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2주 살기, 그 첫째 날

by 유영운

치앙마이행 저녁 비행기를 탔다. 전에는 누군가 상비약을 챙겨주면 그곳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고, 바리바리 싸들고 갈 필요 없다고 불평하곤 했는데 아프고 나서는 두려움이 많아졌다. 재수술 후 얼마 되지 않아 무모하게 리스본까지 비행하느라 멀미에 시달려서 그런가. 그때보다는 훨씬 컨디션이 회복되었음에도 감기약, 진통제, 소화제, 멀미약까지 공항 약국에서 쟁이는 내 모습이 조금은 생경했다.

비행 좌석도 마찬가지였다. 비용만 아낄 수 있다면 체력으로 때울 자신이 있었던 전과는 달리 이제는 몸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쪽을 선호하게 되었는데, 치앙마이행 비행기의 비즈니스석은 미끄럼틀 석 (좌석이 펴지지 않고 리클라이너처럼 일정 각도로만 눕혀지는데 아래로 자꾸 미끄러진다는 평이 많다.)이라고 해서 비상구 좌석을 사전 구매했다. 저가 항공을 타는 이유가 있는데 40,000원이라는 좌석비가 꽤 비쌌던 건지 옆자리, 옆옆자리가 모두 공석이었는데, 그것에 대한 기쁨도 잠시 비행 내내 이 자리는 나에게 불편감을 주었다.


그 시작은 뒷좌석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가 내 옆옆으로 자리를 옮겨오신 거였다. 얼마 후 승무원이 나타나 이 좌석은 사전 구매해야 앉을 수 있는 좌석이고,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 달라고 설명하셨는데, 아저씨는 화장실 줄을 기다리는 거라고 답하셨다. 하지만 화장실이 비어도 아저씨는 자리로 돌아갈 생각이 없으셨는데, 양말까지 벗은 다음 선반에 다리를 올리고 주무셨다. 승무원이 재차 좋은 말로 설득한 끝에 아저씨는 자신의 자리로 향하셨지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자신의 겉옷과 가방을 두고 가셨다. 아저씨는 떠났지만 남은 자리에서는 강한 파스향이 났다.

그다음에는 멀미약 때문에 한참 졸고 있는 나를 누군가가 툭 쳐서 깨웠는데, 옆자리가 비었냐고 묻는 아주머니였다. 대답할 때까지 계속 질문하신 끝에 아저씨의 짐이 없는 내 옆자리로 옮겨 오셨는데, 역시나 승무원의 설명에 빈 자린데 좀 앉을 수도 있지 않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냐 하며 좌석표시등이 들어온 틈에 다리를 뻗고 코를 골며 주무셨다.

아저씨는 비행 내내 내 옆옆자리로 돌아와 승무원을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착륙 직전에 아예 자리를 옮겨 가장 빨리 내리셨다. – 맨 앞자리의 복도석이었기 때문이다. – 나는 고작 돈 몇 푼으로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의 경계가 너무도 뚜렷한 공항과 비행기, 그로 대표되는 자본주의가 싫었고, 돈을 내고 싶지는 않지만 조금 더 편안하다면 뻔뻔하고 억척스럽게 행동하는 개인도 싫었고, 본인 역시 시스템의 일부일 뿐인데도 최전방의 방패막이 되어 감정을 쓰면서까지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는 승무원의 역할도, 내 자리를 구매했을 뿐 내 옆자리, 옆옆자리를 구매한 것이 아닌데도 주변 상황에 무심할 수 없는 나의 마음까지도 다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의 처음으로 반쯤 빈 가방과 함께 이 비행기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직장, 인간관계, 스스로에게도 따가웠던 이런저런 마음으로 꽉 채워져 비우기 위해서 떠나야만 했던 전과는 달리, 많은 것이 말끔히 비워진 자리를 채우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이든 좋다는 열린 마음으로. 그렇게 간신히, 내일부터는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설렘을 남겨둔 채 치앙마이 공항에 내렸다.


그랩 기사님을 만나자마자 좋았던 건 그분이 여성이라는 것이었다. 차에서는 미용실에서 날 법한 파마약 냄새가 났고, 기사님은 목적지를 확인하고 트렁크에 짐을 싣고 내릴 때 함께 들어 달라는 것 말고는 별달리 나에게 말을 걸지 않으셨다. 다만 너무도 당연하게 “Hello”라고 인사를 건넨 나에게 그녀가 두 손을 합장하고 “싸왓디캅”하며 인사를 받았을 때 나는 그토록 아니꼽게 느껴졌던, 타국에 방문하거나 살면서 타국어를 한마디도 배우려 하지 않는 서양인과 내가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즐기러 왔을 뿐 누군가의 문화와 가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비행 전 김밥 한 줄도, 비행하면서 샌드위치 한 개도 먹었지만 어쩐지 출출했던 나는 배달 메뉴를 보느라 가는 길에 치앙마이의 풍경 중 어느 것도 눈에 넣지 못했다. 숙소에 도착해 짭조름하고 새콤한 볶음 쌀국수, 부드러운 용과와 구아바를 입에 넣을 때에서야 잃어버린 것 같지만 여전히 내 안에 있는 천진한 아이의 호기심을 다시 깨우겠다는 다짐 비슷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렇게 비행의 피로와 여정의 긴장감에 기꺼이 지며 스르륵, 잠에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첫날 택시에서 맡았던 파마약 냄새는 치앙마이 꽤 많은 곳에서 났다. 아직은 그 출처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해 주의나 질문의 대상이 아닌 것들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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