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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Feb 16. 2020

레트로 키보드의 매력

키보드와 사랑에 빠지다

그것도 벌써 2년 전이다. 동네 중학생 여자 아이 둘이 코닥 로고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런 식의 로고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왠 코닥? 너희들 사진관에서 알바하니?" 

아이들은 자지러지게 웃더니 '그냥 예뻐서 산거예요.'라고 한다. 아, 멋도 모르고 물어봤네. 예쁘긴 하지. 

유행은 돌고 돌아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것들이 다시 유행하니 기분이 묘하다. 예전 락 음악을 다시 찾아 듣는 아이들도 있다니 참 재밌네 싶다.(Rock is Dead. 락은 한참 전에 죽지 않았나?)

이 레트로 한 감성을 이어받은 어떤 물건이 며칠 전부터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바로 '키보드'다. 음악용 키보드(건반, 신디사이저 등)도 물론 가슴을 설레게 하지만 지금은 음악을 만들지 않는 상황이라 살 일은 없고, 텍스트 입력용 키보드 말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던 시절(1993년 이후)에는 대부분 제품에 딸려오는 키보드를 쓸 뿐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의 레트로 한 키보드는 그 시절(체리사의 모델 제외)에는 없었던 장르인 셈이다. 그 시절에 만든 SF 영화에서는 나올 법하긴 하다. 

어쨌든 저쨌든 중요한 것은 그냥 기계식 키보드 매니아가 있구나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 세계의 결과물이 이 정도일 줄이야! 후배 세대에게 감사를!!

https://geekhack.org/index.php?topic=102901.0

웬만한 커스텀 키보드를 구하려면 30만 원 이상은 줘야 한다. 키캡만 해도 땡긴다 싶은 것들은 20만 원이 넘어가기도 한다. 보통 키보드에 투자하기에는 큰 금액. 하지만 말이지, 그건 그냥 물건이 아니야. 이건 예술작품이야. 실용적인 예술작품. 매일 눈과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예술작품이 30만 원 대면 싼 거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중이고 거의 넘어가고 있다. 스위치와 키캡을 바꾸면 다른 모습으로 변신시킬 수가 있으니 질려서 처박아 놓을 가능성도 적다. 그리고 이 예쁜 아이를 왜 처박아 놓겠나. 잘 보이는 데다가 올려놓고 감상해야지. 

https://dailyclack.com/collections/group-buys/products/gmk-finer-things

다행인 것은 딱 꽂혀서 이거다 싶은 키보드들은 품절이고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제작 방법이 대부분 선주문 공구 방식이라 뒤늦게 꽂혀 봤자 의미 없다. 나한테 기계식 키보드는 필요하지 않아라고 다독이며 마음을 접으려고 해도 어느새 손가락은 구글링으로 다시 키보드를 찾고 있기를 2주. 이렇게 시간 낭비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차라리 타협을 하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키감에 가까워 보이고, 아이패드만 들고 카페에 갈 때 유용한 블루투스 기능과 키캡 놀이를 할 수 있는 모델. 한성컴퓨터의 무접점 키보드 GK 868B로 정했다. 결재는 생일 선물을 미리 땡겨서 받는 것으로 행복한 결말. 

https://www.keebtalk.com/t/post-your-keyboards/743/413


이걸로 마음이 좀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눈 앞에 이미 단종된 모델들이 아른거린다. 스스로 다독인다. 이제 기계식 키보드 하나 구했으니 천천히 기다리면서 내 마음에 딱 드는 그런 레트로 스타일의 커스텀 키보드를 입양하자. 웬만한 키보드로는 성이 안찰 테니.


-배송 중인 한성 키보드 GK868B의 ASMR영상

https://youtu.be/VAqHrTPtj5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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