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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Oct 02. 2016

100% 스페인 요리가 가능할까

[별별음식] 제 5화

몇 달 전부터 스페인 요리를 하는 신소영 씨가 함께 일하게 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스페인에서 보낸 시절을 듣게 됐는데, 스페인 북부 산 세바스티안의 사립 요리학교(Escuela de Cocina Luis Irízar)에 입학해 2년간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이론을 배우고 주방 실습 경험도 쌓았다고 한다. 실습 차 잠시 머물던 한 식당에서의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그 식당에선 주문이 다 끝나면 주방 식구들끼리 게임을 했단다. 오늘 몇 접시가 나갔는지를 맞추는 거였는데, 정답에서 가장 먼 숫자를 말한 사람이 맥주를 샀다. 누가 가장 정신차리고 일했나를 평가하는 게임이기도 했다.


오늘 몇 접시나 나갔을까?(사진: Africa Studio/shutterstock.com)

동양인, 외국인, 노동자 

소영 씨가 처음 게임의 멤버가 됐을 때, 동료들은 그녀가 당연히 정답을 맞출 거라 기대했다. 소영 씨는 실습장의 유일한 아시안이었기 때문이다. 수학 잘하는 인도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미국 사회에서 공부로 성공한 중국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서양인 사이에서는 동양인은 산수를 잘하고 셈에 능하다는 인식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소영 씨는 동료들의 기대를 충족하는 명석한 동양인이 아니었다. 주문 하나 치르는 것도 힘든데, 몇 차례 실수를 거듭하면서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정답에 가까운 숫자를 겨우 말할 수 있었던 평범한 실습생일 뿐이었다.


그런데 소영씨는 실제로 공부를 잘했다. 바쁘고 정신없는 실습장이 아니라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실에서만큼은 그랬다. 서양인이 인지하는 동양인의 놀라운 지능 덕분이 아니라 동기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소영 씨는 학교의 나이 제한에 딱 맞춰 만 서른에 학교에 입학했다. 그런 소영 씨는 학교에서 열린 타파스 대회에서 몇 주간 메뉴를 고민한 끝에 2등을 했고, 1등은 또 다른 한국인 학생이 가져갔다. 평생 먹어왔던 걸 제대로 배우니 상대적으로 흡수가 더 빠르고 여유로운 현지인과 다르게 멀리서 온 학생일수록 더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많고 더 많은 경제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기는 절박함과 의욕의 결과는 성적으로 나온다.


다른 건 성적과 성향뿐 아니라 처지이기도 했다. 소영 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외국인 학생은 현지의 노동규칙에 위배된 일이 주어져도 큰 불만 없이 희생적으로 일하는, 그래서 나쁘게 말하자면 고용주 입장에서 더 쉽게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경험이 많지 않으니 일도 잘 못하고, 주방의 언어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니 고용하고 일을 지시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큰 기대가 없는 존재들이기도 했다. 이는 소영 씨가 외국인 학생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이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모욕적인 차별을 당한 기억은 없지만 사회적 지위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일한다는 기분을 종종 느꼈다고 소영 씨는 말한다.


신소영 씨가 스페인 요리학교에서 보낸 시절(사진: 신소영)

외국인이 남기고 간 것 

그런데 그 외국인 노동자들과 학생은 결국 많은 것을 남기고 간다. 교과 과정 안에는 전체 수업의 약 30% 가량을 차지하는 세계 요리 시간이 있는데, 교과서 안에 담긴 내용은 이미 학교를 다녀간 각국 선배들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소영 씨에 따르면 책은 계속 바뀐다고 했다. 이후에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조금씩 다른 요리와 기술을 배울 것이다. 모두 스페인 요리를 배우러 스페인 학교에 왔지만, 다양한 세계에서 찾아온 학생들이 계속해서 수업에 참여해 모두가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배움의 세계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추세가 그렇다고 한다. 미슐랭의 판단 기준만 봐도 그렇다. 전통만 살린 보수적인 요리만으로는 높은 별점을 받기 어렵다. 전통을 유지하면서 요리하는 사람의 해석이 따를 때 더 후한 평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고자 소영 씨는 양식 경향의 변천사를 들려줬다. 1970년대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누벨 퀴진’이 파인 다이닝의 세계 안에서 새로운 요리 사조로 부상했다. 전통에서 벗어나 좀 더 가볍고 경쾌하게 요리하는 방식이다. 1990년대에 와서는 분자 요리 같은 혁신의 조리법에 세계적인 관심이 쏠렸고, 이제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개인의 철학과 해석을 적극적으로 담는 요리가 주요 경향이라 한다.


