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정보를 머리에 때려박아
카페 창업하려면 바리스타 자격증 꼭 따야하나요?
시작하기에 앞서 이 질문에 대한 내 의견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간단히 결론만 말하자면 "왜 안따..?"이다.
바리스타 자격증은 국가 공인이 아닌 협회에서 부여하는거라 공신력이 부족하다거나, 커피의 커자도 모르는 사람도 한두달이면 쉽게 딸 수 있다는 이야기들로 바리스타 자격증의 가치를 폄하하는 내용들이 꽤 많다.
특히 예비 카페 창업자들에게 조언이라며 바리스타 자격증 딸 시간과 돈으로 현장 경험을 하라는 현직 카페 사장님들의 의견들도 있지만, 나는 꼭 바리스타 자격증을 공부하고 경험하고 득하는 과정을 가지길 추천하는 입장이다.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가장 큰 포인트는 고작 바리스타 자격증 하나만으로 절대 커피의 세계를 전부 다 알고 이해하고 고수가 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이 부분은 나도 동의한다. 근데, 정말 그들이 바리스타 자격증의 교육과정과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할 수 있을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알바로든 직장인으로든 사회생활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나를 가르쳐준다"라는 것이 얼마나 뼈져리게 감사한 일인지 알게되는 순간이 온다. 적당히 인수인계를 해주거나 가이드를 주는 것을 넘어서서 교육자의 신분으로써 오롯이 나를 이해시키기 위한 목표를 갖고 체계적으로 나에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일은 정말 돈을 주고도 사기 힘든 일이다. 가장 주요한 내용을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문 인력이 투입되어 체계를 짜고 교육자료를 만들었을지 생각해보면 돈을 주고서라도 그걸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커피 산업에 몸을 담을 각오를 하고있는 사람이라면, 이 교육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 얻어라. 얻으면 된다. 나도 무급으로 카페에서 알바하며 커피를 배우고 현장감을 익혔다. 그 가치는 또 다른 영역에서 엄청난 빛을 발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근데, 둘 다 하면 안돼? 현장경험도 하고, 바리스타 교육도 받으면 도대체 왜 안되냐는 말이다. 둘 다 해라. 수천만원을 쏟아부어서 카페 창업을 할 예정인데 고작 몇달의 노력과 몇백의 돈을 기초 교육에 투자하는게 어려운가? 그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사업은 끝을 안봐도 뻔하다.
오랫동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고해도 바리스타 자격증을 추천한다. 그 이유는 카페마다 추구하는 커피의 향미, 맞추고자하는 밸런스, 원하는 느낌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일했던 그 카페의 커피 레시피는 정석이 아닌 취향과 각색이 담긴 하나의 브랜딩된 커피이다. 창업자로써 내가 나만의 커피 브랜드를 만들고자한다면 기본중의 기본, 정석중의 정석은 제대로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단순하고 쉬운 음정의 노래들을 부르지만 실용음악과를 전공한 보컬리스트,
간단해보이는 작업물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미술가의 초현실주의 회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커피의 맛을 내지만 바리스타 자격증을 보유한 기본기가 탄탄한 바리스타.
내가 끼고 싶은 대열은 여기다. 나의 색을 찾으려면 이론적으로 뭐가 오랫동안 정석으로 여겨졌는지, 내가 만들고 먹을 이 원두들은 어떤 역사를 갖고있는지, 이 커피들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가 되는지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서론이 길어졌지만, 바리스타 자격증, 정확히 말하면 "바리스타"라고 커피협회에서 정의하려면 익혀야하는 기본 교육과정을 꼭 경험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몇달간 주말마다 동네에서 가장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카페에 가서 무급으로 일을 하며 배웠다. 한번도 카페 알바를 해본적 없던 내가 맨 처음 커피를 접한 방식이 이런 현장 경험을 통해서였다. 적당히 손에 일이 익어갈때 즈음,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제대로된 교육을 통한 이론과 실습을 배우는 것이었다.
결론 먼저 말하자면 나는 3달동안 총 6가지의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한국 바리스타 자격협회에서 주최하는 국내 바리스타 자격증 2가지와 미국과 영국 등 해외에서도 공신력을 갖는 SCA 바리스타 자격증 4가지를 취득했다.
- 한국 바리스타 자격 협회 (KBQA)의 커피제조마스터 1급
- 한국 바리스타 자격 협회 (KBQA)의 커피제조마스터 2급
-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SCA)의 CSP Barista Skills - Foundation
-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SCA)의 CSP Barista Skills - Intermediate
-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SCA)의 CSP Brewing - Foundation
-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SCA)의 CSP Sensory Skills - Foundation
이 각 자격증의 구체적인 교육과정, 시험방법 등에 대해 다루는건 이 글의 목표가 아니다. 사실 그런 정보는 정보성 블로그 몇개나 각 협회의 웹사이트, 바리스타 학원의 상담실에서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다. 내가 이 글에서 각 자격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정말 간단한 한(두)줄 평 정도이고, 오히려 개인적으로 느꼈던 배움들과 깨닳음을 공유하고싶다.
