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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Sep 25. 2022

B급 문화와 맥킨토시의 추억

X세대의 추억팔이

*이 글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음질은 CD가 최고지. LP는 감성이 있다는데 다 헛소리야. CD 음질을 따라갈 수가 없어. 더 뛰어난 건 DAT인데….”

이 형은 건들면 입에서 음악과 신기술 이야기가 줄줄 나온다.

1993년. CD보다 카세트테이프를 더 많이 들었던 나는 현진이 형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음대 작곡과 신입생. 음악에 대한 열정이 숭배에 가까웠던 나는 음악 이야기는 뭐든 재미있기도 했다. 아웃사이더였던 현진이 형도 눈을 반짝이면서 자기 이야기를 듣는 내가 싫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에 우리 집에 놀러 와라.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게.” 

현진이 형이 헤어지면서 한 말이 의례 하는 말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그 '재밌는 것'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어두침침한 현진이 형의 자취방 안에서 처음 만난 맥 클래식 II.
'세상에! 이런 귀여운 컴퓨터가 있었다니!'

 지금의 아이패드보다 작은 9인치 모니터에는 투명 고양이가 다니는 것처럼 고양이 발자국이 찍히고 있었다. 

“에취!” 

코를 훌쩍이다 재채기 소리가 들렸다. 잉? 나도 현진이 형도 재채기를 하지 않았는데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아, 우리 맥이 감기에 걸려서.”

으앗! 뭐라고? 컴퓨터가 감기에 걸렸다고?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현진이 형의 맥 강의가 1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맥이 처음 GUI(Graphic User Interface: 데스크톱) 환경을 만들어 인간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를 개발했고, 음악용 컴퓨터로는 최고이고 어쩌고….

이 날이다. 애플빠 인생의 시작이.


나는 파일을 쓰레기 통에 넣고 비우면 지워진다는 것, 쓰레기통을 비울 때마다 세사미 스트리트에서 나왔던 그로치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 메뉴바에 있는 눈동자가 마우스 커서를 따라다닌 다는 것, 감기에 걸린 듯 재채기하는 아기자기한 기능이 유저들이 만들어서 공유한다는 것, 그것을 입맛대로 추가해서 내 컴퓨터를 나만의 장난감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런 재밌는 문화를 이제까지 너희만 누리고 있었구나!!'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컴퓨터 음악의 비인간성에 대해 성토했던 나는 이 날 이후로 모든 것을 컴퓨터에 의존하며 살아가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면 컴퓨터 스위치를 일단 켜고, 부팅 시간 동안 화장실에 다녀와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고, 리포트를 쓰고, 교회 주보를 만들었다. 모든 연락처를 입력했고, 일기를 썼다.

다른 학우들이 손으로 리포트를 쓸 때 나는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고, 표나 이미지를 추가해서 프린트한 리포트를 제출했다. 음향학 교수님은 어디서 이런 자료를 찾았냐고 놀라워했다.

훗-. 컴퓨터 시대에 이 정도는 당연한 일 아닌가?


맥 유저인 우리들은 PC 컴퓨터 쓰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소수 중에 소수였다. 사무용 목적보다는 창작을 위해 맥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사이버 펑크 문화를 신봉했다. 

맥을 사면 무지개 색으로 된 애플 스티커가 딱 2개 들어있었는데 이건 돈 주고도 못 사는 귀한 스티커였다. 이 스티커를 신중하게 자주 가지고 다니는 가방에 붙였다. 애플 스티커는 일종의 우리 만의 비밀 신분증 같은 역할을 했다. 누군가의 가방에 붙은 애플 스티커를 보면 고개를 들어 가방의 주인을 확인하곤 했는데, 그냥 씩 웃으면서 눈인사를 했다.


“하이텔에 고맥이라고 있어. 거기 가봐. 너 같은 애 많아.” 우리 학교 맥 유저 중 최고참인 4학년 선배의 한마디는 내 인생을 또 한 번 바꿨다. 

컴퓨터 통싱을 소재로한 영화 '접속'이 상영됐던 해가 97년. 내가 처음 하이텔에 접속했을 때가 94년이니 일반 사람들은 아직 통신이 뭔지 잘 모르던 때였다. 부모님만이 말도 안되는 전화요금 때문을 저 놈이 컴퓨터와 전화를 이용해서 밤새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 하던 시절이다. 

일반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아니, 전화하거나 만나면 되잖아? 왜 그런 짓을 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랑 텍스트로 이야기한다고? 그게 가능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랑 어떻게 친하다고 하는 거야?’



내가 가입했던 하이텔의 동호회는 맥을 쓰는 사람들의 동호회인 고맥, 광고 동호회인 애드버, UFO와 초능력, 각종 심령 현상을 다루는 초과학동호회였는데, 주로 시간을 보냈던 곳은 당연 고맥이었다. 

고맥은 주말마다 오프모임이 있었다. 딱히 약속을 하고 모인다기보다 저녁이 되면 우리로 들어오는 소떼들처럼 어슬렁어슬렁 모였다. 종로나 대학로의 애플 대리점에 가면 십중팔구는 맥 유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 올 미래에 대해, 애플의 신제품과 신기술에 대해, 그들의 멋진 광고에 대해 이야기했고, 애니메이션과 SF 영화, 록 음악과 컴퓨터 그래픽 등 주류 문화에서 B급이라고 부르는 문화에 푹 빠져 있었다. 

우리는 애플 대리점-카페-밥집-술집을 이어 다니며 끊임없이 떠들었다. 때로는 진지하게 은행을 완벽하게 터는 방법에 대해 아이디어를 모으기도 했다. 각자의 전공과 컴퓨터 해킹 기술, 영화에서 본 잡다한 지식으로 짜깁기했다. 은행을 실제로 털지는 못하더라도 은행을 터는 범죄 스릴러 영화 몇 편은 나올 것 같았다. 

만나서 떠들고, 헤어져서는 다시 통신에서 만나 밤새도록 이야기했다. 

우리의 문화는 B급이었고, 스스로 우리를 비주류로 인식했다. 주류 문화의 문제를 침 튀기며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고 주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시간은 계속 흐르더라. 하나둘 군대에 갔고, 누구는 네이버에 취직하고, 누구는 삼성에 취직했다. 중소기업에 취직하거나 창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B급의 비주류들은 어떻게든 기성 사회에 녹아들었고, 우리가 떠들었던 목소리는 흩어졌다. 

우리는 목적을 공유하지 않았다. 문화를 공유했던 만큼 직장의 문화, 사회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 흡수됐다. 

맥킨토시를 쓰는 회사는 거의 없었고, 나는 그렇게 혐오하던 PC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20년 후, 이게 무슨 일이야? B급 문화가! 비주류의 문화가 메인 스트림을 장악했다. 

B급 문화의 상징이자 사회 부적응자들이 만들어내는 판타지로 여겨지던 히어로 영화가 가장 강력한 주류 영화가 되고, 90년대의 트렌드가 레트로란 이름으로 부활하고 있다. 

이 와중에 나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B급 감성으로 극단적인 재미를 추구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언더독의 깃발을 흔들면서 목적을 공유하려고 한다.
의미보다 재미에 큰 비중을 두고 키득키득거리면서 만드는 콘텐츠가 마침내 성공하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지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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