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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May 18. 2017

“잘도 느리다이!”(진짜 느리다!)

부부, 제주도로 돌아가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제주도. 정확히 말하면 제주도 최남단 모슬포다. 제주도를 생각했을 때 연상되는 그 무언가. 푸르른 바다와 듬직한 산. 정말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바다, 왼쪽으로 돌리면 산이 있는 곳이 바로 내가 사는 모슬포다.

이 정도는 돼야 ‘푸르른 바다’


모슬포에 정착한 건 결혼하기 5개월 전. 난 육지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신혼집 살림살이 마련은 내가 내려온 그때부터 시작했다. 그전에 갖춰놓은 것이라곤 냉장고와 세탁기, 그리고 탁자 하나가 전부였다. 


내려온 지 일주일 만에 모든 가구를 골랐다. 이제 곧 침대에서 자고 의자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싶던 그 순간 들었던 말은 “2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고른 가구들은 육지에서 화물선(배)으로 배송되며, 배송된 가구들은 일주일에 한 번, 화물차가 서귀포시를 도는 날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아침에 ‘쓱’ 주문하면, 오후에 ‘쓱’ 오는 그런 시대 아닌가. 내가 지금껏 샀던 가구들은 대부분 다음날이면 집에 당도했는데, 2주라니…. 하지만 로마에선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법. 난 그렇게 한 달도 안 돼서 제주도 삶의 순리를 배웠다.


로마에선 로마법, 제주에선 제주 스타일.


서울하면 떠올리는 것은 높은 빌딩 숲. 그런 빌딩 숲 사이로 요리조리 걷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불과 몇 주 만에 도시의 풍광이 바뀌는 경우도 잦았다. 그럴 때면 “여기엔 이게 생겼고 저기엔 저게 나타났다”며 호들갑을 부린다. 그렇게 걷다보면, 순식간에 하루가 훌쩍이다.


빠른 서울(위)과 느린 제주도(사진:la’s scene ‧ mihyang ahn/Shutterstock.com)


제주 하면 떠올리는 것은 역시 드넓은 바다. 나 또한, 제주에 살면서 육지와 가장 다른 점을 꼽으라면 단연 바다다. 어디를 봐도 바다가 있고, 무엇을 해도 바다와 함께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바다를 바라보며 하는 조깅’도 몸소 해볼 수 있다. 


아무리 많이 걸은 것 같아도 30분 넘기기가 쉽지가 않은 것도 그래서다. 제주에선 정말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걸까. 


제주도에서 밭일하는 사람들은 아주 일찍 시작해서 해가 저물녘까지 일한다. 일이 끝나면, 가족들 저녁을 챙겨주거나 지인들과 음주를 즐긴다. 각자 휴식이 끝나면 바로 잠자리에 든다. 버리는 시간이 거의 없다. 


제주도는 인구, 면적 대비 차량 수가 많은 편이다. 자가 차량 보유자가 많다는 것. 또한 제주도에선 ‘아주 먼 거리’라고 해도 차로 1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그만큼 차로 오랜 시간을 이동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길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고, 또 당연한 서울 생활과는 다르다.


“음, 해가 중천인 거 보니 딱 절반 일했군.”


제주에 살면 시간이 천천히 흐를 것 같다고들 이야기한다. 글쎄. 


제주에서 내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육지에서의 생활 방식으로는 하기 힘든 일들을 이곳에서는 할 기회가 더욱 많다. 


나의 일상은 오전 9시에서 밤 11시까지다. 밭일하시는 대부분 제주도 분들의 생활패턴이 오전 7시에서 밤 8시까지라는 걸 감안하면 대략 비슷하다. 직업의 차이는 있겠지만, 난 9시경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집과 일터가 굉장히 가까워서 가능한 일이다. 제주에선 (아주 큰 회사에 다니지 않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집과 일터 거리가 차로 30분을 넘지 않는다. 그렇게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 후 운동을 나간다. 이후 한껏 여유롭게 여가를 즐겨도 시계를 보면 10시에서 11시경이다. 대부분 그즈음에 잠자리에 든다. 


오롯이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쓰는 시간이다. 버려지는 시간 없이 내 시간의 주인이 정말 내가 된다. 제주에서의 시간이 정말 느리게 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진:Witthaya Khampanant/shutterstock.com)


/사진: 이도원



이도원의 ‘섬남섬녀’ 섬에 나고 자란 남자와 섬으로 시집 온 여자, 그들의 일상을 통해 만나는 같은 듯 다른 문화 이야기. 육지 새댁의 고군분투 섬 적응기를 만나보자.


제주도 정착기 더 듣고 싶으면?

→전체 시리즈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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