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관심 없을 이집트 유물 이야기 #4
다소 외설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와 같이 가슴을 내놓고 ‘예수에게 수유하는 성모 마리아’는 콥트 기독교 계열의 벽화에서는 자주 나타나는 주제입니다. 대략 서기 5-6세 경으로 편년되는 이런 벽화들은 바로 전 세기까지는 이집트에서 여전히 번성하던 고대 이집트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시스 혹은 하토르 여신이 호루스나 호루스로 분한 파라오에게 수유하는 장면이 매우 빈번하게, 3D 속성을 갖는 석상이나 청동상 등으로도 만들어지거나 2D 속성을 갖는 부조로 그려졌습니다.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실에도 같은 주제의 청동상이 하나 전시되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는 이집트가 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된 이후에도 이집트에서는 계속해서 ‘신앙’으로 존재했었으나, 서기 391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 국교화를 시도하며 제국 내의 비기독교 종교 행위들을 금지시키는 칙령을 반포함으로, 4000여년의 역사 끝에 결국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럽쪽에서도 고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이 ‘수유하는 성모 마리아 Madonna Lactans’라는 주제가 한동안은 자주 그려졌었습니다. 특히 이 주제는 이탈리아의 투스카니 지방이나 이베리아 반도 쪽에서는 중세 후기 미술에서 흔하게 나타납니다. 다만 16세기 중반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성화에서 신체가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에 대해 교부들이 비판하기시작하면서 점차적으로 이 주제가 그려지는 빈도수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