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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Mar 08. 2017

'오늘'을 살아가는 PD, 김상아

2015년 12월 20일의 기록

해외 여행을 하다 보면, 특히 유럽을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서 살면 참 좋겠다'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푸른빛 하늘과 바다마저도 여유로워 보인다. 이 때문인지 해외에서 사는 것이 로망인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실제로 해외 취업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런데 언니는 다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이탈리아에서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원래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PD로서의 삶을 택했다. 신기하면서도 의아했다. 왜 정말 좋아 보이는 그 자리를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까. 몇 달 전 이탈리아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문득 언니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Q.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평소에도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지 궁금해.


컨디션이나 상황에 따라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는 때가 있는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많은 편이야. 이제 새로 들어가는 프로그램에서 코너를 하나 맡게 됐거든. 코너 PD가 되면서 업무도 바뀌고 동시에 책임도 커지니까, 생각도 조금 많아지는 것 같아. ‘내가 잘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들.


Q. <사소한 인터뷰>의 공식 질문이 있어.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해 본다면?


나는... 물 같은 사람인 것 같아. 차가운 면도 있고, 데우면 데워지고, 식히면 식혀져서. 그리고 이건 나의 종교와 맞지 않는 이야기지만 사주팔자에 물이 많대.(웃음) 그래서 불의 사주를 가진 사람과 안 맞는 경우도 있었어. 대표적인 예가 우리 엄마야.



PART 1. Lambrate, Milano


Q.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삼성 전자에서 근무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가게 된 거야?


기구한 운명인데, 우선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갔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돼. 사실 난 어릴 때부터 외국에 살고 싶은 생각이나 로망은 없었어. 그런데 엄마가 교환학생은 꼭 갔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 영향으로 대학생 때 교환학생을 가게 됐어. 그렇게 가게 된 네덜란드에서 여행을 다니며 놀고 있었는데,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현지에 있는 삼성 전자에서 인턴을 하게 된 거야. 한인 인턴은 공고를 내서 뽑지 않고, 알음알음 뽑았었거든. 그때가 스물두 살이었는데 주로 밥 나르고 그래서, 별명이 밥사라(영어이름)였지. 그렇게 9개월 정도 인턴 생활을 했었어.


Q. 그럼 한국에 돌아와서 정식으로 삼성전자 입사를 준비했던 거야?


아니 그건 아니었어. 교환학생을 4학년 1학기까지 하고 돌아오니, 취업이 날 기다리고 있더라고. 막학기에 혼자 외로이 여기저기 원서 넣을 준비를 하며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있었어. 그때 술도 엄청 많이 마셨고.(웃음) 그랬던 찰나에 네덜란드 법인장이었던 분께서 이탈리아로 옮겨가시면서 연락을 주신 거야. “여기 지금 한국인을 모으고 있는데 너 올래?”라고. 그렇게 불러주시니 내가 얼마나 기뻤겠니. 안 그래도 스트레스받고 있던 참이었는데.


Q. 별도의 채용 과정 없이 정직원으로 뽑힌 거야?


당시에 대부분 그렇게 부르신 것 같아. 나를 포함해서 예전 네덜란드 법인에 있던 사람들이 4명 정도 왔었어. 주재원이 아니라 현지 채용 형태로 뽑는 사람들은 그런 경우가 많아. 물론 현지에 살고 이탈리아어도 잘 하는 한국인을 뽑으면 더 좋겠지만, 이탈리아 유학생들은 대부분 성악이나 디자인을 공부하러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삼성 전자에서 일할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아무튼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 


[네덜란드 교환학생 종업 파티]
[네덜란드 교환학생 중 했던 삼성전자 인턴]


Q. 원래 삼성 전자에 입사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


원래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웃음) 취업 준비야 여기저기 다 했었지만, 운이 좋게도 본격적으로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연락을 받았어. 좋은 기회가 주어졌던 것 같아. 그리고 그 나이 때는, 이탈리아에 있는 삼성 전자에 다닌다고 하면 ‘이야’해주는 다른 사람들의 영향도 컸던 것 같아.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들 좋다고 하니까 ‘진짜 좋은가 보다’, ‘하다 보면 뭔가 좋은 게 있겠지’라고 생각했어.


