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희 Mar 08. 2017

사소한 인터뷰 미국편, Jimin Kim

2016년 5월 28일의 기록

2014년 겨울, 뉴욕(왼쪽부터 Jimin, Tony, Rachel, S.H 순)


올해 초, 한국에 놀러 온 Tony를 인터뷰했다. 2년 전 여행차 머물던 뉴욕에서 잠깐 봤던 인연이었다.(자세한 이야기는 위 Tony 인터뷰 참고) 그때 Tony와 함께 여행을 다니던 친구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오늘의 인터뷰이 지민이다.

처음 보자마자 Tony는 '얘 표정이 원래 이러니까 오해하지 말아줘'라는 말부터 꺼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지민이는 표정의 변화가 크지 않았다.(심지어 본인이 웃긴 이야기를 할 때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차가운 표정과 달리 말하는 건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몇 번 같이 밥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지민이는 여기서 본인만 직장인이라며 계산서를 가져갔다.(밥을 사줘서 따뜻하다는 건 아니다. 허허.) 그런 모습들을 보니 지민이의 무뚝뚝한 표정에 마음이 쓰였다. 왜 이렇게 표정이 없을까. 지민이는 한국어가 서투르고 나는 영어가 서툴러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고, 결국 나는 Tony에게 지민이의 인터뷰를 부탁했다.


인터뷰 당일 찍은 사진이 없어 지민이의 프로필 사진을 살포시 올려본다.




Q. 우선 인터뷰에 응해줘서 정말 고마워. 나도 <사소한 인터뷰>에 인터뷰이로 나왔었는데, 혹시 내 인터뷰 봤어? 어땠어? 

응 봤지! 너에 대해 몰랐던 부분들을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 같아. 네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앞으로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너의 주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등등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 

Q. 우리가 알고 지낸 지도 벌써 2년째다. 사실 널 처음 봤을 때 되게 화가 나 있는 줄 알았어. 물론 이제 친해져서 아닌 걸 알지만, 원래 표정이 좀 차가운 편이야?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그런 말을 많이 들어. 어렸을 때 살았던 곳이 워싱턴주, Lakewood라고 사건 사고가 항상 많은 곳이었어.(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할렘 가 같은 곳) 아무래도 그때 그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 그 지역 사람들은 보통 웃는 표정보다는 무표정을 더 많이 하고 다니거든.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를 안 당하니까.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본심을 감추고 무뚝뚝한 표정을 짓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아.


해맑게 웃는 Tony 옆, 무표정한 Jimin(=_=)
무표정한 지민이 입꼬리 올리기(=U=)


Q. 밝은 표정으로 고쳐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어? 

응. 바꾸려고 했었지. 아무래도 첫인상이 차가우면 좋을 게 없으니까. 근데 잘 안 고쳐지더라고. 자주 짓는 표정을 바꾼다는 건 진짜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 

근데 또 첫인상이 무뚝뚝해 보여서 좋은 점도 있어. 첫인상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걸러지거든. 결국 외면보다 내면을 중시하는 사람들만 남게 되는 것 같아. 미국에서 흔히 쓰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어. “If you can’t handle me at my worst, then you don’t deserve me at my best.(만약 당신이 내가 최악일 때를 견디지 못한다면, 내가 최고일 때 함께 할 자격이 없다.)” 난 이 말에 동의해. 그리고 개인적으로 난 몇몇 친구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걸 더 좋아하기 때문에, 차라리 이런 내 표정이 더 좋은 것 같아. 

Q. 사소한 인터뷰 공식 질문! 자신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동물로 비유해본다면 ‘사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사자가 좀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운 이미지잖아. 나도 그런 면이 있거든. 용감하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충성스럽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자가 무서워 보이지만 왠지 따뜻한 마음을 가졌을 것만 같아서 나랑 비슷한 것 같아.



PART 1. 정체성에 대한 고민


Q. Korean American인 너에게 원래 Jay라는 영어 이름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 Jay Kim이 아닌 Jimin Kim이라는 한국 이름을 선택한 이유가 뭐였어? 