난 직장인의 신분이기에 퇴근 후 가깝게 갈 수 있는 학원을 찾았다. 강남역 근처에는 여러개의 대형 바리스타 학원들이 있었는데, 이 학원에서 원하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위해 교육받고, 실습을 하고, 실제 시험까지도 응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평일 수업들과 주말 수업들이 있었고 다양한 타임들이 있었는데, 가격은 학원마다 수십만원씩 차이가 났다. 수강료는 학원마다 다르니 구체적으로 말하기 조심스러우나 한 커리큘럼을 완료하는 것이 약 100만원 전후였던것 같다. 따로 내야하는 시험 응시료도 꽤 비쌌는데, 자격증 종류마다 다르지만 약 10-20만원대였다. 한가지 꿀팁은 어차피 기초 바리스타 자격증 수업을 들으면 해당 레벨에 맞는 자격증을 2-3개까지도 한번에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초 바리스타 자격증 수업을 약 100만원 내고 들으면, 커리큘럼이 끝난 후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을 볼 수있는 자격이 생긴다. 그때 그냥 한가지 (국내) 자격증만 시험을 볼지, 아니면 동시에 국내 자격증과 국제 자격증 1-2개 더 시험을 볼지는 내 마음이다. 물론 더 많은 자격증에 응시한다면 시험 응시료는 그만큼 더 붙겠지만, 애초에 수업을 듣기위한 수강료가 비쌌던 터라 나는 국내용 1개, 국제용 1개씩 응시했다.
나는 평일 주 2회씩 퇴근 후 3시간 가량의 수업을 들었다. 한 커리큘럼마다 약 한달정도의 기간으로 교육과정이 잡혀있었다. 수업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 취미로 커피를 배우고싶은 가정주부, 은퇴 후 카페를 열고자하는 중년의 남성들, 해외에 워킹홀로데이를 가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려던 학생,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에 정직원 바리스타로 채용되고자 준비하던 취준생 등등. 그들의 소소한 관심사들을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도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제 슬슬 각 자격증에 대한 1-2줄평, 그리고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에피소드나 배움을 공유하고 글을 마무리 짓겠다. 이 경험들을 한 후의 나는 현장감으로만은 알수 없던 아주 근본적인 지식들과 원리를 알게 되었으며, 모두가 그저 익숙하게 하는 행동들이 왜 필요한 행동들인지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바리스타 자격증 (기초)
한줄평: 카페에서 일하며 이미 배웠던 것들이었지만 이걸 제대로 정형화된 기준들을 갖고 배우니 처음배우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국내) 한국 바리스타 자격 협회 (KBQA)의 커피제조마스터 1급
기본기 익히기 위주의 수업으로 원두의 역사, 커피의 종류, 에스프레소 머신 사용법과 추출법, 우유 스티밍 및 서빙 예절을 가르쳤다.
국제)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SCA)의 CSP Barista Skills - Foundation
위 국내 자격증과 대부분 동일하지만 조금 더 깐깐하게 에스프레소 샷 추출법을 가르쳤다.
바리스타 자격증 (중급)
한줄평: 기초보다 원두의 분쇄도 조절이나 라떼 아트 등의 조금 더 고난도 기술들을 배웠고, 좀 더 깊게 에스프레소 추출할때 내고싶은 맛을 내는 방법을 배웠다.
국내) 한국 바리스타 자격 협회 (KBQA)의 커피제조마스터 2급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라떼 등 만들어야하는 음료가 더 많았고 라떼 아트도 하트나 로제타 하트같이 더 어려운 스킬들을 배웠다.
국제)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SCA)의 CSP Barista Skills - Intermediate
국내랑 대부분 비슷했는데 만들어내야하는 라떼 아트의 종류가 한개 더 많았던것 같다. 라떼 아트 배우는것의 숨겨진 의도는 사실 그림을 예쁘게 내는것에 있지 않고, 그림을 예쁘게 낼 수 있는 딱 적당한 우유 스티밍을 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던것 같다.
커피의 향미를 배우는 센서리 & 브루잉 자격증
한(두)줄평: 기초를 익히고 들으니 너무너무 재밌었고 내 혀에서 일안하고 월급루팡하던 미세 감각들이 이제야 제대로 일을 하기 시작한 느낌이 들었다. 이 수업을 기점으로 핸드드립의 매력에 빠졌다.
국제)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SCA)의 CSP Sensory Skills - Foundation
센서리 수업은 수십가지의 아로마 오일이 담긴 키트를 맡으며 정말 미세한 향들을 구분해내는 연습부터 했다. 솔직히 땅콩, 헤이즐넛, 호두, 잣 등의 견과류를 향만 맡고 구분해내는게 이렇게 어려울줄 몰랐다. 그 외에도 풀냄새, 연기냄새, 꽃향 등 다양한 향들을 다 구분하는 연습과 시험을 치뤘다. 커핑 (Cupping)이라는 향미 분석법도 배웠는데, 실제 카페들에서 원하는 맛을 잡기위해 커핑을 주기적으로 한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어서 그런지 아주 흥미로웠다. 커핑을 하며 내 커피의 맛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법을 배웠는데, 마치 마케팅 클레임을 짜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주 재밌었다.
국제)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SCA)의 CSP Brewing - Foundation
브루잉 수업은 핸드드립 수업이라고 보면 된다. 이미 위 센서리 수업을 통해 깨어나있는 내 감각들을 활용하여 핸드드립을 내리는 방법과 그 방법을 통해 같은 원두여도 내가 원하는 향과 맛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지를 배웠다. 추출 레시피 뿐만 아니라 도구나 분쇄도, 물 온도 등에 따라서도 맛이 확확 변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런 배움과 경험들을 깔고 앞으로 나아가냐 안깔고 나아가냐는 미래에 씨앗을 뿌려 밭을 만들때 비료가 있냐 없냐와 같다고 생각한다. 비료만 있어서 좋은 밭이 완성될수는 없지만 비료가 있기 때문에 그 위에 정성스러운 관리나 적절한 햇빛과 물이 더해지면 더 큰 시너지가 발휘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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