Q. 근데 언니 대학 때 전공은 뭐였어?


전공은 영어학. 우리 대학교엔 영어 학부가 있고, 그 안에 영문학과·영어학과·통번역학과가 있어. 사실 영어학과는 대부분 영어 선생님 되려고 오는 경우가 많았지.


Q. 그럼 이탈리아 삼성 전자에서는 정확히 어떤 일을 했었어?


SCM(Supply Chain Management) 코디네이터. 생산과 영업의 중간다리 역할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 어떤 모델을 몇 개 팔지 생산 쪽에 알려주고, 영업 쪽에는 어떤 모델이 얼마나 생산 가능한지 알려주고. 이런 중간 역할, 본사와 현지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SCM 코디네이터들은 다 한국인이었어.


[이탈리아 회사 워크숍 중 찍은 단체사진]
[이탈리아에서 떠나기로 한 후, 회사 사람들과의 환송 저녁]


Q. 일은 어땠어? 잘 맞았어?


일은 나름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했었어.


Q. 그 일의 어떤 점이 좋았어?


글쎄.(웃음) 삼성을 다니면 좋은 점이 그냥 삼성을 다닌다는 거야. 부모님께서 “우리 딸 삼성 다녀”라고 하실 수 있고, 내가 “나 삼성 다녀”라고 할 수 있다는 것.


그 외에는 해외 지사에서 한국인을 뽑은 이유가 있는 것 같아. 한국 사람처럼 일할 사람이 필요한 거야. 물론 한국에 비하면 널널한 편이지만, 외국이라고 해서 칼퇴근하지도 않고 똑같이 눈치 보고 똑같이 회식하고 한국식으로 일하거든. 주말에도 쉰 적 몇 번 없었고. 그렇게 만 4년 일했어.


Q. 한국 기업의 해외 지사에서 근무해보았던 경험자로서, 개인적으로 이 길을 추천해주고 싶은지?
 
이 길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추천해주고 싶어. 거기서 가정을 꾸리고 살 생각을 한다면 그만큼 좋은 곳이 없을 것 같아. 사실 내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 한국 삼성 다니는 분들 중에 아예 이민 온 분들도 있었어.


Q. 일 외에,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은 어땠어?


이탈리아에서 사는 건 계속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어. 내가 이탈리아어를 잘 못하니까 100% 융화될 수가 없는 거야. 친구도 다 외국인 친구를 사귀거나, 영어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사람을 만나거나, 아니면 한국 사람을 만났지. 약간 장외 인간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어.

그래도 생각해보면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제일 친하게 지냈던 언니 덕분에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언니였는데, 그 언니랑 같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어. 지금도 연락하면서 잘 지내고 있고.


[이탈리아에서 의지하며 지냈던 언니의 언니:)]


Q. 그렇게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어?


나는 거기서 평생 살 마음이 없었던 것 같아. 가족도 다 한국에 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느 한순간 딱 든 생각이 아니라, 뭔가 점점 쌓였던 것 같아. 그중에 하나가 뭐였냐면, 내가 밀라노에서 세례도 받고 성당을 열심히 다녔었는데 그때 그 성당에 계신 신부님과 정말 친하게 지냈었어. 그러다 신부님께서 한국으로 돌아가셨고, 공교롭게 그때쯤 법인장님도 임기가 끝나서 브라질로 가셨어. 친했던 유학생 친구들도 하던 공부가 끝나니까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로 유학생활을 이어갔고.


