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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길: 가스라이팅 담론

나를 속이는 것은 누구인가?

by root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말이 말해짐과 동시에
우리의 사유능력이 가 닿지 못하도록 생략된 것은 무엇인가?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단어는 타인의 현실 인식 그 자체를 교란하는 심리적 폭력의 한 방식을 의미한다. 그것은 권력관계의 불균형 속에서, 지속적이고 치밀한 방식으로 한 개인의 자아 감각 그 자체를 붕괴시키는 파괴 행위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이 단어는 이러한 맥락으로부터 이탈해 있다. 단순해진 상태로 타인과의 관계 내에서 어떤 불편한 순간이나 모호했던 지점들을 설명하기 위한 마법의 언어처럼 남용되고 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차용해 오는 순간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함께 자기 면책으로서의 망각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 결과 우리의 고유한 존재가 지워진다.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지우고 오직 단선적인 해석만 남는다.

지금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은 무분별하게, 그리고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처럼 쓰이는 현상은 주로 상대방과의 관계 맺음이 끝난 뒤나 혹은 어떠한 경험을 회고하면서 이 말이 더욱 쉽게 수면 위로 밀려 올라온다. ‘지금 돌아보니 가스라이팅 당했어’라고 말하는 순간 인간관계의 복잡성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단선적인 해석만이 남게 되어 우리 시야를 가리게 된다.


나는 피해자로서, 타자는 가해자로서 위치 지어지는 것이다. 삶의 관계라는 서사 속에서 내가 했던 판단, 선택과 침묵 그리고 나의 욕망 또는 자기기만등 이 모든 흔적들은 지워진다. 오로지 누군가로부터 조종당했던 자기 자신과 그로 인한 피해자만 남게 되는 간단한 구조가 되는 것이다.


피해자 담론들에는 진정한 윤리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가스라이팅 피해자의 자리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다만 피해자 담론들이 진정한 윤리적인 힘을 가지려면 그것이 한 인간의 고유한 삶에 대한 책임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기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든 타자이든 누군가 그 행위의 피해자임을 말하는 그 순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순간 나(그)는 어디에 있었는가?’ 이러한 질문이 없다면, ‘가스라이팅’은 또 다른 형태의 자기기만의 별칭이 될 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에 대해 책임지는 존재다. 타인에게 속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응답하는 존재인 것이다. 만약 내가 타자의 왜곡된 말을 받아들였다면 왜 그것을 받아들이고, 왜 그것을 견뎠는지에 대한 내 선택과 결정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자기기만의 늪으로부터 벗어나 선택의 결과물을 열어젖힐 때에라야먄 나 자신이 거기에서 추구 혹은 욕망했던 결정에 대한 성찰의 구조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책임지는 존재란 모든 폭력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진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한 자세로 마주 서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나 스스로가 피해자인지 아니면 실패한 선택의 대가를 되새기고 있는 것인지를, 그리고 억압당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욕망을 타자에게 투사해 그를 과도하게 신뢰했던 것인지를 살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고통과 아픔을 묘사하는 언어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가 고통과 아픔을 말하는 그 순간에 그 언어가 무엇을 생략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와 함께 그 말이 말해짐과 동시에 우리의 사유능력이 가 닿지 못하도록 생략된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응답하지 않을 때 우리는 속을 수 있다.


우리는 관계 맺음에서 타자로부터 폭력에 의해 고통받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스스로의 욕망과 회피, 그리고 무지에 의해서 우리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다. 외부의 말에 속기 전 우리는 종종 우리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


진정한 삶을 위한 물음은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진정 나를 기만하는 것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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