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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Sep 20. 2016

엄마, 사람은 왜 죽어요?

죽음을 묻는 아이에게 <쨍아>, <강아지똥>


초록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나와의 약속을 한다.


‘말이라도 잘 들어주자.’


돌아온 아이는 급하게 인사를 마치자마자, 말을 잘 들어주겠다는 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쉬지도 않고 말을 한다. 저 작은 머릿속에서 어떻게 끊임없이 말들이 퐁퐁 솟아 나올까.


여자아이들의 특성인 것인지 나를 닮아 그런 것인지 아니면 초록이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말, 많다.



대화는 거의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초록이가 질문하는 쪽이고 나는 대답하는 쪽이다. 다섯 살 아이의 질문은 대개 ‘왜’의 연속이라서 대화의 끝은 결국 ‘엄마도 잘 모르겠어’, 혹은 ‘원래 그런 거야’ 이것도 안되면 ‘초록이는 왜 그런 것 같아?’ 하고 되묻는 것으로 끝난다.


오늘은 어제보다 초록이의 말을 잘 들어주려고 했는데 또 그렇게 끝이 났다. 육아의 세계에서는 늘 예상이 빗나가고 다짐은 무너진다.


아이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어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다 알려줄 수가 없다.


아이가 원하는 만큼 이 세계를 완전히 설명하기에 나는 덜 살았기 때문이다. 경험하지 못 해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또 다른 이유는 나는 살 만큼 살았다는 것이다. 생(生)은 생각보다 자주, 쓴맛이 나며 어둡다는 것을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서둘러 아이의 질문을 끝맺게 된다. 아직은 예쁜 것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엄마 마음이니까.



“엄마, 죽는 게 뭐예요? 우리는 다 죽어요?”


뜬금없이 죽음에 대해 아이가 물었을 때, 나의 첫 대답은 겨우,


사람은 누구나 죽어.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서 같이 살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거지, 였다.


죽음에 대해서는 서른을 훌쩍 넘긴 나도 외면만 하고 있던 터라 대충 꾸며서 대답했다. 그렇지만 아이는 다시 물었다.


“왜요, 왜 죽어서 하늘나라로 가야 되는 건데요.”


난감했다.


이 질문에 나는 모든 것을 알려줄 수가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 모두이다. 나는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며 아이의 다섯 살은 죽음의 민낯을 보기에 너무 어리다.


문득 십여 년 전에 초등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가족들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국어 교재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일을 하려고 읽은 이야기가 정말 좋아서 언젠가 내 아이가 생기면 쓰려고 아껴두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치매와 기억에 대한 것이었지만 지난 삶을 잃는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죽음으로 바꿔도 괜찮겠다 싶어 주섬주섬 말을 시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초록이를 아주 많이 사랑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갖고 계시던 생각주머니, 키, 달리기 실력, 머리카락, 예쁜 얼굴 같은 걸 조금씩 나눠주시는 거야. 그걸 받아서 초록이는 키도 크고 몸무게도 늘고 생각주머니도 불어나 이렇게 쑥쑥 크는 거고.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모든 걸 초록이한테 다 나눠줘서 아무것도 안 남게 되면 그때 하늘나라로 가시는 거지.”


“그럼 엄마랑 아빠도 나중에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그럼, 나중에 초록이가 어른이 돼서 아기를 낳게 된다면 엄마 아빠는 초록이 아기를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될 거야.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 아빠도 가진 것들을 초록이 아기에게 나눠줘야지. 다 나눠주고 아무것도 안 남게 되면 하늘나라로 가야지.”


“싫어, 엄마랑 아빠랑 헤어지는 거 싫어. 나도 내 아기의 아기한테 나눠줘야 돼? 난 안 나눠주고 싶은데?”


“초록이가 어른이 되고 그만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지면 생각이 달라질 걸, 그리고 다 나눠주고 하늘나라에서 엄마랑 아빠랑 또 만나서 같이 놀아야지 지금처럼.”


“…….”


“초록아,”


“응?”


“할머니 할아버지 되게 고맙다. 그치? 초록이가 이렇게 잘 클 수 있게 다 나눠주시니깐.”


“응.”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더 잘해드리자. 할머니 할아버지는 초록이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나고 얼굴만 봐도 행복해지신대. 오늘 전화나 한번 해볼까?”