Q. 언니가 예전에 타지 생활이 좀 외로웠다고 했었잖아. 이런 류의 외로움이었어?


그렇지. 외국 생활이라는 게.. 뿌리내리고 살지 않으면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언제든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인 거잖아. 그래서 사람들과 아무리 정을 나누고 잘 지내도, 그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버리면 그만인 거야. 그게 약간 허무하더라고. 내가 여기서 무언가를 이루고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삶이 완전하지 않은 느낌. 정착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


Q. 만약에 그때 거기서 계속 살 사람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계속 살았을 것 같아?


음.. 그러면 살았을 것 같아. 그리고 그냥 PD는 포기했겠지. 그때 한국에 돌아가면 PD 시험 한 번 보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거든. 개콘 PD 될 거라고 지껄이고 다녔어.(웃음) 근데 4년 정도 지나니까 ‘이제 와서 뭘 하나’라는 생각에 포기하려고도 했었는데, 만약 그때 그곳에 가족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면 계속 살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



PART 2. 서울, 상암동


Q. 한국에 오니 비교적 덜 외로운지?


처음엔 좀 외로웠지. 왜냐면 내가 4년 동안 한국에 없었고, 그동안 친구들은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빴기 때문에 처음엔 만날 사람이 없더라고. 한국 올 때마다 가끔씩은 봤지만, 가끔 만나는 것만으로 깊이 있는 관계가 계속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가족들과 떨어져서 서울에 계속 혼자 살았어. 부모님께서는 내가 경력을 이어서 바로 취직하기를 바라셨거든.


Q. 그래도 요즘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잘 모르겠어. 내가 의식적으로 외로움을 안 느끼려고 하는 것 같아.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별로 없기도 하고. 회사 편집실이 붙어있는데 옆방에 나 같은 사람들이 다 갇혀 있어서 외롭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웃음) 혼자 오래 살아서 적응해버린 걸 수도 있고. 아무튼 요즘은 외로움을 많이 느끼진 않는 것 같아.


Q. 다음 진로로 PD를 선택한 이유? PD가 언제부터 되고 싶었어?


이탈리아 간지 1년 됐을 때? 불과 1년 만에 꿈이 생겼어.(웃음) 그냥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한국 프로그램 다운로드해서 보는 게 낙이잖아. 그런 거 보면서 ‘나도 이런 걸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내가 개그콘서트를 진짜 좋아했거든. 개콘 PD가 되고 싶었어.

또 오랫동안 쾨쾨 묵은 꿈을 한국에 온 김에, 어차피 새로 취업을 해야 한다면, 새로운 직장이 아닌 새로운 '직업'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었어. 전문 직업을 갖고 싶었거든. 부품 같은 일 말고.


Q. 이탈리아에서 했던 물류 쪽 일과 지금 하고 있는 PD 일의 만족도를 비교해본다면?


PD 일의 만족도가 훨씬 높지. 그때는 마지못해 하는 일이었지만 이건 마지못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나는 만족해. 성취감도 더 높고.


Q. 사람마다 체감하는 게 다를 거라 생각하는데, 언니가 느끼기에 PD 생활은 힘든지?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창작의 한계가 오는 순간이 있을 테고, 그때는 힘들지 않을까 싶어. 아직까지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아.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있었어. 그전에 회사를 다녀봤으니까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 건지 알아서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어.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이 정도는 겪어야 해’ 하고 약간 체념했던 것 같아. 큰 기대는 안 하고. 

그래도 힘든 순간을 꼽자면, 나만 힘든 느낌이 들 때. 평소에 후배들한테 ‘제일 힘든 게 혼자 힘든 거’라는 말을 하곤 해. 같이 힘들면 힘든 게 아닌데, 혼자 힘들면 진짜 힘들거든.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이런 느낌이 들 때 더 힘든 것 같아.


Q. 힘들 땐 어떤 생각으로 버티는지?


‘다 지나가겠지’하는 생각을 해.


