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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young Sep 23. 2022

결론은 마음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비록 한 국가, 한 지역, 하나의 사업을 하더라도 지역 주민들, 주민 조직, 정부 관계자, 연구기관 등등 이해관계가 여러 갈래로 뻗어 있다. 처음 일을 할 때는, 사업에 동참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고 기관들이니 다 동일한 목표를 향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아주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것이었음을 해가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사업의 목표에 집중하는 것과 동시에 각 이해 관계자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협력하기 위해서, 연대하기 위해서, 서로의 기대를 알고 이를 충족 해야함을 알게 된 탓이다. 설령 그 기대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도 말이다.      


 처음 일을 같이 하게 된 사람들이 내게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왜 이렇게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이냐고. 어떤 동기, 어떤 열정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냐고. 앞에서는 다소 피상적으로 대답하지만, 뒤돌아서서 나에게 같은 질문을 여러번 던져보았다. 정말 마음 깊숙한 곳에는 그동안 지역의 변화를 함께 하고, 주민들과 성장한 역사가 좋고, 조금이라도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는데 발걸음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일을 지속하는 큰 이유가 있다. 하지만 한 켠에는, 다른 이해 관계자들처럼 나의 성장, 나의 경력, 그리고 나를 인정해주는 나의 주변을 놓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다. 처음에는 이런 마음이 싫었는데, 이제는 조금은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이 마음을 인정한다.     

 

 한 달간, 필리핀 남쪽에 위치한 민다나오섬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익숙한 지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동네에 가니 외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방정부 관계자에게 우리를 소개하는 자리를 시작으로, 주민 리더를 만나고, 농민들을 만나고, 농장에 방문하고, 수 차례 기관 소개 영상과 프레젠테이션을 이어갔다. 그리고 많은 대화를 통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그려갔다. 모든 과정에 내가 쏟은 에너지만큼 만족감이 있었고, 오랜만에 마주한 신선함이 잠도 못이룰만큼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마음으로 감동했던 것은 누군가 때문이다.     


 민다나오 개발청에 대외협력을 담당하는 최고 담당자를 만났다. 민다나오 개발청은 대통령 직속실로 분류될 만큼 권위가 있고, 지난 정부에 이어 현 정부까지 가장 중심의 정치세력이 집중 되어있는 곳으로 다른 정부 기관에서도 민다나오 개발청 요청이라함은 바짝 긴장할 만큼 힘을 지니고 있다. 민다나오 내 평화협정  체결이 이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은 토지개혁 과정 중에 있어 내부 분쟁도 있는만큼 민감한 이슈들을 몰고 다니는 기관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고 담당자와의 첫 만남은 무척 긴장되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은 첫 순간에 날아갔다. 담당자는 농민 리더를 만나고, 덥썩 손을 잡고 허리 굽혀 인사하며 존경의 표시를 했다. 우리를 소개하고, 대화를 하는 과정에 존중과 배려가 묻어났다.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웃음과 여유와 노련함이 삼박자를 이루며 멋진 리딩을 보여주었다. 나무에서 떨어진 나무 열매 하나를 아까워하며, 기후변화로 병충해를 입은 나무를 슬퍼하며, 농민들의 피해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안타까워했다. 이분의 역할을 통해 우리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매우 분명하고 단단한 협업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전 일정에서 업무와는 별개로 이분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걸까.     


 마지막날, 삼겹살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사모님과 함께 자리에 나오셨다. 필리핀 남쪽 섬, 외진 곳에서 연탄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뜨거운 대화를 했다. 두 분 모두 민다나오에서 일어난 무력 분쟁, 종교 분쟁, 환경 분쟁의 소용돌이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가족이 광산반대 운동을 하다 총을 맞고 사망한 경험이 있을 만큼.. 이 두 분은 이러한 분쟁이 한 명 한 명 주민들의 삶에 어떠한 슬픔을 주는지, 그 후세대가 빈곤의 굴레 속으로 얼마큼 깊이 들어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이었다. 마음. 마음의 중심이 단단하고 강력했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나는 그 마음에서 뻗어 나오는 기운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기운은 나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해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시련을 겪으며 삶의 목표를 단단하게 세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단단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한 번 확인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협력과 연대는 다른 사람 때문에 잘 안된다, 환경이 그렇다, 시스템 때문에 그렇다, 화살을 밖으로만 돌렸는데 어쩌면 나의 마음이 분명하지 않아서 화살을 엉뚱하게 날렸거나, 힘이 약해서 협력으로 가는 중에 떨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워크보트 3기를 지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어렵고 애매하기만 한 연대와 협력이다. 근본으로 돌아갔다, 근본을 헤쳤다가, 근본을 놓아버렸었다. 그러던 중, 마지막에 만난 한 사람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여기에서 다시 시작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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