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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rstDay Jul 10. 2019

Yes를 부르는 프레젠테이션

내 발목을 잡는 원고 



나는 방송 MC 출신으로 현재 대학 겸임교수이다.  커뮤니케이션, 말하기, 취업교과목  등을 주제로 대학 강의가 주 업무이지만 외부 특강도 자주 하게 되는데, 요즘 많이 하는 특강 주제가 '프레젠테이션'이다. 광고회사에서 주로 하던 프레젠테이션이 요즘은 모든 분야에 걸쳐서 중요시되고 있다. 취업 면접 중에도 프레젠테이션 면접, 창업 지원받을 때도 프레젠테이션, 경찰 브리핑도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방송 MC를 그만두고 공부만 하고 있을 때, 방송사 지인이 한 광고회사의  '전문 프레젠터'를 한 번 해달라며 연락이 왔다. 이 광고회사는 주로 대형 건설사 경쟁 PT를 자주 했는데,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 담당 부서에서 잘 만든 내용을 내가 대신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처음 프레젠터를 했을 때는, 담당 부장님이 이 정보를 더 잘 알 텐데 왜 나를 데려오나 궁금했는데, 몇 번 하다 보니 PT에서 내용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달력, 설득력이라는 알게 되었다. 당일에 가서 바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전 회의를 시작으로 PT가 있는 날 전날이면 1박 2일 그 일에 집중하고 함께 준비했다. 한번 계약을 하면 TV, 라디오, 지면 광고까지 맡게 되니 몇 억이 왔다 갔다 하는 PT라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방송 MC를 7년 정도 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원고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외워서 말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라 15분 정도 PT 내용을 외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방송할 때는 생방송 데일리 프로그램을 맡고 있어서 방송사고가 없었으면 그냥 잘한 거고, 실수가 있었으면 못 한 거고 이 정도라 성공, 실패와는 거리가 있는 삶이었다. 같은 프로그램도 오래 맡다 보니 그냥 익숙하게 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광고회사 PT는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걸고, 짧으면 당일이나 그다음 날 성공 여부를 알 수 있으니 긴장감과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광고에서 사용되는 단어, 표현들을 공부할 수 있어서 재미있기도 했다.


전달력 때문인지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 왔는지, 내가 PT 할 때는 성공률이 높았고 액수가 큰 PT일 때는 나를 불렀다. 그렇게 그 회사와의 일을 한두 달에 한 번씩 2년 정도 한 적이 있다. 그 광고회사 부장님, 이사님들이 회사를 옮겨서 그분들이 메이저급 광고회사로 이동하실 때면 가끔 나를 프레젠터로 부르셔서 잊을만하면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되었다. 가 그 광고회사에서 프레젠터를 2년 정도만 하게 된 이유는 성공보수 때문이다.  프레젠터를 하면서 보니 나 같은 방송인 출신 중에 전문 프레젠터를 하는 사람이 여럿 있는데, 얘기하다 보니 나와는 페이 지급 방식이 달랐다. 나는 PT 하나당 얼마로 책정해서 계약했는데, 다른 프레젠터들은 입찰되면 2배 정도로 성공보수를 받고 있었다. 회사에 얘기할까 말까 하다가 2년 되는 날 입찰 성공하면 성공보수 달라고 요청했다가 그게 마지막 PT가 된 건 비밀이다. 하하하. 여기서 중요한 인생 Tip. 말할까 말까 고민되는 건 안 해야 한다. 그리고 첫 계약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2년간 그 가격에 사람을 썼는데, 더 줘야 하면 쓰지 않는다. 내가 그만큼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내가 배운 점은 최종 결정을 하는 사람의 성향을 빨리 캐치해서 말의 속도, 분위기를 달리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5분 PT일 때 어떤 회사는 15분이 지나면 마이크도 꺼지고, 조명도 꺼지는 경우도 있어서 말하고 싶은 핵심은 중간 이후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클라이맥스를 기대하지 말고 3/5 안에는 핵심을 이야기하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다.


방송 프로그램 중 기상캐스터가 프레젠터와 가장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광고회사 첫 PT 할 때 원고를 손바닥 크기로 만들어서 넘기면서 발표한 적이 있다. 다 외웠지만 혹시라도 생각이 안 나면  위기상황에 보려고 준비했었다. 하지만 원고가 손에 있으니 자꾸 보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중반부터는 그냥 덮고 최대한 파워포인트에 있는 내용을 살려서 이어갔더니  더 자연스러웠다. 원고가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이란?