보통 나를 '김지민'으로 소개하지만, 사실 내 full name 은 'Jimin jay kim'이야. 이유는 그냥 처음부터 부모님께서 나를 지민이라고 부르셨고 그게 익숙해졌던 것 같아.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지. 다만 이름에 있어 내가 선택한 부분이 있다면, 원래 영어 이름은 joseph이었는데(saint joseph이라는 병원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 내가 그 이름을 너무 싫어했나봐. 그래서 부모님께서 jay로 영어 이름을 바꾸셨다고 해.(어린 시절 많이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었던 강아지 이름이 jay.) 

Q. 지금, 이름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래도 난 Jimin으로 할 거야. 한국 이름과 영어 이름을 따로 두기는 싫어. 

Q. 친부모님은 한국분이시지만 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잖아. 그래서 느낀 정체성의 혼란이 있었어? 

응. 많이 혼란스러웠어.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 많았던 것 같아. 물론 키워주신 부모님께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해 많이 알려주셨지만, 아직도 한국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어렸을 때 가족 외에 한국 사람을 만날 기회도 거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정체성의 혼란을 겪긴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가 미국인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 

Q. 솔직히 한국은 입양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근데 생각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에 입양되었다고 들었어. 너도 그중 한 사람이기도 하고.. 입양에 대한 너의 생각은 어때? 

많은 사람들이 입양을 되게 불행하고 심각한 단어로 생각하는데, 나는 정말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아직도 세상에는 정말 많은 아이들이 가족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거든. 그 아이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 축복받은 거지. 

Q. 어렸을 때도 같은 생각이었어?

사실 어렸을 때부터 입양된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크게 와 닿지는 않았어. 그냥 친부모님이 따로 있구나 정도의 느낌? 돌이켜보니 힘들었던 적도 많았지만 그 시간이 나를 많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같아. 

그리고 어렸을 때보다 지금 더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커. 난 지금의 내 삶이 굉장히 만족스러운데 만약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 자신이 아니었을 거고, 지금 알고 지내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 했을 거고, 너(Tony)를 몰랐을 거잖아. 그러니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어릴 때 힘들었어도. 

Q. 고등학생 때까지는 키워주신 부모님과 함께 지내다가, 그 이후부터는 낳아주신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걸로 알고 있어. 그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 

어렸을 때 살던 곳(워싱턴주, Lakewood)은 되게 위험한 곳이어서, 마음이 항상 두렵고 불안했어. 계속 여기 살다 보면 나쁜 길로 빠질 위험도 있었고.. 그리고 여러모로 기회도 많이 없었어. 그러다 열일곱 살 때쯤 친어머니께서 본인이 캘리포니아에 식당도 열었고 집도 생겼으니, 혹시 같이 살고 싶다면 와도 된다고 하셨어. 나에게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 거지. 그때 난 여기(캘리포니아)로 오는 걸 선택했어. 

Q.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어. 그리고 친어머니가 계신 캘리포니아의 환경이 더 좋거든. 날씨도 좋고 좋은 사람도 많고, 좋은 기회도 많고. 물론 키워주신 부모님과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곳을 떠나야 해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인터뷰이가 SNS에 올렸던 사진 "Happy National Siblings Day!"


Q. 넌 어떤 아들인 것 같아? 그리고 어떤 아들이고 싶어?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한 아들 같아. (내가 보는 너는 정말 책임감이 강한데?) 난 지금 내가 가진 책임감보다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 같아. 아무래도 키워주신 부모님과 낳아주신 부모님이 계시니까. 빨리 성공해서 어머니 두 분 모두 쉬실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어. 그동안 두 분 다 너무 고생이 많으셨어. 친어머니는 투잡으로, 밤낮없이 일하셨거든. 그래서 앞으로 편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싶어. 

근데 지금 당장 집안일을 도와드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나중에 더 큰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예를 들어 지금 친어머니께서 가게를 하신다고 했잖아. 퇴근 후에 내가 가게 일들 도와드릴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내 시간이 없어. 그래서 지금은 사업 준비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해. 그런 면에서 ‘지금은’ 스스로가 책임감이 부족한 아들이라고 생각해. 

Q. 어렸을 땐 한국인들과 어울리지 않다가, 2년 전 시작한 OKTA(세계한인무역협회)라는 모임을 통해 한국인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고 들었어. 처음 한인 커뮤니티에 들어왔을 때 기분이 어땠어? 

