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희 Feb 06. 2023

예능에 깊이를 더하는, 임경아

작년 말, <사소한인터뷰> 팀에 복귀했다.
2018년 여름, 일과 삶 모두에서 여유가 없어져 아쉬운 마음 가득 안은 채 졸업을 이야기한 후로 4년 만이다.

인터뷰 팀에 복귀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언니는 기쁜 순간보다는 힘들어서 바닥을 치는 순간에 나타나, 심리적 기반이 되는 말을 툭 남기고는 홀연히 떠나는 사람이다.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았던 스물일곱의 나에게 언니는 "네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인터뷰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아니야.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정리해 줄 만큼 똑똑하고,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큼 믿을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야."라고 해주었는데, 돌아보면 그 말을 계기로 인터뷰어라는 정체성이 내 마음에 크게 자리하게 된 것 같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복귀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가, 오랜만에 갔던 사소인 모임에서 문득 그게 지금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고 오랜만에 우리 인터뷰 팀을 보는데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중 하나가 여기 있는 느낌을 받아서.

늘 깊고 짙은 언니의 이야기를 <사소한인터뷰>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 설렌다.


<사소한인터뷰> 391번째 주인공, 임경아




안녕하세요. <사소한인터뷰> 독자들에게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10년 정도 예능 PD로 일했고, 그다음 10년을 고민하고 있는 임경아입니다.


“앞으로는 직업을 세 번 넘게 바꾸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불확실성이 커지며 앞으로는 직업 선택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뜻이겠죠. 제가 처음 방송국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PD는 그 이후의 직업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군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1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고, 저도 생각을 바꿔 앞으로의 10년을 다시 계획해 보고 있어요.


멋진 필모그래피를 쌓아 오셨는데, 혹시 그간 해온 작품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시즌 1, 2를 동료들과 함께 연출했고 그다음엔 <조인 마이 테이블>, <나의 계절에게>를 만든 ‘팀 아우아우’의 PD라고 설명하고 싶어요.


<사소한인터뷰>의 공식 질문이 있어요. 나를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지금 저는 ‘저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에게 앞으로의 10년, 나아가 그다음 10년까지 고민할 기회를 주고 있어요.



Part 1. tvN, 뜻밖의 여정


원래 시사교양 PD로 입사했는데, 어쩌다 보니 예능으로 커리어를 쌓게 되었어요. 시사교양 DNA를 가진 언니가 예능을 만들며 배운 점이 궁금해요.


“지식 소매상이 되고 싶었는데, 웃음 도매상이 되었다”라고 표현하면 사람들이 저의 여정을 빠르게 이해하더라고요.(웃음)


‘지식 소매상’이라면 한 가지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빚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지식이 팔렸는지’가 존재 가치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진 않을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 그런 사회가 더 건강하다고 믿고 있어요.


반면 ‘웃음 도매상’의 세계로 가면 도매가 되는 게 중요해요. 많이 파는 게 가장 중요하죠. 사실 ‘웃음은 이렇게 하면 잘 팔린다’라는 정답은 전혀 모르겠어요. 다만 많이 팔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며 만들어야 하는지는 배운 것 같아요. 예를 들어 TV의 경우 동시간대에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방송되는데, 마치 시청자들에게 종이비행기 100개를 동시에 날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같은 순간,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동시에 쏘는 거라 콘텐츠에 ‘현재성’이 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하죠.


매일같이 밤을 새웠던 편집실과 <삼시세끼> 촬영 현장
<윤식당> 촬영 현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도매상 근무 시절ㅋㅋ


웃음 도매상이 되는 과정에서 고통은 없었나요?(웃음)


있었죠. 저에게 영감을 주는 동료들을 ‘큰 그릇'이라고 표현할 때가 있는데요. 그에 반해 저는 조그마한 에스프레소 잔 같은 사람이에요. 벤티 사이즈인 사람들 옆에 있으면 제가 에스프레소 잔이라는 것을 더욱 명확히 알게 되죠. 에스프레소 잔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아메리카노를 팔아야 하는 업장에서 에스프레소 잔으로 살아남는 건 어려운 일이었어요.