요약하자면 지금 이 시대의 훌륭한 요리란 전문가가 만드는 가장 자연스러운 요리다. 배운대로 깊이 있게 요리하면서, 만드는 사람 개인의 경험과 개성을 함께 담는 것이다. 말만 들어서는 당연한 일 같지만 실은 대단히 어렵다. 맛은 기본이고, 음식뿐 아니라 음식의 이름, 음식이 주는 이미지, 그리고 공간과 서비스의 성격까지 총체적으로 헤아려 독보적인 개인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다. 스페인 요리를 배우러 갔던 소영 씨는 2년간의 학습과 경험을 마치고 이제야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이 나고 자란 한국이란 어떤 나라인가를 자문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가스톤 아쿠리오. 페루 출신으로 르 꼬르동 블루를 졸업하고 페루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레스토랑 ‘아스트리드 & 가스톤(Astrid & Gaston)’을 운영하고 있다. 페루 쿠진의


한국에서 100% 스페인 요리가 가능할까

소영 씨는 얼마 전 빠에야 육수를 내면서 방풍나물을 썼다. 원래는 이탈리안 파슬리를 쓰지만 이것저것 향을 맡아본 뒤 대체할 식재료를 찾았다고 했다. 미나리와 꼬막, 생크림을 섞어 리조또를 만들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참나물로 페스토를 만들어 돼지고기 요리에 얹었다. 재래시장에서 산 사과로 소고기 스튜를 만든 적도 있다. 레알 스페인 음식 경험이 없어 제대로 된 반응을 돌려주긴 어려웠지만 계속해서 먹다보니 일관성이 보였다. 식재료의 새로운 조합이면서, 어쩌면 스페인이 그리 아득한 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내가 아는 재료의 맛이 각각 살아 있었다.


공부하던 시절 소영 씨는 요리하기 전에 반드시 재료를 먹어봐야 한다고 배웠다. 흔한 토마토를 써도 재배한 곳이 다르고 품종이 다르면 요리 전체의 맛이 달라질 수 있고, 따라서 재료의 맛과 성질을 분석해 그에 맞는 계량과 레시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요리사는 습득한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면서, 이 땅에서 나는 것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마땅하다고 배우기도 했다. 배움을 마치면 스페인을 떠날 학생이 적지 않으니 학교는 고향으로 돌아가 융통성 있게 요리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런 배움 끝에 기술과 맛보다 중요한 건 요리의 개연성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소영 씨는 궁극적으로 스페인 요리에 자신을 녹여야 한다. 어차피 여기서 100% 정통 스페인 요리란 불가능한 일이다. 어렵게 결심하고 떠나 이방인으로 고된 시간을 보낸 뒤 어째 답이 안 나오는 질문만 가득 안고 돌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건 요리하는 사람을 살아 있게 만드는 중요한 질문인 것 같다. 나아가 훌륭한 음식의 기준을 세우는 질문이 아닌가도 싶다. 결국 요리는 쌓인 경험과 손에 잡히는 재료를 바탕으로 하는 응용이자 창작이다. 방법을 안다 한들 도달이 아득한 영역이다.


신소영의 해산물 빠에야(가운데), 감바스 알 아히요(왼쪽 위), 끄레마 까딸라나. 파슬리 대신 방풍나물을 써서 만들었다. (사진: 원파인디너)
신소영의 아로스 데 베르베레초스(Arroz de berberechos). 꼬막으로 만든 리조또의 일종이다. 미나리의 향이 살아 있다. (사진: 원파인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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