Q. 언니가 생각하는 PD 일의 매력은? 소소한 거여도 좋아.


촬영 나가면 어쩔 수 없이 굉장히 활발해져야 하잖아. 어쨌거나 협조를 계속 이끌어내야 하는 일이니까. 그런 상황에 나를 몰아넣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좋은 것 같아. 그리고 편집할 때는 내 마음대로 해서 인정받으면 기분 좋아. 선배님들께 보여드렸을 때 괜찮다는 말을 듣는 게 좋아서 그 말 들으려고 밤새 편집하기도 해.


[제작 발표회, 야외 촬영, 그리고 스튜디오 녹화. 근데 피부 진짜 뽀얗다 언니.]


Q. 벌써 3년 차인데, 처음 입사했을 때와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인턴 때 본인 모습을 돌아보면 어때?


진짜.. 그때 선배들이 얼마나 짜증 났을까 싶어(웃음). 얼마 전에 인턴으로 온 분들을 보면서 ‘그때 선배들도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싶었어. 난 정말 잘해주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짜증을 내고 있는 거야. ‘이렇게 하면 떨어질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랬던 것 같아.

그리고 인턴 때와 달라진 건, 일단 편집과 사무 처리 능력이 늘었지. (성격도 달라졌어?) 성격은 이탈리아에 있을 때 더 나빴어서, 나빠졌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냥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바뀐 건 있는데 직업 때문에 성격이 바뀐 것 같진 않아.


Q. 언니는 회사 내에서 어떤 사람(선배, 후배, 동료)이고 싶은지?
 
나는 우선 ‘척’하는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이 싫어. 착한 척, 좋은 사람인 척, 잘하는 척. 사실 척하면 그게 다 보이거든. 거짓말도 한 번 볼 사이가 아닌 이상 언젠가 알게 되어 있고. 그래서 적어도 난 그렇게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어. 그리고 일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고 싶어. 회사는 사람이 좋은 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진 않잖아. 회사에서는 자기가 맡은 일을 잘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그것들을 먼저 갖추고 사람들을 챙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지. 한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성공시키기보다는 이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싶다.”라는 말이 정말 와 닿았고 멋있어 보였어.



PART 3. 그다음 목적지


Q. 뻔하지만 기본적인 질문. 어떤 PD(연출)가 되고 싶은지?


음.. 나는 마인드가 약간 KBS1 TV 마인드인 것 같아.(웃음) 어르신들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Q. 어떤 ‘장르’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지? 예능? 드라마?


인턴 끝나고 최종 면접 때 냈던 기획안은 시트콤 같은 거였어. 한국의 미스터 빈 같은 1인 콩트가 그 기획안의 콘셉트였는데, 나중에 그걸 굉장히 잘하는 탁월한 배우가 있다면 해보고 싶긴 해. 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지만 그런 걸 만들어보면 재밌을 것 같아. 내가 원래 코미디 프로그램을 좋아하거든.


Q. 그 외에 PD로서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있다면?


도전...? 그건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PD가 된다는 목표는 이미 이뤘기 때문에, 그다음 단계는 아직 없는 것 같아. 지금의 나는 일단 코너 PD로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한 단계 나아가는 게 목표야. 일단 당장 눈앞에 있는 일들을 하기 급급해.


Q. 송이: PD, 자기 자신, 딸, 아내, 엄마의 역할 중 가장 잘 하고 싶은 것은?(지금은 아니지만 아내, 엄마가 되었다고 가정하고요.)


우선 지금은 좋은 PD가 되고 싶어요. 지금 제가 가진 역할들 중에서 그게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Q. 그럼 일 다음으로 본인에게 중요한 역할은?


그다음은 자기 자신. 그리고 나머지는 잘 모르겠어. 아직 결혼을 안 하기도 했고.. 사실 결혼 생각이 없는 건 아니고 좋은 사람 만나면 하고 싶기는 한데, 왠지 좀 늦게 할 것 같아. 지금은 조급함을 버리고 마음을 많이 비웠어.(한숨) 모르겠어. 묻지 마.(웃음)


Q. 청훈: 지금 PD 일을 만족하시지만, 그래도 PD가 여유 있거나 쉴 시간이 많은 직업은 아니잖아요. 쉬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시는지, 쉴 때는 주로 뭘 하시는지 궁금해요.