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내가 이 일에 본질적으로 맞지 않다는 걸 알면서, 동시에 나에게 확실히 도움이 될 거라 믿으며 가는 것이 힘들었어요. 저라는 사람은 하나인데 그 안에서 매 순간 끊임없이 갈등하는 두 자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게 어려웠을 텐데, 어떤 힘으로 버텼는지 궁금해요.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배울 점이 많은 동료를 만났어요. 좋은 동료를 만나 ‘왜 이 일을 하는지’ 물으면 이 일이 너무 재미있다는 거예요. ‘이상한 사람 같지는 않은데, 이 사람이 느끼는 재미가 뭔지 한번 알아볼까’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운이 좋았죠.


정말 많은 분들이 계신데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메인 연출하신 박희연 CP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저의 직업적 성장뿐 아니라 인격적 성장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신, 제가 사랑하는 상사예요.


전체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드는 편으로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2> 터키 편을 꼽았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예능 PD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꿈꾸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왔어요. PD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던 제가 걷고 싶었던 길이기도 하고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모두가 좋은 기회를 얻고 싶지만,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미나상: 좋은 기회가 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회 초년생으로서 어떻게 좋은 기회를 만나거나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요.


예전에 ‘왜 이 프로그램은 잘 되고, 비슷한 소재의 다른 프로그램은 잘 안됐을까’ 고민해 본 적이 있는데요. 잘 되는 프로그램을 옆에서 보니 ‘우연’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기획에 많이 포함시키더라고요.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내 생각의 바깥에 있는 것들이요.


실제로 PD님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여쭤봐도 선배님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어요. “모르겠다”, ”망할 것 같아”, “우리 진짜 망했어”라며 불안감에 발발 떨며 다 같이 촬영장에 가는 거예요. 그런 순간만 보면 조금 바보 같아 보일 때도 있었어요.(웃음) 물론 밸런스가 중요하기 때문에 확실히 믿고 가는 구간은 있었어요. 예를 들어 음식 조리하는 부분은 무조건 먹음직스러운 그림이 나오니까 그 구간은 믿고 가는 거죠. 나머지는 “망하면 1분, 잘 나오면 10분이다”라는 마음으로 여지를 열어두는 프로그램이 잘 되더라고요.


무언가 끼어들 틈 없이 너무 타이트하게 계획을 짜면 취약성이 강화돼요.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내가 생각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니까요. 비효율처럼 보이는 우연의 요소가 들어갈 틈을 내 삶에 만들어두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게 잘 되는 PD의 비밀 같아 보였는데.. 본질은 바보일 수도 있어요.(웃음)


미나상: 혹시 입사했을 때와 퇴사했을 때의 가장 큰 변화를 꼽는다면 어떤 걸까요?


모든 직업이 똑같을 것 같은데, 들어갈 때는 나만 알았고 나올 때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해야만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나아가 앞으로도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성장이고 변화예요.


오랜 고민을 한 끝에 결국 어떤 계기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나요?


이직을 결정하고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며 대체로는 웃었지만, 많이 울기도 했어요. 그래도 헤어지는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이 선택을 안 할 수는 없었어요. 너무나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몸담고 있는 곳에 대해 자꾸 의심을 하는 제 자신이 싫었거든요. 의심하는 제 모습을 없는 것처럼 취급할 수도 없었고요.


- 주로 어떤 의심이었어요?


