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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Aug 29. 2017

열두 번째 사연: 취향에 관하여

이쪽 모두의 사연

오래된 LP 카페에서 


(사진: Carlos Neto·stwarm/shutterstock.com)


취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은 무채색에 밋밋한 것이 취향이신가요? 저는 푸른색을 좋아하는 한결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책인 <AZ>에 더 손이 가는 건 아마 제 취향 때문일지도 몰라요(물론 작가님 글이 워낙 훌륭하셔서이지만!). 그 덕분에 제 옷장 안에서는 푸른색의 셔츠, 스웨터, 청바지, 운동화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펜을 살 때도 검은색보다는 남색에 손이 가고, 그릇 가게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혼자 살 때 쓸 거라며 신나게 사놓은 접시들도 모두 파란색이랍니다. 나중에 혼자 살 집의 벽지나 소품, 이불, 커튼들 다 제가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꾸미는 게 로망일 만큼 좋아해요. 심지어 제가 유일하게 쓰는 향수 이름이 라이트’블루’ 일 정도니까요. 


얼마 전 어릴 적의 사진들을 조금 유심히 본 적이 있어요. 보통 여자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님들께서 분홍색이나 따뜻한 색의 옷들을 많이 입히잖아요. 그런데 사진 속의 저는 하늘색, 회색, 청색, 초록색의 ‘남자아이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었어요. 물론 취향이란 건 자라고 겪어가며 본인이 만들어가는 거겠지만, 제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우리가 어릴 때 부모님이 어느 정도 만들어 주시는 것도 아닐까 싶었어요. 


하지만 저는 동시에 어머니에게 감사했습니다. 뻔하지 않은, 선입견에서 벗어난 취향을 담을 수 있는 밑바탕을 그려주셨으니까요. 저는 다 자라난 지금도 어릴 적에 입던 회색이나 푸른 계통의 옷을 입고, 조금은 예스러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카페에 앉아 커피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것도 어릴 적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LP가 흘러나오던 카페에 앉아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키워온 취향일지 모르겠습니다.  


비 내리는 야외에서 


(사진: 최현빈)


‘취향’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 그것이랍니다. 그러니까 짧게, 단순히 줄여보자면 말씀해주신 것처럼 ‘좋아하는 것’이라고 정의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취향은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요? 한 번 정해진 취향은 다시는 바뀌지 않는 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몇몇 분이 알고 계시듯 무채색의 색상들과 밋밋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 역시 차분한 파란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들고 다니는 가방과 아끼는 셔츠의 색, 방 안에 채워진 소품들이 모두 파란색인 점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파란 계통의 색을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파란색과 연관된 것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비 오는 날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온통 새하얗게 눈이 내리는 날과 희거나 검은 옷만을 좋아하는 쪽이었죠. 


그런데 취향이라는 게 바뀌더군요. 제 ‘취향인 사람’의 취향 덕분이었습니다. 정말 완벽하리만치 제 취향에 맞는 사람과의 사랑이었습니다. 평범하고 별거 아니다 싶은 것들도 그 사람이 좋아하거나 특별히 여기면 제게도 특별히 여겨지곤 했습니다. 내성적인 편이었던 제가 어느 정도의 유머 감각과 외향성을 가질 수 있게 됐던 시간이었고, 겪어본 적 없는 세상의 멋진 것들을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비가 내리던 날, 그 사람은 제게 함께 동네를 걸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청했습니다. 저는 내키진 않았지만, ‘내키는 사람’이 권한 일정이었기에 군말 없이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마냥 좋지만은 않은 산책이었습니다. 이토록 찝찝하고, 불편하게 걸어야 하는 산책이라니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점점 저는 마음이 고요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겪어본 적 없는 차분한 분위기였습니다. 돌바닥 길에 다다라서 그 사람은 맨발로 걸어보자고 했습니다. 저도 어째선지 불결하다는 생각보다는 호기심이 더 크게, 명확히 일었고 저는 주저 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었습니다. 


아주 시원하고, 신선하고,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비 오는 날을 무척 좋아하게 됐습니다. 별 일정이 없는 날일지라도 빗소리가 들리면 산책할 채비를 했습니다. 나아가 비 오는 날을 닮은 파란색의 물건들도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그건 그 사람이 ‘넌 파란색이 어울리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줬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바뀌게 된 저의 취향은,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도 지금껏 여전합니다. 


과연 ‘옳은 취향’과 ‘옳지 못한 취향’이라는 게 존재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취향이라는 것에도 어떤 직업과 신분의 본분에 따른 기준이 있어야 하는 걸까 싶은 겁니다. 남자다운 색과 여자다운 색이라는 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지, 나이에 따라 좋아해야 하는 것이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는 겁니다. 제 친구는 아주 다부진 체격을 지닌 남자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좋아하는 색은 분홍색입니다. 저는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분홍색 옷과 액세서리를 멋스럽게 차려입은 이탈리아 신사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리고 ‘보편적인 취향이 어떻건, 그저 본인만 좋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취향은 유동적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구의 참견도 있어선 안 되는 본인만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도 밋밋한 디자인의 셔츠와 바지를 입었습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 누구도 저를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이 세계가 하나의 큰 연극 무대라면, 저는 아마도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배역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말씀하셨듯, 취향이라는 건 단지 ‘좋아하는 것’이고, 저는 밋밋한 옷차림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니까요. 이런 옷차림이 좋으니까요. 



/글: 오휘명



당신의 고민이라면, 무엇이든 들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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