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 Jul 20. 2024

주말마다 무급으로 카페알바하는 직장인

주변에서 미쳤다는 소리 들으며 꿈 이루기

나는 2년 안에 개인 카페를 창업하겠다는 목표를 갖고있는 직장인이다.


처음 카페 창업을 결심하였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기로 한 것은 “입장 전환”이었다. 그동안은 수많은 카페들에 소비자, 즉 손님으로써 그 커피, 공간, 서비스를 경험했었다면 이젠 과열된 카페시장에 뛰어드는 개인 사업체 사장의 입장으로 탈바꿈이 필요했다. 적은 자원으로 개인 카페의 사장이 된다는 것은 내가 해야할 역할이 많다는 의미였다. 마케팅팀, 회계팀, 메뉴개발팀, 인테리어아트팀, 인사팀, 홍보팀, 리걸팀, 바리스타 모두 내가 잡은 틀안에서 홀로 역할을 전환해가며 해내야했다.


참고로 나의 백그라운드를 잠깐 설명하자면, 나는 글로벌 1위 뷰티기업에서 마케터로 6년째 재직중인 직장인이다. 백화점에서 제일가는 브랜드와 제품들을 개발하고, 커뮤니케이션으로 제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판매까지 이르는 과정을 모두 경험해보았다. 특히 제품의 재고관리나 수급, 화장품법에 의거한 라벨링까지도 모두 언젠간 카페 운영에 큰 도움이 될 자산들임을 알고있지만 내게 턱없이 부족한것이 한가지 있었다. 바로 커피에 대한 전문성이었다.


사실 나는 세상에 맛있는 커피를 알리기 위한 소명으로 카페를 열고싶은것은 아니다. 개인카페를 열고 그 가게 안에서 매일을 사랑하는 커피와 베이커리로 채우는 그런 사장님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난 개인이 만들었지만 프랜차이즈처럼 체계적이고 프로페셔널한 느낌이 가득한 공간, 서비스 그리고 메뉴를 제공하고싶고, 여기서 “개인”이 중요한 이유는 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특한 브랜드를 탄생시키기 위해서이다.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 사업체를 뻗어나가게 하며 입체적인 브랜드로 확장해나가기 위한 재미있는 도전으로써 이 카페 창업 프로젝트를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당연히 지켜야할 모든 기본사항들은 평균 이상으로 지켜내면서 나만의 가치를 더해야 그 가치가 의미있는 것 아닌가. 물론 약점보단 강점에 집중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는 세상이지만, 가끔 “봐봐 우리 가게는 이런이런 엄청난 장점이 있어. 그러니 저정도 단점들 (커피맛이 될수도 있고, 불편한 의자나 더러운 화장실 등)은 넘어가줄 수 있지?” 라며 의기양양한 카페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그 단점들 때문에 저 대단한 강점이 얼마나 가려지는지 안다면 조금이라도 더 노력해서 평균은 맞출텐데.


그렇기때문에 나는 내가 못하는 부분들, 즉 카페라는 현장에서 직원으로써는 어떤 일들을 해야하는지, 바리스타로써는 어떻게 맛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을지, 메뉴개발을 위해 갖춰야할 향미 능력을 어떻게 키우는지 등을 먼저 배웠다. 서론이 정말 길어졌지만,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무턱대고 찾아간 동네 카페의 사장님에게 커피를 가르쳐달라고 선전포고(?)한 이야기이다.




나는 카페 없이는 생활할 수 없을만큼 지나친 카페 애용자였지만, 한번도 카페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카페 뿐만 아니라 음식점, 피씨방 등 알바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을 해본적은 없었고 대학생 내내 영어 과외를 하다가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 따라서 내 첫 목표는 카페에서 일을 배워보기였다.


물론 추후 내 카페를 열게되면 내가 직접 현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적겠지만, (내 지향점은 차라리 처음엔 돈을 덜 벌더라도 인건비에 투자하여 매뉴얼 작업들은 알바생들의 힘을 빌리고, 나는 사장으로써 큰 그림을 보며 전략을 짜는 것이다) 그래도 초반에는 매장을 자리잡게 하기위해 상주해 있어야하니 꼭 배워야하는 부분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알바생들을 뽑고 교육하며 각각의 직원들에게 업무 가이드를 주려면 적어도 현장이 어떻게 굴러가고 운영되는지를 몸담아 경험해봐야하지 않겠는가.


대망의 사건일, 나는 퇴근 후 오랜만에 업데이트한 취준생 시절 써놨던 이력서를 출력하여 증명사진까지 붙여서 서류봉투에 담았다. 사실 내가 현재 재직중인 이 회사에 취업할때를 생각해보면 웃기게도 그 당시의 취업 준비보다 이번 경험이 훨씬 더 각잡힌 취업 준비였다. 외국계 회사였어서 그런지 내 현직장에서는 이력서 대신 자기소개 영상을 냈었고, 캐주얼하게 나에 대해 설명하는 2분짜리 동영상을 냈었다. 하지만 이번 케이스는 달랐다. 내가 동네에서 가장 커피를 맛있게 내린다고 자부할 수 있는 개인카페에 무턱대고 제자로 받아들여달라고 부탁하러 가는 입장이라, 부담감은 두배로 컸다.


나는 수요없는 공급을 극혐하는 입장인데 내가 딱 그걸 하러 가는거였거든.