솔직히 많이 어색했어. 문화적인 차이가 커서 모든 게 새로웠거든. 한국 사람들에겐 ‘예의’가 되게 중요하잖아. 나이, 위계질서 등등.. 처음엔 적응이 잘 안 됐어. 내가 하는 미국식 농담이 무례해 보일까봐 걱정되기도 하고. 한국 문화는 말을 참 조심스럽게 해야 하잖아. 그래도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에 반가워해주시고 가족처럼 대해주셔서 진짜 감사했어. ‘정’이라는 걸 많이 느낀 것 같아.


OKTA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
OKTA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지민이 웃는당!)


Q. 예전에 한국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 있잖아. 그땐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좀 더 배우고 싶었어. 그리고 한국 생활이 어떻길래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으로 유학, 이민을 오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었거든.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이 ‘한국은 생활이 진짜 힘들다.’, ‘회사생활도, 학교생활도 힘들다. 항상 공부만 한다.’라고 이야기해가지구.. 그런 걸 실제로 가서 좀 느껴보고 싶었어. 

아 그리고 내가 야행성이라 밤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데, 한국이 밤을 즐기기에는 최고라고 하더라고. 밤새 소주를 마셔봐야 한다는 말도 들었고.(누가 그런거야ㅋㅋ) 그래서 그런 생활도 한 번 해보고 싶었어. 물론 샌프란시스코나 뉴욕의 다운타운도 있지만... 

Q. 지금도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아니야. 이제는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것에 더 우선순위를 두게 됐거든. 



PART 2. '나의 일'을 위한 준비


Q. 지금 Service Now라는 회사에서 플랫폼 엔지니어로 일하는 걸로 알고 있어. (한국과 비교하면) 미국에서의 회사 생활은 어때? 

내가 한국 회사를 다녀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미국이 좀 더 자유로운 것 같아. 회사와 직원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판단되면 도전을 권장해. 기회도 많이 주고. 

그리고 Work–Life Balance가 좀 더 지켜지는 것 같아. 재택근무도 가능하고, 휴가도 충분히 주고, 스케줄 조정도 비교적 자유롭고. 대신 ‘이렇게 좋은 복지 혜택을 제공하면 직원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다.’라는 게 기본 전제지. 이게 실리콘밸리의 마인드 셋이라고 생각해. 

Q. 현재 평범하게 회사를 잘 다니고 있고 더구나 가정도 있는데, 왜 회사를 그만두고 위험부담이 큰 사업을 하려고 해?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기보다 나 자신을 위해 일하고 싶으니까. 사업을 하면 회사의 방향을 내가 잡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Q. 어떤 사업을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해서 그건 물어보지 않을게.(웃음) '내 사업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은 언제부터 한 거야? 

어렸을 때부터 내 사업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 성격상 남 밑에서 일하는 거 정말 싫어하거든. 그래서 항상 현재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들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같은 것들을 자주 생각했어. 조만간 드디어 그 생각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을 것 같아.

Q.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CEO이고 싶고, 어떤 문화를 가진 회사를 만들고 싶어? 

존경받는 CEO보다, 존경하는 CEO가 되고 싶어. 즉 내가 존경받으려 하기보다 직원들을 존경해주고 싶어. 리더의 권위 같은 거 없이 정말 가족이나 친구처럼 편하게 소통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 

그리고 열심히 하는 CEO이고 싶어. 내가 열심히 하면 직원들 또한 열심히 일할 거라 생각해. 그렇게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면 나는 그 사람들을 믿고 많은 기회를 주고 싶어. 

Q. 사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어? 

난 사람들이 삶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어.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뭔가 더 성장하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고 해. 난 그 이유가 계획은 거창하지만 그걸 실행으로 옮기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업무/프로젝트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목표도 마찬가지야. 오늘 할 일, 그 주에 해야 할 일들이 결국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남는 경우가 많잖아. 계획을 효율적으로 세우고,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 



PART 3. 얼마 전 갑자기, 결혼!


올해 초, 한국에 있던 나는 Tony를 통해 지민이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Q. 우선, 결혼 축하해. 요즘 신혼 생활은 어때?(웃음) 

아주 좋아. 물론 어려움도 있지만 분명 그 어려움 속에서 많이 배우는 것 같아. 이젠 혼자가 아니니까 책임감도 더 생겼고. 

Q.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결혼을 일찍 한 편인데, 아내분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거야? 

