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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May 06. 2018

이제는 녹슬고 무뎌진 칼, 단식투쟁

[TF Guide_정치용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무기한 노숙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최근 불거진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특별검사 도입을 촉구하며 “국민적 요구를 뭉개는 이 정권의 불통을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다”고 선언했다.


단식투쟁에 돌입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사진: 자유한국당)



| 굶는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의도

단식투쟁. 정치·사회적 이슈와 관련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관철하기 위한 목적으로 벌이는 시위의 형태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각계 인사들이 자신의 건강과 심하게는 생명까지 걸고 곡기를 끊는,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르지만 동시에 강도가 가장 높은 행위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지만 종종 시도되는 이유는, 이목을 끌기 좋은 자극적인 행위이기 때문에서다. 단식투쟁의 당사자가 사회적 명망이 높을수록, 단식 기간이 길어질수록 언론과 여론의 관심은 집중된다.

다만 끼니를 거르는 대신 물과 소금 정도는 섭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2가지가 없으면 인간의 몸은 단 며칠도 견디기 어렵기 때문. 아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취식을 포기하는 사례가 없진 않으나 오늘날 단식투쟁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수분과 염분 섭취는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과거 고려나 조선 시대에는 신하가 왕의 각성을 촉구하는 의미로 식음을 전폐하는 방식의 단식투쟁이 있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칠순이 넘는 나이로 옥중 단식투쟁을 벌인 바 있다. 이처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여러 방법으로 단식을 행해 왔지만 이번 더퍼스트 가이드에서는 한국 정치인으로 기준을 좁혀 설명한다.


23일간 곡기를 끊었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 대통령기록관)



| 단식투쟁의 아버지 YS는 말했다 굶으면, 확실히 죽는다

한국 정치사에서 단식투쟁의 역사는 지난 2015년 향년 88세를 일기로 서거한 고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YS는 1983년 5월18일, 5·18 민주화운동 3주년을 기념하고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의미로 단식에 돌입했다. 그는 구속된 민주화 인사들의 석방과 해직 교수 및 언론인의 복직, 개헌 등을 요구하며 6월9일까지 끼니를 끊고 버텼다.

당시 여론의 반발이 두려웠던 전두환 정권은 YS의 가택연금을 해제하면서까지 단식투쟁을 중단시키려 했다. 하지만 YS는 계속 버티다 정치권과 종교계 인사들이 거듭 찾아와 중단을 종용함에 따라 23일 만에 단식투쟁을 멈췄다. 이는 정치인의 최장기간 단식투쟁 기록으로 이어오다 2007년 27일을 기록한 현애자 전 민주노동당 의원에 의해 깨지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단식투쟁의 대명사로 통하는 YS도 나중에는 단식에 대한 마음이 바뀌었다는 거다. 2003년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 특검법 통과를 촉구하며 단식에 돌입하자 YS는 최 대표를 찾아가 “굶으면 확실히 죽는다”고 만류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여의도 정가에서 명언 아닌 명언으로 회자되고 있다.


아무리 굶더라도 물과 소금은 먹어주는 게 최근 단식투쟁 트렌드다.


| 누가 언제 어떻게 왜

YS말고도 정치인들의 단식투쟁은 심심찮게 이뤄져 왔다. YS와 ‘3김 시대’를 주도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도 1990년 노태우 정권 당시 내각제 반대와 지방자치제 실시를 주장하며 13일간 곡기를 끊었다. 66세의 고령의 나이였던 DJ는 이를 바탕으로 지자체 도입을 관철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독재정권이라는 대항마가 사라진 만큼 대의보다는 특정 정치적 이슈의 관철을 위해 단식투쟁이 이뤄지는 경향을 보였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 도입을 촉구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2005년 쌀 관세화 유예협상 비준동의안 반대를 주장한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의원,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발한 천정배 전 민주당 의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0년 이후로는 단식투쟁 건수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다. 2014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열흘간 단식을 벌였다. 2016년에는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여당 대표로서는 최초로 단식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김성태 원내대표 이전 가장 최근 단식투쟁의 주인공은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다. 그는 지난해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 연장을 반대하며 14일간 단식했다.


여당 대표 최초로 단식투쟁을 벌였던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사진: 자유한국당)



| 양날의 검, 결국 용두사미의 역사

하지만 이 같은 정치인들의 결기에도 단식투쟁 자체의 효과는 갈수록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조원진 대표는 14일이라는 상당히 긴 시간 투쟁했음에도 여론의 무관심 속에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막지 못했다. 이정현 전 대표 역시 여론의 지지보다 질타를 더 많이 받으며 당초 목표였던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문 대통령은 단식 과정에서 당내 반대파들의 심한 공세에 시달렸다. 천정배 전 의원이 막으려 했던 한미FTA는 결국 타결됐고, 강기갑 전 의원이 주장했던 쌀 관세화 유예는 종료를 맞았다.

뜻을 이루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웃음거리로 전락할 뻔한 경우도 있었다. 앞서 소개했던 최병렬 대표는 단식투쟁 당시 쌀뜨물을 마시는 장면이 목격돼 곰국을 마신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으며, YS 역시 단식 중에 빵과 우유를 몰래 먹다 들통났다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이처럼 정치인의 단식투쟁은 결연한 시작에 비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대체로 마지막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왔다. 여기에 ‘단식투쟁 돌입→주변의 만류→탈진→병원 후송→단식 중단’의 전형적인 패턴에 익숙해진 여론은 굶는 정치인들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게 됐다.

/글: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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