“응, 전화해야겠다. 할머니 할아버지 더 사랑해야겠다. 그치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기 몫의 생을 초록이에게 조금씩 내어주고, 초록이는 그것을 받아 조금씩 자랄 것이다. 나와 남편도 우리가 가진 생을 초록이가 낳은 아이에게 내어주겠지. 초록이는 초록이의 아이의 아이에게 내어 줄 것이고 또 그 아이는 아이의 아이에게.


그렇게 우리는 ‘얽히고설켜 살아’간다.


 


죽음에서 출발하는 이야기 <쨍아>



보통의 이야기 속에서 ‘죽음’은 결말이 되지만 <쨍아>는 다르다. ‘죽음’으로 시작한다.


죽어 있는 잠자리를 먹이로 삼은 개미들이 잠자리를 조각내어 물고 가는 것을 생의 끝이 아니라 출발로 그리고 있다. 잠자리의 죽음으로 개미가 살고 그 개미의 죽음으로 과꽃이 살고 과꽃의 죽음이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리는 과정에는 죽음과 삶이 잇닿아 있기 때문이다.



과꽃 나무 밑에서 쨍아가 죽었고 죽은 쨍아의 장례를 위해 개미들이 모여든다.



개미들은 딸랑딸랑, 쨍아의 장례를 치르며 쨍아를 나눠 물고 간다.



 

개미들의 장례 행렬은 따뜻한 가을볕 아래에서 길게, 아주 길게 이어진다. 그 걸음을 따라 쨍아의 조각들은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고, 그렇게 모인 쨍아는 과꽃이 되어 피어난다. 한없이 흩어졌다 결국 다시 모이는 쨍아 조각들은 죽음이 끝, 혹은 부재(不在)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의 시작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 쨍아의 조각들은 따뜻하고 예쁜 색을 지니고 있던 것일까. 색색의 조각들을 보며 <강아지똥>의 맨 첫 장을 떠올렸다.




내가 녹아내리면 꽃이 피지 <강아지똥>



보잘것없는 강아지똥이 자신을 녹여 민들레꽃을 피우는 이야기, <강아지똥>을 아이에게 처음 읽어줬을 때는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의 가치’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으니 이 그림책에도 ‘죽음’이 보였다.



돌이네 강아지 흰둥이가 똥을 눴다. 그렇게 세상으로 나온 강아지똥은 자신이 더럽고 쓸모없다는 생각에 슬퍼한다.



강아지똥은 길바닥에 떨어진 흙덩이를 만나기도 한다. 흙덩이는 곡식과 채소를 키우고 감자꽃도 피운다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이 부분이 참 재미있다. 아직은 둘 다 어려서 모르겠지만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흙덩이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쓸쓸하고 서러운 마음으로 겨울을 난 강아지똥 앞에 민들레 싹이 돋아났다. 어떻게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냐는 강아지똥의 물음에 민들레는 비와 따뜻한 햇볕과 거름, 바로 ‘강아지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민들레의 몸속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말에 강아지똥은 기꺼이 자신을 내놓는다.



온몸이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진 강아지똥은 땅 속으로 스며들고 민들레는 꽃봉오리를 맺는다. 강아지똥의 죽음으로 민들레가 살게 된 것이다.


죽은 쨍아도 녹아버린 강아지똥도 색색의 조각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켰다.

 

살아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자기 안에 색깔들이, 부서져 조각이 나고 다시 생에 다가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빛이 난다. 이것이 <쨍아>와 <강아지똥>에서 말하려고 하는 ‘죽음’의 의미가 아닐까.


내가 아이에게 이야기한 죽음이 죽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생의 목적지는 결국 ‘끝’이라는 것을, 내 뒤로 지나간 생은 셈할 수 있어도 내 앞에 남은 생은 셈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죽음이 타당하지는 않다는 것을, 죽음은 어떤 이별보다 슬프다는 것을, 그래서 사실은 엄마도 죽음이 두렵다는 것을 초록이는 조금씩 알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씩은 우리의 대화를, 같이 읽었던 그림책들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너는 우리의 생이 모여 만든 온전함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사진: 지혜


 Information

<쨍아> 저자: 천정철 |  출판사: 창비 | 발행연도: 2008.05.10 | 가격: 11,000원

<강아지똥> 글: 권정생 / 그림: 정승각 | 출판사: 길벗어린이 | 발행연도: 1996.04.01 | 가격: 10,000원 


그림 같은 육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신 개념 육아일기. 이를 통해 ‘엄마의 일’과 ‘아이의 하루’가 함께 빛나는 순간을 만든다.



아이와 함께하는 한 폭의 그림 같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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