‘시청률, 데이터가 왜곡되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예능을 만들면 좋은 점 중 하나가 대중이 어느 내러티브 구간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지루함을 느끼는지 일주일에 한 번씩 피드백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특히 리얼리티 예능은 리얼 타임을 얼마나 재미있게 압축하느냐가 창의성과 결부되어 있어요. 압축한다는 건 가장 재미있는 순간만 뽑아낸다는 뜻이니까, 사람들이 어느 구간을 재밌어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아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방송 콘텐츠를 TV가 아닌 다른 매체로 보게 되면서, TV 시청자를 표본으로 한 데이터가 대중의 반응이라고 믿어도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실제로 바이럴이나 파급력을 보면 시청률과 다를 때가 많았어요. 대표적으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가 그랬죠. 여러 해에 걸쳐 많은 사례를 보며 ‘데이터를 통해 피드백을 받지 못하면, 창작자로서 더 성장할 수 있을까?’, ‘결국 누군가의 감에만 의존하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커졌어요.


- 건강한 의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퇴사 직전에는 대학원을 병행했는데, 그때 의심이 건전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배웠어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사람들의 합의에 기반한 것이고, 영원불변한 진리는 없다는 것을 대학원에 가서 깨달은 거죠. 그전엔 왜 그걸 까먹고 살았나 모르겠어요. “선대 연구자,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서 보는 건 좋지만 때론 거인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모를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Part 2. 왓챠, 나의 계절에게


다음 회사로 왓챠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먼저, 앞서 말한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곳을 찾고 있었고요. 두 번째로 저에게 팀을 꾸릴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곳을 원했어요.


물론 이전 회사에서도 팀을 꾸릴 수 있었지만, 큰 회사인 만큼 자유도가 높진 않았어요. 예를 들어 실력이 뛰어난 분이어도 연차가 낮다면 팀원으로 모셔오기 힘들었죠. 하지만 왓챠에서는 ‘그게 뭐 어때서?’라는 반응이더라고요. 팀을 꾸리는 것뿐 아니라 일하는 방식도 비교적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콘텐츠 업계에서는 흔하지 않은 ‘주말에는 일하지 않는다’와 같은 룰을 정할 수 있었죠. 여러모로 왓챠에서는 제 생각대로 움직여볼 수 있는 여지가 많았어요.


팀 아우아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고 있어요. ‘팀 아우아우’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배경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시청자는 맨 앞에 있는 연출자 한 명만 알아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시청자가 아닌 제작자의 경우 내가 이 작품을 누구와 함께 어떤 기반 위에서 만들었는지 잊으면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 부분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며 일한다는 것을 동료들에게 꼭 전하고 싶었어요. 제가 유명하거나 특출난 PD가 아니라, 그게 팀원들에게 저를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어요.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각자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 ‘팀 아우아우’로 모여 다시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인터뷰 내내 언니의 애정이 뚝뚝 묻어났던 '팀 아우아우'


아무래도 프로그램에 팀의 색이 많이 묻어 있기 마련인데, 팀 아우아우는 어떤 색을 가진 분들이 모여 있나요?


제 인터뷰니까 제 중심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웃음) 한 분 한 분 팀으로 모시며 제가 지표로 삼았던 것이 하나 있어요.


‘다양성을 폭넓게 수용하는 멤버가 있으면, 팀의 성과가 향상된다’는 내용을 조직 관련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요. 제가 지식 소매상에서 웃음 도매상으로 성장한 케이스이다 보니 취향이 특별하기도 하고, PD 일을 시작한 지 3년 차쯤 됐을 때 난청이 왔어요. 지금도 귀가 잘 안 들려서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는데, 여러 측면에서 “경아는 좀 특이해”라는 말을 일하며 꽤 자주 들었어요. 그런 저의 특이함을 오히려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는 그걸 지표로 삼았어요. 이 사람들과 함께하면 도매를 잘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작고 소중한 프로그램은 반드시 잘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 이야기해 준 두 가지만으로 제가 아는 언니의 유니크함을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아요.(웃음)


그런가요.(웃음)

‘패닉셀링’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주식할 때 모두가 ‘가격 더 떨어지기 전에 다 팔아야 해’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워해도, 저는 절대 ‘패닉셀링’을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대세에 맞춰가야 일이 잘 풀릴 때도 많지만, 모두가 큰 흐름을 따라가려고 할 때 주로 “잠깐만요”를 외치는 역할을 해요. 뭔가 이상하면 위험 경고가 빨리 울리는 편이라 “이 부분은 위험한 것 같은데 더 알아봅시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고요.

