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가 이후 나의 새 목적지는 런던이었다.
공항에 가기 위해 다음 날 이른 아침 일어나 산티아고로 가는 버스를 탔다.
세상 속에선 매일 같이 접하는 '바퀴 달린 것'. 무려 한 달 반 만에 탔다.
묵시아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버스로 2시간 반이 걸렸다.
2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5일 만에 가는 인간이란 존재는 대체 뭘까?
아침으로 산티아고의 츄러스 맛집을 찾았다.
기본 츄러스만 먹었을 땐 너무 맛있어서 황홀할 지경이었는데, 초코를 입힌 츄러스까지 먹으니 너무 달아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이렇게 또 과유불급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새겼다.
왜 '과'를 몸으로 겪어야만 이걸 깨닫게 되는지.
44일간 순례길에 있던 나에게 있는 옷이란 여름 츄리닝 바지 두 벌과 낡아빠진 반팔, 까미노 내내 입었던 체크 셔츠가 다였다.
시내의 큰 쇼핑몰에 들려 이후의 여행을 위한 옷을 사고, 오랫동안 먹고 싶었던 KFC 치킨도 사 먹었다.
며칠 만에 만나든 문명의 맛이란 건 정말 달콤하다.
이렇게 산티아고에서 반나절을 보내며 이 길과 작별했다.
나는 바로 런던으로 넘어갔는데, 참 신기한 건 대도시를 만나자마자 한 달 반을 넘게 걸었던 그 길이 꿈같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힘듦은 빠르게 휘발되고 좋았던 기억만 꿈같이 오래 남는다.
이 감정이 흔히들 말하는 '까미노 블루'를 일으키는 건가 싶다.
산티아고에서 츄러스를 먹으며 생각을 정리했고, 그때 이런 글을 썼었다.
내 미래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던 길. 그 답은 얻지 못했지만 훨씬 소중한 것들로 가득 채우고 떠난다.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이유만으로 음식과 등산스틱과 물집용 밴드와 숙소까지도 나누는 사람들. 또 기부제로 운영하는 숙소들과, 길가의 도네이션 바, 그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길 잃은 이방인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현지인들. 이 모든 소중한 마음들을 어떻게 잊을까
몇 년을 살아야 만날까 말까 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40여 일간 압축해서 만났다. 세상의 한 달과 까미노의 한 달은 같을 수가 없어.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기분은 엄청난 것들, 이 모든 사람과 풍경과 감정들을 꽉꽉 눌러 담아 경험했기 때문이겠지?
살다가 또 사람에 치이고 인생이 힘들어져 쉽고 악한 길을 택하고 싶을 때마다 이곳에서 얻은 감사와 웃음과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길. 소중한 인연들 앞으로도 모두 Buen camino!
사람과 사랑 없었을 불가능했을 44일간의 여정.
생장 ~ 산티아고 779km, 산티아고 ~ 피스테라 90km, 피스테라 ~ 묵시아 28km 도합 897km의 대장정 정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