프레젠테이션은 제한된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구성된 의견이나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여 의사결정을 이끌어내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흔히 사람들 앞에서 파워포인트나 영상물과 함께 말하는 것을 프레젠테이션이라고 생각하지만, 앞에서 말하는 것 중 설득이 포함된 말하기는 모두 프레젠테이션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은 기본 스피치 기술 외에도 설득 기술이 필요한데, 이 기술들이 잘 어우러져야 발표자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취업에서는 자신을 뽑아달라는 내용으로 설득을, 회사에서 본인 부서의 계획서가 아주 훌륭하다는 내용으로 설득을 하는 것일 뿐, 차이는 없다. 발표자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제안하고, 청중이 그 내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보통 발표자가 하는 착각이 있다.

"준비한 원고를 잘 읽으면 될 거야."

"PPT 화면을 틀리지 않고 읽으면 청중들이 이해를 잘하게 될 거야."

 

발표에서 실패하기 쉬운 사례가, 발표자는 자신의 원고(스크립트)를 보고 읽고 청중은 화면에 있는 자료나 발표집을 보는 것이다. 발표자는 청중과 눈빛 교환에도 실패하게 되고, 청중은 눈으로 이미 자료를 다 읽었기 때문에 발표자의 말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원고는 다 숙지하고, 발표 자료의 순서만 적힌 종이를 가지고 개요 위주의 발표를 준비해야 한다. 이미 다 나와 있는 내용을 육성으로만 듣기 위해 발표장에 오는 청중은 없을 것이다. 종이나 화면에 나와 있지 않은 그 무엇을 발표자는 보여 주어야 한다.

빔 프로젝트를 이용한 자료로 발표를 할 때, 발표자는 구석에서 내용만 읽는 경우가 있다. 발표의 주인공은 발표 자료가 아니라 발표자이다. 발표자가 인사를 할 때에도 청중이 자신을 다 볼 수 있게 중간으로 위치해서 주인공임을 알려야 한다. 연단이 있다면 연단에서 나와서 몸을 100% 보인 채 인사를 해야 하고, 연단 위치가 너무 구석에 있다면 화면에 가리지 않을 정도로 연단 위치를 옮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PPT를 이용한 발표 강의 의뢰를 받으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프레젠테이션 강의를 한다. 하나는 발표용 PPT이고 다른 하나는 보고서 발표용 PPT이다. 흔히 잘 알고 있는 발표용 PPT는 청중 아무 자료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요약본 자료만 가지고 있다. 강의를 하거나 대학 교양수업 발표 같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발표용 PPT를 이용할 때는 파워포인트도 글자크기도 20포인트 이상, 6줄 넘지 않기를 지켜야 한다. 이런 발표는 청중이 발표자만 보고 있기 때문에 절대 원고를 보고 읽으면 안 되고, PPT 화면만 쳐다보고 있어도 안 된다. 청중은 PPT 화면을, 발표자는 원고를 본다면 시선 교환 확률은 0%이다.

보고서 발표용 PPT는 PPT와 똑같은 자료를 청중도 가지고 있고 많은 내용이 포함된 경우가 많아서 글자포인트가 11포인트에 리포트처럼 그림과 내용이 꽉 차있는 경우도 있다. 기업의 1/4분기 영업실적, 대학에서는 공대 쪽 발표 형식이 많고, 청중은 발표를 들으면서 본인 손에 있는 자료에 눈이 가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표자는 정보를 다 외울 수 없기 때문에 PPT 화면을 보면서 부연 설명하며 발표를 하면 청중의 이해를 돕기 쉽다.


이 두 개의 발표 형식 모두 발표하러 나왔을 때 원고는 없어도 된다. 원고 작성은 필요하지만 집에서 연습할 때, 슬라이드 노트 작성할 때까지만 사용하면 된다. 앞에 나와서 발표할 때 원고를 보고 읽는 것보다는 청중이 보고 있는 화면을 같이 보며 읽는 것이 효율적이다. 원고에는 조사 하나, 예시 하나가 모두 적혀 있기 때문에 하나라도 빠뜨리면 순서에 맞게 다시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이게 된다. 화면에 적힌 내용 위주로 읽되, 그대로 똑같이 읽으면 발표자의 역할이 없어지기 때문에 글로 쓰여 있는 내용을 구어체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 = 제안형 스피치


 “프레젠테이션은 제안형 스피치입니다.”라고 그대로 읽기보다, “프레젠테이션은 청중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고, 설득으로 이끄는 스피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로 살아 있는 스피치를 해야 한다. 글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하였고, 그로 인해 등록금을”이라고 되어 있더라도, 구어체로 바꿀 때는 “~하는 등”, “하였고”, “그로 인해” 등과 같은 문어체를 “~하면서”, “했고”, “그 결과로”의 구어체로 자연스럽게 풀어쓰면 청중은 보다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다.


YES를 부르는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싶다면, PPT에 있는 자료 중에 어떤 부분을 부연설명을 할 것인지, 문어체인 부분을 어떻게 자연스러운 구어체로 바꿀지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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