제 예측이 맞을 때가 많은데 그럴 때 굉장히 통쾌하죠. 문제는 늘 나중에 가서야 밝혀지기 때문에 당시에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경아 또 저래”라고 한다는 거예요.(웃음)


팀 아우아우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어떤 명제에 대한 반발로서만 생기는 깨달음도 있는 것 같아요. ‘예능의 역할이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그리는 것이라면, 왜 그 범위에 이미 행복하고 모든 걸 가진듯한 사람들만 포함되어야 할까?’, ‘왜 모두가 힘들 거라 예상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다루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조인 마이 테이블>을 통해 사람들이 쉽게 행복할 거라 상상하지 못하는 이주민들의 행복한 순간을 온전히 조명해 보고 싶었어요.


제주부터 안산, 평택, 김해, 광주, 인천까지. 국내 곳곳을 누비며 촬영한 <조인 마이 테이블>


팀 아우아우에서 만든 프로그램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편은 어떤 편이에요?


<조인 마이 테이블> 안산 편 되게 좋아해요. 안산이라는 도시는 아름답게 볼 생각조차 하지 못 한 곳이잖아요. 사람들이 무섭고 겁난다고 생각하는 공업 도시에도 굉장한 맛집이 있다는 걸 어떻게 통쾌하게 보여줄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리고 안산에서 인도네시아의 볶음밥 요리 '나시고렝'을 설명해 주신 멜다 씨가 정말 멋진 분이어서 더 기억에 남아요. 초기 준비 단계에서 자주 뵙고 이야기 나누며 반했죠.


공업 도시 안산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해준, 왓챠 <조인 마이 테이블> 안산 편



Part 3. 앞으로의 10년, 긴 호흡으로 기획 중


원래도 배우는 걸 좋아하는 언니지만, 요즘은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 대학원에 다니며 그야말로 일처럼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의 대학원에 들어가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이 전공을 선택하게 된 건 좀 특이한 계기였어요. tvN에서 오랜 기간 프로그램 기획을 했던 때에 우연히 ‘미래학’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미래학이라는 게 아직 ‘미래 연구’라고 불릴 만큼 학문으로 제대로 정의 내려지지 않은 단계였어요. 흥미가 생겨 더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카이스트가 가장 대표적인 곳이었고, 한번 공부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지원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미디어는 테크놀로지와 함께 발전하니까, 테크놀로지를 모르면서 미디어를 잘 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요즘 수많은 인풋을 넣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천착하고 있는 주제가 있나요?


'더 나은 일하는 방식’에 꽂혀 있어요. 왓챠에 와서 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을 처음 적용해 보게 되었는데 굉장히 새롭고 흥미로웠어요. 기존에 일해온 방식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일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도 많이 봤고요. 지금은 ‘애자일’, ‘스크럼’ 같은 개념이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고 정확히 무엇인지 깊게 파고 있어요.


<사소한인터뷰> 글 중 ‘우피’ 공동창업자분 인터뷰를 읽고 왔는데요. “스타트업과 IT 업계는 클리어해서 좋다"라는 말이 와닿더라고요. 싹 밀어버리고 교통정리해서 만든 신도시 있잖아요. 스타트업이 꼭 신도시처럼 해묵은 문제없이 시작하는 업계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동안 저는 소격동 골목길에서 일해왔는데(웃음) 혹시 신도시의 좋은 점을 골목길에도 이식할 수 있을까 싶어 일단 애자일부터 파고 있어요.


나영: PD가 아닌 다른 길을 열어두고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콘텐츠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가치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10년간 투신하며 그 가치를 믿었고, 여전히 그 가치를 믿고 있죠.

다만 ‘콘텐츠’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 같아요. 잘 파는 것과 좋은 메시지를 담는 것 둘 다 중요하지만, 두 가지가 늘 같이 가는 건 아니거든요. 잘 팔린다고 꼭 메시지가 좋은 것도 아니고, 메시지가 좋다고 잘 팔리는 것도 아니죠.