지금 아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아. 2014년 여름, 5년 정도 사귀었던 첫 여자친구와 헤어졌는데, 그때 진짜 힘든 시간을 보냈어. 그땐 자존감도 낮았었거든. 여자친구가 없으니까 나에게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그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도 다니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그렇게 이것저것 경험하고 다니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 그러면서 많이 나아졌던 것 같아. 그전보다 스스로가 멋있어졌다고 느껴졌고.


수많은 여행 사진들 중 Tony와 함께 한 뉴욕 여행 사진만을 전해 받았다.(신혼여행 같다..ㅎㅎ)


Q. 그럼 그 여행 이후에 지금의 아내분을 만난 거야? 

응. 라스베이거스에서 OKTA(세계한인무역협회) 행사가 열렸었는데 거기서 처음 와이프를 만났어.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 지금의 와이프만 눈에 들어오더라고. 정말 똑똑하고 지혜롭고 너무 아름다웠어. 나와 비슷한 가정 환경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말도 정말 잘 통했어. 그러면서 ‘아 정말 이 여자는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Q. 개인적으로 나는 가능한 한 일찍 결혼을 하고 싶은데, 먼저 결혼한 친구로서 결혼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할 것! 그래야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 같아. 

Q.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혹시 본인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다면, 꾸준히 고쳐 나가야 하는 것 같아. 항상 성장하려 노력하고! 그렇게 성장한다는 느낌이 들면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 나도 항상 노력해. 

Q. 어떤 남편, 어떤 아빠가 되고 싶어? 

‘나는 커서 아빠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롤모델 같은 아빠이고 싶어. 아내에게는 믿고 기댈 수 있고 힘들 때 힘이 되는 남편이고 싶어. 물론 아이들에게도! 




Q. 이전 인터뷰이가 남긴 릴레이 질문! 당신의 이번 한주는 안녕한가요? 

아니. 진짜 바빠서 죽을 것 같아. 회사를 계속 다니는 와중에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어머니 가게도 도와드리고 있고.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야.

Q. 다음 인터뷰이에게 남기는 릴레이 질문?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꼽는다면?" 

그리고 하나 더! “실패를 두려워하는 편인지?” 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거든. 근데 창업을 한다고 하면, 실패가 두렵지 않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서. 

Q. 그 질문에 본인이 대답해본다면? 

나 자신과 가족과 그리고 친구들. 

Q. SNS에 명언이나 좋은 글귀들을 많이 올리는 것 같아. 인터뷰 독자들에게도 네가 좋아하는 영어 명언 하나, 한국어 명언 하나만 공유해줘. 

1) "Everything you've ever wanted is on the other side of fear.(당신이 원해온 모든 것은 두려움 저편에 존재한다.)"
2) “알 수 없이 시작하고 잊을 수 없이 끝내는 것”, "연약할 때 강하고, 무서울 때 용감하고, 승리할 때 겸손하라." 

Q. 마지막으로, 묘비명을 남긴다면 뭐라고 남기고 싶어? 

Lost but never forgotten. 
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기억될 사람.


벌써 <사소한 인터뷰> 팀원이 된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많은 지인들이 물었다. '뭐가 재밌어서 하는 거야?'

생각해보면 인터뷰 팀원들도 좋고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았던 건 인터뷰이의 고맙다는 한 마디였던 것 같다. 인터뷰 당일 본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줘서, 그리고 그 이야기를 예쁘게 정리해줘서 고맙다는 말. 뭔가 선물을 받은 느낌이라는 그 말이 좋았다. 그 희열이 이 바쁜 와중에도 밤새 인터뷰 글을 정리하게 만드는 것 같다.

Tony도 인터뷰가 끝나고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참 많이도 해줬다. <사소한 인터뷰>에 대한 칭찬도 함께. 진심이 담긴 칭찬들로도 충분히 고마웠는데, 이렇게 좋은 <사소한 인터뷰>를 미국에서도 한 번 진행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던져줬다. 이번 인터뷰는 그렇게 미국에서 진행됐다. 참 고맙다. 말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진행해줘서. 그리고 내가 해준 것은 진심으로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듣고 글로 정리해준 것뿐임에도 이 '사소한' 인터뷰를 좋아해 줘서 내가 더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이번 인터뷰는 Tony의 도움을 받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위 글은 Tony가 지민이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을 살아가는 PD, 김상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