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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Nov 04. 2016

먹스타그램, 그리고 21세기 빅브라더

[북앤쿡] 제 10화

학교 근처에 작은 단골 카페가 생겼다.  직접 로스팅한 세 가지 원두 중에서 손님이 원하는 종류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주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며칠 전 친구에게 그 카페를 소개해주며 마주 보고 앉아 따뜻한 카페라떼를 시켰다. 잠시후 하트 모양의 거품이 수놓인 라떼가 나왔고,  우유에서 풍기는 고소한 치즈 향이 농후한 커피의 맛과 조화를 이루었다. 치즈 향이라니.



똑같이 젖소가 만든 우유로 만들었겠지만, 그 라떼에서는 확연히 다른 치즈 향이 났다.  우리나라 음식으로 치면 생배추에서 김치 맛이 우러났다 정도가 되려나, 아니면 메주콩에서 된장의 풍미가 느껴졌다 정도?


라떼 맛에 감탄한 친구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찍더니 곧바로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진과 함께 당연히 치즈 맛 #라떼 #cafe #daily #맞팔 #일상 #힐링(아니 바로 30분 뒤에 수업인데!) 등의 해시태그가 달렸다.


친구의 사진에는 나도 태그됐고 곧바로 사람들의 ‘좋아요’와 댓글이 이어졌다. 한 장의 사진으로 카페의 이름은 무엇인지, 우리가 언제 방문해 어떤 음료를 주문했는지, 분위기는 어떠한지 등등 사진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타인에게 속속들이 밝혀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정보와 다른 사진을 통해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현재 애인은 있는지 등에 대한 더욱 깊은 정보도 알려진다.


한 장의 사진에 해시태그를 달았을 뿐인데… (사진 : theprconsulting)


해시태그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너무 많은 정보를 얻는다. 전혀 필요 없는 정보부터 면밀한 사생활까지. SNS뿐만이 아니다. 구글 검색창에 입력하는 모든 검색어는 개인의 행동을 예측한다. 내가 검색하기도 전에 나에게 맞는 운동화를 추천하기도 하고, 파리 가는 비행기 한 번 예약했다고 프랑스에 있는 숙소들이 광고창에 수두룩 떠오르는 세상이다.


내가 쳐내려간 검색어와 내가 올리는 일상이 나를 감시하고 관찰한다. 2016년, 빅 브라더가 도래했다. 1949년 소설 <1984>를 통해 빅 브라더를 예언했던 조지 오웰은 선구자나 예언자였던 걸까? 소설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한 빅 브라더는 이제 우리 현실을 잠식한다.


<1984>는 극단적인 전체주의 사회를 보여준다. 가상의 세계인 오세아니아의 권력층은 허구적인 인물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를 일삼고, 체제 유지를 위해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그리고 ‘텔레스크린’이라 하는 장치를 이용해 사람들의 사생활을 감시한다.


(사진: www.redstate.com)


영원히 늙지 않는 빅 브라더의 얼굴이 모든 건물에 벽에 걸려 펄럭거리고, 모든 행동과 소리들을 감지할 수 있는 쌍방향 송수신 장치 ‘텔레스크린’은 바깥뿐만 아니라 집 안까지도 들어와 시민들의 삶을 24시간 내내 감시한다. 과거의 역사는 끊임없이 조작되고 진실이 기록된 문서들은 모두 사라진다. 심지어 고독, 안정, 사랑 같은 추상적 감정들과 감각은 일체 부인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끼고 저항한다. 그는 반정부 단체에 가입해 혁명을 꿈꾸지만 함정에 빠져 사상 경찰에게 체포된다. 고문과 세뇌를 이기지 못한 윈스턴은 사랑하는 연인까지 배신하고 당의 요구에 따르게 된다. 그리고 모든 감정을 상실한 채 빅 브라더를 받아들이고, 총살형을 기다린다.


공상 소설로 여기던 <1984>속 이야기는 더 이상 소설이 아니다. 원스턴의 저항은 정부의 정보 수집에 반대하는 현대 시민과 닮았고 오세아니아의 권력층은 정보화시대 정부와 비슷하다. 현대 정부는 범죄와 테러에 맞선다는 이름 아래서 디지털 발자국을 수집하고 분석한다. 인터넷 회선 감청을 사용하며 개개인의 통화, 이메일, 문자메세지를 손쉽게 들여다본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일시적인 안전을 위해 자유를 포기한다면 자유는 물론 안전도 누릴 수 없다”고 했다. 정부의 정보수집에 반대하던 현대인은 인터넷 속에 녹아든 보이지 않는 권력에 만족한 채 자유를 포기하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자유는 권력에 빼앗기기만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내버리기도 한다. 우리 스스로 보이지 않는 빅 브라더를 창조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찾아내고(다들 한 번 쯤은 썸남, 썸녀의 이름을 인터넷 창에 쳐보며 그 사람에 대해 알아내려고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타인의 감정을 파헤치고 예측하며, 자신의 감정도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라간다. 자신만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세세한 감정은 자유를 잃고 0과 1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1984년을 훌쩍 넘어선 2016년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채 남을 감시하고 관찰하며 자신을 압박한다. 더이상 빅 브라더가 아닌, 빅 브라더스(Big Brothers)가 서로를 감시하고 지켜보는 시대다. 


SNS를 비판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중단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혼자서 움막을 치고 농사지으며 사는 게 아닌 이상 현대 사회의 문명을 이용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에 대한 정보가 수집된다고 해서 레포트를 쓸 때 인터넷 검색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처럼.


(사진 : photohistory)


다만 사이버 공간에 타자를 치기 전,  한 번만 생각하자. 내가 지금 치즈 맛이 풍기는 라떼 사진을 SNS에 올리는 순간 인터넷 속의 감시체제가 내 취향을 저장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아도 자유가 부족한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 자유의 범위를 좁히는 행동이 되어버리진 않을까. 


→문학과 음식의 이유있는 만남 '북앤쿡'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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