공교롭게 지금부터 2주 정도 쉬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저는 제가 꼭 쉬어야 할 양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제는 밖에 한 발짝도 안 나가고 집에서 게으름 피웠어요. 밥 대충 먹고 계속 누워있고 TV 보고요. 사람이 소진되면 꼭 충전될 시간이 필요한데, 특히 전 그런 시간이 더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그 외에 어느 정도 충전이 됐다 싶었을 때부터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좀 만나요.




Q. 이전 인터뷰이가 남긴 릴레이 질문. 꿈이 있으세요?


꿈이랑 목표랑 헷갈리면 안 될 것 같아. 나도 정확한 기준은 모르겠지만, 꿈과 목표는 조금 다른 것 같아. 난 목표는 확실히 있는데 꿈은 아직 없어. 목표 지향적이기 때문에 목표는 항상 있는데, 그걸 꿈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것 같아. 이전 인터뷰이도 아마 목표는 있지만 꿈이 없다고 느끼시는 거 아닐까.


Q. 꿈을 꼭 찾고 싶어?


꿈은 때가 되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 꿈을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Q. 다음 인터뷰이에게 남기는 릴레이 질문.


“자기 자신을 동물로 표현한다면?” 엉뚱한 질문을 해보고 싶었어. 어렵겠지?(웃음)


Q. 그 질문에 본인이 대답해본다면?


정작 난 생각 못 해봤네. 꼭 외형적으로 닮은 게 아니라 본인의 성향과 닮은 동물이어도 재밌을 것 같아. 음.. 성질이 더러운 동물 뭐 있지?(웃음) 고등어? 고등어 좋다. 고등어는 성질이 더러워서 빨리 죽어가지고 회로 먹기 힘들대. 나도 성격이 되게 급하거든. 그걸로 선배님께 지적받은 적도 있고, 후배들도 힘들어하는 것 같아. 일처리가 너무 느리면 미치겠어.


Q. 인터뷰를 마친 후 본인을 다시 한 마디로 표현해본다면?


고등어?(웃음) 나는 남이 뭘 시키면 빨리하고 잊어야 해. 시킨 일을 계속 떠안고 있지 못하겠어. 빨리해버리고 털어버리는 게 좋아. 남의 일을 가지고 오래 마음 쓰는 게 싫거든. 그래서 성격이 급한 것 같아.


Q. 죽고 난 후 남기고 싶은 묘비명은?


그냥 화장하면 안 되나? 쓰지 말고. 
(세희: ‘고등어, 죽다.’ 어때?) 
(웃음) 그래도 꼭 써야 한다면, ‘오늘만 산다. 오늘만 살다 가다.’



근래에 자신의 직업에 만족한다는 사람을 몇 명보지 못해서인지, 특별할 것 없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만족한다고 이야기하는 언니가 신기했다. 일단 자신에게 주어진 당장의 일부터 잘 해내고 싶기에, 꿈은 없어도 목표는 있다는 사람.

불교의 화두 중 ‘할 뿐’이라는 화두가 있다고 한다. 할 뿐. 하라. 그냥 한다. 자기 앞에 떨어진 일이 있으면 그냥 하는 것이 제일 잘 사는 방법이라고 한다. ‘나는 왜 이 짓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지 말고, 남하고 비교하지 말고. 내 앞에 떨어진 거 어쩌겠나. 내 앞에 그게 떨어져 있는 것을.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에 들었던 이 화두가 떠올랐다. 평온한 표정으로 “꿈은 때가 되면 떠오르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하는 언니를 보며, 꿈이 없다고 괴로워하기보다 오늘 주어진 일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언니를 보며, 어쩌면 이게 때를 기다리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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