 수가 있는데. 왜냐면 같은 시간, 공간을 점유하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요. 근데 동료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더 부딪혀서 풀려고 하는 편이에요.
Q. 좋은 인간관계를 많이 맺으려면 건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는데요. 멘탈 관리 잘하는 편이신가요?
멘탈 관리는 좀 잘 하는 편인 것 같아요. 감정 기복이 크진 않고 원체 좀 무던한 편이기도 해요. 그래서 예전에는 내가 쿨한 건가?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좀 둔한 편이었던 것 같아요. 남들이 힘들어할 부분에 있어서 좀 덜 힘들게 느끼고, 질투도 별로 안 느끼고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 때는, 일단 글로 다 적어요. 머릿속에 있으면 이 생각, 저 생각이 다 엉켜서 복잡해지거든요. 일단 적고 나면 생각보다 별게 아니란 걸 알게 되고 정리가 돼요. 특히 일기는 감정이 격할 때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차분히 정리한다기보다 쏟아내요.
Q. 인혜: 보통 무던하다고 하셨는데, 언제 감정이 격해지세요?
제 한계를 느낄 때 그런 것 같아요. 특히 일할 때 좀 그래요. 저는 일과 일 외적인 것에 기준치가 되게 다른 편이에요. 일 외적인 걸 할 땐 무난한 것을 바라는 것 같아요. 자라오면서도 모나지 않으려 하고, 모난 부분이 있으면 일부러 갈아냈던 것 같기도 해요. 그건 습관처럼 할 수 있는 부분이라, 인간관계에서는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편인데요. 일은 계속 바뀌잖아요.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일에 있어서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제 한계를 느낄 땐 가라앉고 화가 나고 한심하고 이런 게 있죠.
근데 아마 일에 있어서 저는 평생 만족 못할 것 같긴 해요. 만족하려면 한 우물을 깊게 파야 하는데 성향상 그렇게 못하잖아요. 전문성이 부족해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아요.
Q. 인혜: 혹시 더 뾰족해지고 싶었던 적은 없으셨어요? 처음에 덕후 성향이 없는 게 좀 콤플렉스일 때도 있다고 하셨는데.
근데 성향상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대신 새로운 것을 꾸준히 찾아서 하는 에너지가 있으니 ‘차라리 넓게 보자’라고 방향을 잡았던 것 같아요. ‘난 본투비 제너럴리스트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 세희: 계속 새로운 걸 해나가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진짜 엄청난 에너지가 따라줘야 하는 일이라.
Q. 재욱: 제너럴리스트로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조언을 듣고 싶어요.
결코 제가 잘하고 있다는 건 아니고요. 역시나 같은 고민을 하는 1인으로서 방향성만 공유하자면 ‘어떤 제너럴리스트가 될 것인가’, ‘이 오만 관심사들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제 경우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해결하는 편이에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여기랑 여기를 엮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때가 많거든요. 그렇게 각자 편한 방식의 제너럴리스트를 찾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Q. 이전 인터뷰이가 남긴 릴레이 질문! 몇 살까지 살고 싶으세요?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정도로 아프면 그냥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요.
Q. 다음 인터뷰이에게 질문을 하나 남겨보자면?
너무 평범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요새 제일 고민되는 게 뭐예요?”
Q. 그에 대한 본인의 대답은 뭐예요?
요새 제 ‘강점’을 정의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사람들 만날 때마다 본인의 강점이 뭐냐고 물어봐요. 그럼 되게 명확하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요.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강점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이런 걸 강점 삼아도 되겠군’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Q. 묘비명을 남긴다면?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묘비명은 가까운 사람들이 적어주는 걸로! ‘함께하면 유쾌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정말 다양하고 대중적인 활동들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뭔가 달라 보여서,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듣는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언니의 마지막 말에서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오만 관심사들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
사실 오만 관심사들을 다 소화해내는 것만도 정말 대단한 일이다. 웬만한 에너지로는 다양한 것들을 동시에, 오래 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많은 관심사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일이다. 근데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 다양한 경험들이 언니만의 논리로 단단하게 꿰어져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것 하나 버려진 것 없이.
언니를 보면 굉장히 다양한 느낌이 든다. 선하기도 하고 똑똑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누가 ‘주은이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면 정의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멋있다’는 말로 그 느낌들을 엮어내는 게 아닐까 싶다. 선하다는 말에는 단단함이 없고, 똑똑하다는 말에는 지혜로움이 없고, 예쁘다는 말에는 간지가 없어서.
언니가 꾸준히 더 멋있어졌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에는 롤모델이 될 멋진 언니들이 많이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