사장이 아닌 예비 학생겸 직원 신분으로 카페에 들어서는 것은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이전까지는 그 카페가 그저 편안한 하나의 레저공간이었다면, 이번엔 무거운 공기가 누르는 전쟁터전같이 비장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내 속마음을 알리 없는 사장님은 이미 단골로 분류되어있는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며 주문을 받아주셨다. 내가 평소와 다르게 덜덜 떨며 주문한 후 바리스타 바 근처에 앉아서 멀뚱히 쳐다보자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와 음료를 내주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사장님”


얼마나 당황했을까.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바뀐 사장님의 표정을 보며 나는 한번도 느껴본적 없는 긴장감에 평소엔 절대 더듬지 않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제가 사실은 오늘.. 뭔가 여쭤보려 온건데, 아니 근데 물론 커피를 마시러 온 것도 맞고… 그러니까.. 하고싶은 말, 아니 부탁 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그게.. 저 커피를 배우고 싶습니다.“


내 마지막 말에 적잖이 놀랐던 사장님에게 쉴틈도 없이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커다란 서류봉투를 꺼내어 내밀었다.


”제 이력서에요. 연락처, 이름, 경력 다 있어요. 물론 커피 일과 무관한 화장품 마케팅 경력밖에 없지만, 그래도 제 분야에서는 제일가는 기업에서 많은 성과를 냈어요. 완전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는 일종의 레퍼런스 체크로라도 쓰실 수 있을것 같아서…”


알바생을 구하려던 것도 아닌데, 그것도 단골 손님이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각잡힌 이력서를 덜덜 떨며 내는 이 상황이 웃겼던걸까. 사장님은 소리내 웃으며 왜 이렇게 긴장했냐며 달래주었다. 그렇게 나는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에게서 매주 주말마다 5-6시간씩 일을 배울 수 있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카페 일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내가 너무나도 모르는 분야라서 혹여나 가게에 피해를 끼칠까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는 법, 커피를 내리는 원리, 추출 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원두의 향미 등 이론과 실전을 함께 배우며 나는 카페라는 공간에 천천히 녹아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두가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첫번째는 의외로 포스기 쓰는 법이었다. 이건 말그대로 어렵고 복잡해서가 아니라, 너무 당연하고 기본중의 기본처럼 보이는 서비스인만큼 조금이라도 버벅거리면 나 스스로 너무 바보같았기 때문이다. 고객일때는 무심하게 툭툭 포스기를 누르며 결제해주는 알바생들의 숙련도를 당연하게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앞에 서있는 이 고객 또한 당연히 내가 숙련된 손짓으로 빠르게 결제를 진행해줄거라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란걸 안다. 많은 메뉴들 사이에서 딱 고객이 원하는 메뉴를 바로 찾아내는것만 며칠이 걸렸다. 시간이 날때마다 포스기 버튼의 위치를 열심히 외웠지만 포인트 적립, 영수증 재발행 등 기출변형이 생길때마다 땀이 삐질삐질 났다. 그럴때마다 나타나서 도와주는 사장님에게 죄송하기도하고 감사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두번째는 우유 스팀을 치는 것이었다. 그 매장은 커피 메뉴가 다양하고 세분화되어있어서 메뉴가 정말 많았지만, 그래도 그런 음료 제조법은 무턱대고 외우면 됐다. 작은 메모장에 알아보기 쉽게 요약해두고 내 비법노트처럼 자주자주 들여다보며 메뉴 만드는 방법은 익혔다. 하지만 해도해도 쉽게 늘지 않는것은 맛있고 꼬소한 우유를 스티밍하는 일이었다. 우유 스티밍은 차가운 우유를 에스프레소 머신의 스팀 노즐의 뜨거운 압력을 이용하여 끓이는 과정인데, 우유 베이스의 따뜻한 음료를 만들 때 사용된다. 내가 매장에서 일했던 몇개월은 봄, 여름이었어서 따뜻한 음료를 만들일이 거의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더더욱 실력이 더디게 늘었다. 스티밍 포인트라고하는 노즐을 꽂는 지점, 우유가 빙글빙글 돌면서 공기와 혼합되어 부드럽고 실키한 텍스쳐로 만들어주는 롤링타임 등 우유 스티밍은 신경쓸 부분이 많았다. 조금이라도 오래 끓이면 우유 비린내가 났고, 덜 끓이면 애매하게 식은 맛없는 라떼가 탄생했다. 우유의 고소함이 원두의 풍미를 이끌어내주는 역할을 하는지 처음 알게되었다. 감사하게도 사장님은 하루에도 우유를 몇곽씩 내게 스팀 연습용으로 내주셨고, 일을 마무리하게 될 때 쯤에는 내가 직접 스팀친 우유로 손님에게 음료는 만들어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온갖 롤러코스터를 타며 카페에서 일을 한지 4개월이 지난 시점에 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사장님께 작별 인사를 했다. 너무 귀하고 값진 배움이었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카페라는 공간에서 일하며 대략적인 분위기를 익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커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싶었다. 카페 일을 그만두고 바로 바리스타 자격증 학원에 등록하였다. 그러고는 또 3-4달의 노력을 기울여 바리스타 자격증을 6개 취득했다. 이 과정은 다른 글에서 자세히 작성해볼 예정이다.


어쨋든 이 카페에서 일을 배웠던 시간은 내게 커피 외에도 소중한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주었다. 고객에게 행복을 전하는것에 진심이었던 사장님, 나와 함께 일했던 정식 알바생 분의 책 취향, 함께 했던 월마감 회의, 생일 파티, 뒤풀이. 나도 꼭 서로를 아끼며 시너제틱하게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과 카페 운영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출처 및 저작권은 MBC 무한도전에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