요즘 들어 ‘잘 파는 것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의 비중이 99:1인 회사만 남은 건 아닐까’하는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아 고민이에요. 스스로 ‘그럼 80:20이면, 50:50이면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며 제가 원하는 균형점이 어디인지도 고민하고 있고요.


다음 진로는 어디까지 다양하게 생각해 보고 있어요?


조금 추상적으로 대답하자면, 저는 팀으로 일하는 걸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일하며 이루는 사회적 성취에 관심이 많고, 정말 중요한 변화는 사회적 변화에서 온다고 믿어요. 그렇다 보니 혼자 일하는 건 선택지에 없었는데 혼자 일하는 것도 열어두고 이번 10년, 혹은 그다음 10년까지 생각해 보고 싶어요.


혼자 일하는 것도 괜찮아진 이유에 대해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혼자 일해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호기심이 생긴 것은, 생각해 보니 제가 회사를 나온 후로 생산수단을 잃었더라고요. 회사를 나온 것뿐인데 생산수단이 사라진 거예요. 물론 아이폰이 있으니 영상을 찍어볼 수 있겠죠. 하지만 유튜브, 드라마, 영화 모두 제가 생산해 왔던 것과 다른 물성을 가진 세계예요. 이런 경험을 하며 ‘누군가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생산 수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일하는 것이 그걸 찾아가는 방법 중 하나일 것 같고요.





이전 인터뷰이가 남겨준 릴레이 질문이 있어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된다면 어떤 언어를 배우고 싶으세요?”


프로그래밍 언어를 더 배워보고 싶어요. 배우고 있는 중이긴 한데 아직은 알파벳 떼는 수준이에요.


다음 인터뷰이에게도 릴레이 질문 하나 남겨 주세요.


원래 오늘 세희에게 가볍게 물어보고 싶어서 준비해온 질문인데, 조금 바꿔서 릴레이 질문으로 남겨도 좋겠네요.

“왜 인터뷰이로 선택된 것 같으세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 1년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궁금해요.


취직과 졸업요. 졸업하려면 책이나 논문처럼 물성을 가진 무언가를 써야 하는데요. 깊이 있는 논문을 쓰는 게 어려울 것 같아 책을 선택했는데, 아무래도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아요.(웃음)


문득 하나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혹시 ‘죽고 나서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라는 모습이 있을까요?


마침 어제 눈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메모해둔 생각이 있어요. ‘눈이 오는 걸 보며 불편함보다 아름다움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죽고 싶다’라고 적어두었죠. 하얀 눈을 보며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땅에 떨어진 눈을 보며 지저분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눈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이고 싶고,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눈 오는 날 메모해둔 생각들


예전에 저에게 “결혼식 같은 기쁜 일에는 못 가도, 장례식 같은 슬픈 일에는 꼭 함께하는 사람이고 싶다”라는 말을 해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어요.


책 <안나 카레니나>에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라는 내용이 나오잖아요. 행복과 달리 슬픔에는 정말 다양한 이유가 있어요.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슬픔을 꺼내어 표현하는 걸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그 다양한 이유들을 공들여 해석하고 마음을 맞대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인터뷰 글에 싣지는 못했지만,
PD를 준비할 때부터 예능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입사 초반 매일 울었다고 했다.
그때 언니는 10년 후 이렇게 훌륭한 커리어를 쌓게 될 거라 예상했을까.

삶에 우연이 들어갈 여지를 두면서도
스스로 '에스프레소 잔'인 것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이리도 깊고 멋진 예능을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우연히 알게 된 미래학, 일단 한번 지원해 본 대학원이 또 언니의 삶을 크게 바꾸고 있는 듯하다.
이전에도 그랬듯 10년 후의 모습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앞으로의 10년도 지난 10년처럼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언니의 시간을 함께할 수 있기를,
그렇게 언니의 깊이를 곁에서 배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는 차선이 아닌 최선, 김선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